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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하지 말고 버리십시오
마태복음4:18-22 2025/3/16 사순절 제2주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사성어중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라는 콩알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태산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우리가 종종 범합니다.
구약성경 중간을 보면 전도서(코헬렛)라는 책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쓴 지혜서입니다. 그 지혜서를 시작하면서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왕, 솔로몬은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새한글)전1:1 코헬렛(집회설교자/집회인도자)의 말씀들.
그는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임금이었다.
2 “허무하네요, 아주 허무하네요!” 하고 코헬렛이 말했다.
“허무하네요, 아주 허무하네요! 모든 것이 허무하네요! 3 사람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요? 해 아래에서 사람이 수고할 때마다요.
유대교 전통에 따라 ‘허무하네요’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헤벨(입김)’이 다섯 번 반복됩니다. 특정 단어를 다섯 번 반복했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 모세오경처럼 거짓이 없는 진실이자 신실하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이들이 인정하고 따라야하는 진실이자 이치이지요.
바로 이것입니다.
인생은 마치 입김(헤빌)과 같이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싱거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10대는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가 인기가 제일 좋다고 합니다. 20대가 되면 아무리 공부 잘한 여자라 할지라도 예쁜 여자 이길 수 없습니다. 30대가 되면 아무리 예쁜 여자라 할지라도 일하는 여자 이길 수 없습니다.
40대가 되면 일하는 여자, 남편 잘 만난 여자 이길 수 없습니다.
50대가 되면 남편 잘 만나 여자, 자식 잘 둔 여자 이길 수 없습니다.
60대 이상이 되면 자식 잘 둔 여자, 건강한 여자 이길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헤벨, 입김과 같이 곧 사라진 인생들을 향하여
코헬렛(집회설교자/인도자) 솔로몬이 아주 따끔한 충고를 날립니다.
(새한글)전12:13 말을 끝내겠네.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게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하거든.
그러면 입김과 같이 곧 사라질 인생들이
굳이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할까요?
그냥 물 흐르듯 구름이 흘러가듯 살다 가면 되지
왜 꼭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지켜야할까요? 그 이유를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이렇게 밝힙니다.
인생들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판가름하시기 때문입니다.
(새한글)전12:14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판가름하실 걸세,
몰래 하는 온갖 일에 대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판가름하실 걸세.”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이라는 콩알 하나 때문에
마땅히 지켜야할 인생의 도리를 거부하고 소탐대실하는 인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 같습니다.
(새)약4:13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자동차, 교회)
당시 초대교회 안에 소탐대실하는 인생들을 얼마나 많았던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막6:3,행1:14,12:17,갈1:19)는 이런 반박과 충고를 합니다.
(새)약4:13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4:14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히 헤벨)에 지나지 않습니다. 4:15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탐대실하는 인생들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썩은 가르침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허풍을 떨지요. 하지만 야고보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 허풍, 그 뽐냄 자체가 악이라고 규정합니다.
(새한글)약4:16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허풍을 떨며 뽐냅니다.
그러한 온갖 뽐냄은 악한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은 허풍을 떠는 인생들이 볼 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그의 전부인 그물과 배와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마치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천국복음을 증거 하는 본격적인 사역에 들어가십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 때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함께 선포할 제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어부들의 마을 갈릴리 해변이었습니다.
마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 복음을 전파해야할 제자로 부름 받은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가 행한 행동입니다.
어떤 행동입니까?
20절에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 바로 이 행동입니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베드로와 안드레 이 두 형제는 갈릴리에서 평생 어부로 꿈을 키워온 사람들입니다. 그의 아버지처럼 그물질 잘해서 만선의 꿈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물고기였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와 안드레, 이 두 형제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선문답과 같은 말씀을 듣고 그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세배대의 두 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배 뿐 아니라 함께 그물질 하는 아버지마저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마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복음서 저자 마태는 지금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사실 오늘 본문은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마치 주름진 텍스트처럼 많은 것들이 생략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유대인 마태가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의 첫 사역으로 이 본문의 내용을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제자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제자도입니다. 그래야 소탐대실하는 인생에서 벗어나 사람을 낚는 어부, 그 생명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할까요?
성령의 이끌린 광야의 시험에서 예수님이 버리셨던 세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첫째 먹고 사는 염려를 버려야합니다.
두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렸듯이 세상 살아가는 염려와 걱정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4장 1절입니다.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 돈 줍는 꿈을 자주 꾸었었습니다.
용돈이 궁하다보니 그런 꿈을 자주 꾼 것 같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떨어진 돈을 한 없이 줍다가 깨어나는 꿈을 참 많이 꾸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돈 줍는 꿈을 꾸었는데 역시 돈만 줍다가 꿈이 깨었습니다.
하도 속상해서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다음에 돈 줍는 꿈을 꾸면, 절반만 줍고 시장으로 냅다 뛰어가서 핫도그 하나 사먹어야지’
또 돈 줍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네, 그날도 돈만 신나게 줍다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꿈이 깼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배고픔, 우리의 허기짐,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고단함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험하는 자 사단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신8: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둘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할까요?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지요.
마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시91:11,12)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되심을 성전 되심을 예수님이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되려 한다면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합니다.
마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신6:16)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권면 드립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을 부인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물어야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복음성가에 나오는 가사 인데 바로 이 질문입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제자 된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할까요?
오늘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의 힘.
사탄의 나라 사탄의 권세 사탄의 영광을 버려야합니다.
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사실 이 본문의 바른 순서는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입니다. 그래서 새한글 성경을 이것을 바로 잡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마4:9 그러고는 예수님께 말했다. “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주겠소. 그대가 나에게 엎드려 절한다면 말이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주겠다.’는 말만 믿고, 사탄에게 절하는 인생들이 교회 안에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엎드려 건강을 구하고, 물질을 구하고, 성공을 구하고, 인기를 구하는 이들이 그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째 그런 유혹이 찾아 올 때 사탄과의 단절을 선포하십니다.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둘째 사탄과의 단절을 선포한 후
유혹하는 사탄에게 이렇게 명령하십시오.
기록되었으되(6:13)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찬송가 302장 3절을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마음 약하여 못가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까요?
왜 소탐대실하는 인생을 살아갈까요?
첫째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늘 시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찬송가 302장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가운데 가보라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