묵가(墨家)
묵자(BC470-BC391?)를 시조로 모시고, 발전했다.
그는 노나라에서 주나라의 여러 예법과 공자의 가르침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부하면서 유가 사상의 한계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했다.(모든 이치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됨으로, 상류층 지식인을 대상으로 하는 유학이론이 자신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유가 사상의 기본을 자져와서 ‘겸애론’을 펼쳤다. 서민들의 삶에서 펼쳐낸 유가 사상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유가사상과는 경쟁적 위치에 있었다.
묵가 학파는 개조(開祖)인 묵자 때부터 거자(鉅子; 우두머리)가 이끄는 집단을 이루었다. 묵가 집단은 무사이며 군인이고, 기술자였다.
⑴ 묵가는 성 방어 전문가였다. 그들은 성 방어를 수주하여 먹고 살았다.
⑵ 묵가는 기술자(工人)의 집단이었다. 성 방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무기를 제작해야 한다.
무기는 어떤 시대에도 그 시대의 최고의 기술이 적용된다. 따라서 묵가 무리는 당시에
최고의 기술자 집단이었다.
⑶ 묵가의 무리는 또한 절대자 인격신을 믿은 종교적 집단이었다. 묵자는 겸애가
하느님의 뜻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하느님의 뜻에 따를 때 하느님이 상을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고 한다.
이는 유가가 '의례(儀禮) 전문가(儒)로서 의례를
집행하면서 먹고 살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라면,
묵가는 기본적으로 무사이다.
묵자는 ‘위로 하늘을 존중하고, 중간에 귀신을 섬기며, 아래로는 사람을 사랑한다.’라고 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데서 ‘겸애론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후장을 반대하고, 가무, 연주, 무용(예의 집행에 사용하는 樂에 해당)을 항상 연습해야 하는 일도 천하를 망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가와는 의견이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진시황 이후에 사라졌다.
추종세력이 사대부 등의 지식인과, 군인, 기술자 등의 실질적인 현실론자로서, 굳이 따진다면 文과 武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대 중국의 4대 사상이라면,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이다.
첫댓글 묵가... 성 방어의 귀재들...
그러나 그들도 편협한 이론으로...
제자백가의 한 유파로 존재하다 사라졌으니...
다만 겸애론과 스스로를 낮추어 겸손해 한 것은 배울 바가 있습니다... ㅎ... ^^*...
제자백가의 사상들 중
묵가의 사상을 짚어주시어 다시
공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덕분에
묵가무리들이 무사이고 군인이고 기술자였음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