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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중국 북서부 칭하이(靑海) 성위수(玉樹)
장족자치주 위수현 에서 규모 7.1의 지진 발생,
2010년4월14일 오전 중국 북서부 칭하
이(靑海)성 위수(玉樹)장족자치주 위수현
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 600여 명이
사망하고 1만 여명이 부상했다.
지면과 비교적가까운 지하33㎞에서 발생
한 규모 7.1 지진에 이어 규모 6.3 여진이
잇따르면서 주택과 사찰, 주유소, 전봇대
등이 구겨지듯 무너졌으며 산사태와 도로
유실, 전력공급 중단 및 통신두절 사태가
초래됐다.
특히 지진으로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현지 가옥들이 대부분 붕괴했고 일부학교
건물도 무너져 인명 피해 규모가 더커졌다.
진앙은 위수현 정부가 있는 제구(結古)진
에서 서쪽으로 50㎞ 떨어진 샹라슈
(上拉秀)향 르마(日麻)촌인 것으로 확인
됐으며 제구진의 경우 주택 85%가량이
무너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홈페이지에서 이날 오전 7시49분 티베트
창두(昌都)에서 북북서로 94㎞ 떨어진
곳의 지하 33㎞ 지점에서 규모 6.9의 지
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해당지점이
위수현인 것으로 관측됐다고 전했다.
강진에 앞서 이날 오전 5시39분에도 규모
4.7의 지진이 났으며 강진 발생 이후 오전
9시25분에는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여진도 잇따랐다.
▶2011년 외규장각 의궤,
대여 형식으로 145년 만의 귀환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화산재와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2010년 4월 14일 오전 1시쯤 아이슬란드 남부에서 빙하로 둘러싸인 에이야프얄라요쿨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연기는 6~11km 상공까지 치솟았고 화산재가 기류를 타고 인근 유럽 국가들로 퍼지면서 15일 영국·아일랜드·노르웨이에서 모든 공항의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됐다. 또 파리 드골 국제공항 등 프랑스와 스웨덴·덴마크·핀란드·벨기에·네덜란드의 주요 공항들이 폐쇄됐다. 화산재는 항공기의 엔진 고장을 일으켜 추락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이다. 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수천 편의 항공기가 결항되고 승객 수십만명의 발이 묶였다.
또한 화산 폭발로 주변의 빙하가 녹으면서 2.5m 높이의 급류가 인근 지역을 덮쳤다. 화산 폭발 이후 두 차례의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아이슬란드 주민 800명이 대피했다. 에이야프얄라요쿨 빙하에서는 2010년 3월에도 빙하 밑에 위치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주민 600여명이 대피한 바 있다.
▶2009년 북한, 미국과 국제원자력
기구(IAEA) 의 사찰 요원들 추방.
▶2004년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출용 아파치헬기 동체1호기 출하
▶2004년 애국지사 강동석 선생 별세
▶2004년 국립공원관리공단,
홍도가 철새 이동의 핵심경로라고 규명
▶2004년 동해를 ‘동쪽 바다’로 적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공개
‘동방견문록’의 저자로 원(元)나라를 여행한 마르코 폴로(1254~1324)가 활동했던 13세기에 서양인들이 동해를 ‘동쪽 바다(Eastern Sea)’로 불렀음을 시사하는 18세기 영국 지도가 발견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상태 사료조사실장은 고(古)지도 수집가인 모경국씨가 최근 프랑스에서 입수한 이 지도를 2004년 4월 14일 공개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여행 지도’라는 제목의 이 지도는 가로 30cm, 세로 19cm의 크기이며, 1744년 영국의 지도 제작자인 해리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에서부터 아라비아·인도·중국·보르네오와 한국·일본까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반도를 ‘고려 왕국(K. of Corea)’,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바다를 ‘동해(Eastern Sea)’라고 표기했다.
이 실장은 “이 지도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의거했다는 점으로 보아 지금 전해지지 않는 ‘동방견문록’의 판본이나 그 당시의 다른 자료에서 ‘동해’라고 적힌 부분을 근거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경인교회 직원들,
`노동조합(노조)` 설립 신고서 제출
▶2004년 통일신라 7세 어린이 유골 발견,
‘인신 공양’ 제사 가능성 제기
2004년 4월 14일 1300년 전 통일신라에 어린이를 산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의 제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날 경북 경주시 인왕동 이 박물관 미술관 신축 예정지의 왕궁터 우물에서 7~8세 가량의 인골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고대의 어린이 유골이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인골은 깊이 10.27m의 우물 안 뻘층에서 머리를 바닥 쪽으로 향한 채 거꾸로 박혀 있었다.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재현 교수는 “유골의 손이 머리보다 아래 쪽에 있었던 것은 손으로 머리를 감싼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다면 떨어질 때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어린이가 추락사했을 가능성과 어떤 제사의식의 희생양이었을 가능성 두 가지 경우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골 옆에서 머리가 위쪽으로 향한 소의 상반신 유골 등 동물뼈가 함께 출토됐고, 강돌로 이 우물을 인위적으로 메운 흔적이 드러났다”며 제사의 희생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2003년 인간 게놈지도 완성
인간게놈지도 완성(2003-04-14)-동아일보, 2005-04-14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504130419
“인간의 달 착륙에 비견할만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4일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 6개국으로 구성된 국제컨소시엄인 인간게놈지도작성팀(HGPㆍHuman Genome Project)은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하자 전문가들은 의학혁명의 신기원이 마련됐다고 흥분을 감추지못했다.
2000년 6월26일 HGP가 발표한 인간게놈지도 초안은 31억2,000만개에 달하는 DNA 염기서열 가운데 97%를 해독했으나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도 5만군데나 돼 근본적 결함을 안고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 공백을 400군데로줄인 99.99% 정확도의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된 것이다.
'꿰지 않은 구슬' 인간게놈지도
게놈이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단어로 생물에 담긴 모든 유전정보를 의미한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다는것은 DNA(디옥시리보핵산)을 구성하는 30억쌍의 염기 서열을 밝혀냈다는것을 의미한다.
인간게놈연구는 영국의 제안으로 1990년 발족한 인간게놈기구(HUGO)가 중심이 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6개국 18개 기관의 3,000여과학자가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은 암, 당뇨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비만 등 4,000여종의 난치병 치료와 인간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연구에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인간게놈지도 완성으로 단시일 내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지적한대로 인간게놈지도완성은 누구나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생명의 책’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비밀이 적힌 책과 별의미가 없는 책들이 무작위로 진열된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유전자 기능이 무엇인지,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지 등을 밝혀내지 않은 인간게놈지도는 ‘꿰지 않은 구슬’에 불과하다.
하지만 10여년 전 ‘무모한 계획’이라는 비판 속에 시작된 인간게놈연구가 예상보다 빨리 성과를 이룩했듯이 ‘포스트 게놈 연구’도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생명현상의 소프트웨어' 유전자
인간의 몸은 10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세포에는 핵(核)이 존재하고 그 속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염색체가 들어 있다. 염색체의숫자는 생물의 종에 따라 다른데 인간세포의 경우 23쌍(46개)이다.
염색체 속에는 생물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모든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인간의 염색체 속에는 3만개의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는 생물이 태어나 성장하고, 병에 걸리고, 늙어 사망하는 것은 물론 모든 생리현상을 조절ㆍ통제하는 생명현상의 ‘소프트웨어’다.
염색체와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은 DNA. DNA는 크게 당, 인산, 염기로 구성돼 있다. DNA는 이중나선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크릭이 1953년 4월25일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내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DNA의 이중나선구조에서 사다리 기둥에 해당하는 부분은 당과 인산 분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발판에 해당하는 부분이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아데닌(A)과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가지 염기다. 이들 4가지 염기가 DNA상에서 배열돼 있는 순서를 ‘DNA 염기서열’이라고 한다. 이번에 밝혀진것이 바로 31억쌍에 달하는 염기 배열의 순서다.
31억쌍의 모든 염기에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고, 3만개에 달하는 특정 부분에만 유전정보가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유전자에 해당된다.
의학혁명의 시발점
인간게놈지도 분석결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DNA 염기서열로만 보면 99.95%가 똑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인종과 외모, 질병 등의 차이는 0.05% 정도의 DNA 염기서열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상의 모든 개인 사이에는 31억쌍의 DNA 염기서열가운데 140만 곳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DNA 염기서열의 차이를 ‘단일 염기 변이(SNP)’이라고 한다. 140만개에 달하는 SNP가 실제로 사람의 몸에서 어떤 차이를 유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포스트 게놈 연구’의 과제다.
SNP가 인체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개인마다 어떤 차이점을 만들어 내는 지가 밝혀지면 질병을 치료할 때 이런 정보를 활용해 환자의 유전자 특성에꼭 들어맞는 의약품이나 치료법을 적용하는 ‘맞춤 의학(tailored medicine)’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하루에 개인의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비용도 현재 30억원에서 100만원 정도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유전정보를 담은 ‘DNA 칩’을 목걸이나몸 속에 넣고 다니며 병원 진료시나 응급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있을 것이다. SF영화 ‘가타카’에서는 손가락 피 한방울로 순식간에 유전정보를 판독해 지문처럼 본인 여부를 아는 장면이 나오는데 DNA 칩은 이런영화의 상상력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기술이다.
반면 유전자 정보의 개인 프라이버시 공개 등 인권침해의 우려도 있다. 과학적 근거 없이 상업주의에 휩쓸린 ‘유전자 결정론’을 내세우며 돈벌이수단으로 이용하는 유전자 서비스도 생길 우려도 있다.
▶2002년 하누치, 마라톤 세계기록 수립
▶2001년 일본 적군파 해산 공식 선언
일본의 극좌 게릴라 조직 `적군`의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55·살인미수로 기소 중)가 2001년 4월 14일 지지자들에 보낸 옥중 성명을 통해 적군파의 해산을 선언했다.
일본의 극좌 게릴라 조직 `적군`의 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
중동을 무대로 테러활동을 벌이다 2000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체포된 시게노부는 이날 도쿄의 지지자 집회에서 공개된 성명을 통해 “국제주의와 군사를 특성으로 했던 일본 적군의 해산을 통해 새로운 투쟁방법에 도전하겠다”며 합법적 활동으로 전환할 방침을 밝혔다.
그는 “세계는 변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투쟁은 불충분했고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로써 1971년 공산 적군파 간부였던 시게노부 등이 해외 혁명거점 확보를 위해 조직했던 적군파는 완전히 활동을 중단했다.
▶1999년 나토 전투기 오폭으로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난민 75명이 사망했다고 유고 정부 발표
▶1995년 배우 겸 가수 벌 아이브즈 85세의 나이로 사망
▶1992년 독일 적군파 테러 포기 선언
▶1986년 프랑스 작가 보부아르 사망
▶1983년 대도 조세형 탈옥
대도 조세형이 1983년 4월 14일 서울형사지법에서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다른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구치감벽의 환풍기통을 뜯고 탈주했다. 조씨는 당시 공범 4명을 포함한 다른 사건 피고인 15명과 함께 재판을 받은 뒤 법정에서 20km 가량 떨어진 서울구치소 피고인 대기 구치감으로 가 3층에 다른 피고인 3명과 함께 입감됐다.
조씨는 교도관이 잠시 2층으로 내려간 사이 문을 차고 밖으로 나와 한쪽 수갑과 포승줄을 푼 뒤 복도벽에 붙은 환풍기를 뜯고 붙어있던 2층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려 달아났다. 탈주 당시 조씨는 형사법정 대기실에서 교도관에게 손목의 통증을 호소, 수갑을 느슨하게 해준 것을 이용해 구치감에서 왼손을 빼냈고, 포승줄도 풀 수 있었다.
조씨는 탈주 5일 만인 4월 19일 서울 장충동 민가에서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의 총을 맞고 검거됐다. 검거된 조세형은 청송교도소 1평짜리 감옥에서 15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던 중 1998년 11월 16년 만에 석방됐다.
▶1983년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1980년대만 해도 씨름은 전 국민에게 인기가 높은 스포츠였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제5공화국이 스포츠장려정책의 일환으로 씨름을 포함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83년 4월1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막한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에는 당시 아마 씨름계의 정상급이던 홍현욱, 이준희, 이봉걸과 대학 유망주인 장지영, 황영호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320명의 역사가 총집결했다.
무명 이만기 첫 천하장사 등극
씨름계의 별들이 모이자 관중도 구름처럼 몰렸다. 첫날에만 무려 1만5000명이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대회 나흘간 총 2만7000명이 모래판에서 밭다리치기, 호미걸이, 들배지기, 들어잡채기 등 기술과 팽팽한 힘이 빚어내는 드라마에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당시 경기는 TV로도 중계됐는데 마지막 경기 때에는 시청률이 61%를 기록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한국-우루과이의 16강전 시청률이 47.5%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 뜨거운 열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 대회의 첫 우승자는 당시 경남대 2학년이던 스무살의 무명선수, 이만기였다. 씨름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던 이준희와 홍현욱을 꺾은 그는 결승에서 ‘모래판의 여우’로 불리던 최욱진에 맞서 접전을 벌였다. 이만기가 배지기로 최욱진을 메다꽂는 순간 장충체육관의 관중은 모두 일어나 체육관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단상에서는 국악인들이 우리 민요를, 단 아래에서는 농악단이 한마당 자지러지는 굿판으로 천하장사의 탄생을 축하했다.
이 대회를 통해 이만기는 명예와 돈을 함께 거머쥔 대중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배 나온 장사들이 겨루는 ‘힘의 씨름’은 명민한 그에 의해 날렵한 ‘기술의 씨름’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당시 이만기는 천하장사 상금으로 1500만원과 한라장사 2위 상금인 200만원 등 1700만원과 70㎏짜리 대형 은컵을 안았다. 대중들은 강남의 고급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 이 거액을 젊은 천하장사가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도 꽤 궁금해했다. 어린 꼬마들은 ‘제2의 이만기’를 꿈꾸면서 초등학교 한쪽의 모래판에서 친구들과 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총 42회가 열린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그러나 이후 씨름계의 내분과 기술 대신 힘만 쓰는 재미없는 경기라는 평가와 함께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2004년을 마지막으로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막을 내렸고, 2005년부터는 체급별 장사대회만 열리고 있다.
▶1982년 중국,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반발.
미국에 항의 각서
▶1980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임명
▶1979년 정효주양 두번째 유괴
▶1979년 강원도 함백탄광서 화약
폭발사고로 26명 사망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1977년 부산-제주 카페리호 취항
▶1977년 미국 정부, 재미영주권 외국인에
북괴지역 여행제한 철폐
▶1970년 남예멘 내전 종결
▶1967년 한국-스위스 무역협정 체결
▶196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내에서 발효
▶1966년 `한국의 쿠베르탱` 이상백 박사 별세
▶1966년 아프레 이라크 대통령
탑승기 사고로 사망
▶1966년 파키스탄 눈사태로 469명 사망
▶1964년동파키스탄에 돌풍.
1천여명 사망
▶1963년 한국 독립운동가 민필호 사망
▶1962년 드브레 프랑스 내각 총사퇴.
후임에 퐁피두 수상
▶1961년 재일교포 북송 재개
▶1955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의전 병합
▶1948년 일본 오사카의 교포학교 등 19개교에 폐교령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 수립
▶1930년 러시아 시인 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 사망
▶1929년 제1회 모나코
그랑프리 대회 개막
▶1924년 미국 근대 건축의
선구자인 설리번 사망
▶191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
이자 국제 공용어 에스페란토어 창시자 자멘호프 사망
▶1912년 타이타닉호 첫 출항서 침몰
건조 후 첫 출항에 나선 타이타닉호.
1912년 오늘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초호화여객선 타이태닉호는 북대서양을 유유히 지나고 있었다. 4만6천여t에 배 길이 272m, 초일류 호텔급 시설. 타이태닉은 말 그대로 ‘떠있는 궁전’이었다. 건조 후 처음 나선 처녀항해였다.
배에 탄 2,224명의 승객은 세계 최고 여객선에서 대서양 밤의 정취를즐겼다. 뉴펀들랜드 동남쪽 640km 해상을 지나던 자정 가까울 무렵, 타이태닉의 오른쪽 뱃전이 빙산과 부딪쳤다. 북대서양을 떠다니는 거대한 유빙이었다. 빙산을 발견하고 기수를 돌렸지만 빙산을 피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16개 격실(隔室)이 있어 이중 4개까지 물이 차더라도 침몰하지 않도록 설계됐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배는 이내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명정이 부족했다. 승객 절반 가량만 탈 수 있는 수량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구명정에 탈것인가?
타이태닉은 3시간이 채되지 않은 다음날 새벽 2시 20분 침몰했다. 침몰한 지 1시간 20분 후 인근을 지나던 여객선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1,515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비극의 결과 국제해상안전협정이 체결돼 모든 선박은 승객이 모두 탈 수 있도록 구명정을 비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북대서양 항로에 부빙(浮氷)순찰대가 창설되었다.
타이태닉 잔해는 1985년 미국 해양학자 로버트 발라드가 원격조종으로 심해저를 탐사하는 첨단 무인잠수정을동원, 찾아냈다. 타이태닉은 4,000m 깊이의 해저에서 앞뒤 2부분으로 분리되어 곧추서 있었다. 2004년 다시 타이태닉을 찾은 그는 “보석을 모두 뺏긴 부인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물 사냥꾼들이 타이태닉을 털어간 것이다. 타이태닉은 침몰된 뒤에도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세월호 선장과 비교하면 스미스선장이
무덤에서 튀어 나오겠죠.
▶1907년 14년간 장기 집권한 아이티 대통령
장 클로드 뒤발리에 출생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막
1900년 4월 14일 20세기의 개벽을 알리는 '파리만국박람회'가 개막됐다.
1900년 4월 14일 20세기의 개벽을 알리는 '파리만국박람회'가 개막됐다. 200일 동안 파리 샹 드 마르 공원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세계 25개국의 국가관이 세워졌고, 무려 4,000만 명의 관객이 신 문명과 교유했다.
박람회에서는 '움직이는 보도'가 처음 선보였고 토키영화가 상여됐으며 1만 개의 전등이 밤거리를 밝혀 20세기가 전기의 시대임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이미 19세기 말에 만개하고 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아르누보' 예술이 곳곳에 선보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물구조는 최신의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져 견고함을 자랑헸고 미술기획전에는 출품작만 5,000여 점이 전시됐다. 드가,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도 기획전에 이름을 등재했고 19세의 피카소도 스페인관에 그림 한 점을 내걸었다.
박람회장에는 조선정부가 마련한 '대한제국관'도 설치돼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알렸다. 사각형 건물에 기와를 얹은 모양의 대한제국관은 프랑스 건축가 페레가 설계하고 조선 정부가 법부고문으로 파견한 프랑스인 크리마지가 건물을 지었다. 도자기, 칠보공예, 장롱, 악기 등이 전시 판매됐고 폐막 뒤에는 박물관에 기증됐다. 이외에도 서양화가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 어진과 중추원 의관 민상호의 초상화도 출품됐다.
▶ 1889년 오늘,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Arnold (Joseph) Toynbee )영국 런던에서 출생(~1975년 10월 22일 잉글랜드 노스요크셔 요크에서 사망) 역사철학을 확립한 저서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12권, 1934~61)는 문명의 순환적 발전과 쇠퇴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 것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저서로는 〈시련의 문명 Civilization on Trial〉(1948)·〈동방에서 서방으로 : 세계여행 East
to West : A Journey Round the World〉(1958)·〈헬레니즘 : 문명의 역사 Hellenism : The History of a Civilization〉(1959) 등
▶ 1865년 오늘,
미국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
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가 피격 사망 (1809년2월12일 미국 켄터키주에서 출생~ ) 1861년 3월부터 암살된 1865년 4월까지 재직/ 그는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내부적 위기로부터 나라를 이끌어 벗어나게 하는 데 성공하여 연방을 보존하였고, 노예제를 끝냈다. 당시 미국 서부 변방의 개척지에 사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공부를 학교에서 배우기보다는 혼자서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변호사가 되었고, 일리노이 주 의원이 되었고, 미국 하원의원을 한 번 했지만, 상원 의원 선거에서는 두 번 실패하였다
▶ 1866년 오늘,
미국의 교육자이자 헬렌 켈러의 선생님이었던 앤 설리번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피딩 힐즈 에서 출생
(~1936년 10월 20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퀸즈에서 사망) 흔히 앤
설리번(Anne Sullivan)은 헬렌 켈러의 선생님으로 유명한 미국의 교육가
▶ 1702년 오늘,
숙종 28년 “백두산 화산 폭발” 조선시대 네 차례 기록.
“정오께 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때때로 붉고 노란 불길이 먹구름과 더불어 솟아나는데 유황내가 코를 찌르고 그 열기가 난로같았다. 이튿날 일어나보니 회우(灰雨·잿비)가 산야를 덮어 별천지 같았다. ” 1702년(숙종 28년) 4월 14일, 백두산에서 폭발한 화산을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문헌상에는 백두산 화산폭발이 1413년·1597년·1668년·1702년 네 차례 기록돼 있지만 지질학자들은 277만년 전 이후 모두 358회나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 ‘해동성국’으로까지 불렸던 발해가 거란 침공 불과 1개월 만에 쉽게 무너진 원인을 백두산 화산폭발과 이에 따른 기후의 한랭화로 해석한 일본 학자의 주장이 몇년 전 국내에 소개돼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발해가 멸망한 926년을 전후해 백두산에 대규모 화산폭발이 있었고, 화산재가 약 1000km나 떨어진 일본 혼슈 북부 및 홋카이도 일원에까지 날아가 약 1∼5cm 쌓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1592년 4월 14일 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로써 우호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으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동아시아를 정복하겠다는 계획으로 동아시아의 출입구인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7년간의 전쟁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십만 병력의 일본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20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두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까지 점령하여 급기야는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하게 되었다.
동래성 전투도
1593년 1월 명나라에서 원군을 보내주어 조선군은 평양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해상권을 장악했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일본군은 직산까지 점령했으나 조선군에게 다시 패했다. 이런식의 소모전이 계속되었으나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전쟁이 끝났다.
전쟁의 결과, 일본은 도요토미 정권이 멸하고 도쿠가와 정권이 세워졌으며 도자기, 활자 등의 활발한 제작으로 새로운 문화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중국은 조선으로의 무리한 원군 때문에 국력이 쇠약해진 명이 멸하고 청나라가 세워졌다. 조선은 국토가 황폐해지고 많은 문화유산을 일본에 빼앗기게 됐다.
▶ 1458년 해인사 대장경 50 필인
https://youtu.be/x6OnBa7QFZA
출처 20년째 학부모 ,네이버 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 ,
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