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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주일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베푸신 사랑은 우리 모두를 죄와 사망,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이 될 수 있는 새길을 열어주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새길을 받았는데, 이 길은 사랑으로 걷는 길이다.
[손해볼까봐 사랑하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사랑의 길을 가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랑은 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신앙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각자가 나를 위한 신앙으로 조금씩 조정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신앙을 오해하는 것이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교회의 신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도 교회 신앙은 원래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들은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그다지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다.
자기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가르치기가 부담스럽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사랑하자고 한번씩 내뱉고 가는 수준이다.
또, 어떤 목회자는 교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면, 자기에게 향해야 하는 사랑이 분산될까봐, 그런 것이다.
다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을 어렵게 생각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목회자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힘들더라도, 주께서 명하신 것은 해야 한다.
내가 못하더라도, 전달은 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들이기 떄문이다.
그렇게 가르쳐야, 온전한 기독교 신앙이 유지된다.
사랑의 계명은 우리 신앙의 중심이다.
[사랑의 계명의 위치를 오해]
사람들은 자기의 업적을 하나님이 좋게 보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자기의 희생을 통한 사랑의 섬김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 잘 준비했다고 생각한 자가 사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나누어주고, 사랑했던 자가 진짜 큰 영광에 들어간다.
[본문]
지난주 말씀은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했다.
[하나님을 본받는 서로 사랑하는 삶]
자녀라면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 특별히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분의 특성을 우리가 본받는 것이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 가운데 행하라.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하나님을 본받는 것]
지난주에는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말했는데, 본문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데, 그리스도를 통해서 본받는다.
우리가 익혀야 할 모델은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고, 따라서 흉내내어 내 것이 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최고의 것은 바로 사랑이다.
우리가 닮을 것은 그가 하신 사랑이다.
그 사랑의 참 모습이 십자가의 구속에서 나타났다.
십자가의 구속은 하나님의 사랑의 참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적으로 나타났다.
단지 그가 품으신 생각, 감정 뿐이 아니라, 역사속에서 실제로 나왔다.
그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오고, 그리스도에게서 왔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므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하신 행위를 통해 성취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하는 자로서, 본문에서 주역을 차지하고 있다.
엡5:1-2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삶의 방식]
사랑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두번씩 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 명령이다.
삶을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 과거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다.
엡:2,2-3,10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마귀에게 속하여, 육신에 끌려다니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제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은 자로 행하고 있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행하는 삶이다.
우리의 삶은 매우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적 특성]
신자들의 삶의 방식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성품을 닮았다.
내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그리스도가 느껴져야 한다.
이것은 단지 감정으로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불쌍하다고 눈물 짓다가, 스윽 가버리는 것 같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버렸다.
여기서 버렸다는 의미는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넘겨준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은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로 한 것이다.
자기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버리셨다.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단념하고, 자신을 내어주셨다.
이 사랑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분, 즐거운 감정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향한 좋은 감정 때문에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준 것이다.
남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조건없는 사랑.
남을 잘되게 하기 위해, 나를 포기하는 사랑.
이 사랑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의지에 달렸다.
누가 강요할 수 없다. 전적으로 내가 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사랑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하는 사랑이다.
사랑을 받는 자의 장점, 성취, 공로와 무관하고, 매력이 있어서 주는 사랑도 아니다.
또, 이런 사랑을 베풀 때, 내게 무엇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하는 사랑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자격이 없음에도 사랑받았다.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죄인, 원수된 자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자였다.
이 사랑은 주기 위한 사랑이며, 받기 위한 사랑은 아니다.
계산적인 사랑은 이 세상에 흔히 있는 사랑이다.
이름하여, 조건적 사랑이다.
보통 우리가 아는 사랑은 조건적 사랑이다.
내가 사랑할 때는 어떤 이유가 있다.
이 조건들이 맞지 않으면, 사랑할 이유가 없고, 의무가 없다.
필레오 사랑도 그런 것에 포함할 수도 있다.
필레오 사랑은 친구간의 사랑을 말한다.
내가 친구를 사랑하고, 친구도 나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중에 조건이 맞지 않으면, 나중에는 끝나게 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조건에 의해서 세워진 사랑은 무너진다.
이런 사랑은 내가 얻을 것이 없다면, 하지 않는다.
얻을 것이 있으니까, 사랑을 준 것이다.
[자격 없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하기로 택하는 사랑]
부부간의 사랑도 낭만적 사랑으로 시작한다.
나는 그 사람이 그저 좋다.
어떤 끌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처음에 가졌던 매력은 사라지게 된다.
누구든지 결혼하면, 초기에 기대했던 신선한 매력은 없어진다.
그 때부터는 마음이 고정되지 않고, 왔다갔다 한다.
어느 때부터는 그 매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려서, 이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혼은 정말 온당치 않다.
낭만적 사랑이 사라져서,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은 용납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어, 네가 좋다는 식의 사랑은 원하지 않으신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도, 의도적으로 사랑하셨고,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을 원하신다.
순간적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것도 아니고, 대상이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라,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설령 사랑받을 가치가 없을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되기 원해서, 의도적으로 사랑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사랑.
그가 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본능적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의 본성은 선하시다. 긍휼히 여기시고, 정의로우시다.
그가 본성적으로 남이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사랑하는 것은 그가 택하신 것이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끌려서, 억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이 사랑은 상대가 변해도 사랑하고, 매력을 잃어도 사랑한다.
우리에게 그런 성품이 나와야 한다.
본성이 하나님의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그런 본성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해야하는 의무이기 보다는 우리의 본성인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것을 하지 않게 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은 해야 한다.
옛날에는 전혀 하지 않고 살았다.
옛날에는 사랑의 계명을 완전히 거스르고 살았다. 오직 나를 위해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구원받았으니까,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괜찮다고 하실거야 하면 안된다.
이것은 악한 것이다.
과거에는 그렇게 했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사랑이 없는 것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 다음부터 범하는 많은 실수보다, 더 중대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한 복을 누리고 있는 내가 그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우리가 할 사랑은 마음뿐이 아니라, 주님처럼 하는 사랑이다.
주님은 제물과 생축이 되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역사속의 실제적 행위다.
세상에서는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원수라도 사랑을 베푼다.
물론 이것은 사적인 관계를 말한다.
교회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고 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신자는 받은 은혜를 의도적으로 정면공격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늘 돌보고 계시는데, 구원받은 자가 성령을 공격하는 것이다.
요일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구원자에 대해서 공격하는 것이다.
본인은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주님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이기적 자기 사랑]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은 서로 누가 높은지 다투고 있었다.
주님은 그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계셨고, 제자들도 그런 길을 가기를 원하셨다.
너희는 이제 서로 사랑하라.
분명한 계명으로 확인해주셨다.
[자신을 제물과 생축으로 드리심]
그의 행위는 하나님께 어떻게 보였을까.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었다.
그가 이루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고, 결정적으로 나타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께서 완성하셨다.
제물과 생축으로 드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제물과 생축, 두단어가 주님이 이루신 일을 말한다.
제물과 생축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이스라엘이 천년이 넘게 계속 해왔다.
이스라엘은 제사로 인해 살았다.
제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하는 방법이었다.
제사는 감사의 의미가 있고, 생축은 속죄의 의미가 있다.
그 제사의 비용은 백성들이 지불한다.
감사하는 자가 자기 재물로 드린다.
제물과 생축은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암시하고 있다.
레위기는 제사법 다섯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께 향기가 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그 때, 짐승을 잔인하게 칼로 친다. 그러면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그 피를 접시에 담아 성소 바깥에서 뿌린다.
처음보는 사람은 냄새나고, 끔찍해서 기절할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피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다.
그 뿐 아니라, 잔인하게 뼈와 살 사이를 각을 뜬다. 그리고 불에 사른다.
시각, 냄새가 가득하다.
이렇게 처절하게 짐슴을 죽이고, 잔인하게 해체해야, 자기가 하나님께 용납받는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 짐승은 내가 낸 헌물이다.
레1:9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다. 주로 소나 양,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로 다 태운다.
헌신된 것이다.
다른 제사에서는 제사장이 먹는다.
그러나, 번제는 아무도 갖지 않고, 다 태운다.
레2: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는 일상의 삶을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다.
오늘 먹고 사는 것,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일부는 태우고, 일부는 제사장이 먹는다.
레3: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의미다.
여기서는 고기를 제사장과 드린 자가 같이 먹는다.
같이 먹으면서, 하나님과 화목된 것을 기뻐한다.
[사랑하느라 아팠던 그 희생]
그런데, 네번째, 다섯번째의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내용이 없다.
아들이 처절히 희생하여, 죽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없다.
속죄제는 향기에 대한 말이 없다.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서 손댄 문제, 성도에게 해를 끼친 것에 대해 하는 것이다.
잘못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속제죄와 속건제는 그리스도의 죄를 짊어지시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 도저히 향기로운 제사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다.
하나님께 대단히 아픈 일이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들에게 등을 돌리고, 죄가 없는 아들을 죄로 삼으시고, 책임을 물으셔야 했다.
그는 도살장의 어린양처럼 저항없이 끌려갔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다.
마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제 주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는 이제 죄를 정복한 분이 되셨다.
요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그가 하신 희생은 하나님께 더할 나위없는 향기가 되었다.
빌2:8-9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그가 하신 희생에 대해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명예)을 주셨다.
그래서, 그 향기로운 향은 온 세계에 퍼지고, 하나님께 최고의 향기가 되는 역사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은 짐승을 잔인하게 죽여서,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자신을 제물과 생축으로 드리는 것에 대해서, 묘사하고,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은혜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처절한 죽음이 가져온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오는 모든 기쁨은 바로 주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인한 은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제물과 생축으로 주신 그분의 희생으로 인해 얻은 축복이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의 헌신은 그리스도의 헌신을 기념한다.
우리의 헌신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내어주심으로 주신 영원한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돌리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자들 되자.
[서로 사랑하고 모두가 봉사하는 교회]
이스라엘이 대대로 하던 메시지가 너무 분명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충만히 받았다.
교회에서 사랑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은 봉사 자리를 놓고 싸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봉사는 남의 행복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내 실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를 버리셨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삶을 살고 있다.
희생의 삶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께 향기를 드리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