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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과학적인 한계 | | | 자연의학에대하여 |
2015.03.27. 16:36 |
현대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병적 현상을 그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질병의 증상에 따른 진단법이 발달해 ‘고혈압에는 무슨약’ ‘당뇨에는 무슨 약’이라는 식의 처방을 내립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 특성을 보지 않고, 단지 질병과 증상에 매달려 동일한 처방과 치료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병자’는 보지 않고 오로지 ‘병’에만 매달리는 현대의학은 병을 앓는 인간중심의 의학이 아니라 질병 중심의 의학이 되고 있습니다. 똑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라도 유전적 소인, 연령, 체력, 환경, 심리상태, 면역력, 약물 대사능력 등이 각기 다른데도 동일한 병명을 가진 수많은 환자들이 천편일률적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환자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치료를 받고도 효과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작용이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질병 중심의 획일적인 의학이라는 한계는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하나의 요인입니다.
또한 현대의학은 질병 중심의 의학이기 때문에 의료 분화의 특성을 보이고, 우리 몸의 기관도 각각 세분화해서 봅니다. 임상에서도 외과,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으로 나누어 치료를 합니다. 현대의학의 분과는 대략 30개 정도이고, 세분 분과는 수백 개에 이를 만큼 고도로 전문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을 더 작고 더 정밀하게 분석하려는 현대의학은 해부학과 조직학을 발달시켰고,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포와 유전자까지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부분을 정밀하게 탐구하다가 정작 중요한 ‘생명의 전체성’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접근해 병든 기관의 이상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리다 보니 ‘전체적 유기체’로서 환자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작은 부품을 조립하면 완성체가 되는 기계처럼, 각 기관과 세포를 모두 조합하면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부분을 합한 것 이상의 무엇이 바로 생명체입니다. 인체는 스스로를 조직하고 조절하며, 각 부분이 서로 관계를 맺고 균형과 조화를 도모하는 유기체입니다. 이런 유기적 시스템, 즉 전체성이 있기에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몸에 침입한 병원균을 없애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한 결과 병원균은 제압되어도 간질환을 얻는다거나 통증을 덜기 위해 먹은 진통제로 통증은 줄어도 위장병을 얻는다거나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다가 결국 환자의 면역력도 파괴해 암세포도 죽고 환자도 죽는 부작용 폐해가 나타나는 것은 모두 인체를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부위에 병이 생긴다고 해서 병의 원인이 반드시 그 부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현대의학은 오로지 병든 부분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고도화된 의료 시스템을 갖춘 현대의학은 우리 몸의 독립된 부분의 실체에 집착하느라 생명체의 전체성을 외면했고, 그로 인해 커다란 벽에 부딪쳤습니다.
인체를 분절화해서 보는 현대의학은 어떤 상황이든 수치화하고 규격화해서 인간을 무생물처럼 접근합니다. 실제 임상검사에서 사용하는 지표 역시 모두 정량화되어 있고, 가시화된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고혈압 진단을 예로 보면 현대의학은 정해놓은 혈압 기준치 안에 있으면 건강한 것이고, 기준치를 벗어나면 위험하다는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낯선 병원에서 검진을 앞두고 긴장한 탓에 잠시 혈압 수치가 나타난 것이라고 해도 그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아 측정해 보면 정상수치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단할 당시 그 순간, 즉 찰나적 상태만 보고 규격화된 진단 결과를 적용해 고혈압 환자를 만듭니다. 사람마다 키가 다르고 몸무게가 다르고 폐활량이 다르듯이, 혈압 또한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치를 정해 놓고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똑같은 사람의 혈압도 언제 재느냐에 따라 다르고, 하루 중에도 수시로 변합니다. 현대에서 말하는 수치는 어디까지나 표준치이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상치는 아닙니다.
비록 현대의학이 정한 기준 범위 안에 있지 않아도 언제나 혈압 수치를 보이고 몸 상태에 이상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는 정상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평상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현대의학이 제시한 평균치보다 높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표준 혈압을 초과해 고혈압 환자라는 진단을 받고도 건강하게 사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표준혈압 보다 좀 높다고 해서 당장 약을 복용하는 것이 오히려 몸의 균형을 깨고 면역력을 저하시킵니다. 그런데도 현대의학은 규격화된 수치로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결정하며, 그로 인해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의학적 진단에서 의료 장비에 의한 검사 지표가 규격화되어 있다는 말은 현재의 검사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는 질환의 경우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환자는 분명 어떤 이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원인 불명성 질환자들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최첨단 의료 장비라고 해도 질병의 초기 전구 증상, 즉 병으로 나타나기 직전 단계에서의 병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발달한 진단 장비라고 해도 인체의 정교하고 미세한 메커니즘을 모두 밝힐 수는 없습니다. 현대의학 시스템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대개 신경성이나 스트레스성 등의 병명을 얻게 됩니다. 특히 인체의 구조적 이상인 기질성 질환과 달리 기능성 질환의 진단에는 많은 허점을 보여 왔습니다. 현대의학의 질병관은 인체 기능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위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그 위장의 구조에 변화가 있다는 시각입니다.
미국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한 환자가 요통을 호소해 X선 촬영을 한다. 만약 X선 촬영에서 탈출한 척추간판이나 다른 구조적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환자는 아무 이상이 없다라는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분명 무엇가 이상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허리가 아플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적 질병이론에 따르면 이 경우는 아무런 질병도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하더라도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질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첨단 과학적 장비와 지표를 이용한 진단을 하므로 정확할 것이라는 관념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암 진단을 예로 면 현대의학의 메카라는 미국의 경우 암 진단 오진율이 44%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1998년 미국의학협회지에 따르면,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연구팀이 암 환자 250명을 대상으로 사망 전 진단명을 비교한 결과 111명이 암이 아니었거나 진단부위가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는 오진율에 대한 전문적인 통계자료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2000년에 발표한 세계 각국의 의료 수준 평가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58위입니다. 의료 수준을 감안 할때 오진율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되는 오진에 대한 불만 신고는 만만치 않은 수준입니다. 2001년 1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접수된 건강검진 관련 소비자 불만 신고 302건 가운데 19.5%가 오진으로 인한 피해로 나타났습니다. 도한 1999년 4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암 관련 의료분쟁으로 피해구제를 신청한 154건의 사례 가운데 73.4%가 의사의 오진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의학이 드러내는 한계는 인체를 인식하는 그릇된 시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서양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현대의학은 정신과 물질, 주관과 객관을 다른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사고에 기초를 두고, 세계를 물질론이고 기계론적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물체나 생명체는 모두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환원하여 하나하나 나누어 보면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의학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가 바로 이 그릇된 생명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아무리 인체를 낱낱이 해부해 각 장기의 기능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우리 몸의 전체적 기능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각 장기 상호간의 작용과 마음의작용에 대해서도 통찰해야 비로서 인체에 대한 전체적이고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질병의 부분만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전체적 유기체로서의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질세계, 즉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매달려 온 현대의학은 가시적인 진단법과 치료법을 선호해왔습니다. 병의 원인은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더 많은 병을 얻습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치료법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몸, 그리고 병든 기관에만 집착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놓쳐 버린 현대의학이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물질론적 사고 방식에 기초를 두고 발전한 결과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과학적 의학의 명백한 한계입니다. 현대의학은 스스로도 인체를 기계적으로 접근한 데카르트적인 생명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대에 들어서면서 극단적인 기계론을 접고 생명체의 유기적 관계를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분석적,기계론적 환원주의와 심신이원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