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들녘에
씨앗 뿌린
농부의 꿈
긴 여름
땡볕에 가꾸어
노을에 태운
마지막 가을날
소망한
그 열매
다
함께 거두었으면......
- 정정길, <이루어지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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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늘 캐기가 한창입니다. 들녘의 논과 밭에서는 줄을 지어 마늘을 캐는 일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의성 농가에 밑천이나 다름없는 마늘 농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지는 추세입니다. 애써 농사를 지어도 땀 흘린 만큼의 소득이 손에 쥐어지지 않아 헛심만 쓰는 꼴이 매년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할 일은 많아 때마다 일꾼들을 데려와 일을 진행시키지만 품삯은 매년 오르고 마늘 가격은 안정적이지 않아 해마다 가격이 달라집니다. 농부들의 입에서는 잘해봐야 본전치기라는 말이 오르내리곤 합니다. 힘은 힘대로 드는데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안타까운 마음에 가끔씩 나가 돕기도 해보지만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삶의 터전인 논과 밭에서 환하게 웃으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우린 언제쯤 보게 될까요? 애타는 농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하염없이 푸르르기만 합니다. 논이건 밭이건 길이건 농촌의 땅이 울툴불퉁한 건 어쩌면 농부들이 내뱉는 한숨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농부들이 저마다 힘들고 고되고 보람도 없어 손을 놓아버리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만해도 아뜩합니다.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져야 비로서 사람다움과 행복을 느낍니다. 농부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인 식욕(食慾)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지요.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자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국가가 나서서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농업은 경제논리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고 농부들은 홀대받고 있습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초등, 중등, 고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10위 안에 농부는 없습니다. 농촌의 미래는 냉정하게 보면 암울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계속해서 빚을 늘려야 하는 모순된 한국농정에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농부의 나라’로 불리는 독일의 농정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국민의 2% 남짓 되는 독일의 농부들은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농업학교에 들어가 농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농업 마이스터과정을 수료한 후 농부자격고시에 합격해야만 농부의 자격이 주어지지요. 국민들에게 농업은 공익노동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고, 농부들은 성직에 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EU의 농부들은 농가소득의 50~90%까지 직불금으로 보전을 받습니다. 국가에서 직접 농가를 챙기니 생활이 안정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독일농정은 단순히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만드는 데에 주력하고 있지요(정기석, <마을학개론>). 농부가 행복한 나라가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시름에 잠겨 있는 농부들의 얼굴을 보고 온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정길 시인의 바람이 곧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애써 심고 키운 소중한 생명들이 소망한대로 그 열매 다 함께 거두어 환히 웃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202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