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2. 22. 큐티
역대상 1:1 ~ 4
아담에서 노아까지
※ 인류 시조인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는 히브리인을 해방하라는 고레스의 선언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역대기는 구약 역사서 가운데 가장 큰 스케일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며, 그 가운데 담겨진 의미를 해석해 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역사 가운데 역대기는 그 중요성이 인정되지 못하고 다소 간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의 수면제(Scriptural Sominex)’ 라고도 불리는 첫 아흡장의 장황한 족보들이 접근하기 힘든 이유와 역대기 본문의 절반 가량은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 그리고 사무엘상하, 열왕기싱하와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듯이 보이는 내용들 때문입니다. 반복 기사들은 역대기의 기록을 무의미한 것으로, 그리고 모순되며 상충되는 듯이 보이는 부분은 역대기의 진정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연구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언약사상에 대한 근거를 찾는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큐티 본문에서 역대상 1장 ~ 9장은 다루지 않습니다. 어렵고 지루해도 이 본문을 통해서도 주님께서 깨달음과 지혜와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역대기의 저자인 에스라는 포로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윗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 언약이 변하지 않고 성취될 것임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증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는 신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구약을 바라보는 너무나 중요한 관점이고, 이스라엘의 족보가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포로의 신분으로 모세 오경과 이스라엘 족속들의 방대한 족보를 연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에스라의 간절함이 역대기를 저술하게 했고 오늘날도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아담 ~ 에노스
- 1절. “아담, 셋, 에노스,”
* 역대상 1 ~ 9장에서 다루는 족보는 빠짐없이 다 다루는 족보가 아닙니다. 필요에 의한 족보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누락된 내용으로 인해서 그 신빙성을 의심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 아담(אָדָם) : 에스라는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560회 사용된 “아담”(אָדָם) 은 ‘흙’ 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다마(אַדמָה)’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 이라는 의미의 보통 명사로 사용되기도 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고유 명사 ‘아담’이 일반 병사인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직접 흙을 빚어 만드신 특별한 피조물인 인류의 시조 ‘아담’과 관련해 인간 전체가 갖는 특별성을 부각시켜 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입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족보가 단순히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만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면 이를 히브리인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전체에 대한 대표성과 포괄성을 가진 인류의 시조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전인류의 모든 역사 진행 과정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족보는 궁극적으로 선민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역사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특별성을 부각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이 선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그들과 관련해 진행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강조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저자는 아담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국한되는 지역신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포로 기간에 접했던 바벨론의 선진 문화와 찬란한 문명에 주녹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며 혹은 종교 혼합주의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신정 국가 이스라엘이 역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정 국가 회복에 매진하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역대기 저자는 족보를 통하여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신정 국가의 건설이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그가 깨달은 바였던 것입니다.
* 셋(שֵׁת) : “셋”(שֵׁת)은 ‘두다’, ‘임명하다’라는 뜻을 가진 ‘쉬트’(שִׁת)에서 유래하여 ‘대치된’ 이란 뜻을 갖는 이름입니다. 아담이 이 아들을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을 인정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았던 작은 아들 아벨이 있었으나 불경건한 큰아들 ‘가인’에게 살해당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끊길 위험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아벨을 대신할 경건한 후사로 셋을 주셨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창세기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과감히 생략하고 아담과 셋을 직접 연결시키는 직계 족보 구성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과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중단없이 이루어 가셨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 에노스(אֱנוֹשׁ) : “에노스”(אֱנוֹשׁ)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든 상태나, 고통 가운데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아나쉬’(אָנַשׁ)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반 명사로서는 전인류를 지칭하는 집합 명사로 쓰여 ‘사람’(창 6:4), ‘백성’(창 26:7), ‘무리’(수 9: 14)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에노스”의 시대에 인구가 증가하여 무리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이름의 원래 의미대로 사람들의 삶의 질이 열악해져 갔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창 4:26에 의하면 이 에노스의 시대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세기의 표현은 셋의 자손들 중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에노스 당시부터 이런 공식적 예배 양식이 도입되어 함께 예배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노스”(אֱנוֹשׁ)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무관한 세속적 삶을 영위하며 죄 가운데 살아가는 불경건하고 교만한 가인의 후손들로 인해 세상에 점점 죄가 관영해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런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 공동체로 모이기를 시작하였음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죄 많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2) 게난 ~ 야렛
- 2절. “게난, 마할랄렐, 야렛,”
* 게난(קֵינָן) : “게난”(קֵינָן)은 눅 3:37에서는 ‘가이난’으로 음역되고 있습니다. ‘소유’, ‘태어난 한 아이’, ‘창 쓰는 사람’등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 마할랄렐(מַהֲלַלאֵל) : “마할랄렐”(מַהֲלַלאֵל)은 ‘하나님 찬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로 등장한 하나님의 이름이 포함된 이름입니다. 이러한 경건한 이름을 통해서 에노스 때 공식적으로 드려진 예배가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 야렛(יָרַד) : “야렛”(יָרַד)은 ‘낮은 곳으로 내려감’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서 거주지를 이동하는 상황이 있었던 것을 반영하는 이름으로 추정합니다.
3) 에녹 ~ 라멕
- 3절. “에녹, 므두셀라, 라멕,”
* 에녹(חֲנוֹךְ) : “에녹”(חֲנוֹךְ)의 히브리 발음은 ‘하노크’입니다. ‘창시하는’, ‘시작된’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전수자’ 혹은 ‘선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가인의 장자와 동명이인인 “에녹”(חֲנוֹךְ)은 아담의 7대 손으로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심으로 죽음으로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인물입니다. 유다서 1:12의 기록에 의하면 에녹은 그 시대의 예언자로 사역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그의 이름에 맞게 밎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자신의 세대 사람들에와 그의 후손들에게 참된 삶을 가르치는 선지자적 삶을 성공적으로 끝까지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 므두셀라(מְתוּשֶׁלח) : “므두셀라”(מְתוּשֶׁלח)의 히브리 음역은 “메투웰라흐”입니다. ‘병기의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단순히 므두셀라가 사냥을 한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그 당시가 점점 더 죄악이 관영해 가는 상황에서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는 믿음의 자손들 마져도 무기를 사용해서 자신들을 보호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영한 죄악은 가인의 후손인 두발가인과 라멕에 대한 창세기 기록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강포”(창 6:11)와 “패괴함”(6:12)이 가득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라멕은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였고,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인의 벌과 자신의 벌을 비교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므두셀라는 969살을 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오래 산 인물이기도 합니다.
* 라멕(לֶמֶךְ) : “라멕”(לֶמֶךְ)은 ‘강한 자’, ‘난폭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라멕이 강력한 힘을 지녔던 사람이거나 죄악의 관영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생존에 많은 폭력과 힘을 필요한 시대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임으로 여겨집니다. 라멕은 그의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안식을 기대한 것을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표현으로 그 이름을 해석하는 것을 옳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라멕은 가인의 후손들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패괴하게 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대항하며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라멕”(לֶמֶךְ)이라는 이름은 노아 시대 대홍수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 당대의 죄악된 상황을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노아와 아들들
- 4절. “노아, 셈,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
* 노아(נֹחַ) : 대상 1:1 ~ 3은 하향식 직계 족보 형식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의 계보를 소개했습니다. 4절에서는 분할 족보로 변환하여 노아의 세 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노아”는 직계 족보의 마지막 인물로 기술되고 있고, 새롭게 시작되는 분할 족보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족보에 있어서 “노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부터 27절까지 노아의 세 아들, 즉 세상 열국의 새로운 시조들의 장황한 족보로 넘어가기 전의 숨고르기와 같은 역할입니다. 또한 “노아”의 삶을 상기시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노아”는 ‘쉬다’, ‘휴식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이름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참된 안식이 없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살던 믿음의 후손들의 상황을 짐작하게 됩니다.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어 그 가족과 짐승들을 인도하여 홍수로 완전히 멸망할 위기의 구속사를 이어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노아”는 아담 이후의 인류의 제2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죄악이 관영함 속에서도 믿음의 삶을 통하여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놓은 인물인 노아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를 통하여 새롭게 신정 왕국의 체제를 구축하려는 공동체로 하여금 현실의 상황을 노아가 처했던 상황과 유비 관계에서 파악하도록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노아와 같이 의로운 삶을 살며, 노아가 불의한 시대에 방주를 지었던 것과 같이 믿음의 행위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 언급하는 노아의 세 아들의 계보는 모두 완전수인 70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열국을 상징합니다. 역대기 저자가 70명으로 명단을 소개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열국을 통치하시는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 셈(שֵׁם) : “셈”(שֵׁם)은 노아의 첫 번째 아들입니다. “셈”(שֵׁם)은 ‘이름’, ‘명성’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셈은 홍수 후 아버지인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잠자고 있을 때 야벳과 함께 그 허물을 가림으로 영적으로도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셈은 황인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셈의 자손들은 구약 성경에서 지중해로부터 페르시아 산맥까지 그리고 소아시아의 남부 산악 지방에서 나일강의 제일 폭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동 유브라데와 티그리스의 하구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차지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 함(חָם) : “함”(חָם)은 형용사로 사용될 때 ‘뜨겁다’, ‘따뜻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함”(חָם)의 조급하고 경솔한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함의 후손들이 따뜻한 남쪽 지역을 차지하게 될 것을 감안한 이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함”(חָם)은 애굽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시 78:51). 실제로 이집트는 함의 주요한 자손들이기도 했습니다. 흑인종의 조상이 된 함과 그의 후손들은 이집트와 에디오피파 그리고 서남 아시아로 진출했고, 그것은 흑인종의 주요한 분포 지역입니다.
* 야벳(וָיָֽפֶת) : “야벳”(וָיָֽפֶת)의 히브리 음역은 ‘와야페트’입니다. ‘열다’에서 유래하여 ‘넓게 확장하는’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셈과 더불어 노아의 수치를 덮어준 야벳은 이로 인해 그 이름의 의미대로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백인종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야벳은 그 이름의 뜻이나 노아의 축복대로 인류 역사에서 그 후손들이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부강한 삶을 살았습니다. 야벳의 후손들은 근동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과 북쪽 지방을 두루 차지하여 오늘날의 유업과 북아시아인의 조상인 아리안족을 형성했습니다.
가르침 :
1) 역대기의 저자인 에스라는 선명한 목적의식으로 역대기를 기록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찌질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선택된 민족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서 선택받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오랜 시간 포로의 시간을 보냈을지라도, 그리고 다 망한 것 같고 무너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지라도 천지의 주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오실 메시야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증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2) 인류의 시작인 아담과 그의 후손들 중에 믿음의 후손들에 대해서 매우 짧고 간략하게 족보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짧게 이름만 거론하고 넘어가지만 그 안에 담긴 긴 시간 속에서 면면히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위대하고 놀랍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3) 노아 홍수 이전의 폭력과 무자비한 세상에서, 네피림과 세상에 타협한 사람의 딸들과 교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횡행하는 그 시대에도 믿음의 후손들은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호하셨고, 노아와 그 자식들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이렇게 짧은 본문에 담겨진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에스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고 이 길고 위대한 기사를 생략했습니다. 에스라가 생각할 때 그가 설명하고 변증하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다윗 왕가를 통해서 오실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이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적용 :
1) 에스라의 관점은 성경을 읽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제공합니다. 구속사와 언약신학 등이 에스라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도록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해석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의 혼란한 상황에서 조잡하고 복잡한 것들을 제거하여 선명하게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기에 구약의 말씀들이 그 중요한 의미들이 바르게 해석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역대상을 집중하는 것을 통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3) 모르는 족보이야기를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지루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도 은혜를 공급해 주실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