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은 누가 가져가는가?
수암 /박경열
어디서 왔니?
물 따라서 왔을 리도 없고 바람에 날려 올 리도 없건만 유독 토실한 도토리 한 개가 정원 향나무 아래 떡 버티고 있다. 근처에 비둘기도 없고 까치도 없는데 누군가 가져다 놓았다.
다람쥐도 살 수 없는 환경인데 궁금증이 증폭한다.
도토리를 좋아하는 건 다람쥐인데
이쪽에 혹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렇지 잡초 하나 없는 향나무 그늘에 잘 익은 도토리가 상처 하나 없이 옮겨 놓여있어 옮긴이에 대한 궁금이
며칠째 계속된다.
도토리가 잘 익어서 벌어졌는지 아님
새가 물고 가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건지
궁금이 가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적 기법을 동원하여 어느 동물의 침이 묻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으니 귀신 곡할 노릇이다.
앞산에 도토리나무가 있으니 옮겨 온 이만
찾으면 되는데 추리에도 한계가 있다.
분명 임자가 있을 터 뿌리 내리라고 땅속에
묻을 수도 없음이니 고민은 된다.
좀 더 두고 보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묻을까도 생각 중이다.
주인을 찾습니다.
방을 붙여봐야 동물이나 새들이 읽을 수 없으니 헛짓이고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도토리가 움트도록 도와주느냐 아니면 주인이 나타나 찾아가느냐. 작은 호기심에 도토리 사진 보면서 궁금증이 증폭한다.
아직 썩지 않고 하얀 속살 드러낸 도토리
통통한 먹음직스러운 놈을 잃어버렸다면 찾으려 들것인데 못 찾으면 운 좋게 싹을 틔울 법도 하다. 하지만 땅이 너무 박한 곳이라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누군가의 도움이나 도토리만의 자가 생산법으로 움을 틔우고자 부단히 노력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음을 인지하면
곤경에 처한 사람도 사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한 알의 씨앗이 바람이나 새들의
도움으로 옮겨졌을 때 상황을 인지하면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여 도태되지 않으려 부단히 삶의 방법을 찾으리라 상상이 된다.
춘란은 꽃을 피워 맺어진 씨방의 포자를 날려 번식하기도 하는데 노루가 번식의 주범이다.
너구리는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하여
변을 한 곳에만 보는 경향을 보인다.
은행을 좋아해서 잔뜩 배가 부르면 배설을
하는데 은행처럼 단단한 게 소화될 리 만무하여 구린내 나는 부분만 소화 시키고 씨앗은 그대로 배설되어 운 좋게 싹을 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새의 먹이가 되어 운 좋게 좋은 환경에 배설이 된다면 싹을 틔울 확률이 높아진다.
적자생존이란 말이 달리 생긴 게 아닐듯싶다.
새의 먹잇감이 되기를 바랐는데 배설을
바위산에다 했다면 그만큼 생존율이 떨어질 거고 새나 동물의 입속에 들어가는 순간 운 좋은 곳에 배설되기를 얼마나 고대 하겠는가?
도토리는 다람쥐를 만나면 갉아 먹어 버리니 생존율이 0%다.
대신 다람쥐 IQ가 얼마 높지 않아 보관 장소를 금방 잊어버린다한다.
도토리, 상수리, 밤나무가 주로 이런 경로로 번식을 한다. 하지만 새들의 간택을 받았다면 번식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한다. 하나의 씨앗이 번식하는데도 적자생존의 법칙은 유의미하다.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여러 곳에 분포시키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식물만이 아는 기술이 아닐까.
새가 옮겨주지 않아 어미 나무 밑에 떨어져 씨앗이 난다면 그늘 때문에 자랄 수 없음을 씨앗은 안다.
새와 식물은 함께 사는 길을 이미 알고 있을 듯싶다
식물은 먹이와 잠자리를 내어 주며 새들은 식물의 번식을 도와주니 말이다.
다만 내가 발견한 도토리는 하필 너무나 척박한 땅에 떨어졌으므로 번식할 조건이 안 되는데 나의 조그마한 관심이 발동했으니 다시 녀석이 물어 가지 않으면 좋은 조건의 환경과 토양으로 옮겨 주겠다. 한알의 밀알일지라도 땅속에 묻히면 숨을 쉬고 발아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사람과도 공생의 길이 있음에 나의 작은 관심으로 움을 틔운다면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도토리에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일 수 도
있음이리.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움을 틔울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일일게다.
첫댓글 올려주신 옥고에 즐감하고 갑니다
편하신 시간이 되싮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