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길과 석파정에서 올해 가장 멋진 가을을 보았습니다.
번개팅으로 양재근 동문이 강력하게 주장한 이 코스에서 모두가 200% 만족하고 왔습니다.
참석한 동문은 9명에 전속 사진사 1명을 대동한 이번 번개팅은 고객만족도 1위였습니다.
김만수 동문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시 왔다가 급한 일로 귀가했지만요.
곧 통제될 청와대길 은행나무 단풍을 보며 석파정까지 가는 길도 가을이 익었지만
석파정 내부의 가을은 붉은색 단풍과 초록,노랑,주황 등 갖가지 색이 어우러진 가을 천국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번개팅에는 김종오(19),김영철(22),권덕순(26) 등 자주 참석하지 못했던 동문들이 함께 해 더욱 즐거웠습니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병주 형님의 호강
석파정에서의 단체사진
조선시대-일제치하-현재까지 권력의 중심부인 이곳
최고의 가을을 맛보고 있습니다.---양재근 동문의 고집으로 갔는데 '대박'
문정선의 "나의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풍경입니다.
전속 사진사 영암댁이 찍었습니다.
한 잔 하고 가야지
샛노란 은행잎이 가엾이 진다해도 정말로 당신께선 철없이 울긴가요
새빨간 단풍잎이 강물에 흐른다고 정말로 못 견디게 서러워 하긴가요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돌아가는 이 몸은 낙엽이라
아아 아아아 아아 아아아 떠나는 이 몸보다 슬프지 않으리~~~~ ♬
새빨간 단풍잎이 강물에 흐른다고 정말로 못 견디게 서러워 하긴가요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돌아가는 이 몸은 낙엽이라
아아 아아아 아아 아아아 떠나는 이 몸보다 슬프지 않으리
뚜루루 뚜루루루 슬프지 않으리 ♬
‘새 중의 왕은 봉황새요, 꽃 중의 왕은 모란이요, 백수의 왕은 호랑이다’라는 말처럼
봉황은 모든 새의 우두머리로 여겨지며, 한국인의 의식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민속 상상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황은 새 중의 으뜸으로,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이 새가 한 번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고 하여 봉황은 곧 ‘천자(天子)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청와대 사랑채는 지상 2 층 · 지하 1 층 등 4,116 ㎡ 규모로 한국의 관광지 , 청와대 및 역대 대통령 발자취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종합관광홍보관이다 . 1 층은 관광한국의 매력과 청와대 속 숨겨진 이야기를 둘러볼 수 있는 한국관광전시관을 비롯해 기념품점 · 쉼터로 이뤄져 있고 , 2 층은 현 정부와 대통령을 소개하는 청와대관과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부의 온라인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국민소통체험관이 위치해 있다 .
천자의 궁문에 봉황을 장식하여 ‘봉궐(鳳闕)’, ‘봉문(鳳門)’이라 하였고,
천자의 수레를 장식하여 ‘봉거(鳳車)’나 ‘봉련(鳳輦)’, ‘봉여(鳳輿)’라 했습니다.
좋은 벗을 ‘봉려(鳳侶)’, 아름다운 누각을 ‘봉대(鳳臺)’,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봉음(鳳音)’이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봉황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잘 드러납니다.
청와대는 인왕산 자락 아래 자리하고 있는데,
경복궁의 뒤쪽 북문인 신무문 밖, 북원이라는 후원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 때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고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가 만들어 지면서
이곳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대신해 새로운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해방되자마자 청와대는 일본인 총독을 대신해 미군정 장관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야 우리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공간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그 당시는 이곳을 경무대라 불렀으나 1960년 4·19혁명 후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공수특전단 원사님과 특수요원 같지 않습니까?
청와대 춘추관? -
석열이가 청와대 옮겨서 쓴 세금이면 전세사기 피해자들 집 한 채씩 사주겠다.
청와대 옮기라고 부추킨 인간들도 다 잡아 넣어야 돼.
청와대 쪽에서 윤동주 기념관 석파정으로 가는 길
121사태때 검문하다가 북한 공작원들에게 총격을 받아 숨진 당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
군인과 경찰 25명과 민간인 7명이 목숨을 잃었고 52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공비(共匪)는 29명이 사살됐고, 김신조는 투항. 박재경은 북한으로 탈출한 뒤 대장까지 승진하고
2000년과 2007년 김정일 특사로 서울을 왔다 갔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일 만행은
반인권적 주민번호와 향토예비군,
육군3사관학교와 교련,
실미도에 684부대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교련,학도호국단 세대입니다.
단풍이 촉촉하게 들었습니다.
물기,습기는 참 중요합니다. 피부에도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빰이 몹시도 그립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 하렸더니/
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석파정은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별서(別墅)로서 안태각(安泰閣) · 낙안당(樂安堂) · 망원정(望遠亭) ·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등 8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랑채인 석파정 별당은 1958년 종로구 홍지동으로 옮겨져 따로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원래의 터 뒤쪽 바위에는 ‘三溪洞(삼계동)’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아서 원주인인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이 살 당시에는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불렀습니다.
서울 성곽의 북서쪽밖에 자리잡고 있어서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선 말기의 건축술이 조화된 대표적 건축입니다.
뜰에는 해묵은 노송(老松)들이 차일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서쪽 바위산에서 흘러내린 계류(溪流) 한가운데에는
평대(平臺)를 쌓고 그 위에 서양식 건축기법이 더해진 유수성중관풍루를 세웠습니다.
4모지붕이나 기와를 씌우지 않은 색다른 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이라 바꾸고 대원군의 호도 석파로 하였다고 합니다
소유권은 이희(李喜)→이준(李埈)→이우(李堣) 등으로 세습되어오다가 6·25전쟁 직후
고아원 · 병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현재 개인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이중섭의 소는 그림이고 박민섭의 이 소는 조각입니다.
석파정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별서 정원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건축과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합니다.
19회 여자들에 둘러 쌓인 것보다 더 기쁜 표정
오순이 대신 영철이~~~~징그러~~~
석파정에는 미술관이 있고 정원에는 예술작품이 많습니다.
석파정은 본래 안동 김 씨 가문의 별장이었으나, 조선 후기 정치가인 흥선대원군이 매입해
자신의 이름인 “석파(石坡)”를 따서 석파정이라고 명명했답니다.
역시 단풍은 붉은 색이 섞여야 멋있습니다.
만추~~~올해 가을은 이 곳에서 만끽하고 끝.
인왕산을 뒤로한 명당자리 석파정
부암동 마을과 석파정---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갖가지 색이 어우러진 대한민국 단풍입니다.
이 곳에서 야외 결혼식도 많이 합니다.
"유수성중관풍루" 입니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단풍을 구경하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지금 딱 제철입니다.
석파정은 원래 이조판서,좌의정,영의정을 엮임한 김흥근의 별장이었습니다.
대원군이 이 집이 탐이 나 고종을 불러 하룻밤을 자게 하고 임금이 잔 집에서는 신하가 살 수 없다고 하여 뺏았고
대원군은 바위로 둘러 쌓인 이 집이 너무 좋아 호도 석파로 짓고 이 곳을 '석파정'이라고 했다는 것이 "매천야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석상도 자세히 보면 다 다르고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아야 관광도 즐겁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완전히 익어버린 가을입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난을 치는 등 예술적 활동 장소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의 행전이나 행궁 시 임시 거처로도 사용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거대하고 위엄 있는 바위로 둘러싸인 풍경에 감탄하여 자신의 호를 석파로 짓고, 이곳을 석파정이라 부르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거북바위의 웅장한 자태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집니다.
본래 7채의 살림채와 육모정 등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된 석파정은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정자 4개동만 남아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입니다.
바깥 주인이 주로 머물며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던 공간으로 별서의 중심부가 되었던 공간입니다.
그늘만 20평이라는 천세송에는 자세히 보면 12지신 상 못ㅂ이 있습니다. 찾아보시지요.
석파정은 위로는 북악산, 좌우로는 북한산과 인왕산이 자리 잡고 뒤로는 남산 등 4개의 명산이 감싸고 있는
최고의 터에 위치한 명당 중 명당이랍니다.
좌청룡 우백호의 최적의 위치로 남쪽을 향하고 있는 진정한 배산임수의 자리입니다.
지금도 사랑채 위쪽에서 아래를 볼 때 주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흥선대원군 당시에는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었으므로 지금보다 빼어난 경관을 지녔을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의 호 석파를 딴 석파정 전경. 4개의 명산이 감싸는 숲속에 파묻혀 있다
흥선대원군의 호 석파를 딴 석파정 전경. 4개의 명산이 감싸는 숲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불타는 단풍을 여기서 봅니다.
권덕순,어서와 동문산악회 처음이지?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기와집
단풍이 무르익은 저 오솔길로 첫사랑과 손잡고 꽁냥꽁냥
상비마을 남자들
대추쟁이 윤센떡
그래도 24회 두 명이라 좋네요
이 곳에서 야외 결혼식을 많이 하는데 외국인들도 많이 한대요.
석파정 경치를 보려면 2만원을 내고 들어와야 합니다.
65세 이상은 13,000원.경로우대
석파정은 단풍으로도 유명하답니다.
고양이-삵쾡이-시라소니,치타,표범,호랑이 모두 고양이 과
재경조례초 출신 조국근대화 역꾼들
여기서도 막대기를 사랑하시는군요.제발 스틱을 짚는 습관을 ~~~
늬들이 단풍을 알아?
오순이,덕순이,미방이
일엽지추(一葉知秋)라,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영긂을 안다! 그렇다, 봄철엔 모든 이가 시인이 되고 가을에는 철학가가 된다고 했지.
부암동은 종로구에 속한 마을로 이곳에 부침바위(付岩)가 있었던 데서 유래됐습니다.
유적으로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이 있으며 문학인들의 흔적이 많은 곳으로, 윤동주 문학관과
현진건 집터 등이 있습니다
윤동주 기념관까지 왔으니 많이 걸었네요
부암동 동명은 부암동 134번지에 부침바위(부암)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부침바위는 이 바위에 다른 돌을 자기 나이 수대로 문질러 붙여 떨어지지 않으면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전설로,
많은 여인들이 이 바위에 작은 돌을 붙이려 애써 그 표면에 벌집이 송송 뚫어진 것처럼 오목오목한
자국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느 결에 가을이 산정에서 머뭇거림 없이 슬금슬금 기어 내려왔습니다.
봄꽃은 남녘에서 하루에 30km 속도로 내처 북상하고, 가을단풍은 거의 20km/day 빠르기로 이어 남하한다고 합니다.
어느 새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뭇 산이 울긋불긋 가을 단풍 옷을 끼어 입었도다!
시들어 떨어지는 맥 빠진 나뭇잎이 사뭇 남루해진 내 꼬락서니와 흡사타하겠다.
황혼은 그지없이 아름다우나 그 뒤에는 캄캄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나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것.
‘단풍’은 가을이 되면 녹색 식물의 잎이 빨강, 노랑, 짙은 주홍색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가을이 되면 식물의 광합성 작용은 서서히 줄어들어 다른 색소가 표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안토시아닌 색소는 산성일 때 빨간색을, 알칼리성일 때 파란색을, 카로티노이드계는 노란색 또는 주황색을, 탄닌은 갈색을, 로티노이드와 크산토필은 황금색을 나타냅니다.
단풍의 색은 잎 세포 내 색소분자의 상대적인 양에 따라 결정되며, 이 양은 온도·비·낮의 길이 등에 달려 있습니다.
모과향이 가을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대원군이 석파정이란 호를 만든 이유를 알겠지요?
가을밤 찬 서리에 마음 슬퍼 지내이다.
우수수 떨어진들 옛날 정을 잊으리까
그 사랑 뿌리밑에 눈감고 자라오니
백설이 온다해도 이몸 굽어 보소서.
─1938년, 시집 「백공작」에서
가을 단풍의 색이 어떤 색으로 나타나느냐는 전적으로 잎 세포에 들어 있는 이들 색소분자의 상대적인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색소분자의 상대적인 양은 온도, 비, 낮의 길이 등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차를 마셔도 이런 곳에서 마신다면 ~~
치킨의 달인 집에서 치맥
양재근 동문이 산 치맥
기분 좋게 여자끼리-----여자가 모든 면에서 우성
모든 음식은 기분 좋게 먹어야 합니다.
여자는 얼굴이 예쁘면 공짜밥을 얻어 먹고 남자는 예의가 바르면 공짜 술을 얻어 먹습니다.
같은 동네 같은 집안---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