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pat(짧고 가볍게 두드리는…짧은 소회) 정현수 굉음을 내는 지하철에서 뿜는 열기와 소음, 9월의 막바지 더위와 바삐 오고 가는 승객들의 열기가 더해 저 승강장의 끈끈함은 금방 말라 버리는 한 여름 사발 팥죽 더껑이 지듯 끈적끈적하다. 그는 지하철을 바꿔 타기 위해서 승객 인파로 복잡한 통로에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약간 습한 열기를 느끼며 8호선 잠실역 승강장을 빠져나와 2호선 승강장 입구 계단을 막 올라가려 할 때, 계단 아래서 쩔쩔매는 모습으로 장애인 전용 리프트 호출기를 연신 누르며 곤란해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흘깃 보았다. 주위의 인기척에 그녀 역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서로의 눈이 마주칠 때 그는 곧 숨이 막히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그 짜릿함은 오래전 원인이 있었고 기막힌 어떤 계기가 있었던 듯했다. 그녀의 모습은 아침에 찬란한 태양이 거리낌 없이 떠오르는 것 같은 가슴 벅찬 희열이었다. 뭔가를 알기 위한 꼭 필요한 반영反影이었지 않나? 그녀의 모습은 매력적인 황홀이었다. 무엇과 무엇을 적당히 잘 뒤섞여 놓은 신비였다. 끝이 날카로운 윙 칼라에 아무 무늬도 없는 옅은 푸른색 오피스 룩이 잘 어울리고 고상하고 우아한 그녀의 고혹적인 자태였다. 그는 할 말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찌 저런 가냘픈 모습에서 휠체어를' 그는 잠깐의 망각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잘 안되나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차분한 말투로 곧 응답했다. "호출(역무원)을 해도 응답이 없네요." 말소리마저 기품이 있고 존재의 유연함으로 묻혀 있는 묘한 지성의 활용 같았다. 그녀의 황홀의 빛남은 초록빛 잎사귀를 더더욱 파랗게 하는 밝은 햇빛이었다. "내가 한 번 해볼까요?" 그가 호출 버튼을 계속 눌러대지만 역시 아무 반응이 없다. 호출기 고장인 것 같다. 빨간 버튼이 함몰돼 원위치가 되지 않는다. 그 순간 그는 생각에 이 여신을 번쩍 안아서 2호선 승강장까지 열댓 계단 정도밖에 안되니 올라가 의자에 앉히고 휠체어는 다시 올려놓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때 그녀의 말이 그의 생각을 여지없이 돌려놓는다. "감사해요. 다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 지상으로 올라가 탈까 봐요." 순간 그녀에게 그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더 이상 그 상황을 이끌지 못하고 겸연쩍게 멈칫하며 말을 잇는다. "그렇게 하시면 복잡하고 힘드니까 여기 계세요. 내가 올라가서 역무원을 보내겠습니다." 하며 그는 그 자리를 떠났고 그녀는 도움을 주려는 저 남자를 어디선가에서 보았다는 걸 생각했다. 뭔가 아쉽지만 도리가 없다. 이 상황에서 도를 넘은 흔해빠진 어떤 계기를 만들 수는 있지 않은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지성과 말을 경솔한 행동으로 내 보여 그녀를 민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를 한편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같이 오겠다는 말은 못 하고 벗어나고 싶지 않은 듯 못내 아쉬워하며 뭔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뒤돌아 보며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그 둘의 아쉬움은 쉽게 다가가 갈 수 없는 미련만 잔뜩 남긴 채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그 설렘은 먼바다에서 다 쓸어버릴 듯한 높은 파도가 밀려와 해변의 모래를 다스리고 조개껍질이나 해초 줄기를 더 멀리 밀어 버려 쓸쓸함이나 아득함을 주고 사라지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절망의 먹먹함 같은 것이었다.
그는 2 호선으로 갈아타고 그 여인을 생각해 냈다. 여의도 어떤 세미나에서 발언자로 나왔고 그때 그의 동료에게서 그녀를 소개받았던 기억이 그때야 떠올랐다. 삶의 한 가닥에서 평온을 느꼈던 어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