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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자락(淸貧自樂)
맑은 가난을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항상 행동을 조심하고 늘 삼가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淸 : 맑을 청(氵/8)
貧 : 가난할 빈(貝/4)
自 : 스스로 자(自/0)
樂 : 즐길 락(木/11)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래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배자이면서 동시에 피지배자가 된다. 그러나 권력자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피지배자로서 복종이나 억압을 더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권력을 펼칠 수 있는 범위는 작지만, 영향을 미치는 권력은 거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름 없이 살아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권력이란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진다.
장삼이사(張三李四)는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란 뜻으로, 성명이나 신분이 뚜렷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 또는 사람에게 성리(性理)가 있음은 아나, 그 모양(模樣)이나 이름을 지어 말할 수 없음의 비유한 말이다.
우리는 다양한 권력 중에서도 정치권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국민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라고 느낄 수 있는 계기는 적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피지배자는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면 기대를 한다. 개인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주문을 한다. 개인의 자유 보장, 공정한 분배,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인재등용 등이다.
청빈자락(淸貧自樂)
맑은 가난을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李德懋)의 한죽당섭필(寒竹堂涉筆)에는 함양의 한 선비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함양에 사는 어떤 선비는 평소에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면서 늘 자신을 단속했다. 특히 그는 날마다 양쪽 볼기를 깨끗이 씻었다.
매일 온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볼기만을 열심히 닦는 것이 이상해 어떤 사람이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내 비록 지금은 행동을 조심하고 늘 삼가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죄를 지어서 관가에 잡혀갈 수도 있는 일이 생기지 않겠소? 그때 볼기를 맞는 태형(笞刑)을 받기라도 해보시오. 곤장을 치려고 바지를 내렸는데 만약 볼기짝에 시꺼멓게 때가 끼어 있다면 그렇게 부끄러울 데가 어디 있겠소?”
그런 말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관가에 잡혀갔다. 무고하게 체포됐으나 제대로 변론을 하지 못해 곤장을 맞게 됐다. 부사가 입회한 자리에서 선비가 바지를 내렸는데 유독 볼기 부분이 깨끗했다.
신기한 마음이 든 부사는 형 집행을 중지시키고 그가 평소에 볼기를 깨끗하게 닦는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는 선비의 억울한 사연을 인정하고 무죄로 판결했다. 볼기가 저렇게 깨끗하니, 이 사람이야말로 ‘참 선비’라는 감탄했다고 한다.
평소에 자신의 행실을 조심하며 볼기를 깨끗이 닦을 정도라면 그런 사람이 과연 죄를 저질렀겠는가. 함양의 선비는 평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즉시 고쳤을 것이다.
개인의 삶이 이렇게 깨끗하다면 그의 사회적인 삶도 역시 깨끗하리라고 생각된다. 개인의 이러한 태도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가 전반적으로 깨끗해지는 첫걸음이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식에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직위에 있든 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부패는 사회의 공적 토대를 잠식하는 강력한 죄악이다. 부패한 권력이 횡행하는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던가.
높은 관직에 올라서 한때 막강한 위세를 떨쳤지만, 정작 비가 오면 지붕이 새는 좁은 오막살이에서 살았던 옛 선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벼슬에서 물러난 정승에게 인사를 갔더니 좁고 누추한 방에 살더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있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한 가난을 ‘청빈(淸貧)’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볼기조차 늘 점검해서 깨끗이 닦아놓는 선비의 부유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행동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발현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 때마다 우리는 믿었던 후보자에게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접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렇다. 사실 모든 후보자가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 가난한 사람만 고위 공직자에 임명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공자도 일찍이 법도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 부유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법도가 지켜지는 정상적인 나라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 역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
문제는 자신의 부유함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형성됐는지 스스로 해명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국민이 마치 가난한 공직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부(富)의 형성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을 뿐이다.
전등록(傳燈錄)에 청빈자락(淸貧自樂)이라는 말이 있다. “맑은 가난을 스스로 즐길지언정 혼탁한 부유함으로 많은 근심을 만들지 마라(寧可淸貧自樂, 不作濁富多憂).”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고위 관료가 되어 권력을 쥐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기는 커녕 그게 관행이어서 그렇게 했노라며 합리화를 하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용용지지(庸庸祗祗)
쓸 만한 사람을 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한다
권력자 주변은 언제나 권력에 기대려는 사람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권력자 역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없으므로 협력자를 구해야 한다. 자신과 뜻을 이해하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발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충성심만 있고 능력이 없거나 능력만 있고 충성심이 없는 것은 모두 문제다. 두 가지를 겸비하면 최상이지만, 세상에 모든 것을 갖춘 길동무는 없으리라.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권력을 쥐려고 할 것이므로 치열한 정치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정치의 목적이 국민의 평화와 행복이라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목표 지점으로 나아가도록 일할 사람을 잘 등용해야 한다. 역대 정권이 언제나 인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그 때문에 비난을 받았으며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경구처럼,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근대 이전 사회 전반에서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시대를 보면 권력자의 뛰어난 능력도 작용했지만 그를 보좌해서 일했던 수많은 인재가 넘쳐났다. 말 그대로 ‘다사제제(多士濟濟)’였다.
어찌 보면 권력자에게 아주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이나 정조시대의 조정을 보라. 우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인재가 포진하고 있다. 그것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서경(書經) 강고(康誥) 편에 용용지지(庸庸祗祗)라는 말이 나온다. 쓸 만한 사람을 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한다는 뜻이다. 정부를 비롯한 어떤 단체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학연이나 지연, 개인적인 연고 때문에 인재등용이 바르게 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평화로운 삶은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 요직에 임명된 사람이 결정되면 정당, 언론 등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에서 그 시비를 가린다며 이런저런 평을 쏟아낸다. 그 이면에는 해당 단체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익이 개재해 있다.
주변사람이나 단체가 목청을 높인다 해도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결코 휩쓸리면 안 된다. 주변의 다양한 정보를 객관적이면서도 냉철하게 판단한 다음 사람을 등용해야한다. 또한 자신의 인재등용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국민에게 충실히 설명해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자칫 인기에 영합하려 하거나 독선에 빠진 상태에서 인사가 이루어진다면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쓸 만한 사람이라 판단되면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 정파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과감하게 등용해야 하며, 자신을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왔던 사람이라 해도 능력이 부족하거나 문제가 발견된다면 가차없이 후보군에서 탈락시켜야 한다.
의감우은(儀監于殷)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을지어다 라는 뜻으로, 바로 앞 정권의 문제점을 살펴서 전철을 밟지 마라는 말이다.
주(紂) 임금은 중국 은나라 마지막 황제다. 달기(妲己)라는 미인에게 마음을 쏟아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은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시경(詩經) 대아(大雅)에는 조상의 덕을 믿지 말고 자신의 덕을 닦아 나라를 보존하라는 노래가 실려 있다.
의감우은(儀監于殷)은 은감불원(殷鑑不遠) 혹은 은감(殷鑑) 등으로도 쓰이는 말로, 마땅히 은나라의 사례에서 본보기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은감불원은 은나라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거울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앞의 왕조인 하(夏)나라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어떻든 전 정권의 문제점을 살펴서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시경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은나라가 민중을 잃지 않았을 때에는, 하늘의 뜻에 잘 맞았었노라.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을지니, 하늘의 큰 명령은 보존하기 쉽지 않느니라.”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대학(大學)에서는 이 부분을 인용한 뒤 ‘민중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민중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했다. 덧붙일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말 그대로 민중의 뜻을 살펴야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한다면 백성의 부모로 칭송받을 것이다. 백성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뜻을 잘살펴서 정치하는 것이 바로 하늘의 뜻에 합치되고 천명(天命)을 보존하여 나라를 잘 가꾸는 일이 될 것이다.
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고 훌륭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발탁하여 배치하는 일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능력이라면, 그보다 더 큰 능력은 이들을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다. 건강하면서도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淸(맑을 청)은 ❶형성문자로 清(청)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푸른 색깔이나 깨끗이 맑아져 있는 일의 뜻을 가진 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맑고 깨끗한 물(水)의 뜻이 합(合)하여 맑다를 뜻한다. 淸(청)은 물이 깨끗이 맑다, 맑은 물, 맑다, 깨끗이 하다, 상쾌하다 따위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淸자는 ‘맑다’, ‘깨끗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淸자는 水(물 수)자와 靑(푸를 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靑자는 우물가에 핀 푸른 초목을 그린 것으로 ‘푸르다’라는 뜻이 있다. 淸자는 이렇게 ‘푸르다’라는 뜻을 가진 靑자에 水자를 결합한 것으로 물이 푸를 정도로 맑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淸(청)은 ①맑다 ②깨끗하다 ③탐욕(貪慾)이 없다 ④빛이 선명(鮮明)하다 ⑤사념이 없다 ⑥분명(分明)하다 ⑦한가(閑暇)하다 ⑧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⑨끝장을 내다 ⑩거스르다 ⑪차갑다 ⑫한랭(寒冷)하다 ⑬맑은 술 ⑭꿀 ⑮뒷간 ⑯청(淸)나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맑을 렬/열(洌), 맑을 담(淡), 맑을 숙(淑), 맑을 호(淏), 물 맑을 식(湜), 물 맑을 영(渶), 맑을 재(渽), 맑을 린/인(潾), 맑을 징(澄), 맑을 철(澈), 맑을 담(澹), 맑을 찬(澯) 맑을 정(瀞) 맑을 류/유(瀏), 물 맑을 형(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흐릴 탁(濁)이다. 용례로는 날씨가 맑고 밝음을 청명(淸明),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는 청양(靑陽), 맑고 아름다움을 청아(淸雅), 부드럽고 맑게 부는 바람을 청풍(淸風), 청백하여 가난함을 청빈(淸貧), 청렴하고 결백함을 청백(淸白), 맑고 순박함을 청순(淸純), 맑고 깨끗함을 청결(淸潔), 맑고 깨끗함을 청정(淸淨), 맑고 바름을 청정(淸正), 깨끗한 정조를 청조(淸操), 성품이 고결하고 탐욕이 없음을 청렴(淸廉), 깨끗이 소제함을 청소(淸宵), 잘못이나 악인을 없애어 맑게 함을 숙청(肅淸), 성품이나 언행이 맑고 깨끗함을 숙청(淑淸), 날씨나 빛깔 따위가 산뜻하고 맑음을 경청(輕淸), 빛깔이 희고 품질이 썩 좋은 꿀을 백청(白淸), 벌집에서 떠낸 그대로의 꿀을 생청(生淸), 산 속에 있는 나무나 돌 사이에 석벌이 친 꿀을 석청(石淸), 물 같은 것이 몹시 맑고 깨끗함을 징청(澄淸), 매우 맑고 시원함을 여청(餘淸), 황하의 물이 맑아짐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실현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을 하청(河淸),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욕심이 없음을 청렴결백(淸廉潔白),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청빈낙도(淸貧樂道),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함을 청심과욕(淸心寡欲),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삼킨다는 청탁병탄(淸濁倂呑),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청풍명월(淸風明月) 등에 쓰인다.
▶️ 貧(가난할 빈)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 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分(분; 나누는 일)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貧자는 ‘가난하다’나 ‘모자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貧자는 分(나눌 분)자와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금문에 나온 貧자를 보면 宀(집 면)자 안에 分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집안에 아무것도 나눌 것이 없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집안에 쌀 한 톨조차 나눌 것이 없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 소전에서는 貝자와 分자가 결합한 형태로 바뀌면서 나누어주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貧자가 되었다. 그래서 貧(빈)은 재산이 나누어져서 적어지다, 가난함 등의 뜻으로 ①가난하다 ②모자라다 ③부족(不足)하다 ④빈궁(貧窮)하다 ⑤결핍(缺乏)되다 ⑥구차(苟且)하다 ⑦천(賤)하다 ⑧품위가 없다 ⑨인색(吝嗇)하다 ⑩말이 많다 ⑪수다스럽다 ⑫가난 ⑬빈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극(極),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궁(窮), 다할 갈(竭),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부유할 부(富)이다. 용례로는 가난하고 궁색하여 살기 어려움을 빈곤(貧困), 가난함과 넉넉함을 빈부(貧富), 피 속의 적혈구나 혈색소의 수가 적어지는 현상을 빈혈(貧血), 가난하고 천함을 빈천(貧賤), 가난하고 힘이 없음을 빈약(貧弱), 가난하여 궁함을 빈궁(貧窮), 가난한 백성을 빈민(貧民), 가난한 나라를 빈국(貧國), 가난한 사람을 빈자(貧者), 가난한 집을 빈가(貧家), 가난한 사회를 빈국(貧局), 가난한 농가나 농민을 빈농(貧農), 야구에서 안타를 잘 치지 못하는 것을 빈타(貧打), 가난하고 쓸쓸함을 빈한(貧寒), 가난하고 고생스러움을 빈고(貧苦), 가난한 사람이 많이 사는 고을을 빈촌(貧村), 음식이 넉넉하지 못한 부엌이라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을 이르는 말을 빈주(貧廚), 성품이 깨끗하여 가난함을 청빈(淸貧), 천하고 가난함을 천빈(賤貧), 몹시 가난함을 극빈(極貧), 아주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적빈(赤貧), 집이 가난함을 가빈(家貧), 더할 수 없는 가난을 철빈(鐵貧), 극히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을 구빈(救貧), 가난하지 아니함을 불빈(不貧),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 짐을 빈익빈(貧益貧),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룬 거리를 빈민가(貧民街), 살림이 가난한 백성으로 된 사회의 계층을 빈민층(貧民層), 지극히 가난한 사람을 극빈자(極貧者), 넉넉한 사람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어려운 사람을 구원하여 주는 도둑의 무리를 활빈당(活貧黨),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가난 속에서도 보인 작은 성의가 부귀한 사람들의 많은 보시보다도 가치가 큼을 이르는 말을 빈자일등(貧者一燈), 내가 가난하고 천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 준 벗은 내가 부귀하게 된 뒤에도 언제까지나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빈천지교(貧賤之交), 가난한 몸이지만 하늘의 뜻으로 알고 도를 즐김을 일컫는 말을 빈이낙도(貧而樂道), 가난함과 부유함이나 귀함과 천함을 일컫는 말을 빈부귀천(貧富貴賤), 가난한 사람은 굽죄이는 일이 많아서 뻣뻣하지 못한 까닭에 저절로 낮은 사람처럼 된다는 말을 빈자소인(貧者小人), 빈한함이 뼈에까지 스민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일컫는 말을 빈한도골(貧寒到骨), 자기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망상으로 자기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빈곤망상(貧困妄想), 가난해도 세상에 대한 원망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빈이무원(貧而無怨),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일컫는 말을 청빈낙도(淸貧樂道), 가난하기가 마치 물로 씻은 듯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적빈여세(赤貧如洗) 등에 쓰인다.
▶️ 自(스스로 자)는 ❶상형문자로 사람의 코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사람은 코를 가리켜 자기를 나타내므로 스스로란 뜻으로 삼고 또 혼자서 ~로 부터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나중에 코의 뜻에는 鼻(비)란 글자가 생겼다. ❷상형문자로 自자는 ‘스스로’나 ‘몸소’,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自자는 사람의 코를 정면에서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코와 콧구멍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自자의 본래 의미는 ‘코’였다. 코는 사람 얼굴의 중심이자 자신을 가리키는 위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을 가리킬 때는 손가락이 얼굴을 향하게끔 한다. 이러한 의미가 확대되면서 自자는 점차 ‘자기’나 ‘스스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自자가 이렇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畀(줄 비)자를 더한 鼻(코 비)자가 ‘코’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自(자)는 어떤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부터, ~에서(~서)와 같은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낱말 앞에 쓰임의 뜻으로 ①스스로, 몸소, 자기(自己) ②저절로, 자연히 ③~서 부터 ④써 ⑤진실로 ⑥본연(本然) ⑦처음, 시초(始初) ⑧출처(出處) ⑨코(비鼻의 고자古字) ⑩말미암다, ~부터 하다 ⑪좇다, 따르다 ⑫인하다(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⑬사용하다, 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몸 신(身),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타(他)이다. 용례로는 제 몸을 자신(自身),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함을 자유(自由), 제 몸 또는 그 자신을 자체(自體),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을 자연(自然), 제 몸이나 제 자신을 자기(自己),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을 자살(自殺),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욕심을 억누름을 자제(自制), 스스로 그러한 결과가 오게 함을 자초(自招), 스스로 움직임을 자동(自動), 제 스스로 배워서 익힘을 자습(自習),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림을 자치(自治),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자기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신함을 자신(自信),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이나 마음을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자존심(自尊心),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굳센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신감(自信感), 스스로 나서서 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자발적(自發的), 자기의 언행이 전후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가당착(自家撞着),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한다는 말을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한다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자랑함을 이르는 말을 자화자찬(自畫自讚), 자기가 일을 해놓고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격지심(自激之心),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 곧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자기의 줄로 자기를 묶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망치게 한다는 말이다. 즉 자기의 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승자박(自繩自縛), 잘못을 뉘우쳐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자원자애(自怨自艾),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또는 그 사실을 일컫는 말을 자초지종(自初至終),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대화함을 이르는 말을 자문자답(自問自答), 제 뜻이 항상 옳은 줄로만 믿는 버릇이라는 뜻으로 편벽된 소견을 고집하는 버릇을 이르는 말을 자시지벽(自是之癖)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