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의 관계는?
2017년 9월 15일 새벽 3시 경 아내는 마산연세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2, 3일 전부터 배가 아팠는데 소화제, 진경제 등 집에 있는 비상약을 모두 먹고 마셨음에도 가라앉지 않아 결국 그리 된 것이다. 남편인 나는 그 전날도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 동행하지 못했고, 마침 집에 있던 둘째 선빈이가 엄마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갔다.
나는 아침 9시쯤에나 가까스로 일어나 슬슬 병원으로 가 보았다. 아내는 여전히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은 ‘맹장염’으로 밝혀졌으며 곧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10시 경 수술실로 들어갈 때 나는 아내가 누운 바퀴 달린 침대를 간호사와 함께 밀었다. 영화를 보면 수술실 문이 닫힐 때 많은 남편들이 눈물을 흘리던데, 내 보기에도 꽤나 낭만적인 듯 하여 나도 노력해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영화에서는 아내가 수술 받는 동안 남편들이 밖에서 두 손 모아 열심히 기도하기에, 나도 오랜만에 두 손을 맞잡아 보았다. 그런데 워낙 오랜만에 하려다 보니 어떻게 하는 건지 생각이 안 나 좀 막막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침도 안 먹었는데 정오가 가까워 오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가서 밥을 사먹고 올까? 말까? 밥 먹는 중에 수술 끝난 아내가 수술실을 나와 내가 없는 걸 알면 완전 죽음인데.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중에도 배는 점점 더 고파져 정신까지 흐릿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나는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와 눈으로 주변 식당을 스캔하는 중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한 숟가락 뜨고 들어가자. 돼지국밥 한 그릇을 허겁지겁, 그러면서도 맛나게 뚝딱 비우고 다시 들어가니 다행스럽게도 수술실 문 앞의 모니터에는 여전히 ‘이봉선 – 수술 중’이라고 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곧 식곤증이 몰려왔다. 깜박 조는 사이에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아내의 침대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발딱 일어나 아내 곁으로 뛰어갔다. 영화에서 보면 대개 수술 마치고 나오는 의사에게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요? 잘 되었습니까?” 하고 묻던데, 아무리 둘러봐도 의사는 안 보이고 아내의 바퀴 달린 침대를 미는 남자 간호사밖에 없어 물을 데도 없었다. 다시 그 사람과 힘을 합쳐 아내의 침대를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거쳐 미리 배정되어 있던 6인 병실로 옮겼다.
자리를 잡자마자 여자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들고 있는 종이에 뭔가를 기록하면서 다짜고짜 나에게 “환자와 어떤 관계이시죠?” 하고 묻는다. 나는 간호사가 이런 걸 물을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상 못한 질문을 갑자기 받다 보니,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는 말이 자동으로 줄줄 새어나오고 말았다.
“내연 관계입니다.”
내연 관계라니? 내가 미쳤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누라와 내가 ‘내연의 관계’라니? 아, 내가 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구나. ‘관계’라는 말만 들으면 바로 ‘내연’이라는 단어가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구나.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같은 방에 누워있던 다른 환자들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신입 환자를 몰래 살피던 모든 고참 환자들이 동시에 침대에서 대굴대굴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깔깔’ 대다가 나중에는 ‘꺼이꺼이’ 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결국 몇 명은 수술 부위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아, 이걸 어쩌나? 내 조둥이가 또 일을 치고 말았구나.
더 이상은 참담해서 상황을 전하기도 어려우니,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겠다.
이 말썽 많은 주둥아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 이 글에는 약간의 과장과 뻥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하시기를.)
(2018. 1. 6.)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생각없이 글을 읽다..
식당인데 너무 큰소리로 경망스럽게 웃음이 터져
내연남이 욕을 한바가지 쏟아내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정 말 너무하십니다 교수님.
배고픔 까지는 조마조마했는데
내연관계에서 저도 빵~~\^^/
오늘 처음 신나게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