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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고려각판을 보존하기위한 역사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사간판 인경불사가 시작된 것이다.
장경판전 뒤 별도로 마련된 인경처는 혹 바람에 인경종이가 날려갈세라 비닐로 에워싸졌고, 인경불사에 동참하는 7명의 최소 인력 외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상태에서 한 장 한 장 천년 전의 인쇄문화가 재현되고 있었다.
김인자 보살이 인경을 시작하기 전에 경판에 맞춰 재단한 한지의 장수를 세어 인경 기술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전하자 인경기술자 변영재, 김희수, 한홍익, 정숙자 씨가 능숙한 솜씨로 인경을 시작했다. 정성스럽게 갈아놓은 먹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먹판에 몇 술 떠 놓은 후 먹솔로 먹판의 먹을 묻혀 경판에 칠하고 한지를 조심스럽게 얹는다. 마력으로 한지 위를 슥슥 문지른 후 한지를 떼어내자 경판의 글귀가 차분히 인쇄되어 나왔다. 인경 기술자들은 인경상태를 확인 후 교정을 보는 스님에게 넘긴다. 혹 인경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번지는 부분이 있거나 이물질이 끼어 있는 부분이 발견되면 바로 대나무로 만든 꼬챙이로 이물질을 제거한다. 교정작업은 인경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1차 교정은 교정도감인 해인사 도서관장 원창 스님의 감독 하에 해인사 강원의 두 학인스님(지원, 혜공 스님)이 맡았다. 인쇄된 한지를 넘겨받은 스님은 빠르게 그러나 날카롭게 인경이 잘못된 부분을 찾아 들어갔다. 혹 한 획이라도 덜 찍힌 부분이 포착되면 여지없이 체크된다. 1차 교정을 담당하는 혜공스님은 ‘사간장 인경 검수일지’에 경판 이름과 매수, 불량 상태를 기록하며, 인경상태를 일일이 확인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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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전 인쇄문화가 재현되고 있는 역사현장에는 마력으로 한지를 문지르는 ‘슥삭 슥삭’ 소리와 한 장 한 장 한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릴 뿐 고요했다. 아직 미련이 남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간, 인경작업에 몰두한 동참 대중의 얼굴에는 어느새 송글 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아랑곳 않는다. 인경을 하는 기술자나 교정을 보는 해인사 강원의 스님이나 종이를 헤아리고 나르는 보살이나 그 자세의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다. 어느 수행선방이 이보다 더 명정할 수 있을까? 입은 무거우며 눈과 손놀림은 날카롭다. 선기가 서려있는 수행자의 마음이 이보다 더할까? 부처님의 말씀을 책으로 남기는 인경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더구나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펼쳐진 시공초월의 소중한 불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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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간판은 900년 전부터 1960년대까지 만들어진 목판으로 900여년의 목판인쇄술에 대한 역사며, 불교학, 지학적으로 중요한 자료다. 그런데 사간판은 성격상 그때 그때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인경을 해왔기 때문에 완질 인경된 자료가 없다. 따라서 세월이 흐르면서 장경판의 마모와 훼손이 계속되고, 경판의 마모 훼손시 복원할 길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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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팔만대장경 보존국장 남일 스님은 “해인사가 귀중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각종 연구자료로서 활용가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사간판 인경 불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사간판이 국간판과 다름없는 가치를 지닌 경전이며, 연구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팔만대장경에 비해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는데, 인경을 통해 사간판의 가치를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해인사는 이미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사간판의 모든 관련 정보를 전산화하는 작업을 마친 상태. “사간판 인경불사는 사간판 자료정리의 마지막 작업이며, 영인본을 만들고 고려대장경처럼 전산화작업을 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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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판 인경은 모든 대중이 참여해야하는 귀중한 불사다. 따라서 해인사는 주지 현응 스님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경도감을 설치해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총도감은 해인사팔만대장경 보존연구원장 종성 스님이 맡았고, 교정도감은 원창, 영선은 순민, 설제는 영주, 교무는 진성, 재무는 진각, 호법은 심우, 홍보는 종현 스님이 맡았다.
현응 스님은 “인경을 오늘부터 시작했지만 준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고 1년이 지나야 인경불사의 전 과정을 보고 알 수 있게 된다”며 “인경불사는 오랜 시일 정성으로 지켜봐야 하는 중요하고 거대한 불사”임을 강조했다. 스님은 “경판을 하나하나 인경하는 작업이 끝나면 가제본을 하게 되고 다시 2차 교정을 통해 빠진 글과 문구를 하나하나 찾아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교정이 끝나면 비로서 정식 제본을 하게 되는데 능화판(책표지에 문양을 넣는작업)으로 책표지를 만들고 배접한 후 한국전통의 제책법으로 제본을 하고, 서재도감(책의 제목을 쓰는 소임) 영주스님이 제목을 써서 책표지에 붙이는 작업까지 마쳐야 인경이 끝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인사는 9월 1일부터 2006년 8월 31일까지 사간판 5,986경판을 모두 인경할 계획이다. 인경이 끝나면 1질당 약 300권의 경전이 만들어지는데, 해인사는 10질을 인경해 일부는 해인사에서 소장하고 일부는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할 계획이다.
배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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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印經)이란?
인경은 하나의 종합적인 출판문화예술로,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가르침을 종이에 인쇄해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처음에는 경전의 내용을 배우기 위해 스님들이 직접 손으로 필사하는 사경을 통해 책을 만들었는데, 목판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활성화됐다. 인경에 쓰이는 다양한 재료와 도구의 준비를 시작으로, 경판을 판전에서 내려오기, 종이 재단하기, 경판을 소금물로 깨끗이 닦아내기, 인경작업, 인경본 1차 교정, 1차 제본(가제본), 2차 교정, 제책, 제목 붙이기의 과정을 통해 책이 완성된다. 해인사는 책을 완성한 후 습도조절기능이 뛰어난 오동나무로 박스를 마련해 소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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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에 쓰이는 재료와 도구
인경에는 한지, 먹, 마력, 경판 받침대, 솔, 먹판 등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이 쓰인다. 최대한 전통방식대로 인경을 하기위해 해인사는 6개월 전부터 재료와 도구의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재료의 질에 따라 인경의 성패가 좌우되고, 경전의 수명과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ㆍ한지-변색되지 않으며, 잘 찢어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닥나무를 가지고 전통 기법으로 만든 한지가 우리민족 의상처럼 강인하고 부드러우며 깨끗할 뿐 아니라 종이의 질이나 보존 능력 면에서 탁월하다. 해인사는 질 좋은 한지를 얻기 위해 몇 달동안 전국을 수소문하며 닥나무 재배지를 찾아다녔다. 또, 한지의 제작과정을 일일이 확인하고 검토해 안동한지를 선택했다.
ㆍ먹-예부터 먹의 빛은 천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먹은 그을음으로 만드는데 들기름, 참기름, 소나무를 태워서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석유, 휘발유, 등유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장 좋은 먹은 참기름으로 만드는 것인데 고가의 비용으로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고,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松煙墨)을 으뜸으로 꼽는다. 송연묵은 가장 선명한 광채를 가지며, 묵색이 맑고 깊이가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날수록 청록색을 띤다고 해서 청묵이라고도 한다. 이번 인경작업에는 한국유일의 먹제조 기능전승자인 경북 건천의 유병조씨가 해인사 주변의 소나무를 이용해 만든 먹을 사용하게 된다.
ㆍ마력-마력은 먹을 묻힌 경판에 한지를 얹고 그 위를 골고루 문지를 때 사용하는 도구다. 목판의 글자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찍히기 위해서는 제대로 잘 만들어진 마력을 이용해야한다. 마력은 사람의 깨끗한 머리카락으로 만드는데, 해인사는 몇 해 전부터 출가 때 자른 여행자님의 머리카락과 뜻 있는 재가불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왔다. 머리카락으로 마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병영재씨가 유일하다.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풀은 뒤 30℃의 물에 넣어 어느정도 주물러준다. 이때 감각이 중요한데 지나치게 주무를 경우 딱딱해서 종이를 상하게 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물에 푼 머리카락을 뭉쳐서 3일간 햇볕에 말린 후 하나하나 실로 꿴 후 밀랍을 묻혀 만든다. 하루종일 인경을 할 경우 마력은 20일정도 사용할 수 있다.
* 국간판과 사간판
법보종찰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경판은 국간판과 사간판으로 나눠져 있다.
ㆍ국간판(國刊板)-국간판은 국가가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왕의 이름으로 제작한 경판을 말하는데, 1232년(고종 19) 몽고의 제2차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리자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몽고의 침입을 막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만든 고려 팔만대장경판(81,258장, 국보 제32호)이 재조본국간판(再彫本國刊板)이다.
ㆍ사간판(寺刊板)- 사간판은 지방관청이나 사찰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목판을 말한다.
해인사간판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두 동의 큰 판전인 법보전과 수다라장 사이에 있는 동사간전과 서사간전에 보관되어 있는데, 팔만대장경이 제작되기 전인 900년 전 제작된 것부터 1960년대 제작된 것까지 모두 158종 5,986판이 현존하고 있다. 이중 28종 2725판은 국보 206호로, 26종 110판은 보물 734호로 지정되었다. 사간판의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고,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 등은 간행기록이 없고 전권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어서 고려시대 판화 및 판각기술은 물론 한국불교사상 및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수창4년(고려 숙종 3년, 1098) 조판간기를 남기고 있는 「진화엄경」을 비롯한 「화엄경」「금강경능」「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상집기」판 등은 국내에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판본이다. 그 외 사간판에는 국문학, 정토사상, 불교사, 율장, 선사상, 불교의례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 많으며, 변상도판은 회화 및 소묘 연구에 절대적인 자료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경 기술자 변영재 거사
해인총림 고려각판 인경불사는 15세부터 인경기술을 익힌 변영재(58) 거사가 주도하고 있다. 변영재 거사는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목판을 훼손 없이 깨끗하게 인경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경기술 보유자다. 1960년대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경 불사에도 동참했고, 40여년 동안 서울 봉은사,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하도 쌍계사 등 전국주요사찰의 인경을 도맡아 했다, 게다가 머리카락을 이용한 마력을 만들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기술보유자다. 또, 능화판을 이용해 배접한 후 제책하는 한국고유의 전통 제책법까지 인경의 모든 것을 꿰고 있다. 변영재 거사는 “인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의 훼손이 되지 않도록 하는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루종일 약 1200장정도의 인경을 할 수 있다는 변영재씨는 송글송글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 것도 모른 채 하루종일 정자세로 앉아 인경작업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