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저자 빅터 프랭클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생생히 기록한 책입니다. 공포, 굶주림, 생존에 대한 갈망, 절망, 질투 등 여러 감정과 욕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수용소가 얼마나 끔찍한 공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과 목숨 자체를 위한 투쟁이 일어납니다. 그 투쟁은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려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죠. 대상자를 가리는 과정에서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나 친구 이름을 지웁니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수용자들이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습니다.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 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입니다. 수용소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있었고, 수치심과 공포를 느끼게 하였고, 살아남기는 너무도 힘든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적응은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 방법은 아주 인간답지 않은 것이죠.
수용자들의 특징적인 징후 첫 번째 단계는 충격입니다. 반응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 가는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여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예술과 유머가 있었습니다. 막사 안을 깨끗이 치우고, 나무 의자를 밀거나 함께 못질을 합니다. 그런 다음 프로그램을 짜게 됩니다. 처해 있는 현실을 잊으려고 모이게 됩니다.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촌극을 하는데 그중에는 수용소 현실을 풍자한 것도 있었습니다.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줍니다. 예술과 유머 모두 인간의 표현의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용소에서는 살기 위해 현실을 잊기 위해 있었다고 합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인 독립과 영적인 자유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입니다.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 시련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은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1959년 『From Death-Camp to Existentialism』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946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만하다』(Nevertheless, Say ‘Yes’ to Lif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빅터 프랭클린의 포로수용소 경험을 기록한 책이며, 그는 이 책을 작성하면서 존재의 의미의 중요성과 수용소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의미를 찾았습니다.
빅터 프랭클린(Viktor Frankl, 1905~1997)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습니다.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등은 외국으로 몸을 피해 박해를 받지 않았지만 프랭클은 체포될 때까지 빈에 남아 있다가 수용소에 끌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위대한 심리학자에 앞서 절망과 죽음을 딛고 일어난 한 인간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