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중국 고지도에도 간도지역이 조선땅으로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발간된 ‘미국국회도서관 소장 중문고지도 서록’이라는 자료집의 지도에서 압록강 건너 서간도가 조선땅으로 표시된 것이다. 두만강 건너 북간도뿐만 아니라 서간도 역시 18∼19세기에 중국이 아닌 조선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미국국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중한 자료인데다 중국 역시 권위를 인정해 발간한 지도자료집에 실린 만큼 당시 청나라의 영토인식이 간도지역에 미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육낙현 대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지도가 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돼 있음을 중국측 자료로 최근 알게 됐다”면서 “서간도 지역이 조선땅이었음을 중국이 스스로 인정한 자료”라고 말했다.
서간도 역시 조선땅으로 ‘인정’
‘고지도 서록’에 실린 가장 대표적인 지도는 황조직성지여전도(皇朝直省地輿全圖). 프랑스 스타니스라스 신부가 19세기 말 제작한 목판본으로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청나라 황제가 관할하는 성을 나타낸 지도다.
지도에는 청나라의 동쪽 끝에 철책모양의 선이 그려져 있다. 청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압록강 선이 아니라 압록강 위쪽에서 곧장 정북(正北)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이 선은 러시아와의 국경선까지 연결된다. 흰색으로 표시된 조선의 영역 표기가 국경선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압록강 건너 서간도와 두만강 건너 북간도가 모두 조선땅으로 표기된 것이다.
이 선의 왼쪽에는 성경(盛京)으로 표시돼 있다. 성경은 지금의 선양(瀋陽)을 일컫는 말로 요동반도 위쪽에 위치한 만주족의 중심지였다. 청나라는 자신의 발상지인 이 일대를 보호하고자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봉금지대로 삼았다. 일종의 중립지대였다. 봉금지대의 동쪽 끝에는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버드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만든 유조변(柳條邊)을 설치했다. 황조직성지여전도에 표시된 국경선은 바로 유조변이 놓인 선이다. 중국의 일부 지역에는 현재까지도 버드나무 울타리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중국 근·현대사)는 “유조변은 북쪽으로는 몽고를, 남쪽으로는 조선을 방어하기 위한 경계선이 될 뿐만 아니라 민족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을 했다”면서 “각종 사료에 근거해볼 때 이곳이 조선땅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지만 중국측은 유조변 밖도 중국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지도가 외국에서 적당히 그린 것이 아니라 상해에서 인쇄된 지도임을 본다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알 수 있다”면서 “유조변까지만 자신의 땅으로 인식한 중국의 당시 변경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책을 펴낸 중국 이효총(李孝聰)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이 지도는 18세기 초 강희제 당시의 실측지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위도와 경도를 갖춘 근대지도이다. 또한 1887년 광서제 당시의 지도와 별 차이가 없다는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유조변까지만 중국땅으로 인식”
강희제 당시 서양 선교사 레지신부에 의해 제작된 당빌 지도(1718년)와 파리의 동양학자 듀 알드 신부의 중국지(中國誌·1735년)에서도 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훨씬 넘어서 있다. ‘황조직성지여전도’와 거의 비슷한 국경인식을 나타낸 것이다. 당빌 지도의 국경선은 간도연구가인 김득황 박사에 의해 ‘레지선’으로 명명됐다. 김 박사는 “국경선 밖의 중립지대인 봉금지대는 “압록강과 두만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의 국경선 밖에 위치했다”고 주장했다. ‘황조직성지여전도’에서도 유조변에서 서쪽 만리장성과 연결된 선이 보인다. ‘ㅅ’자 모양의 아래에 싸인 요동지역이 바로 봉금지대임을 말해준다.
고지도 전문박물관인 경희대 혜정박물관의 오일환 학예연구실장은 “1700년께 강희제 때 중국 전역에 측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근대지도가 만들어졌다”면서 “이 당시 중국에 온 선교사들은 요동의 오른쪽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혜정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키췬지도(1745년)에서는 유조변 밖 봉금지대의 대부분을 조선영토로 그렸다.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중국 지도에는 황조직성지여전도 외에 북양분도(北洋分圖)에서도 서간도가 조선의 영토로 나타나 있다. 북양분도는 황조직성지여전도보다 더욱 자세하게 국경선을 그려놓았다. 압록강 휠씬 위에 시작한 경계선이 북쪽으로 곧장 올라가 있다. ‘ㅅ’ 자 모습의 선이 나타난 것도 선명하다. ‘ㅅ’자의 중간 부분인 요동지방이 봉금지대로 완충지에 속한다. 반면 현재의 중국-한국 국경선인 압록강-두만강에는 어떤 선도 그어져 있지 않다. 1864년에 제작된 이 지도는 남북양합도, 남양분도와 함께 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남북양합도에서도 ‘ㅅ’자 경계선이 나타나 있으나 압록강과 두만강을 연결하는 희미한 선이 있어 국경의 윤곽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이 밖에도 천하총여도(天下總輿圖)에도 국경선은 압록강 너머에 위치해 있다.
박선영 교수는 “당시 청은 지도로 남의 땅을 자신의 땅으로 먼저 표기하는 ‘도상침략’을 한 후 나중에 자신의 땅으로 확보했다”면서 “하지만 18∼19세기 청에서 이런 지도가 발간됐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서간도 지역이 조선의 땅이었다는 역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경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중국 지도에는 조선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여지전도(1747년)도 실려 있다. 울타리 표시로 국경선을 아주 세세하게 그렸다. 국경선의 입구인 ‘책문’과 ‘봉황성’이 압록강 위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오일환 학예연구실장은 “중국은 요동지역을 성역으로 삼았던 만큼 과학적인 측량을 하지 못했으나 사신들이 자주 왔다갔다했던 조선에서는 지리적 지식이 발달해 지도가 더 선명하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압록강 너머에 국경선이 있다는 내용이 나타나 있다. 조선 현종 3년(1662년) 5월 의주 부윤 이시술이 의주 사람에게 압록강을 건너 벌목을 할 수 있도록 문서를 발급해 주자 청나라가 항의를 한 일이 있었다. 이때 영의정 정태화가 “청과의 국경문제로 성가신 일이 생기니 압록강으로 경계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현종은 “압록강으로 나라의 변경을 삼는다면 우리 영토를 그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되므로 어찌 아까운 일이 아닌가”라면서 영의정의 말을 듣지 않았다. 조정에서도 압록강 이북이 조선의 영토임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자료다.
오 연구실장은 “조선 지도에서 압록강-두만강 선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병자호란이후 청의 정치적인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압록강 너머로 국경선을 그리기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그곳을 직접 측량하고 다녀간 서양인들의 눈에는 유조변 밖은 중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은 지역으로 보았으며 서간도 지역이 문화적으로는 조선의 영역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이 미국 국립도서관 소장 지도에서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지도들이 아편전쟁 이후 미국과 중국이 교류하면서 대사 등의 외교관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간 자료들인 만큼 내용적으로 훌륭한 컬렉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잇단 고지도 전시 ‘인기’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과 일본의 독도 망언 등으로 간도와 독도 등 영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고지도 전시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립대박물관(02-2210-2285)은 지난해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대한제국 이후 근·현대 지도 130점을 전시해왔다. ‘땅의 흔적, 지도이야기’라는 박물관 개관 20돌 특별전이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화봉책박물관 (02-734-6071)은 두번째 전시로 ‘민족과 영토’ 전을 9월 30일까지 연다. 역사를 빛낸 한국인과 한국을 빛낸 외국인 119명의 관련자료가 497점 전시돼 있다. 고지도는 64점이 전시 중이다. 두만강 하류 녹둔도(지금 러시아 땅)가 우리땅으로 표기된 고지도는 한국 지도가 27점, 일본 지도가 2점, 서양 지도가 1점으로 모두 30점이 전시됐다. 간도가 표기된 7점의 서양 지도도 있다.
특히 1750년 토마스 키췬이 제작한 지도에는 서간도 지역이 만주 쪽으로 많이 올라가 있다. 또한 사무엘 던이 1794년 제작한 중국 지도에도 서간도 지역이 조선땅으로 표기돼 있다. 화봉책박물관의 인터넷 홈페이지(www.hbookmuseum.co.kr)에서는 전자북을 통해 지도를 볼 수 있다.
고지도 전문 박물관도 최근 개관됐다. 5월 17일 개관한 경희대 혜정박물관(031-201-2014)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 고지도 900여 점을 갖추고 있다. 최초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일환 학예연구실장은 “김혜정 관장이 예전부터 고지도를 수집해왔지만 최근 영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사회적 분위기도 박물관 개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당초 연구소를 열려고 했으나 박물관 개관으로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혜정박물관은 12월 30일까지 ‘서양고지도와 우리땅’이라는 제목으로 개관특별전을 열어 150점의 고지도를 전시하고 있다. 키췬이 1745년 제작한 지도에는 서간도와 북간도 모두가 조선땅으로 표기돼 있어 눈길을 끈다. 간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된 ‘백두산 부근지세약도(1909년)’도 선보였다.
(병)Shenyang. (웨)Shenyang. 만주어로는 Mukden. 옛 이름은 봉천(奉天).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의 성도.
중국 둥베이[東北 : 만주] 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중국 전체에서도 가장 큰 공업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랴오허 강[遼河] 하류 분지는 한대(漢代 : BC 206~AD 220)부터 중국 땅으로 알려졌으며, 주로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과 산둥 성[山東省]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살았다. 선양을 뺀 나머지 만주지역은 만주족이 주축을 이루는 유목민족들이 지배했다. 선양은 류탸오볜[柳條邊 : '버드나무 울타리'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불연속적인 울타리로 둘러싸여 대부분의 나머지 만주지역과 뚜렷이 나누어져 있었고, 그당시의 이름은 '심'(潘)이었으며 류타오볜 언저리를 따라 형성된 변경 요새였다.
10세기까지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 : 947~1125)나라의 중요한 국경마을이었다. 남만주는 1122~23년에 여진족(金)에게 점령당했다가 1세기 뒤에는 몽골족에게 점령당했다. 몽골족(元)은 1280년 중국 전역을 정복했다. 심이란 이름은 몽골 치하에서 처음으로 선양으로 바뀌었다. 1368년 명나라가 몽골족을 몰아냈다. 17세기초에는 만주족(淸)이 만주 전역을 지배했으며, 선양을 수도로 삼고 성경(盛京 : 만주어로는 '무크덴')으로 개명했다. 선양은 만주족이 중국 전역을 정복할 때 훌륭한 편성기지 구실을 했다. 1644년 명을 몰아내고, 만주족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도는 베이징[北京]으로 옮겨졌지만, 성경은 지배왕조의 옛 수도로서 특권을 누렸다. 베이링[北陵]에 있는 청조 초기 황제들의 무덤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적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뒤 꾸준히 성장했으며, 특히 중국인(한족)들이 만주로 홍수처럼 몰려들었던 19세기 후반에 크게 성장했다.
1895년 이후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성경은 필연적으로 핵심적인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후 러시아가 만주의 철도부설권을 획득한 뒤에는 러시아의 요새가 되었다. 러일전쟁(1904~05)중인 1905년 2월 19일에서 3월 10일 사이에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결과 일본이 선양을 차지했다(→ 무크덴 전쟁). 1920년대초 일본의 보호를 받던 중국 군벌 장쭤린[張作霖]은 베이징을 장악하기 위해 다른 군벌들과 각축을 벌였다. 국민당군의 베이징 진격 때 끝까지 맞섰던 마지막 군벌인 그는 패배한 군대를 이끌고 퇴각하던 도중 사살되었다. 3년 뒤 1931년 9월 18일 폭파사건이 터지면서 만주사변이 일어났다. 중국군의 것으로 보이는 폭탄이 성경 부근의 철도에서 폭발했고 이것을 신호로 일본은 성경의 국민당 주둔군과 무기고를 습격했다. 지구전 끝에 중국군은 만주에서 쫓겨났다.
1945년 8월초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성경을 공격했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고, 그 몇 달 뒤 1946년 3월 중국의 국민당 군대가 성경을 점령했다. 뒤이어 국공내전(1946~49)이 일어났고, 1948년 10월 30일 성경은 공산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뒤 공산군이 중국 본토 전체를 정복할 때 기지 구실을 했다. 1950년 이후 선양이란 이름을 되찾았으며, 줄곧 중국에서 가장 큰 만주 남부 종합중공업단지의 중심지였다. 주생산품은 기계·조립금속 제품이다. 철도차량·공작기계·전선·시멘트·전기장치·화학제품·화학비료·약품·식용유·밀가루·종이·비누·가죽제품·직물·유리 등을 생산한다. 구리·아연·납·망간 등의 금속제련도 이 도시의 산업에서 중요한 일부이다. 선양은 베이징 다음가는 철도 중심지이며, 도로망도 이 도시를 중심으로 뻗어 있고 도시 곳곳으로 버스가 다닌다. 북쪽 교외에는 일본이 건설한 비행장이 있다. 오랫동안 둥베이 지역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랴오닝대학교·둥베이중국기술종합대학·둥베이공과대학과 둥베이재정경제대학·둥베이미술대학·둥베이음악대학·둥베이의과대학 등이 있다. 극장과 도서관뿐만 아니라 둥베이 박물관과 베이링 및 그밖의 사적지도 있다. 인구 4,050,000(1993).
첫댓글역시...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은 일관성 있는 지론이군요. 아무래도 한반도는 대륙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요...물건과 함께 사람이 이동할 수 있으므로 무주공산도 아니었을 것이고... 그런데 일본열도는 동이들의 영역에서 제외되나요? 위 글에서 아예 언급을 하지 않으셔서 여쭈어봅니다.
청구 [靑丘(靑邱)] 옛날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던 별칭. 하늘에는 청구라는 별이 있는데, 그 별이 한국의 땅을 맡고 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문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청(靑)'은 오색 중에서 동방을 나타내는 빛이며 '구(丘)'는 땅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청구'란 곧 '동방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청구'의 원래 의미는 동방의 바다 밖에 있는 신선(神仙)이 사는 세계의 이름이었다. [출처=두산백과사전]
위 내용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간도가 압록강 너머까지 있고, 북경이 바로 옆에 있는데, 넓은 중국에서 어떻게 한 나라의 수도가 변방에 치우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서를 보면 만주족과 거란족의 발원지는 전혀 만주가 아닙니다. 코이넷의 문무 현제님의 인용된 사서 문구를 검토해보시기 바람니다. 위 지도 역시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이 한국인을 올가미에 걸려고 하는 수작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영토가 아예 중국 전체인데, 저 조그마한 땅을 가지고 현 중국과 다투게 하려는 유태인의 수작인 것입니다.
저는 요즘...문득,이런 생각이 듭니다...조선(동국&청구)의 역사외곡은...일본(왜)가 그리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별로 없었다...오히려, 절실했던 건...자신들의 고유 영역인 중원을 탈취당하고...양이들과 일본에게 굴복하여 한반도로 내 몰렸기에...한반도에서라도 안전하게 생존을 할 수 있는 역사적 연고성 확보가 필요했던...중조(차이나=대륙조선)인들였다는 생각요...
양이들의 저 지도는...중조나 타탈리아...일본의 자위적인 해석들의 지도를 베껴서 어느정도의 국경선 외곡은 있을지라도,,,핵심지역(청구)의 삭제&한반도로 이식은 있었을 지라도...중원과 영 다른 지역인 한반도가 너희들 땅이였었다고 해 뵈야...속아줄 중원(대륙조선)인들은 없었을 것이기에...핵심(청구)만 빼곤...그 자료적 가치는 있다 봅니다.
제가 예상하기엔...아쉬케나지 등의 세력이 노리는 건...어짜피 너희들의 위대한 고려&조선(청구포함)은...중원이였다...너희들은 미개문명이 있던 한반도 원주민들과 대륙 패잔병들 출신들이니...어짜피 혼혈 잡족들이니...쓰잘떼기 없는 천손민족이니의 극우 민족주의에서 벗어나...현 양이들과 왜인들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편승하라...요런 수작이 먹힐 새로운 정보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도 예상합니다.
또는...너희 한반도는...대대로 단군조선이니 환국이니...고구려니 삼국이니 발해니 고려니 조선이니완 관계없던 미개지라서...그 대륙의 동쪽을 노략질하던 왜늠덜&일본인들에게 수시로 침범당했을 것이니...왜늠&일본인들의 피가 많이 섞였을게 뻔하니...너희들이 직접적으로 당하지도 않았던 대륙에서의 일들을 가지고...일본(열도왜)의 한반도 진출을 너무 거부하지 말란 메시지가 내포된 정보형성이 필요한 ...세계화의 탈바가지를 쓴...부활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바램도 있을까 합니다.
동이의 두번째 개념은 하북 성 탁록에서 치우(동이) 와 황제( 히화) 가 혈전을 벌이고 치우 계열이 하북성 요녕성 동북심성 한반도 를 방어 했다고 봅니다 치우는 고대의 천자라 했으므로 동이족이 서이+ 하화보다는 더 귀족 인 천자족 입니다 공자님도 동이의 땅에서 도덕을 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원조선(중조= 이성계) 보다 청구국 인 원조선 (하북성 동북삼성 한반도 일본열도 내몽고자치구 등 동경 120 이동) 더 오래 되었고 명나라가 이성계와 중원을 나누어 가질때 이성계 국호를 조선이라고 해준 아유가 될 겁니다 조선이라는 이미지에는 단제조선이 들어 있고 단제는 그 당시 지구를 다스리던 천제 (하느님= 전륜성왕) 인데 원래는 祖仙 이라고 썻을 겁니다
최남석 선생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한반도'가 귀하디 귀한 '천자족'이 살던 (그리고 공자가 '도덕'을 구헀던) 동이의 땅에 포함된다고 말씀하시므로 정말로 어리둥절해집니다. (저를 포함하여) 지금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추어보면, 한반도는 이미 '도덕'이 사라진 땅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한반도에 '도덕'이 창궐(?)했을지라도...
강증산씨가...마테오릿치 신부를 극찬한 걸로 보면...개벽을 위해선 피가 전혀 다른 양이들 보단 일본인들을 사역시킴이 더 민족성을 회손하지 않을것이란 주장을 보면...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만은...그 양반의 전체적인 예언과 주장은...상당히 설득력이있다 보여지고여...현재의 그양반의 이름을 내 건 여러 신흥종단들의 수뇌들은...황선생님 지적대로...다분히 개인적인 영달유지와 함께...메이슨적 접근을 하고도 있다 예상합니다.
첫댓글 역시...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은 일관성 있는 지론이군요. 아무래도 한반도는 대륙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요...물건과 함께 사람이 이동할 수 있으므로 무주공산도 아니었을 것이고... 그런데 일본열도는 동이들의 영역에서 제외되나요? 위 글에서 아예 언급을 하지 않으셔서 여쭈어봅니다.
원래 일본열도도 동이문명과 함께 돌아가던 문명였으나...임란 전에 양이들의 배를 타고 들이닥친 동남아 왜족들에 병합당했다 보이며...그 당시가 명치유신기고...그 혈통과 문화가 오염되어...동이라고 보기엔 낯설어졌다 예상합니다...한 때..타탈리아로 양이들의 지도에 표기됐던 걸 보면...일본열도도 심심찮게 동이족인 동국&청국과 마찬가지로...여진족의 영향아래 있었다 보입니다.
청구 [靑丘(靑邱)] 옛날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던 별칭. 하늘에는 청구라는 별이 있는데, 그 별이 한국의 땅을 맡고 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문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청(靑)'은 오색 중에서 동방을 나타내는 빛이며 '구(丘)'는 땅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청구'란 곧 '동방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청구'의 원래 의미는 동방의 바다 밖에 있는 신선(神仙)이 사는 세계의 이름이었다. [출처=두산백과사전]
그렇지여...김선생님...청(靑,淸)은...동방을 나타내는 문자이자...청천(淸天)의 약자일까 합니다...현 중원발음 "칭"이지만...한글 고어 발음으론...팅,텬,톈 이라 보이며...몬고 퉁구스와 동궐등 북방족들의 하늘님인...탱그리(당굴=단군)과도 뜻이 통한다 봅니다.
위 내용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간도가 압록강 너머까지 있고, 북경이 바로 옆에 있는데, 넓은 중국에서 어떻게 한 나라의 수도가 변방에 치우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서를 보면 만주족과 거란족의 발원지는 전혀 만주가 아닙니다. 코이넷의 문무 현제님의 인용된 사서 문구를 검토해보시기 바람니다. 위 지도 역시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이 한국인을 올가미에 걸려고 하는 수작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영토가 아예 중국 전체인데, 저 조그마한 땅을 가지고 현 중국과 다투게 하려는 유태인의 수작인 것입니다.
중국의 수도가 북경이 아니라...중국(대륙조선=차이나)의 속령이 되버린 동국&청국으; 중심이 북경(천안)일 거란 예상입니다...중원의 동부해안과 현 만주...한반도의 중심지대는...정확히 현 북경(천안)이 되니까요...
지금 시온의정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코앞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노동 임금을 올리나 마나한 상태로 되어 있습니다. 한민족에게 그릇된 위대함을 심어주려는 수작도 보입니다.
저는 요즘...문득,이런 생각이 듭니다...조선(동국&청구)의 역사외곡은...일본(왜)가 그리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별로 없었다...오히려, 절실했던 건...자신들의 고유 영역인 중원을 탈취당하고...양이들과 일본에게 굴복하여 한반도로 내 몰렸기에...한반도에서라도 안전하게 생존을 할 수 있는 역사적 연고성 확보가 필요했던...중조(차이나=대륙조선)인들였다는 생각요...
왜 미국에서 진짜 지도는 나타나지 않고 가짜만 나타나는가?
양이들의 저 지도는...중조나 타탈리아...일본의 자위적인 해석들의 지도를 베껴서 어느정도의 국경선 외곡은 있을지라도,,,핵심지역(청구)의 삭제&한반도로 이식은 있었을 지라도...중원과 영 다른 지역인 한반도가 너희들 땅이였었다고 해 뵈야...속아줄 중원(대륙조선)인들은 없었을 것이기에...핵심(청구)만 빼곤...그 자료적 가치는 있다 봅니다.
간도는 현만주가 아니라 내몽골자치구를 말합니다.
저는 그 간도는...원래는 사마르 칸트...야르칸드...타슈켄트..등의 호라즘 지역이라 봅니다.
제가 예상하기엔...아쉬케나지 등의 세력이 노리는 건...어짜피 너희들의 위대한 고려&조선(청구포함)은...중원이였다...너희들은 미개문명이 있던 한반도 원주민들과 대륙 패잔병들 출신들이니...어짜피 혼혈 잡족들이니...쓰잘떼기 없는 천손민족이니의 극우 민족주의에서 벗어나...현 양이들과 왜인들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편승하라...요런 수작이 먹힐 새로운 정보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도 예상합니다.
또는...너희 한반도는...대대로 단군조선이니 환국이니...고구려니 삼국이니 발해니 고려니 조선이니완 관계없던 미개지라서...그 대륙의 동쪽을 노략질하던 왜늠덜&일본인들에게 수시로 침범당했을 것이니...왜늠&일본인들의 피가 많이 섞였을게 뻔하니...너희들이 직접적으로 당하지도 않았던 대륙에서의 일들을 가지고...일본(열도왜)의 한반도 진출을 너무 거부하지 말란 메시지가 내포된 정보형성이 필요한 ...세계화의 탈바가지를 쓴...부활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바램도 있을까 합니다.
역사에 대해 눈팅이지만.. 위 댓글에 많은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많은 재야사학자 분들도 매우 조심스럽울 것으로 생각되기 하구요..^^ 글 잘 보고 갑니다..^^
현 일본은 미국의 허락없이 한반도를 침공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현 일본인보다 현 반도인이 더 군국주의적입니다.
네..다른 나란 몰라도 이 한반도인들 만큼은 자신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군국주인 절실한 때라 생각합니다...침탈당하고 왜곡당했던 강역과 역사를 복원해서...고토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전쟁으로 빼앗는다기 보단...역사의 진실을 밝히고...한반도인들 각개각층의 자존심과 도덕성을 회복해...문화적 흡수,내지는 북중국과 몽골등의 북방민족들과의 동질성 회복을 통한 경재,문화통합을 이룩해서요
동이의 두번째 개념은 하북 성 탁록에서 치우(동이) 와 황제( 히화) 가 혈전을 벌이고 치우 계열이 하북성 요녕성 동북심성 한반도 를 방어 했다고 봅니다 치우는 고대의 천자라 했으므로 동이족이 서이+ 하화보다는 더 귀족 인 천자족 입니다 공자님도 동이의 땅에서 도덕을 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원조선(중조= 이성계) 보다 청구국 인 원조선 (하북성 동북삼성 한반도 일본열도 내몽고자치구 등 동경 120 이동) 더 오래 되었고 명나라가 이성계와 중원을 나누어 가질때 이성계 국호를 조선이라고 해준 아유가 될 겁니다 조선이라는 이미지에는 단제조선이 들어 있고 단제는 그 당시 지구를 다스리던 천제 (하느님= 전륜성왕) 인데 원래는 祖仙 이라고 썻을 겁니다
명이 이러한 거룩한 이름을 이성계 조선에 허락 한 이유는 이성계를 동이들 거주지 로 몰아내려는 의도 였다 보여집니다 힘이 센 놈이 함부로 천자를 참칭하는 시대이므로 조선이라는 단제의 개념을 명나라가 우습게 본 것 이라 생각 합니다
최남석 선생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한반도'가 귀하디 귀한 '천자족'이 살던 (그리고 공자가 '도덕'을 구헀던) 동이의 땅에 포함된다고 말씀하시므로 정말로 어리둥절해집니다. (저를 포함하여) 지금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추어보면, 한반도는 이미 '도덕'이 사라진 땅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한반도에 '도덕'이 창궐(?)했을지라도...
중조(차이나)와 왜노족들 피가 뒤섞여서 그럽니다...강증산 도인의 예언에 의하면...환부역조(換父易祖) 하는자... 모두 환란에서 소멸된다 했으니...두고 볼 일입니다...ㅡ. .ㅡ
요한계시록에서 666은 야훼에 의해 멸망할거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래서 증산도는 기독교의 원리와 같습니다.
강증산씨가...마테오릿치 신부를 극찬한 걸로 보면...개벽을 위해선 피가 전혀 다른 양이들 보단 일본인들을 사역시킴이 더 민족성을 회손하지 않을것이란 주장을 보면...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만은...그 양반의 전체적인 예언과 주장은...상당히 설득력이있다 보여지고여...현재의 그양반의 이름을 내 건 여러 신흥종단들의 수뇌들은...황선생님 지적대로...다분히 개인적인 영달유지와 함께...메이슨적 접근을 하고도 있다 예상합니다.
제가 말하는 바는 후대 신도들의 태도가 아니고 증산도 그 자체의 특성입니다.
강증산 도인 본인의 정체가 그렇게 보이신단 말씀이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