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나는 책친구들 카페에서 개최한 독서 토론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주제는 난쏘공이었다.
전부 어른뿐이었던 회원들 사이에서 듣는 조세희 특유의 스타카토 문체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하는 것들은 무척 재미있었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난쏘공에 대해서, 그 사람들처럼 할 말은 없다. 나와 그 토론회의 어른들은 70년대를 직접 경험해보진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무수한 책을 읽어보고 세상과 부대낄 시간이 있었다. 나는 없다. 열아홉 살은 여러모로 한계를 가지는 과도기다.
가치있는 소설은 뭘까. 소설은 대체로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 또는 예술사적인 구조를 파괴하고 뒤틀거나. 경계를 이야기하거나. 나는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아니면 나처럼 뒤틀어지고 비정상적이고 소외된 소설을.
진정한 힘을 가진 소설은, 그 힘이 영원해야 한다. 난쏘공은 70년대를 이야기하지만 2006년에도 접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2100년에도 접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06년을 살아가는 열 아홉 살의 나에게 난쏘공이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나는 난쏘공을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인물 위주로 읽었다. 내가 포커스를 맞춘 주요 인물들은 영수와 영호, 그리고 지섭이었다. (카페의 어른들은 한지섭은 조세희 그 자신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보았는데, 그 증거로 조세희가 철거민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공무원들이 집을 부수는 광경을 보고 그 길로 작은 노트를 한권 사 난쏘공 연재를 다짐하게 되는 사례를 들었다. 소설 내에서도 가만보면 지섭이 난장이 가족들과 고깃국을 먹고 있는데 구청 직원들이 집을 엉망으로 부수고, 지섭은 그런 그들과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육... 애들 머리를 통조림 깡통에 처박아서 잘 포장해 밖에 내다 파는 교육에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우리의 사고력은 한국 교육에 발을 디디면서 절단난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그 19년 동안은, 그리고 적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적 자원이란 말, 무한 경쟁시대라는 말, 자본주의라는 말은 너무 소름끼치는 단어들이었다.
매트릭스! 고등학교 교실은 내게는 없애버려야 할 구역질나는 매트릭스의 인공양수, 단지 그뿐이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통찰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뭐하는거야, 일어서! 봉기하라구. 우린 떼거지로 교육부에 몰려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도 벌여야 한단 말이야. 한번도 자기 인생을 자기 의지로 살아본 적 없는 인간들. 평생을 그렇게 살 테냐?
사회에 대한 분노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극도의 절망감이 암세포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내게는 행동이 필요했다. 나는 점점 극단으로 치우쳤다. 내가 교육의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로서 한국사의 아픈 고름같은 교육을 끌어안고 같이 자폭하여 죽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저 키보드를 두드려 네티즌과 공박을 벌였을 뿐. 나는 자퇴도 하지 못했고, 같은 생각을 가진 또래들을 모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지도 못했고, 조용히 앉아 제도권에 잘 적응하지도 못한채로, 비참하게 목숨만 부지할 뿐이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벌레처럼 꿈틀거렸을 뿐, 입만 산 나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거대한 흐름에 무기력하게 끌려간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말해왔다. 너는 성적이나 그림 다 안정권이니 H대 미대에 갈 수 있을거야(입시 말인 지금은 전혀 그리 말해주는 사람이 없지만.-_-;;).
만일 내가 정말로 H대에 가게 된다면, 나의 삶의 행로는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H대 미대라는 타이틀이 주는 달콤함에 이끌려 학창시절때의 각오와 다짐은 다 잃고 “나도 한때는 그랬었지...” 하는 한심한 어른이 되고 마는 건 아닐까? 그토록 교육을 비판했으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국내 최고의 미대를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나란 사람, 나의 실존이야말로 이미 모순이 아닌가?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마땅한 상황이로군. 말과 행동이 하나도 맞질 않는다. 이렇게 이율배반적일 수가 있나.
그런데 영수와 영호는 어떤가.
그들은 노조를 결성했다. 나이도 나하고 큰 차이가 안 나는데. 내가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며 이 세상에게 쫄아서 아무 짓도 못 하고 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일어섰다. 내가 이미 내게 주어진 안락함과 타성에 젖어서 밍그적대고 있을 때 이들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목숨 걸고 부대끼며 거대 권력에 대항하여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결국 그들의 인생은 비극적 결말로 맺어졌다. 살인자와 은행 강도라는 타이틀은 사회의 아웃사이더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 이유로 내가 잘못 생각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걔네들은 죽인 뒤 죽었어. 인생은 투쟁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너는 가시다. 지극히 극단적이야.
나는 그 뒷일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그들의 첫 시도를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도 스스로가 지는 그런 태도.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누구의 핑계도 대지 않는!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자기들 가치의 깃발을 붉은 정수리에 내리꽂는!
나는 광기어린 이상 열기에 들떠, 그런식으로 그들을 과도하게 숭배했다. 그들은 정당해야 했다. 그래야 나는 견딜 수 있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일요일, 문제집을 사러 교보문고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횡단보도 앞 땡볕 아래에 ‘난장이’만큼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웅크리고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체구가 작으셨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횡단보도 앞은 유동인구가 정말 많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민 작고 닳아빠진 바구니에는 10원짜리 한 장이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할머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쪼그라든 노인이, 저런 땡볕아래 앉아 있는데도!
매에 채이기라도 할 것처럼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았다. 휴가나온 군인과 팔짱을 끼고 즐겁게 걸어가는 여자, 친구들과 온갖 쌍시옷을 섞어가며 얘기하는 여중생들, 인상을 팍 쓴 아저씨... 모두 자신들의 문제에만 골몰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즐거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해일같이 몰아닥치는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지섭이 난장이 김불이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달나라로!”
가장 웃긴 것은 그런 나조차도 그분을 끝내 지나치고 말았다는 것이지. 그래. 여름이니 더울 만도 하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쳐 버릴만큼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나? 교육이 상생의 원리를 가르치지 않으니, 교육이 인성을 길러주지 않으니, 교육에 대한 보복으로서 교육 현장에 있는 동안은 나도 절대 남을 배려하지도, 내 안의 괴물을 다스리지도 않겠노라 이를 갈았다. 세상에게 대고 잔뜩 이죽거렸다. 추하다. 내가 난장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나는 기형적으로 쪼그라든 난장이였다.
사회의 최하층 빈민조차도 전혀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 SKY대학을 못 갔기 때문에 인생의 근원적인 낙오자와 패배자가 된 자들과 동태 눈깔들을 양산하는 주범인 우리나라 교육. 그리고 무기력해진 나 자신. 난쏘공은 이렇게,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엔 난장이 연작이 더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어두운 사회의 단면들과 우울한 자신의 내밀한 절단면을 돌아다보며, 나는 달나라란 말을 입에다 넣고 혀끝으로 굴리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달나라로 가자. 달나라로 가자.
힘을 가진 소설은 그 힘이 영원해야 한다. 2006년 속의 나는 달나라를 향해 작은 공을 쏘아올리고 있다.
첫댓글 으~~! 난쏘공,,이 책으로 인하여 나의 책읽기에 대한 의지저하,고뇌는 시작되었지요. 어찌 국문학 소설도 이해가 안되냐?라는 비관을 하게 한 작품이지요(스타카토문체때문에,,,)^^ 아,,그러구 보니,,이때 피라미드님 참석하셨구나~그쵸??
전 학교 시험에 난쏘공이 나온다고 해서 이 책 읽고 문학적 분석(?)을 해가며 고통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비판적인 시각이 가득해서 불편했던 책.. 그런데 글 솜씨가 장난 아닌데요? ㅎㅎ
우와~ 글빨 장난 아니십니다*^^* 난쏘공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 덕에 저 역시 스타카토 문체를 즐겨 쓰고 있어요~ 고교시절 저희 반은 담임의 참을 수 없는 독단에 대모를 한 적이있습니다. 그 결과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저희에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답니다. 피라미드님은 지금 한창 피가 끓어 오를 나이네요. 저 역시 난쏘공을 비롯해서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으면서 피가 끓어오른 다는 말을 한참 실감해 본 적이있습니다. 부디 그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신념과 작은 이들을 위한 에너지로 쓰였음 하는 바램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글 실력 원츄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많은 반감이 있는데 전혀 실행에 못 옮기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글로 잘 정리 해주시니 한번 시도 해보고 싶은 생각드내요^^ 그리고 피라미드님 글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글을 잘쓰시네요 저는 글을 이렇게 잘 정리해서 못써요 앞으로 좋은글 많이 부탁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많은 반감이 있는데 전혀 실행에 못 옮기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글로 잘 정리 해주시니 한번 시도 해보고 싶은 생각드내요^^ 그리고 피라미드님 글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글을 잘쓰시네요 저는 글을 이렇게 잘 정리해서 못써요 앞으로 좋은글 많이 부탁합니다.
세번... 세번을 읽었어요... 2년에 한번씩.... ... 2년후에도 읽어보려고요...
타인의 고통에 눈물흘릴 줄 모르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분노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특히 가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