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282〉
■ 나의 가난은 (천상병, 1930~1993)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1971년 시집 <새> (조광출판사)
*문명이 발전하고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물질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져서, 돈만 있으면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 결과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예의염치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게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일 수 있으며, 현대인들은 조만간 수단이 되어야 할 돈에 온전히 종속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미 훨씬 전에 물질만능사회가 우리 곁에 도래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詩는 현대사회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딴 세상 속의 이야기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이 詩를 읽어보면 가난하고 고단한 삶에 대해서 달관한 것같이 보이는 시인의 담담한 자세에 꽤 민망하고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 존경하고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듯 어리숙한 이 시인은 오늘 아침, 보잘 것 없지만 평소보다는 넉넉한 형편에 행복해하면서도, 오늘보다 고단할 내일을 생각하면 또 서글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난을 자신의 직업이라고 표현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한편 물질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햇살 앞에서 당당해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가난 속에서도 시인은,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겠다는 관조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어 또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Choi.
첫댓글 가난을 직업처럼 여기던 시인
시인이 운영하던 '귀천' 찻집
그 부인 목순옥씨가 하는 찻집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목순옥씨 대신 처제라는 여인이
천상병 시인의 이름을 팔아 찻집을 운영 중
시인은 가난을 직업으로 삼았는데
그의 이름은 장삿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