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낱말 · 20
ㅡ병
문무학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뜻밖의 낱말 · 21
ㅡ갈팡질팡
도대체 나이란 건
얼마를 더 먹어야
갈 길 바로 걸어
바른 곳에 이르는지
지팡이
짚을 나이도
갈팡질팡 여전하다.
ㅡ 『정형시학』(2020, 겨울호)
문장부호 시로 읽기 · 17
-겹낫표 『』, 겹화살괄호 《》
낫과 낫 합쳐서 겹 낫을 만들고
화살과 화살 합해 겹 화살을 만들어
책 앞 뒤 나란히 세워 그 생각을 지킨다.
생각 담은 책과 신문 공격 받을 일이 많아
허술한 방어로는 무너질 위험 있다
낫표와 화살괄호를 겹으로 쓴 까닭이다.
ㅡ『정음시조』(2020, 2호)
뜻밖의 낱말 · 5
'벌떡' 은 벌로 먹는 그런 떡이 아니고
벌들이 좋아하는 꿀 든 떡도 아니지만
아플 땐 그리워져서 환장하는 떡이다.
뜻밖의 낱말 · 6
-흥청망청
연산군의 업적이다 유산이다 교훈이다
채홍사는 동서남북 분홍 찾아 들이고
폭군은 흥청에 싸여 정사를 다 버렸다.
장녹수의 업보다 교만이다 교활이다
수청 들어 얻은 권력 청탁에 쏟고 쏟아
엄청난 욕심의 키가 망청 높이 찔렀다
흥청 연산 망청 녹수 또 있어 될 일인가
언제고 잊지 말라 잊어선 안 된다고
흥청에 망청을 붙여 흥청망청 새겼다
ㅡ『시조21』(2020, 여름호)
비비추*에 관한 명상
문무학
만약에 네가 풀이 아니고 새라면
네 가는 울음소리는 분명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울고 말거다 비비추 비비추.
그러나 너는 울 수 없어서 울 수가 없어서
꽃대궁 길게 뽑아 연보랏빛 종을 달고
비비추 그 소리로 한번 떨고 싶은 게다 비비추.
그래 네가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떨면서
눈물나게 연한 보랏빛 그 종을 흔들면
잊었던 얼굴 하나가 눈 비비며 다가선다.
* 백합과 다년생의 산초. 7~8월에 개화하며 산지의 어둡고 습한 암벽, 너도밤나무 등의 고목 줄기에 착생함.
ㅡ권갑하엮음『현대시조대표작』(알토란북스, 2018)
될락 말락 하는 시
라일락 필락 말락, 올락 말락 봄밤에
먼 별빛 보일락 말락, 들릴락 말락 새 소리
초저녁 잠들락 말락, 될락 말락 시 한 편.
ㅡ『개화』 (2018, 27호)
뜻밖의 낱말 · 20
ㅡ병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뜻밖의 낱말 · 21
ㅡ갈팡질팡
도대체 나이란 건
얼마를 더 먹어야
갈 길 바로 걸어
바른 곳에 이르는지
지팡이
짚을 나이도
갈팡질팡 여전하다.
ㅡ 『정형시학』(2020, 겨울호)
문무학 : 1983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낱말』『ㄱ』『홑』『가나다라마바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