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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있지! (거만한 표정으로 손흔들며 흉내) 하이!
씩씩거리던 나난, 얼결에 초음파 사진 들여다본다.
초음파 사진 인서트. 형태도 없는 콩알만 한 태아 모습.
나난, “어디?”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머~” 탄성 나오는…….
그러다 정신 차리고 버럭 소리 지르는 나난.
나난: 일어나, 얼른 병원가자!
동미: (목석처럼 버티고 앉아 째리며) 애, 낳을 거라면?
나난: 그럼 지금이라도 준이 잡아! 너 그럴 권리 있어!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동미: (째리며) 결혼, 안 할거라면?
나난: (경악하여 비틀) 뭐야?
동미: …….
나난: 왜? 결혼도 안한 지지배가 애는 낳아서 뭐해?
동미: 내 애니까…….
나난: 뭐?
동미: 내 애니까!
나난, 얼빠진 채 서있고 동미, 다시 시트콤 보며 밥 먹기 시작한다.
나난, TV 확 꺼버린다. 째려보는 동미.
나난: 준이 때문에 희생하는 거야?
동미: 내가 누굴 위해 희생하는 인간이냐?
나난: 너 그 애 하나 땜에 전부 잃어도 좋아?
동미: 애 듣는다…….
나난: (멈칫하더니 쿠션으로 동미배 가리고) 넌 백수야. 애낳으면 앞으로 직장도 안 잡히고, 결혼은커녕 데이트도 못할거야. 그래도 좋아, 엉?
동미: 왜 구질구질하게만 생각해? 더 많은 걸 얻게 될지 누가 알아? 나 원래 결혼 생각 없어, 데이트를 왜 못하니? 이렇게 섹쉬한데……. 나 돈 많이 벌거야. 그래서 우리 애랑 평생 행복하게 살거야!
나난: 미친 년! 느이 엄마, 아부진? 정준인? 다 잃어도 좋아? 나까지두?
동미: 넌……. 못 그래.
눈물이 나려는 나난, TV 위에 놓인 말라비틀어진 허브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바닥에 산산조각 나는 허브 화분.
나난: 이 까짓 허브 하나도 못키우는게 무슨 애를 키워?
동미: (정색)
나난: 그렇게 쿨한 척 하면 멋있을 줄 알아? 하나도 안 멋있어. 제발 솔직해져봐, 좀!
동미: 너나 솔직해. 넌 지금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준이랑 나랑 결혼하면 누가 젤 행복할거 같애? 나? 정준이? 웃기지마, 너야!
나난: 뭐?
동미: 니 눈엔 내가 불쌍하지? 난 니가 불쌍해.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는 니가 더 답답하다고! 그래도 난 너보고 이래라 저래라 소리 안 해.……. 넌 나난이구, 난 이동미야. 난 나답게 살테니까, 넌 너답게 살아. 날 좀 가만 놔둬! 니가 아직 내 친구라면…….
순간 동미의 뺨을 때리는 나난.
휙 돌아가는 동미의 얼굴.
나난, 때려놓고 자신도 당황한다.
동미: (뺨 만지더니 차분하게) 나,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기적인 년이야.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는 나난.
나난: 그러게 왜 했어! 화해하라니까 왜 해가지구 지랄이야?
동미: 그러게 왜 화해하래?
나난, 동미 째려보며 후다닥 핸드백 챙겨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 주방으로 간다.
가스레인지 위의 미역국이 담긴 들통을 들고 쿵쾅거리며 나가버리는 나난
쿵! 닫히는 현관문.
씬102. 거리
걸어가는 나난. 들통에서 미역국이 넘실거려 새어나온다. 속상한 나난…….
씬103. 동미의 거실
깨진 허브 화분을 멍하니 보고 있던 동미, 밥상을 끌어당겨 미역국을 먹기 시작한다.
씬104. 거리
패션숍 유리창에 비친 나난의 모습. 유리창 안의 마네킹에 나난의 모습이 겹친다.
길가에 서서 안을 바라보고 있는 나난의 뒤로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오간다.
씬105. 동미 정준집 앞 (낮)
용달차에 가득 짐을 실은 모습.
정준의 차 지붕에도 트렁크를 매달았다. 짐을 싣는 정준과 지혜는 즐거워하는 얼굴이다.
대문 앞에 선 나난과 동미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정준: 분위기 왜 이래? 니들 또 먹을 거 가지구 싸웠지?
동미: (퉁명) 내가 넌 줄 아냐…….
정준: 섭섭해서 그래? (지혜 들을 새라 작은 소리로) 웃으면서 보내주라, 좀…….
그때 지혜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다가온다.
흐뭇하게 지혜를 보는 정준.
동미, 미소지어주는데 나난, 혼자 뭐라 뭐라 꿍시렁댄다.
나난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동미.
지혜: (선물 내밀며) 축하드려요. 예쁜 애기 낳으세요.
나난. 어이가 없다. 멍하니 있는 나난을 툭치며 선물을 대신 받는 동미.
동미: 아유, 고마워.
정준: 이걸 왜 네가 받냐?
동미: 무거울까봐……. (나난에게 준다.)
나난: (어정쩡하게 받는)
정준: 니들, 자주 놀러올거지? 동미 너, 혼자 술퍼먹지 말고 가끔 바람 쐬러와.
나난: (꿍시렁) 아주 눌러앉는 수도 있지…….
동미: 하하, 얘가 섭섭해서 자꾸 이런다. 야, 얼른 가라! 차 기다린다.
정준: 그래, 갈게. 난아, 짜식……. 니 맘 알어! 잘 있어!
나난과 동미를 툭 치고 돌아서는 정준. 지혜도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그때 나난가 이들을 부른다.
나난: 잠깐만!
그 소리에 돌아보는 지혜와 정준. 동미는 난의 팔목을 세게 잡는다.
나난, 헉! 아픈 걸 참고 애써 의연한 표정으로 한걸음 나선다.
갑자기 긴장이 도는 분위기.
정준: 왜?
순간 동미와 눈이 마주치는 나난. 둘 사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데
지혜: 언니……. 걱정 마세요. 저……. 잘할게요.
해맑게 미소 짓는 지혜.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정준. 절박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동미.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들을 보는 나난의 속에선, 만감이 교차한다.
이윽고 동미의 팔을 뿌리치며 한발 나서는 나난.
나난: ……. (지혜에게 선물 들어 보이며) 고마워요.
지혜: (해맑게 웃으며) 뭘요!
나난과 동미에게 손을 흔들며 차를 타는 정준과 지혜.
점차 멀어지는 정준의 차와 용달차.
손을 흔들어주는 나난과 동미. 동미는 미소를 짓고, 나난은 심난하다.
씬106. 나난의 집 (밤)
수헌, 세면대의 하수구 연결 관을 고치고 있고
나난, 욕실 문에 기대어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수헌: (씩 웃으며) 자꾸 봐도 좋아?
나난: (픽 웃으면)
수헌: 좋지? 남자있으니까 좋지? 사랑스러워 죽겠지?
나난: 그래, 죽겠다.
수헌: 이런 건 진작 말을 하지,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냐 미련하게?
나난: 미안해서 그렇지…….
수헌: 뭐가 미안해, 당연하지.
나난: 그게 아니라……. (보다.) 수헌씨, 미안해…….
수헌, 나난을 본다.
씬107. 나난의 옥상마당 (밤)
수헌, 심각하게 나난의 얘기를 듣고 있다.
나난: 그동안 난 내가 패션쪽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보니깐 무작정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덤볐던 거 같애. 혼자 끙끙 애만 쓰고, 왜 날 알아주지 않는 거지? 잘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다 남 탓이고……. 내 모습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그것만 생각하고 살았던 거 같애. 근데 여기서 일해 보니깐,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일을 즐기고 있는 거 있지. 물론 재능이 있는 건가? 헷갈리기도 해. 근데 해보고 싶어. 끝장 보고 싶어. 나란 인간이 도대체가 똥인지 된장인지 알긴 알아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아, 사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할거야. 나, 보기보다 성질 더럽거든? 천만원 벌어다줘도 앙앙대면서 바가지 막 긁을지 몰라. 맨날 술퍼먹고 짜증부릴지도 몰라. 지금은 내가 무슨짓을 해도 이쁘대지만, 그럼 엄청 짜증날 거야. (눈물 글썽이며) 나 그러기 싫어. 후회하기 싫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 괴롭히기 싫어. ……. 나 사실, 무지하게 쪽팔렸다. 남자 하나 나타나니까 다 이뤄지는 것두 쪽팔리구, 자기한테 기댈 생각만 하는 내가 쪽팔렸어. 난, 난 수헌씨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생각은 왜 한번도 안해봤나, 그것두 쪽팔려. 지금은 아니야. 난 아직 혼자서도 못 서있는거 같아. 그래서 나 결혼할 수 없어.
수헌: (보면)
나난: 당분간은.
나난, 손가락의 반지를 빼서 수헌에게 준다.
나난: ……. 나한테 시간을 좀 줄래? (사이) 나중에……. 내가 웃을 때……. 그때 같이 웃어줄 수 있어……. ?
수헌, 심각하게 반지만 만지작거릴 뿐 말이 없다.
긴 침묵.
수헌: (뜬금없이) 또 고장 난데 없어?
나난: ?
수헌: 지금 말해. 나중에 변기에서 세수하지 말구.
나난: …….
나난의 손을 잡는 수헌.
수헌: 내가 말 안했든가? 나, 기다리는 게 특기라고.
수헌, 나난의 손에 반지를 다시 끼워준다. 눈물이 맺히는 나난.
수헌: 멋있어 죽겠지?
씬108. 사무실
저녁 해가 들어오는 환한 유리창. 창에 쳐 있는 블라인드가 몇 개 떨어져 나가있다.
금방 이사를 한 뒤에 따르게 되는 깔끔함과 허전함, 조금의 지저분함이 뒤섞인 그런 공간.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용팔이.
먼지가 군데군데 뭉쳐서 공같이 굴러다니는 사무실을 휘 훑어보는 용팔이,
용팔: 생각보다 넓네.
뒤이어 동미와, 선호, 솜털 보송한 20대 초반의 남자들 서넛이 컴퓨터를 들고 들어온다.
동미의 지휘 하에 부산스럽게 책상을 배치하고 컴퓨터를 설치하기 시작하는 남자들.
나난NA: 동미는 드디어 자신의 팬클럽을 동원해 창업을 감행했다. 모두 다 동미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인간들이라고 한다. 물론 그건 순전히 동미의 말이지만…….
<점프>
고사상 위에 올려진 컴퓨터 모니터에 웃는 돼지머리가 떠있다.
개업고사를 지내고 조촐한 파티를 하는 창업멤버들.
동미가 무리의 중앙에서 좌중을 리드하고 있다. 동미의 한마디에 깔깔깔 웃는 멤버들.
이 때, 벌컥 문이 열리며 동미부가 들어선다.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동미를 노려보는 동미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의 동미.
동미부: 어느 놈이여? 설마 이것들 다는 아니겄지?
<점프>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
나난NA: 동미의 아버지는 동미를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선언하고 그 길로 내려가셨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코에서는 아직도 코피가 흐르는 동미.
쭈뼛거리며 동미의 옆으로 가 앉는 나난.
나난: ……. 미안하다. (혼잣말) 아, 어머닌 혼자 알고 계시래니까…….
동미: (쏘아본다.)
나난, 시선 피하는데 동미가 픽, 하고 웃어버린다. 기가 막혀하는 나난.
나난: 이래두 낳을 거냐?
동미: (고개를 끄덕이는 동미.)
나난: 나중에 니 새끼가 왜 자긴 아빠가 없냐고 물어보면?
동미: 우리 새끼는 부모 닮아서 착할 거야. 그런 거 묻는 대신 “엄마 날 낳아줘서 고맙습니다” 할 거야.
나난, 한심한 듯 동미를 쳐다보다가 툭 한마디 던진다.
나난: 그래, 낳아라. 낳아.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의아한 얼굴로 동미가 고개를 돌려 나난을 쳐다보면
나난: 애 낳으라고.
동미: ???
나난: 내가 아빠 할 테니까 니가 엄마 하라구. 우유값 떨어지면 내가 벌어다 주고 호적가지고 누가 말하는 인간 있으면 내가 호치케스로 주둥아리를 박아줄게.
동미: 난아…….
나난: 너 나 알지? 뭐든 걸리적거리는 거 있으면 내가 다 물어뜯어 버릴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알았어, 이동미?
동미, 멍든 얼굴을 실룩이는데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다.
씬109. 도로(수헌의 차안)
잔뜩 긴장한 수헌의 얼굴.
나난OFF: 좀 풀어라, 풀어! 누가 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줄 알겠다!
수헌: 그냥 폐차시킬걸.…….
의자를 앞으로 당겨 거의 앞 유리에 얼굴을 들이대고 운전하는 나난.
주위 차들은 휙휙 지나가는데 나난의 하얀 아반떼는 거북이걸음으로 아장아장 달린다.
나난: 도대체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나야, 차야?
수헌: 나야…….
나난: 뭐?
수헌: (심각) 비행기에서 떨어질 확률과 내가 공항에 도착하지 못할 확률 중에: 어떤 게 높을까?
나난: (발끈해서 고개를 틀고) 박수헌!
수헌: (놀라) 어어……. 꺾어! 꺾어!
반대편 차선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던 나난의 차가 휙 방향을 튼다.
씬110. 인천 공항 주차장.
뒤뚱뒤뚱 후진해서 주차하는 나난의 차.
나난: (환희) 다 왔다!
수헌: (그런 나난을 보고 웃으며) 살았다.
나난, 팍 째리는데 수헌이 조수석 문을 철컥 열고 내린다. 놀라는 나난.
수헌: 다 손 봐놨어. 이젠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자신 있게 조수석문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시범을 보이는 수헌.
따라 웃으며 차에서 내리는 나난. 수헌, 뒷좌석에서 조그만 여행용가방을 내린다.
수헌: (덤덤하게) 갈게.
나난: ?
수헌: 여기서 헤어지자. 영화 같은데서 보면 유치하잖아. 출국 게이트 앞에서 울고, 껴안고, 들어가다 다시 달려 나오고.
나난: (픽 웃고) 카메라 빙빙 돌고?
수헌, 나난의 손을 붙잡고 빙긋이 웃는다. 둘 다 애써 웃어 보이려고 노력한다.
수헌, 미소로 나난을 보고 있더니 나난을 살포시 안는다. 나난도 수헌을 안는다.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는 수헌과 나난. 친구 같은 포옹이다.
수헌: 갈게…….
나난: 응…….
수헌, 말은 그렇게 해놓고 막상 갈 생각을 않고 서서 나난만 뚫어지게 본다.
수헌, 갑자기 허리를 숙여 아래에서 나난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나난, 멀뚱히 보다 씨익 웃으면
수헌: (빙긋이 웃으며) 그래 그거야!
수헌, 손을 내민다. 수헌의 손을 마주 잡는 나난. 두 사람, 악수를 한다.
수헌: 진짜 간다!
하고 씩씩하게 돌아선다. 수헌, 몇 발짝 가다 다시 돌아보고
수헌: 기대하지 마. 나, 가다가 다시 뛰어오는 일 없을 거야.
나난: (웃고 만다.)……. 얼른 가…….
수헌: 간다…….
수헌, 씩씩하게 손들어 보이더니 주차장을 걸어 나간다.
횡단보도 앞에선 수헌. 나난을 돌아보며 크게 손을 흔든다.
나난도 수헌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든다. 눈에 눈물이 조금 맺힌다.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수헌.
나난NA: 그가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게 불안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과연 우리 둘은 결혼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그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나난, 한숨인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차문을 연다.
어? 열리지 않는 운전석 문. 몇 번을 흔들어보던 나난, 풀썩 웃고 만다.
나난NA: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 났다는 것이며, 자동차 뒤로 돌아가 트렁크를 여는 나난. 트렁크를 쿵 닫자 운전석 문이 철컥 열린다.
나난NA: 일어나봤자 지가 문제일 것이고
운전석에 앉아 차키를 돌리는 나난. 부르릉~ 하고 힘차게 시동이 걸린다.
나난NA: 문제엔 반드시 해답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공항 주차장을 나서는 나난.
씬111. 나난의 옥상
짐을 싸서 문 밖으로 내놓는 나난, 햇살에 눈을 찌푸리면서 옥상을 휘 둘러본다.
그때 안에서 동미가 나온다. 냄비 하나만 달랑 들고 있다.
나난, 들고 있던 허브 화분을 동미에게 안긴다.
씬112. 나난과 동미집 거실
정준의 짐이 빠진 자리에 나난의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다.
동미는 심드렁하게 보고 있고, 들뜬 표정의 나난이 부산스레 사온 물건들을 꺼내 보인다.
나난: (보행기 불쑥 내놓으며) 짜잔~ 이쁘지, 이쁘지?
동미: 그건 2년 후에나 쓸 수 있겠다…….
나난: (실망) 그래? (금세 활짝, 아기 신발 들며) 이것 봐, 너무 이쁘지 이쁘지?
동미: 그건……. 3년 후에나…….
나난: (기저귀 들어 보이며) 이건 금방 쓸 수 있겠지?
동미: 우리 회사 애들이 다 해줬어…….
나난: (배냇옷 들어 보이며) 이건 태어나자마자 입힐 수 있겠지?
동미: 그건 친정엄마가 해주는 거야……. 엄마가 아빠 몰래 해주셨어.
나난: (실망해서 풀죽은 표정, 젖병 들어 보이며) 이건 괜찮겠지?
동미: 미안하다 친구야……. 나 모유 먹일 건데…….
나난: 이년아,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 보리차라도 넣어 먹여! 흥, 설마 이건 없겠지?
청전기 같이 생긴 아가소리 꺼내며 동미배에 갖다대는 나난.
나난: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아가, 이모야~ 아니, 고몬가? 아가, 아빠야 아빠~
동미: (마이크 뺏으며) 엄마다 오바! 이 아줌마 믿지 마라, 마귀할멈이다 오바!
나난: 이게? 갈라서자, 갈라서!
<cut to>
정갈하게 앞치마를 차려입은 나난과 동미, 뿌듯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공손히 인사한다.
나난: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요리 시간에는 “피자”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필요한 재료에는 어떤 게 있지요, 이동미 선생님?
동미: 네! (식탁 위에 늘어놓은 피자 재료들을 가리키며) 요로 요로 조로 조로 이따구 것들이 필요하겄슴다.
나난: 네, 그럼 시작하시죠. (동미 보면)
동미: (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 짓다가) 네가 하는거 아냐?
나난: 나 할 줄 몰라.
동미: 이런 씨이……. 니가 해준 대매?
나난: 내가 언제? 네가 먹고 싶대니까……. 그럼 먹자구 그랬지.
동미,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데서 암전.
와장창 우당탕, 살림을 부수는 듯 한 소리 한바탕 나더니 화면 밝아지면, 서툰 솜씨로 요리하느라 엉망진창 초토화된 식탁, 얼굴에 밀가루 묻힌 나난이 통화하며 부산하게 요리중이다.
나난: 어, 어……. 케첩을 볶으라고? 소금 한 스푼? 큰 숟갈, 작은 숟갈?
옆에서 심드렁하게 밀가루 반죽하고 있는 동미.
동미: 아예 와서 해주고 가라 그래.
나난: (동미에게) 시끄러. 넌 그거나 치대. (수화기 대고) 어, 준아. 뭐?
나난과 동미 토닥대는 소리 이어지고,
카메라, 천천히 베란다로 빠져나와 아파트 전경을 비춘다.
나난: (소리) 야, 우리 집에 오븐 있었냐?
동미: (소리) 네가 안갖고 왔음, 없다.
나난: (소리) 준아, 오븐 없음 안 돼? 후라이팬? (달그락) 아, 여깄다! 어우, 비린내! 이 동미! 설거지 좀 해놓지! (쨍그랑!) 악!
동미: (소리) (포효) 아우, 정말 그립다 임정준!
나난: (소리) 저런 인간이랑 어케 살았냐? 존경스럽다, 준아!
아파트 정문 앞에 끼이익, 서는 피자 배달 오토바이.
배달부, 피자 들고 룰루랄라 들어간다.
E: (초인종 소리) 띵동!
동미/나난: 왔다!
-THE END-
4
댄서의 순정 1
시나리오 / 박 계 옥
각 색 / 박 영 훈, 박 현 규
감 독 / 박 영 훈
제 작 / (주) 컬쳐캡 미디어
……. 반딧불은 바보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기만 기다리는 거야.
그렇게 기다리다가……. 죽는 거지……. 운명처럼…….
나오는 사람들
나영새(30) - 전직 댄스 스포츠 국가 대표를 하며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나 경기 중 입은 다리 부상으로 많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도전으로 채란에게 댄스를 가르쳐 준다.
장채린(19) - 연변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영새에게 댄스 스포츠를 배워 댄스 스포츠 선수가 된다.
정현수(33) - 영새의 파트너 세영을 빼앗고 영새의 다리마저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고 영새의 새 파트너 채린 마저 빼앗아 간다.
마상두(41) - 춤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살아가는 사내. 영새 몰래 채린을 현수에게 넘긴다.
이철용(24) - 영새에게 예전에 춤을 배운 영새 후배. 어느 날 미수를 데리고 영새를 찾아와 다시 춤을 배운다.
오미수(23) - 철용의 댄스 파트너 전직 재즈 댄스 강사.
김 과장(39) - 출입국 관리소 직원, 영새를 쫓아다니며 영새와 채린의 위장 결혼을 밝히려고 한다.
최은혜(31) - 경찰청 직원, 김 과장과 같이 영새와 채린의 뒤를 조사한다.
김세영(29) - 옛날 영새의 파트너, 돈과 명예 때문에 영새를 버리고 현수에게 갔다.
오경용(30) - 현수의 부하, 대회장에서 영새에게 고의로 부딪혀 영새를 다치게 한다.
이 기철(30) - 현수의 부하. 경용과 같이 영새의 다리를 다치게 한다.
류선규(25) - 상두의 부하
서영준(27) - 상두의 부하
출입국 남직원(35) - 채린의 위장 결혼 여부를 심사한다.
출입국 여직원(28) - 영새의 위장 결혼 여부를 심사한다.8
그 외 다수
프 롤 로 그. - 대 회 장. / 낮
댄스 스포츠 선수들 대기소.
영새와 파트너가 같이 앉아 있고 건너편에는 현수와 세영이가 앉아 있다.
주위에는 대회 참가자 선수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영새는 매서운 눈으로 현수와 세영이를 쳐다본다.
현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왠지 세영의 얼굴이 어둡다.
세영은 의도적으로 영새의 시선을 피하려 한다.
현수 즐겁게 웃으며 세영에게 손을 내밀고 세영 억지 미소를 지으며 현수의 손을 잡고 영새 앞을 지나가 대회장으로 간다.
영새는 그런 현수의 뒤를 쫓아가면서 앞으로 걸어가는 현수에게 영새 중요한 건 파트너가 아니라 파트너와의 교감이야. (현수보다 먼저 대회장으로 간다.)
현수는 대회장으로 가는 영새를 보며 시니컬하게 웃는다.
단체전 퀵스텝, 춤 출 준비를 하고 있는 선수들.
퀵스텝 음악이 나오자 춤추기 시작하는 선수들.
영새와 파트너 춤이 단연 으뜸이다.
현수와 세영의 춤도 뛰어 나지만 영새와 파트너의 춤에 비해서는 별로다.
상두는 영새와 현수의 춤을 비교 하면서 뭔가를 적으며 매우 흡족해 하는 눈치다.
영새와 파트너 퀵스텝을 추면서 점차로 템포가 빨라지고 격렬해지는 가운데 이때, 다른 쪽에서 오는 춤추는 사람과 다리를 부딪친다.
다리를 다쳐 넘어지는 영새.
놀라는 상두의 얼굴
넘어진 상태에서 당황하는 영새.
영새의 시선으로는 다른 춤추는 사람들이 매우 몽환적으로 보인다.W. O
병 원. / 낮
낙엽이 와르르 떨어지는 병원의 전경.
영새는 담배를 피며 엑스레이 사진이 든 봉투를 들고 나오면서 다리를 한번 흔들어 본다. 그 위로 흐르는 의사의 소리
(의사): 한 번 파열된 연골은 다시 덧나기 쉽습니다. 그러니 무리한 운동은 삼가 하세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걸어가는 영새.
F. O
자막 - 2년 후…….
초 등 학 교 운 동 장. / 낮
화면 암전 된 상태에서 모던 댄스 음악이 흐르고 영새의 소리가 들린다.
(영새): 슬로, 슬로 퀵퀵, 슬로, 슬로 퀵퀵 그리고 턴 하고, 다시 한 번…….
화면 F. I 되면
교양 모던 댄스를 추는 초등학생들.
영새는 그룹으로 춤을 추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약간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 그러던 중에 자세가 매우 틀려 보이는 민철이와 희연이를 보고는
민철이 넌 리버스 턴만 돌아가면 지구가 돌아 간 것처럼 허둥거리는구나.
민철:…….
희연아 리버스 턴 일 땐, 니가 민철이 리드 좀 해줘라.
희연: 네.
초등학생인 민철과 희연은 계속 춤을 추고
영새는 아이들을 빠져 나와 조회대 앞에서 담배를 피며 어딘가를 보면서 뭔가를 생각한다.
앞에 있는 종이컵에 담배 재를 턴다.
이때, 영새의 어깨 너머로 춤추던 아이들 춤을 끝내가면서 음악이 끝난다. 그러나 영새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담배를 핀다.
이때, 들리는 희연의 소리.
(희연): 선생님 음악 끝났는데요.
영새 아이들을 귀찮은 듯 쳐다본다.
희연: 선생님 음악 끝났어요.
아이1: 선생님 다른 거 가르쳐 주세요.
(담배를 끄며 귀찮은 듯 CD 플레이어에 같은 곡을 누르며) 야!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방금 한거나 한번 더하고 있어.
그리고 영새는 다른 곳으로 간다.
아이들 서로들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이2가
아이2: 우리가 몸친가? 한달동안 이 춤만 가르쳐 주게?
음악이 나오자 마지못해서 춤추는 아이들.
영새는 춤추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불편한 다리로 어딘가로 걸어간다.
영 새 의 집. / 밤
벌써 재건축 되었어도 하나도 억울할 것 같지 않은 건물 삼층.
불이 켜지면 부식된 기둥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내.
제법 넓은 플로어가 마련되어 있고, 한 쪽 구석은 커튼이 드리워져 실내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한 쪽 벽면엔 거울이 붙여져 있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있고, 부서진 유리에선 바람이 들어온다.
파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에 더욱 추워 보이는 실내.
오래된 댄스 대회 수상 트로피가 있고 상장들이 벽에 걸려 있다.
영새가 대회에서 우승한 사진들에 먼지가 낀 상태로 벽에 걸려있다.
TV에서는 댄스 스포츠가 나오고, 얼굴이 꺼칠하고 수염이 제법 자라 있는 영새는 라면을 먹으며 발의 스텝을 맞추고 있다.
이때 들리는 상두의 소리.
상두: 개 버릇 남주냐? 춤꾼이면 춤을 춰야지 뭐 하는 짓이냐? 다린 좀 괜찮아졌냐?
우두커니 영새를 보고 있는 상두.
뭔가 서류뭉치가 든 봉투를 툭 던져준다.
영새, 보면…….
상두: 너만한 춤꾼은 대한민국에 없어. 웬만하면 우리 다시 시작하자.
(피식 웃는다.)
상두: 다시 춤 출 수 있겠지?
영새:……. (말없이 라면만 먹는다.)
상두: 내일 중국에서 괜찮은 애가 하나 온다. 조선족 자치주대회에서 몇 번 우승한 애니까 너랑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다
관심 없어.
상두: 야 임마~ 현수 그 자식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넌 자존심도 없어?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쪽팔리지도 않냐고?
(짜증을 내며) 아! 싫다니까 왜 자꾸 그래!
상두: (피식 웃으며) 너 혹시, 세영이 일 때문에 그런 거야? 맞아? 야! 임마 그깟 일 때문에…….
(라면을 먹다가 말을 자르며) 형!……. 형한테 그깟 일 일지 모르지만 난 평생 잊을 수 없어. 알았어!!
상두: 야! 그러니까 중국에서 새로 오는 애로 파트너 하자는 거잖아. 게네들이 뭘 알겠니? 도망가지 않게 돈만 조금씩, 조금씩 쥐어주면 지들은 좋다고 해요. 그리고 솔직히 걔네들이 한국물정에 대해서 뭘 알겠냐? 그런 면에선 순진한 얘들이니까 사람 뒤통수 깔 일은 없다니까.
(라면만 먹으며 다리에는 여전히 리듬감으로 춤추는 흉내를 낸다.)
상두: 아무튼 내일 가서 데리고 와. 봉투 안에 사진 있으니까
상두 나가면서 중얼거린다.
“아~ 자식……. 시키는 대로만 하면 지 좋고 나 좋고 얼마나 좋아. 병신새끼”
문을 닫고 나가는 상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영새 라면을 후루룩 먹다가 봉투를 쳐다본다.
영새 봉투를 보고는 다시 라면을 먹으려다가 젓가락을 놓고는 다시 봉투를 집는다.
선 박. 오 후 / 낮
멀리 육지가 보이는 갑판.
갑판에는 작은 눈송이들이 내린다.
칼바람이 깃발을 온몸으로 부대끼게 불어 젖히고 시퍼런 바닷물이 선수에 부딪쳐 일으키는 물보라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낡고 칠이 벗겨진 갑판에 바다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배 보다 낡은 사람들의 모습들.
짧은 생머리에 하얀색 긴 패딩바바리 옷차림의 여자 뒷모습이 보인다.
작은 눈송이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쏟아지고 있다.
여자의 머리에 감싼 스카프에 하얗게 쌓이는 눈.
여전히 갑판 앞에 서서 가까워지는 인천항을 보고 있는 여자.
스카프를 감싼 얼굴이 채 보이지 않는다.
입김만 허옇게 바다바람에 날리며 (상두소리) 미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랑 위장결혼을 해야 된다.
정상적인 루트로는 초청이 불가능해,
영 새 차 안. / 낮
와이퍼가 하나밖에 없는 낡은 영새의 차가 덜덜거리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
창유리로 날리는 송이 눈들.
묵묵히 운전을 하는 영새.
(읊조리듯) 다시 시작한다. (헛웃음을 흘린다.)
글러브 박스 위로 붙여진.
강아지 두 마리가 고개를 까불까불하며 끄덕인다.
인 천 항 앞. / 낮
눈들이 어느새 제법 쌓여 인천항 부두의 더러움을 더러는 덮고, 더러는 탈색시키고 있다.
끼익 멈춰서는 자동차.
라면박스 크기만 한 흰 판지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영새.
문을 닫고 돌아서다가, 미끈 바닥에 넘어진다.
손에 들고 있던 판지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눈이 녹은 자리에 떨어진다.
어휴 시팔……. 진짜!
영새, 일어나 눈을 턴다. 허리를 펴며 인상을 찡그리는 영새.
들고 있던 판지에 ‘장채민’이라는 글씨에 물기가 번지고 있다.
길게 기적을 울리며 들어오는 선박을 물끄러미 보는 영새.
입 국 장. / 낮
낡고 빈티 나는 복장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을 굴리며
입국장에 하나 둘씩 들어오는 사람들.
보따리며, 낡은 가방들 행렬이 이어진다.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채린 잔뜩 멋을 부렸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린 티가 난다.
채린의 시선으로 한 남자가 보인다.
판지를 들고 서 있으나 뭐라고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무심코 그 남자 앞을 스쳐가는 채린.
성의 없이 판지를 들고 있는 영새.
수성매직으로 쓴 글씨가 물기에 번져 줄줄 흘러내린다.
글씨가 번진 줄도 모르고 서 있는 영새.
아무도 자신 앞에 멈춰서질 않자, 판지를 뒤집어 본다.
판지를 바닥에 내던지는 영새.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낸다.
눈이 녹아들어 갔는지 젖어 있는 봉투.
호주머니를 까뒤집어 물기를 빼내는 영새.
젖은 봉투가 찢기며 드러나는 사진.
폴라로이드 뒤편이 젖어서 사진 속의 그림이 흐릿하게 뭉개져 있다.
당황스러운 영새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젊은 여자 몇몇이 나오다가, 기다리던 짝들을 만나 빠져나간다.
입국장을 빠져 나오는 스카프의 여자. 채린의 모습이 주변의 꿀꿀한 모습과 대비되어 깨끗한 느낌이다.
주변을 훑어보는 채린.
20대 후반의 사내가 입구 쪽에서 부지런하게 달려오며 손을 번쩍 든다.
채린, 반갑게 다가가려고 가방을 든다.
사내, 채린을 지나쳐, 뒤편의 여자의 손을 잡는다.
실망하는 채린.
둘러보지만 낯선 풍경들, 문득 두려워 지는 채린.
입 국 장 앞. / 낮
기둥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채린과 영새.
영새는 담배를 한대 피면서 라이터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말리고 있다.
입국 장 앞은 텅 비어 있고, 혼자 서 있는 흰색 패딩바바리의 채린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
채린의 사진을 보는 영새.
사진을 보면, 윤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채린과는 전혀 딴 판인 얼굴이다.
이때, 울리는 핸드폰.
예……. 형? (짜증을 내듯) 오늘 오는 거 맞아? 아~ 글쎄, 장채민인지, 자장면인지 없다니까.
채린, 영새의 핸드폰 대화를 듣더니 고개를 돌린다.
영새는 통화를 하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채린이가 영새의 뒤에 있다.
영새 뭐 볼일 있냐는 듯이 채린을 보면
채린: 혹시……. 장채민씨 찾습네까?
(핸드폰에 대고) 잠깐만요. 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지만 아직 흐릿하다.) 장채민?~씨
채린: (고개 끄덕끄덕) 제가.
(채린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어~ 형, 찾았어!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영새는 전화를 끊고,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채린을 훑어보면 너무 앳되고 순진한 표정의 채린이다.
근데~ 정말 장채민씨 맞아요?
채린: (어색하게) 네…….
영 새 차 안. / 낮
강아지 두 마리가 자동차 진동에 따라 연신 까닥대고 폴라로이드 사진이 난방기 구멍 앞에 클립으로 고정되어 있다.
채린의 시선이 폴라로이드로 가 있자 운전하는 영새는 흘낏 채린을 보더니
거, 그건 금방 마르니까 젖었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쇼.
채린: 네?
(사진을 가리키며) 그게 그쪽 사진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젖었네. 물기만 마르면 거 금방 깨끗해질꺼유.
사진 형상이 흘낏 드러나기 시작하자 조바심이 나는 채린.
머플러를 벗고,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한다.
더워요?
난방기를 끄는 영새.
사진에 시선을 두고 있는 채린.
근데, 그쪽은 춤 춘 진 얼마나 됐수?
채린: 쪼……. 쪼금 밖에 안 됐습네다.
듣기론 꽤 춘다고 그러던데…….
채린: (뜨끔)
주 종목이 뭐요? 모던이요? 라틴이요? 난 원래는 라틴 이였는데 이번엔 모던으로 한번 바꿔볼라 그러는데…….
영새는 채린을 슬쩍 보고는 테이프를 꺼내 데크에 끼워 넣는다.
사랑의 테마 음악(모던댄스 왈츠에 관련된)이 흘러나온다.
음을 따라 허밍을 하면서, 가볍게 운전대를 두들기는 영새.
그런 영새를 물끄러미 보는 채린.
INSERT
온통 하얗게 눈에 덮인 서울의 모습이 차창 옆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하얀 눈길을 달리는 차들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영 새 의 집. / 밤
지저분한 영새의 집을 보고 입이 떠억 벌어지는 채린.
속옷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발바닥으로 속옷을 눌러 질질 끌면서 먼지를 닦으며 앞으로 가며) 오늘 따라 집이 좀 더럽네.
영새는 앞으로 가다가 채린을 돌아보고 어색하게 웃자 채린은 영새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겨우겨우 디디며 따라간다.
영새, 냉장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뭐 좀 먹을게 있으려나?
영새 냉장고 문을 열면 곰팡이 낀 김치와 반찬들.
(급히 냉장고 문을 닫으며) 없네.
채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손을 쓱쓱 비벼 닦더니
춥죠?
채린: 아……. 아넵네다. 료 정도 날씬 우리 련변에선 가을 날씨밖에 안 됍네다.
(손짓으로 가리키며) 저긴 화장실하고 세면장. 그리고 (손짓) 이쪽은 침실.
채린, 건성으로 듣는다.
채린은 가방을 든 채, 벽에 걸린 액자들을 신기한 듯 본다.
액자에는 연미복을 입고,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왈츠를 추는 영새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다.
채린: 요기 사진에 있는 사람이 아즈바이입니까?
영새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채린에게
(연변 사투리로) 고저 거 한번 말 할 때 제대로 들으시라요.
채린: (뻘줌해져서) 미안합네다.
(한 번 피식 웃고는 커튼 쪽을 가리키며) 그리고 침댄 안쪽에 있고
채린: 아……. 아즈바이는요?
(옆 소파를 가리키며) 난 여기서 자면 되니까 걱정 말고 그쪽이나 침대에서 자요.
채린: 그래도 어떻게 그럽니까? 아저씬 주인이고 또……. 고긴 되기 추울 텐데요.
그런 걱정 하덜 말고, 잠이나 자요. 그리고 거……. 자꾸 아즈바이라고 부르지 좀 마쇼. 거……. 듣기 좀 그러네.
채린, 고개를 끄덕인다.
영 새 의 집 - 커 튼 안. / 밤
퀸 사이즈의 침대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이불뭉치며, 옷가지들.
침대 옆으론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수북하다.
행거에는 연미복이며, 잡다구레한 옷들이 한 가득 이다.
코를 쥐어 잡는 채린.
한쪽 벽 장식장엔 트로피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국댄스스포츠경연대회 대상’등의 트로피들.
트로피에 손을 뻗어 보는 채린.
먼지가 쓰윽 닦인다.
(영새소리): 불 끕니다.
순간, 틱 하고 꺼지는 실내등.
침대에 눕지 못하고 모서리에 앉는 채린.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릎을 당겨 두 손을 잡고 몸을 모은다.
불안한 눈빛이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는 채린.
이불 속에서 카세트 레코더기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노래 소리가 들린다.
(※중국노래 夜來香 같은 노래가 은은히 흘러나온다.)
연변에 있을 때 언니(채민)와 채린이 같이 불렀던 게 녹음되어 있다.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채린.
녹음된 노래가 끝나고 빨간 녹음버튼을 누르는 채린.
채린: 채민 언니 나 꼭 성공해서 돌아갈게. 나 다시 돌아가면 우리 예전처럼 엄마랑 언니랑 행복하게 사는 거야. 여기 창문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꼭 고향집 창문에서 반딧불 보는 거 같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경 불빛들.
화면 오버랩 되면 야경 불빛이 흐릿해지며, 파란 새벽이 온다.
영 새 의 집. / 아침
소파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영새.
추운 지, 담요를 깊게 뒤집어쓴다.
쓱쓱 소리에 슬그머니 담요를 내리는 영새.
어느새,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실내.
벌떡 일어나 앉는 영새.
커튼이 묶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영새.
트로피를 닦고 있던 채린 돌아보며
채린: 안녕히 주무셨습네까?
거 뭐 하는 거요?
채린: 예? 청소합네다.
트로피를 빼앗는 영새.
누가 내 허락 없이 내 물건에 손대래?
채린: 그저……. 전 그냥. (고개를 푹 수그린다.)
트로피를 아무렇게나 구석에 처박아 버리는 영새.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복 도. / 낮
복도 길을 따라 걸어가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
그 뒤를 따라 걸어가는 김 과장과 은혜.
김 과장: 은혜 씨라고 했나요?
은혜: 네.
김 과장: 위장결혼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시라고요?
은혜: 네. 잘 부탁드릴게요.
김 과장: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은혜: 예?
김 과장 시야로 영새와 채린이가 유심히 보인다.
김 과장과 은혜는 영새와 채린이 앉아 있는 의자를 지나간다.
김 과장: 이 바닥 10년이면 인상만 봐도 딱!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멈춰서 뒤 돌아 채린과 영새가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 앉아 있는 남자 중에 어린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저 남자 보이죠.
은혜: 네.
김 과장: 허우대는 멀쩡하고 제비같이 생겼죠? 저런 사람들이 뭐가 부족해서 중국에서 배우자를 데리고 오겠습니까? 바로 위장결혼이죠. 잘 봐 두세요.
은혜: 네~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김 과장은 영새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은혜도 영새를 바라본다.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대 기 실. / 낮
몇몇 어수룩한 농촌 총각들이, 촌스러워 보이는 조선족 여자들과 짝을 지어 대기석에 앉아 있다.
대기석 한 쪽에 앉아있는 채린이 두 손을 맞잡은 채, 꼬물꼬물 만지고 있다.
채린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 채린의 손을 잡아 주는 영새.
너무 걱정 마쇼. 금방 끝날 테니까.
채린: (끄덕인다.)
우습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만나서 결혼신고 한다는 게.
채린: 시, 신고만 하면 끝나는 겁니까?
왜? 신혼여행이라도 가게요?
채린, 얼굴이 벌게진다. 피식 웃는 영새.
이때, 들리는
(소리): 나영새씨, 장채민씨.
일어서는 영새와, 뒤따라 걷는 채린.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창 구 앞. / 낮
수속을 밟고 서 있는 영새와 채린.
비자를 받고, 막 돌아 설려고 하는데
이때, 김 과장이 어느새 영새의 뒤에서 쓰윽 몸을 내민다.
영새, 뭐냐는 듯 보지만, 김 과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서류를 흘낏 보더니
김 과장: 나영새씨?
예.
김 과장: 주민증은 이년 후에 발급됩니다.
(정체가 뭔지 몰라) 그런데요?
김 과장: 물론 위장결혼이 아닌 것이 밝혀진 후에 일이겠지만
영새, 뜨끔하지만, 걸어간다. 채린 영새 뒤를 따른다.
김 과장: 나영새씨!
(멈춰서면)
김 과장: 위장결혼이 발각되는 즉시, 여자는 영구추방이고, 당신은 실형에 처해진다는 것쯤은 아시겠죠?
!!!
하얗게 질리는 채린의 어깨를 의도적으로 감싸 안고 가는 영새.
김 과장, 두 사람의 뒷모습을 실눈을 뜨고 본다.
미소가 씨익 번지는 김 과장의 얼굴.
김 과장: 니들 얼마나 버티나 보자.
영새 쪽을 바라보는 김 과장의 눈빛이 빛나고
김 과장을 보는 은혜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다.
주 차 장. / 낮
차에 오르는 영새와 채린.
채린: 일……. 일 없겠습네까?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앞에서만 똥 폼 잡지 다 게을러터진 인간들인 게 감시 한 번 안 나올게 뻔 하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거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 듯 한 채린.
영새, 차를 후진시키며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채린: 예?
뭘 그렇게 놀래나? 춤 말이에요. 춤! 채민씨 슈즈는 무슨 종류로 신죠? 000?
채린: …….
음악은? 음악은 어떤 종류를 좋아하나? 아~ 그럴 것 없이 지금 곧 레코드 가게로 가면 되겠네.
영새, 관리소 입구를 향해 차를 급하게 회전시킨다.
휘청 어지러운 채린.
휘파람을 불면서 운전을 하는 영새는 히터를 켜려고 손을 뻗는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영새의 손이 히터에 뻗혀지고 채린의 시선도 몰린다.
히터 열기에 몸을 흔드는 폴라로이드 사진.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영새.
채린의 표정도 급작스레 절망으로 무너진다.
끼이익 ~ 하는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서는 자동차.
채린을 보는 영새의 눈. 분노와 원망의 느낌이 얽혀있다.
체념 어린 시선으로 끔벅이인 천 항 터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