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지歡喜地와 보시바라밀 (2)> -수승한 지혜를 지닌 이라야 보시할 수 있다 다음 게송은 십행품十行品에서 공덕림功德林보살이 보시바라밀을 찬탄하는 대목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수승한 지혜’를 지닌 이라야 세 가지 보시[財施·法施·無畏施]를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① 재물의 보시를 말하다 세간의 모든 걱정 멀리 여의고, 중생들에게 편안한 즐거움 널리 주어서 짝이 없이 크신 도사 능히 되나니, 수승한 공덕 가진 이 이 길 행하네. ② 두려움이 없는 보시를 말하다 두려움 없으므로 중생에게 보시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기쁘게 하되 그 마음 청정하여 혼탁 없나니, 동등할 이 없는 이가 이 길 행하네. 마음이 청정하여 조화 잘 되고, 모든 희롱 여의어 말이 점잖고 위의가 원만하여 대중이 공경하니, 가장 훌륭한 이가 이 길 행하네. ③ 법의 보시를 말하다 진실한 뜻에 들어 저 언덕 가고, 공덕에 머물러서 마음도 고요하여 부처님 호념하사 잊지 않나니, 모든 유有를 멸한 이 이 길 행하네. 나를 멀리 여의어 시끄러움 없고, 항상 큰 음성으로 바른 법 말해 시방의 모든 국토 두루했으니, 비교할 수 없는 이 이 길 행하네. ④ 인과가 원만함을 말하다 보시바라밀다를 이미 만족하고, 백 가지 복된 상호 장엄했음에 중생들 보는 이가 모두 기뻐해, 가장 수승한 지혜가 있는 이 이 길 행하네. 단지 주기만 하는 것을 ‘보시’라고 한다면, 여기에 바라밀이 붙으면 달라집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불자들이 말하는 보시는 절에서 불전 몇 푼 올려놓고, ‘내가 부처님한테 하노라고했는데, 이것도 안이뤄지나?’ 하고 의심하고 배신감을 갖는, 결국은 보시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정도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절에 가면 스님이 아는 체 한 번 더 해 주고, 다른 사람보다 불사 하는 데 돈도 더 많이 냈으니까 법당에 서까래 올릴 때 이름도 새겨 주고,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권선勸善이 안 되는 게 지금 우리의 보시 수준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바라밀에서 말하는 보시바라밀은 결국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6바라밀에서마지막 6번째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라고 할 때의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지혜는 6바라밀의 완성이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시+지혜, 지계+지혜, 인욕+지혜,정진+지혜, 선정+지혜가 됐을 때라야 비로소 바라밀이 성립이 된다고 봅니다. 보시바라밀은 통상적인 언어로 이해한다면 기부나 후원 넓게는 복지의 개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보시에 바라밀이 붙어 보시바라밀이 되려면 조건 없는 베풂으로, 자신의 욕심을 제어하고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는 수행의 방편으로 삼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보시에 생색을 내거나 조건을 내세운다면 비록 상대는 모를지라도 그건 사실상 거래나 투자이지 보시가 아닙니다. 사찰에서 보시를 하게 하기 위해 공덕을 강조한다던가, 방편으로 보시를 유도하는 것은 상업적인 행위이지 결코 사찰 본연의 모습은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승단 적폐의 이면에는 보시로 너무 쉽게 큰돈을 갖게 된 한국불교의 현실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신도들이 보시한 공양금과 관광객들의 입장료가 쌓이는 대찰 수입의 90%는 몇몇 스님들이 차지하고, 대부분의 스님들은 해제 후 거처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조계종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적폐 중의 하나입니다. 게송에서 공덕림보살이 가장 수승한 지혜를 갖춘 사람이 보시바라밀을 행한다고 했지만, 신도들이 보시한 공양금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공금횡령에 해당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보시하는 불자들의 마음 상태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보시를 욕망을 굴복시키는 수행의 시작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한 가장 간명한 방법으로 인식하는점입니다. 제가 실제로 체험한 일입니다.
「십지품」에서 설하는 마음으로, 금강경에서 말한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권하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반면에 업과 과보 심지어 죽은 영가까지 들먹이며 은근히 겁을 주는무속인과 다를 바 없는 방편을 쓰거나 비굴해 보일 정도로 신도를 ‘갑’으로 모시는 스님들에게는보시를 잘하는 신도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돈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돈 잘 쓰는 법을 묻는 제대로 된 보시바라밀을 마음에 새긴 불자를 만났으면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불교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기를 늘 서원하며 보시 바라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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