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경산림 대법회 제6강 - 1(2010. 8. 2.)
世主妙嚴品.
七,大衆의 得法과 讚佛-2,十廻向位衆-(3)第八廻向의 乾闥婆王
華嚴十刹ㆍ華嚴祖師
一心頂禮 盡十方三世(진시방삼세) 一切諸佛(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아제자등) 講論三藏(강론삼장) 唯願三寶(유원삼보)
爲作證明(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무더운 날씨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오셔서 법회에 성황을 이뤄주셔서 아주 대단히 고맙습니다. 또 말은 안 드렸지만, 봉사하시는 신도님들도 이 더위에 10여분이 이렇게 오셔서 주차관리도 하시고, 스님들이 자실 음료수라든지 음식 같은 것 준비하느라고 아주 대단히 고맙습니다. 또 녹음하시는 거사님, BBS에서 와서 녹화하시는 방송국 직원. 모두 이것이 불교를 위하는 일이고, 부처님의 법을 널리 홍보하자는 그런 뜻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두 더운 날 고생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화엄경 제 6강. 우선 유인물부터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화엄경 유인물을 넣지 못해 죄송합니다. 화엄경영상 게시물을 프린트해 놓고 보시기를...)
첫 시간에 조금 언급했던 이야기인데요. 이런 것들도 이렇게 문서화해서 활자로 정리를 하면, 스님들도 인연 따라서 화엄경을 이야기할 그런 장소에서 자료로 쓰실 수 있도록 제가 이렇게 적어서 나눠드립니다.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華嚴十刹이라든지 또 화엄의 여러 조사스님들에 대한 것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정말 철저하게, 역사적인 고증이라든지 어떤 그 전등록이라든지 또 승보전 이런 것을 통해서 그 출처를 밝히고 하는 그런 일들은 어떤 다른 경에서 해야 할 그런 일들로 생각하고, 상식적인 선에서 대강 이렇게 정리해 봤습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는 1700년 정도 됐습니다만 제대로, 사상적으로 경전이 다 중요한 경전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제대로 된 사상으로 한국 불교를 정립하는 시기는 그래도 義湘(의상)스님께서 중국에 가서 화엄경을 공부해와가지고 우리나라에 널리 전파한데서부터 비로소 제대로 한국 불교정체성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상스님과 10대 제자에 의해서 전국에 설립된 것이 소위 화엄십찰 그렇게 하는데요. 이 화엄십찰에 대해서 기재된 곳이 삼국유사도 있고, 최고운 선생의 傳記 註 夾註(전기 주 협주)라고 하는데 거기에 보면 또 화엄십찰이라는 것이 있고, 또 현장법사 전기 같은 데서도 나오고요. 그래서 명칭이 조금씩, 조금씩 다릅니다.
우선 여기 올라있는 것으로는 중악 공산 미리사라고 하는 신라 때 표기된 사찰들입니다. 남악 화엄사. 부석사. 부석사가 본산입니다. 의상스님께서 중국에서 화엄학을 공부해서 부석사에 먼저 짐을 내렸고, 유인물에 10대 제자가 쭉 이름이 나와 있지 않습니까? 오진스님ㆍ지통스님ㆍ표훈스님ㆍ진정스님ㆍ진장스님ㆍ도융스님ㆍ낭원스님ㆍ상원스님ㆍ능인스님ㆍ의적스님. 의상스님의 많은 제자 중에 이런 분들을 10대 제자로 꼽는데, 의상스님이 직접 사찰을 건립한 그런 사찰도 있습니다. 범어사 같은 경우는요. 그런데 제자들이 가서 의상스님의 이름을 빌어서 사찰을 세운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의상스님이 일일이 다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개된 것이 이런 10대 사찰인데 해인사와 보광사입니다.
보광사는 해인사 그 너머에 있었던 절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보원사라든지 갑사라든지 범어사ㆍ옥천사ㆍ국신사ㆍ청담사ㆍ이러한 것이 다른 기록에 나와 있는 10대 사찰인데 밑에 덕유산 영각사를 제가 기록해 놓은 것은, 조선말에 까지 영각사에 화엄경 판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옛날 목판본 화엄경이 몇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각사 판을 제 일로 쳤어요. 지금은 판각은, 경판은 다 타버리고 6ㆍ25때 아마 영각사가 소진이 되었지요? 타 버리고 그 때 찍은 화엄경은 아직도 몇 벌이 우리나라에 소장 되어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구하려고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지요. 판본이 제일 좋다고 하는...
그래서 지금 크게 화엄종찰이라고 현판을 세우는 사찰이 그래도 영각사입디다. 제가 어느 날 영각사에 지나다 보니까 그런 현판이 있는 겁니다. 해인사 같은데도 “원종 대 가람” 이런 표현을 하긴 했습니다만, 크게 화엄경만을 숭상하는 것도 아니고, 부석사도 그렇고요. 또 화엄사는 그 이름도 화엄사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화엄경을 숭상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간판이나마 영각사는 “화엄종찰” 이라고 걸어놨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한 번 이름을 밝혀드렸습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상식적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화엄조사라고 해서 5祖說이 있고ㆍ7조설이 있고ㆍ10조설이 있고, 고래로 그렇습니다. 5조설 : 두순스님ㆍ2조 지상스님ㆍ현수법장스님 현수법장스님하고 사형사제로써 의상스님이지요? 지상스님의 제자니까요. 청량진관스님ㆍ규봉종밀스님. 이렇게 5조설이 있고,
그 다음에 7조설은 여기다가 마명과 용수를 합하면 7조가 되는 것이지요. 5조에서 7조가 되고,
그 다음에 10조설은 문수ㆍ보현ㆍ마명ㆍ용수ㆍ세친. 세친보살 까지 거기다 더해서 앞의 5조와 합해서 10조설로 그렇게 칩니다.
그 다음에 한국의 조사 해가지고, 義湘스님의 법성게ㆍ법성도가 우리 염화실책에 늘 이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나라에 정말 화엄사상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가장 아주 최초이면서 근거가 되는 것이고, 또 화엄법성도 내지 법성게는 중국의 어떤 조사스님들도 이렇게 화엄사상을 정리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빼어난 화엄사상을 정리한 내용이다.” 라고 칭찬을 받습니다. 의상스님은 정말 단순하게 법성게ㆍ법성도. 이 하나만 가지고, 지금까지 화엄학자로서 추앙을 받습니다. 많은 책을 쓴다고 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한 편을 써도 정말 만고에 귀감이 될, 영원히 남을 그런 글을 명문 한 편을 쓰면 말하자면 이렇게 역사적으로 오래 가게 됩니다.
그 다음에 원효스님은 우리가 잘 아는바 대로 의상스님과 유학을 가는 도중에 깨달은 바가 있어서 돌아온 그런 스님이지요? 원효스님은 화엄경 序文이 있고ㆍ광명각품 소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화엄학자로써 빼놓을 수가 없는 그런 분이지요.
그 다음에 심상스님은 일본에 화엄경을 전한 스님이고요.
또 행기스님(668-749)ㆍ양변스님(689-773)은 일본에 화엄 총본산인 동대사와 비로자나대불을 건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그렇게 일본역사에도 기록이 있는 그런 분입니다.
그 다음에 고려 때 균여스님(923-973)은 보현십원가를 지어가지고, 우리 문학사에 아주 큰 업적을 남긴 그런 분이지요. 향가로써 제일 마지막에, 물론 신라의 향가를 치지만, 신라직후기 때문에 보현십원가도 향가를 이야기할 때 꼭 빼놓지 않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균여스님은 우리 문학사에 공헌이 참 크신 분이지요.
그 다음에 普照國師, 보조국사 하는데 이 스님은 선사이기도 하려니와, 사실은 일본 사람들은 보조스님을 선사라고 하지 않고, “화엄학자” 라고 그래요. 왜냐? 선에 대한 저술도 물론 있습니다만, 화엄론 절요 3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통현장자 화엄합론을 축약을 한 것인데 참 아주 뛰어납니다. 이것이 있고, 그 다음에 원돈 성불론이 있어서, 그래서 보조스님도 한국의 화엄조사로 이렇게 칠 수 있을 그런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하게 그냥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것을 가지고, 제대로 세밀하게 이야기하려면 이것만 가지고도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 상식선에서 이 정도로 정리를 했습니다.
오늘은 대방광불화엄경 권 3. 2권이 끝났고 3권에 들어왔습니다.
世主妙嚴品 一之三(세주묘엄품 일지삼)이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경전 공부를 이렇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불교경전 소위 8만 대장경 중에서 최고봉이라고 하는 화엄경을 공부하는데, 비록 화엄경이 설사 아니고, 설사 다른 경전내지 어록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경전, 어떤 어록이든지 간에 우리가 이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것입니다. 보다 깊게 명상이 되어져서 시대에 따라서 뜻이 보다 더 확장이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늘 외우는 천수경ㆍ반야심경도 단순하게 글자 해석대로의 뜻에 끝나지 않고, 그것이 시대에 맞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그런 상황에 맞는 뜻으로 확장 되어져야 됩니다. 얼마든지 그것이 확장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어떤 상황에, 우리가 사는 이 아주 복잡다단한 이러한 상황에 보다 더 심도 있게 활용이 되어야 되는 것이지요. 경전이 정말 살아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살아있는 불교가 되려면 근본적인 부처님 말씀이 담겨있는 경전이 이 상황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상황에 아주 심도 있게 그것이 활용이 될 때, 그 때 역사와 더불어 진리로써 살아서 숨 쉴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불교지요. 활 불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그냥 경전 읊조리고 어떤 즐겁고ㆍ환희심이 나고ㆍ뭐라고, 뭐라고 표현 할 수는 없는데 그런데 하여튼 환희심은 나고ㆍ이해는 뭔가 심적으로 가긴 가고ㆍ이것도 물론 좋아요.
우리 개인적으로는 경을 대하는 자세로써 어떤 신심이 충만해가지고, 어떤 법희선열에 들뜨고 거기에 도취하는 것, 참 좋은 태도이지만, 거기에서 정말 한 걸음 더 나아가가지고 이 시대에 맞게 그 뜻이 확장 되어서 정말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것이 살아있는 진리로써 숨 쉬게 하되, 그렇게 풀어내야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활용이 되어야 된다 하는 것. 이것을 늘 우리는 과제로 마음에 새기고 공부하면 훨씬 소득이 클 줄로 압니다.
그것은 요는 관심입니다. 관심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관심만 가지고 있으면 방법이 얼마든지 나올 수가 있습니다. 관심만 가지고 있으면 아, 이것은 오늘 내가 누굴 만났는데 이것이 적용이 되겠다. 오늘 내가 어떤 일을 하는데 적용이 되겠다. 어떤 신도가 나에게 와서 어떤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거기에 아주 적합하게 활용이 될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개인의 문제와 교화를 위한 그런 방편으로 활용이 잘 되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서 늘 그런 쪽으로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오늘은 第十廻向 중에서 第八廻向의 乾闥婆王 이렇게 되었지요?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三
世主妙嚴品(세주묘엄품) 第一之三
(3) 第八廻向의 乾闥婆王(제팔회향 건달바왕)
가, 乾闥婆王衆의 得法(건달바왕중 득법) : 법을 얻은 내용
復次持國乾闥婆王(부차지국건달바왕)은
得自在方便(득자재방편)으로
攝一切衆生解脫門(섭일체중생해탈문)하고
樹光乾闥婆王(수광건달바왕)은
得普見一切功德莊嚴解脫門(득보견일체공덕장엄해탈문)하고
淨目乾闥婆王(정목건달바왕)은
得永斷一切衆生憂苦(득영단일체중생우고)하야
出生歡喜藏解脫門(출생환희장해탈문)하고
華冠乾闥婆王(화관건달바왕)은
得永斷一切衆生邪見惑解脫門(득영단일체중생사견혹해탈문)하고
喜步普音乾闥婆王(희보보음건달바왕)은
得如雲廣布(득여운광포)하야
普蔭澤一切衆生解脫門(보음택일체중생해탈문)하고
樂搖動美目乾闥婆王(낙요동미목건달바왕)은
得現廣大妙好身(득현광대묘호신)하야
令一切獲安樂解脫門(영일체획안락해탈문)하고
妙音師子幢乾闥婆王(묘음사자당건달바왕)은
得普散十方一切大名稱寶解脫門(득보산십방일체대명칭보해탈
문)하고 普放寶光明乾闥婆王(보방보광명건달바왕)은
得現一切大歡喜光明淸淨身解脫門(득현일체대환희광명청정신해
탈문)하고 金剛樹華幢乾闥婆王(금강수화당건달바왕)은
得普滋榮一切樹(득보자영일체수)하야
令見者歡喜解脫門(영견자환희해탈문)하고
普現莊嚴乾闥婆王(보현장엄건달바왕)은
得善入一切佛境界(득선입일체불경계)하야
與衆生安樂解脫門(여중생안락해탈문)하시니라
1. 復次持國乾闥婆王(부차지국건달바왕)은, 또 다음에 지국건달바왕은 得自在方便(득자재방편)으로, 자재한 방편으로 攝一切衆生解脫門(섭일체중생해탈문)하고, 일체중생을 포섭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했습니다. 乾闥婆王.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를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그렇지요. 그래서 自在方便으로,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지요. 중생제도 하는 데는 노래를 불러야 할 경우는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춰야 할 경우는 춤도 추고, 이것이 본래로 있는 겁니다.
2. 樹光乾闥婆王(수광건달바왕)은 得普見一切功德莊嚴解脫門(득보견일체공덕장엄해탈문)하고, 일체공덕장엄을 널리 보는 해탈문을 얻고, 一切功德莊嚴. 이런 말이 있어도, ‘아,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현대적으로 활용할까? 남의 장점을 보자. 남의 장점을 보면 그래서 그 장점을 칭찬해주고, 뭔가 칭찬을 하루에 두세 번 해야 되는데, 무슨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줄까?’ 이런 데에 우리가 이런 말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 다음에
3. 淨目乾闥婆王(정목건달바왕)은 得永斷一切衆生憂苦(득영단일체중생우고)하야, 일체중생의 憂苦를 永斷해서, 일체중생들의 근심과 괴로움을 영원히 끊어가지고서 出生歡喜藏解脫門(출생환희장해탈문)하고, 歡喜藏을 出生하는, 끝없이 기쁨을 출생하는 그런 해탈문을 얻고,
4. 華冠乾闥婆王(화관건달바왕)은 得永斷一切衆生邪見惑解脫門(득영단일체중생사견혹해탈문)하고, 일체중생들의 邪見惑을 永斷. 영원히 끊는 해탈문을 얻고, 그렇습니다. 邪見惑이라고 했는데요. 이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 사람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見解. 바른 견해가 제일 중요 하거든요. 그래서 불교에는 邪見을 경계하는 가르침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 밝은 세상에도 우리가 삿된 견해에 미혹이 돼가지고...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이 저 한테 전화를 했는데요. 누구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그 사람이 지금 강원도에서 크게 포교를 하고 뭐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 자기가 곧 부처이고, 부처인 사람은 자기뿐이다. 지금 현재 불교는 제대로 된 불교가 없고, 전부 엉터리 불교이고 자기가 하는 불교만이 진실이다. 라고 자기가 들어봐도 이것은 순전히 삿된 소견인데 스님 이름을 팔더라. 스님이 그 사람하고 어떤 관계에 있느냐?” 이런 전화를 제가 받았어요. 아마 요즘 더러 소문 들어서 알겁니다. 지부가 부산에도 있습니다.
그 전에 불교TV에 그 사람 나왔다가 잘못 돼가지고, 불교TV에서는 초청도 아니 하고 방영도 아니 하는 사람입니다. 邪見이 참 무서운 겁니다. 인생 최대의 문제가 아닐까? 소견만 바로 든다면 그 다음 문제는 다 해결이 된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5. 喜步普音乾闥婆王(희보보음건달바왕)은 得如雲廣布(득여운광포)하야, 구름이 널리 퍼지는 것과 같이 普蔭澤一切衆生解脫門(보음택일체중생해탈문)하고, 일체중생들을 널리 그늘 지우고 윤택하게 하는 그런 해탈문을 얻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라는 것이 뭡니까? 일체중생들을 더운 날 그늘 지우고 윤택하게 하고, 그것은 물론 法으로써이지요. 또는 여유가 있으면 물질로도 그렇게 蔭澤을 내리는 이것이 불교가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6. 樂搖動美目乾闥婆王(낙요동미목건달바왕)은 得現廣大妙好身(득현광대묘호신)하야, 넓고 큰 妙好. 아름답고 좋은 몸을 나타내서 令一切獲安樂解脫門(영일체획안락해탈문)하고,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는 해탈문을 얻고,
7. 妙音師子幢乾闥婆王(묘음사자당건달바왕)은 得普散十方一切大名稱寶解脫門(득보산십방일체대명칭보해탈문)하고, 시방일체 大名稱寶를 普散. 널리, 말하자면 시방에다가 흩는, 흩는다고 했지만 알리는 그런 해탈문을 얻고,
8. 普放寶光明乾闥婆王(보방보광명건달바왕)은 得現一切大歡喜光明淸淨身解脫門(득현일체대환희광명청정신해탈문)하고, 일체대환희광명청정신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고,
9. 金剛樹華幢乾闥婆王(금강수화당건달바왕)은 得普滋榮一切樹(득보자영일체수)하야, 滋榮一切樹. 일체 나무들을 잘 키우는 것이지요. 滋榮한다고 하는 것은 잘 키워서 令見者歡喜解脫門(영견자환희해탈문)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게 해주는, 歡喜케 해주는 그런 해탈문을 얻고,
10. 普現莊嚴乾闥婆王(보현장엄건달바왕)은 得善入一切佛境界(득선입일체불경계)하야, 일체부처님 경계에 잘 들어가서 與衆生安樂解脫門(여중생안락해탈문)하시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케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중생들에게 안락을 주는 그런 해탈문을 얻는다. 이렇게 得法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써 찬탄 하는데 항상 이 열 사람입니다. 열 명의 건달바왕인데요. 그 순서대로 게송으로써 찬탄. 부처님을 찬탄 하는 것이 곧 자기의 불교에 대한 소견이고, 자기가 쌓은 수행이다. 그리고 자기의 안목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나, 偈頌讚歎(게송찬탄)
爾時(이시)에 持國乾闥婆王(지국건달바왕)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普觀一切乾闥婆衆(보관일체건달바중)
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諸佛境界無量門(제불경계무량문)이여
一切衆生莫能入(일체중생막능입)이어늘
善逝如空性淸淨(선서여공성청정)하사
普爲世間開正道(보위세간개정도)로다
如來一一毛孔中(여래일일모공중)에
功德大海皆充滿(공덕대해개충만)하사
一切世間咸利樂(일체세간함이락)하시니
此樹光王所能見(차수광왕소능견)이로다
世間廣大憂苦海(세간광대우고해)를
佛能消竭悉無餘(불능소갈실무여)하시니
如來慈愍多方便(여래자민다방편)이여
淨目於此能深解(정목어차능심해)로다
十方刹海無有邊(시방찰해무유변)을
佛以智光咸照耀(불이지광함조요)하사
普使滌除邪惡見(보사척제사악견)하시니
此樹華王所入門(차수화왕소입문)이로다
佛於往昔無量劫(불어왕석무량겁)에
修習大慈方便行(수습대자방편행)하사
一切世間咸慰安(일체세간함위안)하시니
此道普音能悟入(차도보음능오입)이로다
佛身淸淨皆樂見(불신청정개낙견)이여
能生世間無盡樂(능생세간무진락)과
解脫因果次第成(해탈인과차제성)하시니
美目於斯善開示(미목어사선개시)로다
衆生迷惑常流轉(중생미혹상류전)하야
愚癡障蓋極堅密(우치장개극견밀)이어늘
如來爲說廣大法(여래위설광대법)하시니
師子幢王能演暢(사자당왕능연창)이로다
如來普現妙色身(여래보현묘색신)하사대
無量差別等衆生(무량차별등중생)하사
種種方便照世間(종종방편조세간)하시니
普放寶光如是見(보방보광여시견)이로다
大智方便無量門(대지방편무량문)이여
佛爲群生普開闡(불위군생보개천)하사
入勝菩提眞實行(입승보리진실행)케하시니
此金剛幢善觀察(차금강당선관찰)이로다
一刹那中百千劫(일찰라중백천겁)을
佛力能現無所動(불력능현무소동)하사
等以安樂施群生(등이안락시군생)하시니
此樂莊嚴之解脫(차락장엄지해탈)이로다
爾時(이시)에, 그 때에
持國乾闥婆王(지국건달바왕)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서 普觀一切乾闥婆衆(보관일체건달바중)하고, 일체 대중들을 널리 살피시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1. 諸佛境界無量門(제불경계무량문)이여,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한량없는 문이여 一切衆生莫能入(일체중생막능입)이라. 모든 중생들이 능히 들어가지 못 하거늘, 善逝가 如空하여 性淸淨(선서여공성청정)이나 普爲世間開正道(보위세간개정도)로다. 善逝. 부처님이지요? 부처님은 허공과 같아요. 그래서 그 性이 淸淨해요.
여기의 淸淨이라는 것도 “비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렇지만 普爲世間. 널리 세간을 위해서 정도를 개시한다. 그랬습니다.
불교에서 여러 가지 正見이 있겠습니다만, 어떤 空性ㆍ無我. 여기에 대한 이해가 모든 존재에 대한 空性을 이해하는 것. 이것도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正道ㆍ正見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 제1번 게송은 諸佛境界가 無量門입니다. 불교라고 하는 것은 아주 다종다양해요. 아주 정말 어리석은 몽매한 중생에게 딱 맞는 그런 아주 낮은 가르침이 있는가 하면, 아주 고차원적인 그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한량없는 문인데 그 중에서도 대표를 들라면 모든 존재의 공성. 모든 존재는 연기로 되었고, 연기로 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탕이 비었다. 근본은 비었다. 라고 하는 것. 이것을 正道로 삼는다. 첫 번째 게송에는 이런 뜻이 포함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게송은 불교의 가지가지 방편이 모두가 이로운 것이고 즐거운 것이다. 또 이로운 것이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불교에는 우리가 목탁을 치든ㆍ기도를 하든ㆍ경을 공부하든ㆍ참선을 하든ㆍ이롭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하는 그런 의미가 포함 되어있습니다.
2. 如來一一毛孔中(여래일일모공중)에 功德大海皆充滿(공덕대해개충만)하사, 부처님의 낱낱 佛根. 불교, 그 다종다양한 많고 많은 부분ㆍ부분에 공덕의 큰 바다가 다 충만해있다. 一切世間이 咸利樂(일체세간함이락)하시니, 모든 세상이, 불교라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그런 바다에 모두 들어가서 모두 다 이롭고 즐겁다. 그렇지요. 예를 들어서 오늘 절에서 내려오는데 보니까 개울이 좋고ㆍ숲이 참 좋고ㆍ바위가 좋거든요. 거기에 날씨가 더우니까 바위 하나만지고, 그것 다 부처님 그늘이거든요. 如來一一毛孔中에, 그것도 한 모공에 해당 되는 겁니다. 그 바위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더위를 피하고, 이것도 다 그 중에 해당 되는 겁니다. 사실은 어찌 보면... 사찰에 와서 물 한번 떠가는 것도 역시 해당 될 수가 있고, 관세음보살 부르면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해서 관세음보살 그거 하나만 배워가지고 열심히 관세음보살만 부르는 것. 이것도 아주 훌륭한 이로움이고 즐거움이 되는 것이지요.
어느 구석구석 중생들에게 혜택 베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전 세계의 곳곳에 우리 불교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그런 분야ㆍ분야를 낱낱이 우리가 살펴보고, 그것을 기록을 해보기로 하면요? 아마 끝도 없을 겁니다. 그것이 此樹光王所能見(차수광왕소능견)이로다. 이것은 두 번째 樹光乾闥婆이 所能見. 능히 본 바로다. 그 다음에 세 번째.
3. 世間廣大憂苦海(세간광대우고해)를, 세상의 넓고 큰 근심과 고통의 바다를 佛能消竭悉無餘(불능소갈실무여)라. 부처님은 세상의 고통이 아무리 바다처럼 넓고 크다 한들, 부처님의 정말 진정한 가르침을 우리가 접하게 되면 그것을 다 녹여버릴 수 있다. 다 없애버릴 수 있다. 말입니다. 悉無餘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버릴 수 있다. 모든 苦惱를 불교로써 해결한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요. 어떤 고뇌가 됐든지 물질적인 것이든ㆍ정신적인 것이든ㆍ어떤 고뇌든지 불법 안에서 해결 안 될 것은 없습니다. 사실 그래요. 여기 世間廣大憂苦海를, 바다와 같이 그렇게 드넓은 고통들을 부처님은 능히 그것을 다 소멸해서 없애버린다.
如來慈愍多方便(여래자민다방편)이여, 여래가 자비로써 어여삐 여기는 많은 방편들이여 淨目於此能深解(정목어차능심해)로다.
王淨目乾闥婆王이 여기에서 능히 깊이 이해했더라. 이 도리를 정목건달바왕이 깊이 이해했더라. 그 다음에
4. 十方刹海無有邊(시방찰해무유변)을, 시방의 드넓은 세상. 드넓은 세계에 그 가없는 것을, 佛以智光으로 咸照耀(불이지광함조요)라. 부처님은 지혜의 광명으로써 그 모든 세상사를 전부 환하게 비춘다. 咸照耀하사.普使滌除邪惡見(보사척제사악견)하시니,
널리 하여금 邪惡한 소견들을, 사악한 見解를 滌除. 씻어서 제거하신다. 여기도 邪惡이 나왔네요. 이것이 4번이니까 華冠乾闥婆王.
아까 제가 역설했던 그 대목입니다. 그 뜻이 같지요? 邪惡한 見解를 滌除한다. 씻어서 제거하시니 此樹華王所入門(차수화왕소입문)이로다. 이것은 樹華乾闥婆王이 들어간바 문이더라. 그 다음 다섯 번째
5. 佛於往昔無量劫(불어왕석무량겁)에, 부처님은 지난, 옛날 한량없는 겁에 修習大慈方便行(수습대자방편행)하사, 큰 자비의 방편 행을 修習하시사, “불교는 자비다.” 그런 말을 우리가 많이 하지요? 또 “지혜와 자비다.” 그 중에서도 사실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지혜보다도 오히려 자비입니다. 지혜보다도 오히려 자비가 피부에 훨씬 와 닿아요. 그래서 大慈方便行. 큰 자비의 방편 행을 修習 하셨다. 一切世間咸慰安(일체세간함위안)하시니, 일체세간을 다 위로하고 편안하게 하셨다.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월 속에서 그런 수행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此道는 普音이 能悟入(차도보음능오입)이로다. 喜步普音乾闥婆王이 능히 깨달아 들어갔더라.
6. 佛身淸淨皆樂見(불신청정개낙견)이여, 부처님의 몸은 아주 훌륭하고 빼어나서 다 즐겨 바라봄이여 能生世間無盡樂(능생세간무진락)과, 능히 세상의 한량없는 괴로움도 부처님을 바라보면 거기서 다 즐거움이 생기고 解脫因果次第成(해탈인과차제성)하시니, 해탈의 문제도 거기서 또 말할 것도 없지요 그것은. 불교수행의 최고 목표가 해탈이니까요. 또 세상을 살아가는데 因果의 원리. 그것까지도 다 만들어 낸다. 能生하는 生자를 거기다 해석해야겠지요. 世間의 즐거움이면 세간의 즐거움. 解脫이면 해탈. 因果의 원리면 인과의 원리. 이 모든 것을 전부 거기서 생산해내서 次第成이라. 낱낱이 자기 인연 따라서ㆍ자기 좋아하는 것 따라서ㆍ자기의 그 어떤 수준 따라서 모두를 다 성취하게 하시니 美目이 於斯에 善開示(미목어사선개시)로다. 美目乾闥婆王이 여기에서 잘 開示했더라.
해탈ㆍ해탈. 얼마나 잘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말입니까? 이런 것들도 그저 아득하게 생사해탈. 언제 있을지도 모를 생사해탈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것이 제가 서두에 말씀 드렸듯이 이것의 뜻을 현대적으로 무한히 확장 되어야 됩니다. 그냥 “생사해탈” 해 놓으면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 언제할지 누가 알아요? 그러니까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간단한 해탈해야 되는 겁니다.
누가 오늘 여기서 만나서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기로 약속 했는데, 때가 되어도 안 와요.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속이 탄다 이 겁니다. 이 문제부터 해탈해야 되는 겁니다. 어차피 그 사람은 못 와요. 못 오는데 나는 속이 끓는다 이 겁니다. 아주 비근한 하나의 작은 예인데, 일상에서 그런 문제가 무수히 많지 않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해탈해야 되는 겁니까?
그래 근래에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이것은 新 三法印(신삼법인)이라. 제가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하고, 나지사 관법이니 그런 말도 쓰기도 하고 그러는데 안 오는 구나 안 오는 구나 오늘 안 오는 구나. 구나관법입니다. 구나보살이라고 해도 좋아요. 구나보살. 그 때에 관세음보살보다도 구나보살이 더 좋아요. 아, 안 오는 구나 그냥 그대로 봐 주라 이 겁니다. 그냥 그대로 봐 주라... 안 왔구나. 오늘 안 왔구나. 그렇게 봐 주라는 겁니다. 그것도 사실 경전에 있는 말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해석 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그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다음에 제2법인이 나가는데요. 겠지보살입니다. 겠지보살. 이유가 있겠지. 약속을 어겼으면 분명히 그 사람은 교통 문제가 걸렸거나, 아니면 사찰에 아주 중대한 일이 있거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러면 한 생각 탁 떨어집니다. 끓어오르던 나의 생각이 탁 떨어집니다. 이것이 중요해요.
있겠지.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 분명히 그럴 이유가 있을 꺼야. 잊어버렸거나 아무튼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 다음에 제 4탄이 감사입니다. 감사보살. 그 사람이 오늘은 나의 속 끓어오르게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그 동안 나에게 한 것만 해도 아주 감사하다. 그 길 밖에 무슨 길이 있습니까? 방법 없습니다. 내 속 끓어오르는 것을 잠재우는 방법은 그 끓어오르는 속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습니다. 구나ㆍ겠지ㆍ그것만으로 감사하다. 그동안 나에게 배려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것이 新 三法印(신삼법인). 새로운 삼법인입니다.
무슨 諸行無常(제행무상)ㆍ諸法無我(제법무아)ㆍ涅槃寂靜(열반적정)만이 삼법인이 아니고, 이것이 구체적인 삼법인입니다. 이렇게 해야 해탈이 되는 겁니다. 解脫. 그 문제로부터 해탈입니다. 이것이 하나ㆍ하나 훈련을 쌓고 발전하면, 이것을 염불로 해도 좋고ㆍ관법을 해도 좋고ㆍ이것을 참선으로 해도 좋고ㆍ명상의 소재로 삼아도 좋고ㆍ주문으로 삼아도 좋아요. 관법으로 삼아서 나지사 관법. 하는 구나ㆍ겠지ㆍ감사. 그래 나ㆍ지ㆍ사. 나지사 관법이라고도 하고 그래요. 이것 세상에 아주 많이 떠돕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불교가 옛날 구태의연한 그런 용어ㆍ그런 해석에 끝날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확장 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사실 경전하고 갖다 맞추면 다 있는 말입니다. 요즘 형식으로 표현을 해서 그렇지, 사실은 한문 속에 다 있는 겁니다. 경전 속에 다 있는 것이지 이것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그래서 그런 작은 문제에서부터 해탈해야 하는 것. 그 다음에 因果는 다시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아무튼 그런 해탈의 문제ㆍ인과의 원리. 인과의 원리를 따져도 되는 겁니다. ‘내가 언제 그 사람하고 약속을 못 지킨 적이 있었구나.’ 이렇게 해버려도 되는 겁니다. 그것이 인과거든요.등등.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불교 안에서 가능하다 하는 뜻입니다. 이 여섯 번째 게송 이것이요.
게송 하나ㆍ하나를요? 아주 미세하게 뜯어보고ㆍ곱씹고ㆍ곱씹고ㆍ또 생각하고ㆍ생각해보면요? 정말 오묘한 내용들이 많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렇게 그냥 보통 바위인줄 알았는데, 그 바위 부분ㆍ부분에 전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마음을 가다듬어서 이것을 자세히 읽어보면요. 그 다음에 일곱 번째
7. 衆生迷惑常流轉(중생미혹상류전)하야, 중생들이 미혹으로 항상 흘러 다녀 가지고서 愚癡障蓋極堅密(우치장개극견밀)이어늘, 어리석음과 어리석음이 그 어떤 장애가 되고, 아주 짓누르는 어떤 덮개가 되는데 그것이 지극히 堅密해요. 아주 견고하고 密密해요. 도대체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그야말로 저 땅에 무슨 싹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다가 세멘하고, 또 세멘 한위에다가 큰 돌을 짓누른 것처럼,우리들의 그 미혹ㆍ어리석음ㆍ번뇌. 이것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깨달은 분들이, 눈이 밝은 분들이 보면 정말 이와 같은 겁니다. 極堅密. 지극히 견고하고 密密하다 이 말입니다.
如來爲說廣大法(여래위설광대법)하시니, 여래께서 위하여 광대한 법을 설하시니, 그러니까 부처님이 말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생들의 愚ㆍ癡ㆍ障ㆍ蓋ㆍ極ㆍ堅ㆍ密하니까, 미혹으로 항상 流轉해 다니고요.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 우습지도 않지요. 자비는 넘쳐나고 어떻게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끝없이 이해시키고ㆍ설득시키고ㆍ깨우쳐 주려고 하고요.
如來爲說廣大法이라. 여래가 위하여 광대한 법을 설하시니, 부처님은 아무리 우직하고ㆍ아무리 못나고ㆍ아무리 둔하고ㆍ아무리 나쁜 놈이라 하더라도 배제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무조건 감싸는 겁니다. 무조건 감싸는 거라요. 그야말로 저기 척박한 자갈에나 심지어 바위 위에도 부처님의 씨앗을 뿌립니다.
저 척박한 자갈, 언제 싹 틔울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거기다 뿌려 놓으면 언젠가 거기에 먼지가 끼고 비가 와서 습기가 차고 해서 씨앗이 싹을 틔울 것이다 하는 그런 그 깊은 자비로써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마음입니다.
如來爲說廣大法이라는 것이 그런 뜻이지요. 師子幢王能演暢(사자당왕능연창)이로다. 師子幢乾闥婆王이 능히 演暢했더라.
8. 如來普現妙色身(여래보현묘색신)하사대, 여래께서 妙色身을, 아름다운 색신을 널리 나타내시되 無量差別等衆生(무량차별등중생)하사, 한량없이 차별한대 중생과 같으사, 불교는요? 부처님이 누구냐? 어떤 분이냐? 라고 하면, 여기 200명 대중이 다 다르게 대답합니다. 또 신도들에게 물어도 전부 자기 감량대로 다 다르게 대답합니다. 그 다르게 대답하는 것이 옳은 겁니다. 無量差別인데 等衆生이라. 중생 수와 똑 같아요. 이 等자는 그 중생하고 똑 같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너무나도 위대하고ㆍ광대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비친, 그릇에 비친 것에 따라서 다 달라요. 중생들이 각각 다르듯이 그런 겁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종교는요. 제가 어릴 때 거기 쫓아다니면서 천주 교리문답을 외웠는데요. 세례 받으려면 교리문답 50조항인가 100조항인가를 외워야 돼요. 거기에는 그것을 시험 쳐서 계주거든요. 예를 들어서 첫 구절에 하나님은 누구시냐? 질문이 이렇게 딱 나옵니다. 그럼 뭐라고 딱 되어 있어요. 천편일률적으로 그것을 그대로 외워가지고 그대로 대답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어디 사람이나 똑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질문하면 답이 똑 같습니다. 불교는 예를 들어서 100명모임에 200답 300답이 나와요. 대답해놓고 조금 있으면 또 딴 답이 나옵니다. 또 생각이 달라지면 아, 아 그게 아니고 또 다른 답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 불교입니다.
한 번 우리가 그런 것. 아주 간단한 예지만 불교의 우수성 같은 것을 그런 데서 잘 생각을 해서 그런 것도 우리 신심을 더욱 더 다져야 됩니다. 이런 것이 그 어떤 見佛의 천차만별. 부처님에 대한 이해가 천차만별이다. 그런 뜻이지요. 그것 좋은 겁니다. 틀린 것이 아닙니다. 種種方便照世間(종종방편조세간)하시니, 그래서 가지가지 방편으로 세간을 비추시니 普放寶光如是見(보방보광여시견)이로다. 普放寶光乾闥婆王이 이와 같이 보았더라. 아홉 번째
9. 大智方便無量門(대지방편무량문)이여, 큰 지혜의 방편이 한량없는 문이여 佛爲群生普開闡(불위군생보개천)하사, 부처님이 群生. 중생들을 위해서 널리 열고 여시사 無量門인데 門門可入(문문가입)입니다. 꼭 이것이라야 된다 하는 법이 없잖아요. 염불이라야 된다ㆍ경전이라야 된다ㆍ참선이라야 된다ㆍ기도라야 된다. 큰 절에 가면, 제대로 된 사찰에 가면 법당이 얼마나 여러 가지입니까? 안 되면 한 법당에다 세 개ㆍ네 개. 탱화를 세 가지ㆍ네 가지 막 붙여놓잖아요. 門門可入입니다. 한 법당에 들어가서 칠성ㆍ산신ㆍ용왕ㆍ다 인연 따라서 가서 말하자면 무슨 기도가 되는 것이 있어요. 또 거기에 제도 되는 곳이 있어요. 그래서 門門可入이라. 문마다ㆍ문마다 다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참 大智方便無量門이라. 佛爲群生普開闡하사, 부처님이 群生을 위해서 널리 열고 열어놨다. 이런 점도요? 어떻게 보면 “아이구 불교 정신없다. 혼란하다. 뭣이 법당이 그렇게 많고,” 법당 그렇게 많은 데는 세상에 많고 많은 종교 중에서 오로지 불교뿐입니다. 불교뿐이에요. 다른 종교는 딱 법당 하나입니다. 한 가지뿐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제대로 갖추어진 절에 가면 웬 법당이 그렇게 많은지... 그것 다 인연 따라서 엎어져서 절하고, 기도하고 그러잖아요. 그것 참 좋은 겁니다.
언제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어디서 대담한 글을 읽었는데 참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어요. 서양 사람들하고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 하느냐? 신부들 하고 대담을 많이 했어요. 프랑스에도 여러 번 가서 강의도 하고, “스님이 성경을 한번 강의 해주십시오.” 대단 하지요? 프랑스신부들이 달라이라마에게 성경을 숙제로 줘요.
“산상수훈. 이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3일간 우리에게 강의 해주십시오. 불교에서 본 성경. 달라이라마께서 보신 성경의 내용을 우리에게 한번 들려주십시오.” 이것 대단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 쓴 것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책으로 나온 것이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책으로 번역 되었는데, 거기에
“기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느냐?” 또
“다른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느냐?”
“세상에 종교가 이렇게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생각 하느냐?” 달라이라마 대답이 그래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종교가 세상에 많지만, 인류가 60억이 넘는데, 사실은 종교가 더 있어야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사실은 종교가 더 있어야 된다. 인류는 60억인데 종교는 1억도 안 되지 않느냐?” 이 겁니다. 하기는 인도 같은 데는 神이 1억 명 도 넘습니다만, 그런 안목입니다. 중생들의 소견이 각각이기 때문에, 각각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편이... 그것도 불교소견이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아주 획일적인 그런 사고를 가진 종교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지요.
大智方便無量門이여 부처님이 群生을 위해서 널리 열고 여시사,
入勝菩提眞實行(입승보리진실행)케하시니, 그래서 결국은 수승한 보리. 최고가는 보리. 깨달음. 지혜와 자비의 眞實行에 들어가게 하시니, 此金剛幢善觀察(차금강당선관찰)이로다. 이것은 金剛幢乾闥婆王이 善觀察. 잘 관찰했더라.
10. 一刹那中百千劫(일찰라중백천겁)을 佛力能現無所動(불력능현무소동)하사, 일 찰라 가운데 백 천 겁. 이것은 글이 달라서 그렇지 똑 같지요.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하고 똑 같습니다. 한 순간에 영원이 걸려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오늘 이 한 시간. 또는 한 순간은, 우리의 영원한 과거ㆍ영원한 미래가 이 속에 다 포함 되어있습니다. 다 포함 되어 있어요. 한 방울의 물을 우리가 마셔서 지금 우리 생명을 유지한다고 합시다. 그 한 방울의 물의 역사가 얼마겠습니까? 그 물이 언제 생겼겠어요? 무한한 과거에서부터 있었어요. 또 내가 비록 마셔서 내 몸속으로 들어갔지만, 무한한 미래로 흘러가요. 그래서 그 한 순간은 영원한 과거와 미래가 다 그 속에 포함 된다는 것입니다.
좀 열려있는 눈으로 보면 이런 말이 아주 쉽게 나오는 것이지요.
一刹那中百千劫을 佛力能現無所動. 부처님의 힘으로 능히 나타내시지만, 동하는 바가 없다. 거기에 여여한 본래의 모습 그대로다.
等以安樂施群生(등이안락시군생)하시니, 평등하게 안락으로써 群生에게 베푸시니, 결국은 어떤 진리도 一刹那中百千劫이 됐든지, 뭐가 됐든지 간에 그것은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진리가 진리로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줘야 된다. 평등하게 안락으로써 群生에게 베푸시니 此 이것은 樂莊嚴之解脫(차락장엄지해탈)이로다. 이것은 열 번째 건달바왕이니까 普現莊嚴乾闥婆王이지요. 그 사람이 해탈한바 다. 이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