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보다 더 감동적인 설교는 없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장례식은 더욱더 그러하다. 선생님의 장례식은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심도학사 뜰에서 거행되었다. 생화로 둘러싸인 선생님의 환한 영정 사진이 마치 가을 축제에 우리를 초대하고 환영하는 모습같다. 죽음이란 사랑하는 사람끼리 더이상 서로 마주보며 걷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다는 의미에서 슬픈 일이지만 죽음의 강을 건넌 한 영혼이 또다른 신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면 축하할 일이기도 하다. 장례식은 평소 간소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선생님의 유지에 따라 따로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받지 않고 심도학사 뜰에서 세시간 정도 이루어졌고 화장한 유골도 선생님이 강의하던 강의실 창가 잔디밭 한평도 안되는 곳에 안장되었다. 선생님은 음악을 좋아하셔 강의 끝난 후 식사시간이 되면 피아노 연주를 종종 하셨다. 이번 장례식에서도 틀어달라고 선생님이 직접고른 네곡의 음악 어메이징그레이스, 내 마음의 강물, 임윤찬이 연주한 바흐의 Jesus, Joy of man's desire 그리고 존노 가수가 부른 the prayer를 들었다. 선생님 다운 멋진 선택으로 죽으면서도 우리에게 감동의 선물을 주셨다. 추모사는 세분이 하셨다. 새길교회 정대현 박사는 길 선생님은 예수에 대한 신앙 보다는 예수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처럼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신인합일의 신앙을 추구하셨다고 말했다. 심도학사 허기석 이사는 시종 울먹이면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선생님의 서강대 제자 이윤미 교수는 선생님의 강의가 너무 좋아 선생님 사진을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처럼 벽에 걸어놓고 선생님 같은 학자가 되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본 정경일 박사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 받아 적으라 하시며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말씀하셨고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는 자신이 평생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했는데 죽음을 두려워 할 수는 없다 하시고 죽으면서 한 마지막 한마디는 감사하다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유해를 안장하는 평장예식은 선생님의 절친이셨던 동검도 채플 조광호신부님이 집례하셨다. 생전에 선생님이 조신부님께 집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신부님이 직접 나무 작품으로 멋진 묘비를 제작해 오셨다. 장지 파는 일은 강화에 사는 내 친구 김일수 선생님과 김영철님이 아침 일찍 오셔 하셨다. 사람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저절로 흐르는 눈물로 거듭거듭 확인했다.
장례식에는 강화 산골에서 있었는데도 삼백여분이 오셨다. 십이년전 심도학사가 개원했을 때 처음부터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경주 산청 전주등 각지에서 수십명이 오셨다. 올드맨의 귀환이라며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길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나누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 길선생님과 겉던 산책로도 걷고 함께 가곤했던 식당에 가서 막걸리도 마시고 생각나는 대로 길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나누자고 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전국각지에 흩어져있던 우리를 서로 진정한 도반이 되게 했다. 강화에 사는 김성수 대주교님과 성공회신부들 목사님들 콩세알 식구들 강화도 이웃사촌들 군의원님등 많은 분들이 오셨다. 콩세알 서정운 목사님은 마이크 텐트 의자등을 트럭으로 가져와 설치해 주셨고 이웃사촌 식구들은 교통 안내를 해주셨고 선생님을 요양해주셨던 박순임님은 도시락 음료수등을 준비하시며 수고 많으셨다. 새길교회 교인들이 특히 많이 오셨다. 새길교회 창립자이신 길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가득했다. 선생님의 교수 친구분들도 여럿 오셨다. 선생님은 오늘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 참 좋았겠다. 내가 죽으면 누가 올까? 사랑이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 오겠지. 문득 잘 살아야겠다는 두려움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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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례식 시종을 조용히, 넉넉한 미소로, 연결해 주시고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동검 채플 갤러리의 작은 성당에서 길교수님 사진과 소천글을 보고 놀랐고, 기도드렸습니다.
홍선생님은 2016년 10월 에크하르트 강좌에서 처음 뵈었는데, 여전하신 것 같아서 좋습니다.
여러모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올리신 여러 글 잘 읽고 갑니다. 멋쟁이 홍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 &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