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내가 약할 때 그분은 가장 큰 은총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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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3/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4·3 희생자 추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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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24장 13-35절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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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함의 힘
내가 가장 약해졌다고 느낄 때가 오히려 가장 성장할 수 있는 때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사실 제자단으로부터 떨어져나갈 뻔한 순간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겪은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고 그 여정을 마치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내심은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영적 여정의 가장 취약한 상황 속에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예수님께서 그들의 현실에 개입하십니다. 그들의 의혹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시고, 그들의 실망을 새로운 환희로, 그들의 절망을 벅차는 희망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이러한 여정을 통과하게 됩니다. 미사성제에서 아무 감흥이 느껴지지 않고, 성경이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처럼 무덤덤하게 느껴지고, 신앙 안에서의 관계들이 실망과 환멸로 점철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어느 순간보다 주님께서 우리들 가까이에서 걷고 계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다시 한번 배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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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현 토마스아퀴나스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4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