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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천문학상 / 배두순, 강영빈
[대상] 콘크리트 세렝게티 / 배두순
도시는 이제 콘크리트 세렝게티다
첨단 문명이 구름떼처럼 밀려오자
거대한 억압에 길들어가는 낮은 포복들
경쟁을 주도하는 힘의 원천으로부터
낯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에도 바빠졌다
공격적인 눈초리와 불안의 몸짓으로부터
자유롭기도 어렵게 되었다
힘 있는 자에게 머리만 숙이면 될 것 같지만
가진자거나 못 가진자거나
타고난 운명에 쉽사리 굴복할 수도 없는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할 때도 있다
이미 구시대의 산물일지는 모른다 해도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콘크리트 숲속에서 먹구름 저편의 분계선까지
틈틈이 잠복하고 있는 이 시대의
포식자들과 맞닥뜨리는 일이어서
연애나 사랑 따위를 엮어보기도 어려운 듯하다
초식동물의 생계를 책임지던 나머지 벌판도
곧 문명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무거운 구름은 장마권을 만들어 낼 것이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와 함께
격변의 교차로를 건널 일만 남았다
나의 절대자가 나일 때까지
제1회 이천문학상 대상 배두순 당선 소감문
https://m.cafe.daum.net/dlcjsansdlsguqghl/SpOX/20?
[우수상] 목초지의 숨 / 강영빈
우리는 이곳을 바람의 산책로라고 불렀다
양 떼가 언덕을 타고 오르며 잡풀을 뜯어 먹으면 하얀 털이 허공에서 만개했다 노을이 울타리를 덤불처럼 덮을 때 우리가 기르는 개는 분주하게 풀밭을 달리고
아주 오래전 이곳은 폐허였는데
눈이 내릴 때마다 풀이 얼었지만 부서진 적은 없었지
어느새 개는 숨을 고르며 발밑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오리 목뼈를 꺼내 던졌다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너는 개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양 떼의 두터운 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얇은 살갗을 감추려 더 두꺼워지는 마음에 대하여
구름이 없는 곳으로 새는 날아갔다 비가 올 예정이었다
이곳은 곧 빗방울의 산책로가 될 거야, 너는 말하고
목초지의 흉터에 웅덩이가 생기겠지, 나는 답했다
어둠이 울타리를 넘고 우리의 모서리에 스며들 때
양 떼는 이곳에 남아 울음을 지속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빗방울이 목초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폐허가 될 것 같은 시간을 견디고
너는 찬장에서 머그잔을 꺼내 뜨거운 우유를 부었다
아주 하얗고 긴
꼬리를 흔들며 개가 식탁 아래를 쏘아 다녔다
저녁의 목초지는 유령이 떠돌아다닐 것처럼 음습했지만 아침이 되면 초록이 푸르렀다 양 떼를 풀어두면 숨결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곳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오래 살았지
숨을 쉴 때마다 식탁에 하얀 입김이 쌓이고 있었다
서로의 울타리 너머에서 양 떼 울음소리가 오래 들려왔다
[심사평]
이천을 향한 문학상 응모 우편물을 보고 마음이 설레었다. 그것은 환희였다. 전국에서 답지하는 우편물은 그야말로 소중한 보물이었다. 이전에 이처럼 이천을 열렬히 강렬히 사모한 적이 있었을까?
이천의 익숙한 지명과 문화가 작품에서 발견되어 고무적이기도하였다. 관고시장, 복하천, 모가, 쌀, 노동, 밥, 도자 등 처음 실시하지만 이미 문학상 제도는 이천의 지명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작가 한강은 문학을 폭력에 맞서는 힘이라 수상소감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게 언어는 우리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이천에서도 문학상을 공모하게 되었으나 다만 상금이 훨씬 커야 하는데 이 점이 앞으로 이천시와 이천문인협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한다.
작품을 열어보니 과연 문학상의 면모를 갖춘 우수작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문학을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작품은 아주 못한 것은 없고 90점 이상의 임계점에 이른 성숙한 원고가 많아 그 모두에게 상을 주면 안 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상에 한계가 있으므로 그에 따라 수상작을 선정하였다. 어떤 작품은 내려놓기 미안하고,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냉정해지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시는 물론 수필이나 소설도 너무 훌륭한 작품이 많아 보내온 작가들에게, 한 편 한 편 올곧은 마음을 쏟은 작가들의 깊은 노고에, 거듭 감사드린다.
다음은 아쉽게 탈락한 작품들이다. 먼저 가장 치열했던 시 부문은 너무 좋은 작품들이 많이 올라왔다. 특히 강태승의 <노동 별곡>, 최일걸의 <타악기를 찾아서>는 정말 아쉬운 작품이었다. 소설에서는 이경훈의 <가장 보통의 존재>와 김동곤의 <버터플라이(Butterfly), 버버버리>, 또한 수필 부문에서는 조남숙의 <그리고 등>, 유명숙의 <나의 만다라>가 끝까지 수상을 다퉜다. 또한, 이천지역을 대상으로 한 신인상도 경쟁이 치열하였다. 이천에 글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바라 매우 놀랐다.
수상하지 못해도 작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상작을 선별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므로 너무 실망하지 말고 더욱 문학의 길에서 정진하기 바란다.
이 상을 추진하기 위해 애쓴 이천문협 회장과 회원 여러분! 작품을 보내온 모든 분! 하나같이 훌륭하다! 모두가 만세다!
- 심사위원 : 본심 이건청, 이문열 / 예심 이춘희 김신영 / 준예심 및 실무 오세주 손상희 이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