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골목길이 끝나는 곳 / 쉘 실버스타인순수한 기쁨
아이들은 알고 있지 골목길이 끝나는 그 장소를.../셔터스톡
낯선 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나무로 우거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담쟁이 넝쿨사이로 담을 넘어다보니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잎이 무성한 가운데 참새 한 마리가 톡톡 튀고 있더군요.
저를 본 참새는 호르륵 날아가버렸는데 마치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나무들과 너무 많은 식물이 우거져 있어 내일 또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쉬워하면서 떠나려다가 계요등을 발견했습니다. 담너머로 늘어져있는 계요등 덩굴에 어찌나 많은 꽃이 달렸는지 횡재한 느낌이었지요.
계요등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작은 흰꽃이 종모양을 하고 있고 그것이 등처럼 달려 있는가하면 꽃은 중앙이 빨간 색으로 차마 빨간 색을 내어놓기 부끄럽다는 듯 가느다란 장막을 둘러 치고 있습니다.
한동안 계요등에 마음을 앗겨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득 바람이 불더군요.
새벽에 읽다가 펼쳐놓고 나간 이 시 때문이었을까요?
골목길이 끝나는 곳 - 쉘 실버스타인
골목길이 끝나고
도로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곳에
풀들이 자라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는 태양이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그곳에는 달새가 날개를 쉬면서
박하향 나는 바람에 머리를 식히고 있다.
우리 이곳을 떠나자.
검은색 연기가 불어오는 곳
검은색 도로만이 이리저리 뻗어 있는 곳
아스팔트 외엔 더 이상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웅덩이들을 지나
우리 아주 천천히 신중한 걸음걸이로
흰색 화살표를 따라가 보자.
골목길이 끝나는 그곳으로.
그래, 우리 아주 천천히 신중한 걸음걸이로
흰색 화살표를 따라가는 거야.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 화살표를.
그리고 아이들은 알고 있지.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그 장소를.
우리의 마음에는 쉼터가 있습니다. 내가 설정해놓은 그 쉼터는 골목길이어도 좋습니다.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 골목길 끝에는 태양이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그리고 달새가 날개를 쉬면서 박하향 나는 바람에 머리를 식히고 있습니다. 내 안의 쉼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명상은 쉼입니다. 우리가 걸으면서 살아야 할 내일, 해야 할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늘 거기에 있는 것들에 주의를 옮긴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되겠지요. 내 주변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살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 되겠지요.
순간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은 곧 쉼입니다.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혹은 슬픔으로부터 나를 쉬게 하는 일.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내 삶을 이어갈 힘을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쉼이지요.
아이들은 아스팔트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놀이터이건 흙웅덩이건 비오는 숲이건 주변에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길 줄 압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놀이, 그 순간이 지나가면 잊어버릴 즐거움입니다.
그 순간의 행복이지요. 그곳은 골목길이 끝나는 곳, 길이 시작되지 않는 곳, 검은 연기가 없는 곳입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되어도 그 아이는 내 안에 존재하지요. 그 순간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만족하는 어린아이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린이가 될 때 우리는 순수해지지요.
그 순수함을 누리는 비결이 바로 골목길을, 숲을, 자연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비가 오거나 태양이 내리쬐거나 상관없이,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상관없이. 당신 안에도 그 골목길이 끝나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발견한 그 집이 그 자리에 있지 않다면 어쩌지요?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