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은 미워하더라도, 배우는 미워하지 맙시다!"
지금이야 배역과 배우를 구분해서 보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를 보고 (연기를 못하지 않는 이상) 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배역과 배우를 구분하지 못하고 배우까지 싸잡아 욕먹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TBC에서 방영된 아씨에서 난봉꾼 남편 긍재역을 맡았던 배우 김창세는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주변 할머니들과 아줌마들에게 고함과 욕설을 들었다.
특히 긍재가 주인공 아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땅문서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이 방영되자 10여명의 주부들이 김창세를 보고 저런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고 달려들어 때리기도 했다.
결국 김창세는 이미지가 크게 망가져 아씨 방영 이후 본명을 버리고 김세윤이란 가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1972년 KBS에서 방영된 여로에서 여주인공 분이를 괴롭히는 시어머니역으로 나왔던 박주아 또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삿대질을 당하고 욕을 먹었으며, 심한 경우 폭행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주아가 TV에 나올때마다 저 년 죽여버릴 거라며 밥그릇을 던져 그릇이 깨지는 집도 많았다고 하며, 드라마 녹화 중 공수부대원 7명이 방송국으로 들이닥쳐 시어머니 나오라고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대서 탈의실에 숨어있기도 했다.
한번은 박주아가 여주인공 분이역을 맡은 태현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태현실은 작은 상처에도 사람들이 몰려 위로를 했지만 꽤 큰 부상으로 누워 있던 박주아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같은 드라마에서 친일파에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김달중역을 맡았던 배우 김무영은 집밖으로 나가면 '저기 달중이가 왔다'며 아이들이 돌이나 쇠붙이를 던져서 박주아처럼 한동안 집밖으로 못나갔다.
1981년 MBC에서 방영된 사극 드라마 교동마님에서 배우 김영란은 정난정역을 맡았는데 문제는 이 드라마에서 정난정이 상당히 악하게 나오는데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온갖 못된 짓을 다한다.
미천한 소실인 정난정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죄 없는 안방마님을 밀어내고 끝내는 독살까지 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인 주부들을 분노하고 오열하게 만들었으며, 이 감정은 고스란히 배우인 김영란에게로 향했다.
김영란은 집밖에 나가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길을 걷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갖 눈총을 받았으며, 김영란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시청자들이 빨리 죽으라며 욕설을 퍼 붇기 했다.(개인정보에 대한 인식도 처참했던지라 잡지에 대놓고 배우들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공개하던 시절이었다.) 한 택시운전사는 김영란을 웬 여자가 그렇게 독살 맞냐고 시집가기어려울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국에 "정난정의 최후는 어떻게 되느냐", "정말로 저딴 년이 실존했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쳐 제작진들이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래서 교동 마님의 종영된 후 MBC에서는 김영란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김영란의 오늘의 요리'라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김영란은 1985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의 다섯 번째 시리즈인 풍란에서도 4년만에 다시 정난정을 연기했다.
'왔다 장보리' 촬영 중에 지나가는 시민한테 욕먹은 배우 이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