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알게되었다.
2012년 6월 9일(토) 아침 아마도 6시 10분경으로 생각된다.
화장실에서 네빌님의 부활을 읽으면서 최근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한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의 내용이 겹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공은 관념이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기적으로 이끄는 수업을 다시 읽었다.
거기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 공은 관념이다는 것이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은 환상이다.(기적수업)
두려움은 환상이다.
환상은 곧 나의 관념이다.
나의 내면이 투사되어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네빌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단멸론자가 본 불교의 취착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비얀드 시크릿의 여려 마스터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특히 하루님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광룡정의 현일님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무의식의 개념을 알게 해준 프로이드와 융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에게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나와 이야기를 해 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도 감사합니다.
아들이 나의 스승이고 딸이 나의 스승이며 아내가 나의 스승입니다.
직장 상사가 나의 스승이고 부하직원이 나의 스승입니다.
친구가 스승이고 적이 스승입니다.
-(오직 모를 뿐)-
참고로 이 글은 제가 도움받은 각 카페에 동시에 올렸습니다. 검증받고자 하는 생각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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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취착님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과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리고 저에겐 신의 개념 자체가 아마도 취착님과 다를 것입니다.
저에겐 신은 오직 모를 뿐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수님께 감사한다든 의미는 예수님이 색이 곧 관념임을 아시고 이것을 아시는 분으로서 색 속에서 사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모범을 보여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 감사한다는 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데, 이는 취착님이 들어난 글을 보고 저의 사유체계를 그럴 것이다고 넘겨 짚으신 것입니다.
지금 언론에서 임수경을 비롯한 사람들의 생각이 이럴 것이다고 미리 재단한 것과 크게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이는 제 사유체계를 나타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취착님은 제가 여기 이곳을 들어오게된 최초의 이유 즉 언어와 글 등 상징도구 상징체계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어 보입니다.
저에게 영혼의 존재는 오직 모를 뿐입니다. 취착님은 어떻게 예수님께 감사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답할 수 있냐고 하지만 저의 인식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논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답을 드립니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는 가름침과 어떻게 매치가 되는냐고 하셨는데,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관념이 취착님이 주장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관념은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하고, 감각이 대상을 만나 인식하는 것들의 총체 플러스 알파입니다. 여기에서도 플러스 알파는 오직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저에겐 매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매치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매치가 되지 않았는데 전 매치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저의 관념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관념이 공이다 라고 말씀드렸지 이것을 알았다고 해서 자아에 대한 착심이 모두 떨어졌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명색의 토대를 확인하면 잠재성향이 영향을 못 끼칠 정도로 통찰의 힘이 강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제가 지금 공부하고 있으니 추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직 모른뿐의 영역같은 희론을 논하고자 글을 올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라고 했을 때 공은 곧 관념이다는 진술의 어디가 앞뒤가 맞지 않는지를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저를 비롯해 취착님 또한 이 관념안에 있음을 통찰하시길 바랍니다. 취착님은 부처님 법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부처님 법을 처음에 보고 듣고 그리고 나서 그것을 삶속에서 확인하고 궁구하여 지금의 생각을 갖게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러한 기준에 근거하여 글을 쓰고 글을 읽고 말을 하고 말을 듣는 것 아닙니까. 관념이라는 개념의 한자를 파지하면 볼관 생각념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부모님 뱃속에 들어 있을 때 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고 감각하고 인식하고 해서 갖게된 총체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대상을 본다고 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는 연필을 그냥 어떤 것으로 인식할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제가 자아취착에서 벗어 났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사념처 수행을 지금도 하고 있는 자임을 말씀드립니다.
에~~고~~~
또 한사람 맛이 가버렸네~~~ㅉㅉㅉ
욕쟁이님 전 이십오년 전에 금강경을 읽다가 너무 어려워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공부를 해 왔습니다.
뭐 제 나이가 사십을 넘었으니 사십넘게 공부해 왔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이 색이 공이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 외에 없습니다.
그 나머지 것은 지금도 배워 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원효대사님이 해골을 바가지로 알고 물을 마셨는데, 날이 밝아 자신이 마신 바가지가 해골임을 아셨습니다. 구역질하면서 아셨다는데, 전 이 때 원효대사님이 이 색이 곧 자신의 관념임을 아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둘 때는 대사님의 관념에 그것은 바가지 비슷한 것이 었습니다
날이 밝아 바가지라 생각했던 것이 해골임을 보았을 때 대사님의 관념에 그것이 해골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둠이 밝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사님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죠. 감각이 대상을 만나 갖게된 인식은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천양지차입니다. 장님에겐 해골은 그저 그것입니다. 깨끗하게 닦아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한 것이 맛이 간 것이라고 하시면 맛이 가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상견과 단견 사이 중도연기를 말씀하셨다고 하셨는데, 저에겐 말씀하신 그 법이 관념안에 들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살펴 주소서
취착님 부처님을 말씀을 듣고 반대로 간 사람은 참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고 반대로 간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는 언어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은 어떤 의미를 담고 의도를 담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사유체계에 따라 받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특히나 형이상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늘 있어 왔습니다. 뭐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데 놀랍니까.
깨달음의 기준이 뭔지 물으셨는데, 제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공이 관념임을 말씀드렸지 깨달았다고 말씀드린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과정 중에 있는 사람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살펴 주시길
색즉시공이란 ...
부처님 가르침으로 보자면
색-물질이 아니고 육체를 말함
공- 개념이나 텅비어있는 허공 뭐 이딴게 아니라
육체(색)는 조건지음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변화(늙음,병듦,죽음)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서 항상하지 못하고------------무상無常
이런 육체의 속성에 대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연기)을 바르게 통찰하지 못하고 취착함으로 인해 괴로움이 생겨난다.----고苦
조건지음(연기)에 대해 법답게 통찰하는자는 이렇게 변화되고 부서지기 마련인 육체에 대해
취착하지 않음으로 이 육체를 ['나,내것,나의 자아']라고 거머쥐지 않는다.------무아無我
수상행식역부여시
수상행식도 육체와 같이 통찰하라.
요게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뜻입니다.
개념??? 이딴 잡소리 아니고요.
현실에서 사실로 경험(체득)할 수 있는 법.
요게 부처님법이고요.
그외 잡설들-모든 종교들- 너무 많아 널어 놓기도 힘듬...요런것들에서는 답이 없네요.
개념 넘 좋아하면 훅 갑니다.....
정신 바짝 챙기고 삽시다.
곧 색은 육체....
공은 무상,고,무아의 체득...
이건 개념이 아닙니다.
개념 주의하세요~~~~~
색이 관념이라면 지금 당장 볼을 한번 세게 꼬집어 보세요. 그때 느껴지는 아픔도 관념일 뿐이라고 알아지면야 좋겠지만 그 느껴지는 아픔은 현실이지 관념이 아닙니다.
달리다굼님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셨습니다.
연기의 이치를 꿴 후에 현실에서 사실로 '괴로움의 사라짐'으로 체득되는 현실법으로 '공'을 이해하지 않으면 개념에 묶이게 됩니다.
금강경이든 반야심경이든 개념에 묶이면 진짜 수행은 둘째치고 윤리-도덕의 개념이라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 보다도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수행이라고 한방, 지름길, 공짜 이런거 없으니, 열심히 사고하고 공부하세요.
A는 B, B는 A에서 A는 A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B는 공이고 관념이다는 것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그러나 산을 산이라고 할 때 공이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관념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색이 곧바로 관념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공이 관념이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당장 제 볼을 세게 꼬집으면 아픔을 느낌니다. 이는 색이죠. 그러나 거기에 공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죠. 느낌은 오온이 아닌가요.
육근과 육경과 육식이 만나 삼사화합의 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인식을 현상이라고 하고, 이러한 삼사화합의 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좋다 나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느낌에 취착함으로 삶을
인식하여 고통받게 되는 것을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상과 현실 모두를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다(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P-91 참조) 여기에서 말하는 인식과 제가 관념이라고 하는 것의 차이는 저는 무의식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마 차이일 것입니다.
저를 걱정해 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범한 직장인일 뿐입니다. 대만족님이 언급하신 일반인입니다. 윤리-도덕의 개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퇴근하면서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를 전철에서 읽고 궁구하는 자입니다. 도그마와 프레임에 갖힌 사람은 누구입니까?
'색=공'이고 공이 관념이면 색도 관념이 되어야죠.
'같은거라면서 어느 하나는 관념이 아니다?, 어느 하나는 관념이 아니고 어느 하나는 관념이라면 둘은 다른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 안드시나요?
위와 같은 질문에 이치에 맞게 답을 못하면 님은 얼치기 선사들과 같이 뜬구름잡는 소리만하면서 사기를 치게 됩니다.(물론 자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단지 머리로 헤아리라고 설한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로 헤아린 것으론 절대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개념이 아니고 현실법을 깨닫고 입을 여는게 좋을 겁니다.(그렇다고 개념을 깨달았다는 의미가 아님)
써놓은 글 나중에 감당하려면 그것도 일입니다.
'검증받고자 하는 생각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고는 댓글을 보니 아니신 것 같네요...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를 전철에서 읽고 궁구하는 자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아니신 것 같네요...
덕분에 저만 공부되었나 봅니다.
조금 인내심을 갖고 이곳 글들을 살펴보시면 욕쟁이님이 왜 "에고" 하셨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시기는 제대로 오셨거든요...
제 글에 반응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의 내면이 펄떡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참수행 과정에서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정진있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이다와 공일뿐이다는 천양지차입니다. 자꾸 이럴 것이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만 보고 땡치겠다고 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수행을 계속하는 과정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정진있길 기원합니다는 의미는 저를 포함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공을 보았다고 저의 내면이 이제는 펄떡이지 않게 되었다고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을 관념으로 이해한 저의 알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곳에 글을 올린 것입니다. 알음알이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알음알이가 중요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그 알음알이에 대하여 시간까지 표기를 한 것은 그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무상 고 무아의 통찰이 덜 되었기에 이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알음알이가 저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구나 하고 전 이해한 것입니다. 전 이것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곧 고의 소멸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탐닉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는 여지가 더 많을 것입니다. 무상 고 무아 통찰을 통한 사념처수행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관념이 공임을 안것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갈 것인지는 이 후 저의 삶을 보고 기회가 된다면 추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