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까지 미워하면 이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한 개도 없어"
어린 소녀 '소미'(김새론 분)의 이 한 마디는 영화 '아저씨'의 시작과 끝이었다.
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영화는 시작되었고 이 한 줄로 깔끔하게 끝을 맺었다.
처음부터 영화를 견인해 끄트머리까지 끌고 나갔던 단 하나의 컨셉,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철저하게 외로웠기에 사람이 그리웠고 지독하게 고독했기에 누군가가 필요했다.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했던 단 하나의 창구가 비록 어린 소녀일지라도.
건장한 옆집 전당포 아저씨 '태식'과 나이 어린 꼬마숙녀 '소미'.
외로움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 그들은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친구가 되어갔다.
그런 과정에서 그까짓 나이나 성별이 문제될 건 없었다.
그래서 끝내 사막 같은 세상 속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과 정이 그렇게 새록새록 피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던 사랑하는 아내를 끔찍한 사고로 잃고 세상을 등진 채 도회지 변두리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전직 특수요원 '차태식'(원빈 분).
가끔씩 물건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옆집에 사는 유일한 친구인 '소미' 말고는.
클럽 댄서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엄마와 단 둘이 살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애정어린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소녀 '소미'.
'태식'과 '소미'는 점점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둘이서 자주 소통하는 친구가 되어갈 즈음 나이트 클럽에서 마약밀매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에 소미의 엄마가 연루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약을 빼돌린 자(소미 엄마)와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그 마약을 되찾으려고 혈안이 된 자들(마약밀매 조직)의 치열한 추격전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그 갱단에 의해 '소미'가 납치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회오리의 발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약은 곧 돈이었고 탐욕이었다.
동시에 절망이었고 죽음이었다.
그래서 인생의 숱한 굴절과 참혹한 사건들이 그 죽음의 '흰가루'를 숙주 삼아 암세포 전이되 듯 세상에 무섭게 퍼지는 법이다.
살다보면 원치 않았어도 자신도 모르게 발을 적시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소미 납치 사건'이 '태식'에겐 바로 그런 형국이었다.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아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미'를 안전하게 지켜내겠다는 집념어린 '태식'의 눈빛은 사태의 진실에 접근해 갈수록 점점 분노와 증오로 이글거렸다.
특수요원들의 DNA는 다르다.
먹고, 입고, 마시고, 자는 일상의 평범한 시각으로는 그들의 잠든 파워풀한 세포들을 깨우지도 못하고, 알아챌 수도 없다.
'목숨을 걸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들의 심장이 박동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불허하는 고강도 특수훈련 속에서 철저하게 연단된 요원들에겐, 불의에 항거하며 죽음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넣는 그들만의 독특한 패스워드가 따로 존재하는 법이다.
그건 어쩌면 순수한 '사랑'이리라.
그리고 지고한 '충성심'이나 순결한 '인간애'가 아닐까 한다.
무자비한 갱단의 엄청난 폭거 앞에서 혼자 몸으로 당당하게 맞선 '태식'에게 '소미'를 구하겠다는 지극한 순수함과 단순함 말고는 다른 의미는 존재할 수 없었다.
유혈이 낭자한 주검들, 장기적출과 밀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갱들의 두뇌싸움, 피 튀기는 폭력과 살상들이 영화 전체에 흥건했다.
파격이었고 섬뜩했다.
뚝뚝 떨어져 내리는 뜨거운 핏물처럼 숨가쁜 액션 장면들이 쉴새 없이 흘렀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강력한 액션들이 관객들의 심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하이테크 기법들'도 눈에 띄었다.
주인공 '태식'이 유리창을 뚫고 건물에서 뛰어 내릴 때 카메라맨도 함께 뛰어내리면서 찍은 듯 마치 내 자신이 뛰어내리는 것같은 몰입감이 들었다.
덕분에 내 입에서도 가벼운 탄성이 계속해서 터졌다.
영화 후반부에 갱단의 고수와 태식의 죽음을 부르는 한 판 승부가 펼쳐졌다.
이 때에도 두 주인공들이 헤드 카메라를 집적 쓰고 찍은 듯, 나의 앞 가슴에 그대로 칼이 꽂히고 나의 얼굴에 헤머 같은 상대의 돌주먹이 그대로 날아들었다.
"후유~~"
전율이 흐를만큼 '리얼리티'가 살아서 꿈틀댔다.
차원이 다른 '호러블한 영화'였다.
모든 신산을 이겨낸 뒤에 '태식'은 '소미'를 구출했다.
폭력과 치열한 액션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간에 이번엔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순한 인간애의 감각적인 터지가 이어졌다.
금세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는 주체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흘렀다.
눈알이 빨갛게 충혈될 만큼.
엄청난 '카타르시스'였다.
영화는 성공적이었다.
'이정범' 감독을 비롯해 고생한 모든 스탭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극장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그런 필생의 삶의 테마가 나의 영혼에 새겨져 있는가?"
디렉터가 건네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세지는 인간성의 회복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늘 높은 지 모르고 높아져만 가는 서울의 저 숱한 마천루들.
그와 비례하여 탐욕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끝내 우리네 영혼에 공포의 일식이 찾아 와 태양빛이 사라지기 전에 겸손과 자애로 따뜻한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애'의 소생을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앙증맞은 가을의 음향과 영상들이 산들거리며 예쁘게 손짓하고 있었다.
2010년 9월 17일.
심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