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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애착 유형 중에 회피형이 있습니다. MBTI만큼이나 되게 중요한 우리 검사 중에 하나인데 성인 애착 위험 검사라는 이제 심리 검사가 있어요. 그 유형 중에 하나가 회피형이 있습니다. 회피형의 특징은 그 유형의 이름에 나타난 것처럼 문제 해결 방식이 피하는 거예요. 문제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회피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방관하거나 모른 채 하거나 이게 이제 해피형의 특징이에요.
좀 더 설명하면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피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되게 선호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타인과의 관계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과거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회피형 애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아이가 성장기 어렸을 때 꼭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때 부모가 부재했거나 아니면 부모가 거절했거나 아니면 부모가 거부한 부모가 아니라도 제일 중요한 타자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어려울 때 방관하고 모른 채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이 회피형 애착의 유형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이야기가 좀 어렵죠. 그래서 성경에서 그런 인물을 좀 찾아보려고 해요. 성경에는 어떤 회피형이 있을까?
첫 번째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자신의 죄를 직면하지 못하고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어요. 죄를 하나님께 고하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를 전가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찾았을 때도 두 사람은 낯이 부끄러워서 나무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회피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이삭입니다. 이삭은 갈등을 적극적으로 직면하여 해결하기보다는 긴장 상황이나 갈등 상황을 회피하며 무마하려고 하는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했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리고 이삭이 노년에 이렇게 눈이 멀었잖아요. 그러니까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분석하냐 하면 그냥 심리학자들의 생각이고 그냥 의견이에요. 가족 내의 갈등을 보고 싶지 않은 심리적인 욕구가 신체화 장애로 나타났다 이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신체의 장애가 어떤 거냐 하면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실제로는 몸에는 큰 이상이 없어요. 근데 증상이 나타 병원 가서 아무리 검사해도 아무 문제는 없어요. 그러나 증상만 나타나는 형태를 신체화 장애라고 합니다. 이삭도 회피형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는 자신을 메뚜기라고 말한 10명의 정탐꾼이 회피형에 속할 거예요. 10명의 정탐꾼들은 아낙 자손의 대장부들을 보고 자신은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너무 큰 아낙 자손을 보고 두려움이 생겼고 피할 이유가 필요했던 거예요. 상대가 너무 크고 두려우니까 피하긴 피해야 되는데 피할 이유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전쟁을 회피하려고 그들과 싸우지 않으려고 자기를 메뚜기라고 비유한 겁니다.
이때는 가나안 족속들은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을 때였어요. 그러니까 철 철기로 출기 무기로 무장한 가나안의 이 거인들과 싸워서 이길 용기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를 메뚜기라고 합리화하고 전쟁을 피했던 것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과 약속의 땅이에요. 피할 게 아니라 가나안의 족속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너무 큰 아낙 자손을 보고 피할 궁리를 찾았고, 그 피할 궁리가 자기를 메뚜기처럼 보는 거예요.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결코 싸울 수도 없고 싸워도 이길 수 없습니다
라고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기를 합리화시켰던 겁니다.
네 번째로 달란트 비유에서 등장하는 세 번째 종이에요. 성경에 찾아볼 수 있는 회피형의 네 번째 사람은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세 번째 종입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에게 받은 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보관했어요. 다섯 달란트 받은 첫 번째 종, 두 달란트 받은 두 번째 종은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긴 반면에 세 번째 종은 땅에 묻어뒀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5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합니다. 시작
한 달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주인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은 한 달란트는 동전 한 개가 아니에요. 달란트를 지금의 시가로 좀 이렇게 하면 3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큰 규모의 돈인 거예요. 많이 봤을 경우에 그보다는 100억원까지 가기도 하지만 어떻든 맥시멈 봤을 때 30억원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돈인 거예요.
그것을 땅에 묻어뒀던 것입니다. 전형적으로 자기 삶에 있는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따라 살기보다는 회피하려고 하는 회피형을 지닌 유형을 지닌 사람입니다.
성경의 달란트는 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능도 의미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엄청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게 되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이 달란트가 언제 빛이 나느냐 내 삶에 있는 많은 문제들을 내가 직면하고 싸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낼 때 이 달란트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달란트를 숨겨두면 이 달란트는 힘을 발휘하지 못해요. 사용하지 않는 달란트는 절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용해야 이 달란트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되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그 사람이 가진 달란트를 사용하시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는 회피형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자기 앞에 있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고하고 또 기도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피하려고 하는 성격이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교회에 오면 그렇게 가르치잖아요. 웬만하면 싸우지 말고 피하세요. 웬만하면 침묵하면 다 문제는 지나가요.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해결하실 거예요.
등등 우리는 자신의 삶의 문제에 교회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직면해서 그 문제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동행하려는 그런 태도들을 잘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회피형의 사람이거나 아니면 교회에서 회피형이 되도록 양육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회피형의 삶에서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최선의 방법 중에 하나가 직면하는 거예요. 회피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 자신의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쉽게 해결돼요. 그래서 우리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이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우리 또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끄심을 따라가는 일들이 우리 삶에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내 삶에 있는 여러 가지에 대해서 우리가 좀 직면하기가 필요한데 몇 가지로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자신의 과거에 직면해야 됩니다. 당연히 좋지 않은 과거죠. 자신의 과거의 자신을 직면하지 못하면 현재를 회피하게 됩니다. 그것이 가난이든 그것이 외모든 그것이 학력이든 그게 부정적인 경험이든 간에 직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고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익한 점을 찾아내는 것을 통해서 과거에 묶인 자기 실을 자기 자신을 벗어 벗어 벗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어떤 문제로 다 과거에 이렇게 묶어뒀어요. 묶여 있는 거죠. 과거에 묶여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현재에 묶여 있어도 되게 살기가 어려운데 과거도 나를 묶고 있고 현재도 나를 묶고 있다면 얼마나 현재를 사는 게 힘들고 미래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도 그만큼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묶이게 되면 자신의 가능성도 묻어버리게 되고, 과거에 묶이게 되면 미래의 비전도 우리가 묻어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직면하지 못해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지 못해서 과거에 묶여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했던 여러분의 과거가 있을 거예요. 그게 가난일 수도 있고, 여러분 제가 가난 때문에 어려서 힘들었다면 여러분이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살이 퉁퉁하게 찐 제가 가난 때문에 어려워서 힘들었다는 건 여러분 이해하시겠어요?
근데 저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밥을 굶어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가끔은 그렇게 어려서 굶고 또 나이 들어서 굶었던 제 자신이 되게 불쌍히 여겨지기도 하고 연민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자신의 과거의 나 자신의 나를 묶으려고 할 때가 종종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일어나는 자신의 삶의 경험들을 자기의 미래와 현재를 묶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가요. 그러니까 지금은 부유한데 여전히 심리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상처에 묶여 있기도 하고요. 과거에 묶여 있어서 현재를 되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묻고 있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과거에 많은 사건들 앞에 내가 직면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사건을 통해서 나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셨는지 하나님 그 일들을 통해서 내가 목회자가 저의 경우라면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여러분 제가 가난을 경험하지 못하고 힘든 학창 시절을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면 성도들의 가난과 어려움들을 제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가난을 경험해서 성도들의 가난이 이해가 돼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가 돼요. 왜 저런 마음을 갖는지 왜 피하려고 하고 자기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지 이해가 돼요. 왜 제가 그렇게 경험했으니까 이렇게 자기의 과거를 직면하면 과거를 다시 해석하게 되고요.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면 그 과거는 지금의 나의 영양분이 되는 거예요. 가난한 죄의 가교가 지금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과거를 추억 속으로 흘러보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직면하고 하나님이 그 사건을 통해 나를 어떻게 만들으셨는지, 하나님이 그 일들을 통해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세우려고 하셨는지, 하나님이 그 사건을 통해서 나를 얼마나 깨뜨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으시려고 그 일들을 그 사건들을 내게 허락하셨는지 알게 되면 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과거는 나의 자양분이 되고 영양분이 되고 생명줄이 돼요.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힘들고 어려운 일들, 부정적인 경험들에 직면하지 못해요. 거기에 빠져 있고 묶여 있어서 자신의 과거를 연민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재를 더 멋있게 살 수 있고, 하나님께 더 크게 순종하며 살 수 있고, 하나님 말씀에 더 멋지게 복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과거에 묶여서 과거를 직면하지 못해서 과거에 묶인 자로 과거를 고통스럽게 경험하면서 살아가 우리가 과거를 직면하고 과거를 넘어서지 못하면 과거에 그 경험이 계속 내게 남아 있어요.
과거에 가난했던 그 아픔이 나는 지금 부자인데도 여유 있는데도 여전히 내 마음을 아프게 해요. 왜요? 직면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자신의 현재에 직면해야 됩니다. 우리의 현재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습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일지라도 현재 자신의 모습에 여러분과 제가 직면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가난할 수 있고 지금 여러분은 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있을 수 있고, 지금 여러분은 사람 때문에 힘들 수 있고, 지금 여러분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극심한 고통에 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답답하고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 가운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현재 여러 가지 문제를 이기려면 여러분이 현재를 직면해야 됩니다. 피하면 문제는 더 커지고 피하면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피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피아노 문제는 더 힘들어집니다. 현재의 내 삶의 문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내는 것, 이것이 현재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이겨내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신기하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니까 살 만하던데요. 목회가 힘들어도 하나님이 그 목회 안에 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시고 여기 이끄셨는지 알게 되니까 목회가 새로워져요. 그래서 현재의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돼요.
직면한다는 것은 그 문제를 부정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서 아뢰고 고백하게 해야 돼요. 그리고 주변의 사람과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그래서 그 현재의 문제들이 나를 묶지 못하도록 오히려 나를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할 수 있도록 현재 여러 가지 내 인생의 문제 앞에 우리가 잘 직면할 수도 있어야 됩니다.
현재의 문제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현재를 직면하는 일은 되게 어려워요. 내가 가난한 걸 인정하는 게 되게 어려워요. 내가 공부를 못하는 걸 인정하는 것도 어렵고 내 회사가 친구들에 비해서 작은 것도 견뎌내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저는 그럴 때가 종종 있었어요. 우리 교회가 작은 교회는 아니지만 제 친구들이 너무 잘나서 너무 큰 교회에 있는 거예요. 근데 가끔은 그게 사람이 제가 부족해서 그런지 그냥 가끔 저를 힘들게 만들어요.
그런데 저의 현재를 직면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왜 나를 여기 보내셨는지 내가 해석할 수 있고 나니까 이 고통을 왜 내가 겪게 되었는지는 하나님이 나에게 알게 하시니까 여러분 지금 나를 보는 나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표정은 안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제 삶은 요즘 되게 행복한 구석들이 많아요. 저는 사람들을 요즘은 사람을 정말 안 만났는데도 저는 마음에 행복한 공간이 되게 많아요.
돌아보니까 내가 내 현재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이 현재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고 하나님이 이 문제를 통해 나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를 발견하고 알게 되니까 훨씬 자유하고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현재를 피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현재를 직면해야 희망이 만들어지고 현재를 증명해야 희망의 열매들이 맺혀질 수 있습니다. 현재 자기의 삶을 피하려고 부인하려고 하면 희망의 열매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내가 부족한 것, 현재 내가 연약한 걸 인정할 수 있어야 돼, 용납할 수 있어야 돼,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돼요.
그러면 가난 때문에 너무 창피하지도 않고요. 실력 없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지도 않고요. 내 삶이 남들보다 어려운 문제가 훨씬 많은 것 때문에도 내가 더 힘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현재의 문제에 직면하는 것 꼭 성도들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세 번째로 자신의 상처에 직면해야 됩니다. 상처를 끄집어내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과거의 상처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나를 이해해주는 공동체 안에서 조금씩 나누고 공개하고 하는 일들을 통해서 나열된 이 문제들이 제3자의 문제처럼 조금씩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 때나 상처를 말하고 막 상처를 너무 가볍게 다뤄서는 안 돼요. 상처에 직면한다는 것은 상처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상처를 공개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고, 상처를 이해하고 상처에 준 당사자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노력한다는 것도 의미예요. 그렇지 않고 내가 경험한 나를 극심하게 고통스럽게 만든 상처를 피하기만 하고 달아나기만 하면 상처는 더 커지고 고통은 더 커져요. 그래서 상처에 직면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상처에 대한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경험하는 것으로, 상처로 인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더 멋진 도구가 된 것을 나누는 것으로 우리는 상처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상처 중에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상처이기도 하고요. 내가 어떻게 저항할 수 없는 상처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런 일에 대한 우리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근데 죄책감이 나를 자꾸 묶어두고 상처로 상처와 함께 살도록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근데 내가 상처를 말하기 시작하고 함께 나누기 시작하고 이 상처를 통해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만드셨는지를 알게 되면 내가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멀어질 수 있어요. 완벽하게 끊어댈 수 있지만 시달리지 않을 수 있어요. 완벽하게 결혼을 선포할 수는 없지만 옛날처럼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상처에 직면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말하거나 교재와 나누거나 하나님께 아뢰거나 그리고 이 상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내게 아셨는지 발견 못하게 되면 우리는 계속해서 상처에 묶여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과거의 상처에 직면해 보셨습니까?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을 만드시려고 하셨는지 하나님의 뜻도 발견해 보셨습니까?
만약에 여러분 그랬다면 여러분은 그 상처로부터 많이 벗어난 분들이에요. 그래야 현재란 열매가 더욱 풍성해지고 미래라는 결실도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자신의 문제에 자신의 현재에 자신의 오늘에 직면해야 됩니다. 우리의 현재에는 우리의 오늘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문제를 모른 척하고 그리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 피하는 것을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내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아요 그러나 그런 자세 제 자기의 삶의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그 자세가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세, 자세를 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이것으로 가르쳐서 배우게 되고, 하나님이 내 안에 어떤 일을 행하고 하자 내가 알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 하나님께 구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 주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겁니다.
자기의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전문 기관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예요.
자기 문제를 가지고 좋은 스승이나 리더들을 만난다는 의미예요.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나서 대화를 하 문제를 해결 쳐보셨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분의 삶의 가치관도 바꿔보셨어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한 달란트를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종들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주인이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했다면 이 사람은 묻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어마어마하게 달란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했어요. 감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해요. 한 달란트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혼을 남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묻을 생각을 한 거예요.
사람이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면 이상한 말을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삶을 살게 돼요.
교회의 현실이나 자신의 삶의 현실이나 자신의 가정이나 자신의 직장의 현실에 우리가 직면해야 함께 나누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다 풀어놓아야 됩니다. 여러분 새벽마다 열심히 기도하고 부르짖는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문제에 직면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때 뭐 하겠어요? 자신의 가정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거예요.
하나님 왜 이 고난을 내게 주셨습니까?
이 고난을 내게 주신 이유가 뭡니까? 이 고난을 통해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가시려고 이 고난을 주셨습니까?
기도하게 될 거 아니에요. 이게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 자녀가 힘듭니다. 내가 어떻게 자녀를 도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우리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래고 부르짖고 이게 내 문제에 직면하는 길인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은 올바르게 자기의 문제에 직면하는 방법이 아니에요. 성도들 중에 보면 혼자 해결하는 분이 있어요. 훌륭한 것 같긴 해요. 저는 혼자가 잘 안 되니까 저는 어려움을 어떤 누군가의 도움을 구해요. 아내에게 도움을 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구하고 방법을 찾고 또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나님께 방법도 찾고 혼자 해결하는 것은 직면하는 게 아니라 회피하는 것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바르게 증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를 인정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요즘 인정이 돼요. 제가 인정이 돼요. 제가 설교를 좀 못하는 것 아주 못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좀 못하는 것 인정이 돼요. 옛날에는 막 그와 비슷한 말만 들으면 내 속에서 막 감정이 막 부글부글 끓었어요. 감사하게 요즘은 안 끓어요. 몰라 우리 교인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끓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웬만큼 들어서는 이게 안 끌어요.
그냥 인정하게 돼. 그래 맞아. 나보다 목회 잘하는 사람도 많고, 나보다 설교 잘하는 사람 많고 나보다 성품이 좋은 사람도 많고 나보다 성도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많다
라고 이렇게 내 삶의 문제를 직면하고 나니까 훨씬 더 제가 자유로워졌습니다. 저의 문제와 함께 저의 잘못된 삶과 행동, 잘못된 믿음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목사에게도 잘못된 믿음이 있어요.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이 믿음을 못 고쳐요. 문제는 저에게 잘못된 믿음이 있으면 성도를 계속 잘못된 믿음의 세계로 이끈다는 거예요. 제가 저를 인정하기 싫었더니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은 건데 비밀을 가르쳐 드릴게요.
여러분 용기가 생겨요. 뭐가 생겨요? 뭐가 생기냐고요 용기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나니까 다 해결되지 않는데 용기가 생겨요. 놀랍죠 용기가 생겨요. 피할 때 두려움이 나를 막 음습하더니 피하지 않으니까 용기가 생겨요.
블레셋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울 때 피할 때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런데 맞서 싸우면 용기가 생겼어요.
똑같더라고요. 제가 제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지만 우리 교회 안의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지만 직면하기를 시작하니까 내게 용기가 있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생긴 게 아니라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개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용기도 생겼고요. 포기도 하지 않게 되고요. 사람들에게 도움도 구하게 되고요. 무엇보다 하나님께 제대로 도움을 구하여 요즘은 제가 하나님과 목회 상담을 좀 많이 하는 것 같아 예전보다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과 목회 상담을 옛날보다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해요. 하나님이 사인을 줄 때까지 기다려요 제 마음속에 쌓인 하나님이 이 일들을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계속 그분께 아뢰고 기다려요. 하나님이 내게 마음을 줄 때까지 안 주시면 안 하고 주시면 해요. 그랬더니 주신 걸 할 때는 항상 놀랍게도 조금씩 은혜가 있더라고요.
여러분 성도가 알 수 있는 가장 큰 직면은 하나님께 솔직하게 알아내는 겁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시다.
하나님 나는 가난합니다. 하나님 나는 상처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는 부족합니다. 하나님 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하나님 나는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문제 하나님을 아뢰고 나니까 마음도 후련해지고요. 용기가 생겨요. 저는 오늘 제가 최근에 얻었던 이 용기를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어요. 우리 목장 교회가 능력 있는 성도가 아니라 용기 있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용기는 가질 수 있어요. 그렇죠. 나 능력은 도저히 누구를 못 따라가겠지만 나는 용기는 가질 수 있어요. 우리 교회 안에 이 용기를 가진 성도들이 많아져서 미래 지금도 좀 풍성해지고 우리의 미래는 더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