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부 대일행동 참가기
아베 정권은 8월 2일 각의를 개최하여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인정 국가(백색국 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제주흥사단은 8월 2일 긴급 임원회의를 개최하여 아베 정권이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수출규제 조치철회와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제주 일본영사관 앞에서 12시부터 1시간 동안 1인 릴레이 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 사안이 시급한 만큼 타 기관과 연대하는 부분은 성명서 합의 등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되어 우선 제주흥사단 단독으로 전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8월 3일(토) 고영철 대표가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일본영사관에는 이미 사복 경찰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시위하는 장면을 사진 찍고, 어디서 왔는지, 언제까지 하는지 등 정보가 될 만한 사항을 캐묻고는 시위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하여 모녀가 시위하고 있었고, 훌륭한 일을 한다고 격려해주었다. ‘언제 해결이 될는지’ 혀를 차며 딸이 엄마를 부축해 돌아갔다. 그 순간 시위를 해야 하는 사명감이 불쑥 솟았다. 외롭고 힘들 줄 알았던 1인 시위에 대한 두려움이 이내 사라졌다.
8월 4일(일)에는 임영훈 단우가 주축이 되어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이날 양영식, 문경운 제주도의회 의원이 1인 시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언론사는 이를 취재하기위해 북적거렸다. 제주흥사단은 미리 준비한 ‘강제동원 사죄하라’는 피켓을 도의원에게 전달하고 같이 외쳤다. ‘사죄하라, 분쇄하자, 철회하라.’
8월 5일(월) 일본은 범죄에 해당하는 식민지배에 대한 인정도,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역사를 왜곡하거나 전쟁범죄를 미화하는 등 과거 군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베는 강제동원 사죄하고 배상하라’, ‘동북아평화를 위협하는 아베는 자폭하라’ 등의 피켓 문구를 들고 고영철 대표 홀로 시위에 나섰다. 근무일이기 때문에 지원자가 없었지만, 막상 당일에는 많은 단우가 함께했다. 제주흥사단 이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을 비롯하여 1인 시위를 개시한 이래 가장 많은 단체가 이날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제주흥사단이 앞서서 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다른 단체의 참여를 이끌 수 있었다.
8월 6일(화) 고건일 단우는 ‘일본인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메이와쿠(迷惑) 의식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이번 수출규제 조치는 민폐가 아니라 군국주의 발톱을 드러낸 본심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하며 피켓을 높이 세웠다.
8월 7일(수) 안종국 단우는 매일 시위에 참석하여 사진을 찍고, 시위 내용에 강한 변화를 주는 역할을 했다. 일본영사관 건물로 출입자가 많았지만 싫은 내색 없이 고생한다면서 한마디씩 던지는 격려가 힘이 되었다.
8월 8일(목) 조영배 단우는 시위의 주축이 되고자 멀리 서귀포 강정에서 달려왔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비상식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결국 한반도 평화 흐름을 깨뜨리고,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질주라는 것을 일본영사관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8월 9일(금) 이순향 단우가 주축이 되어 성명서에서 밝힌 내용과 같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경제 침탈과 동북아평화를 깨뜨리며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가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아베 정권을 강력히 규탄했다.
8월 10일(토) 임재흥 단우가 평의회 의원으로서 앞장섰다. 평의회 회의에서 천명했듯이 아베 정권이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와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촉구할 것을 재차 천명했다.
8월 11일(일) 비가 오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성영희 단우가 주축이 되어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과거의 일본이 그러했듯이 또다시 침략, 폭력, 인간성 상실로 점철된 군국주의로 나아가려는 아베 정권의 광기와 야만에 우리 모두는 분기탱천(憤氣撐天)했다.
8월 12일(월) 임창효 단우가 주축이 되어 시위를 이어갔다. 특히 이번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 조치는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가 자명하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8월 13일(화) 11일째 이어가는 규탄의 목소리는 최창범 단우가 주축이 되었다. 민중당 제주도당과 제주불교청년회에서 함께했다. 아베 정권에 즉각적인 수출규제 철회, 강제동원 등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8월 14일(수) 이현정 단우가 농사를 짓다 말고 달려왔다. 특히 이번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서 노동력을 수탈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전쟁의 희생양으로 삼았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아베 정권 규탄시위를 전개했다.
12일 동안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제주흥사단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었다. 1인 시위를 하였지만 1인이 아니었다. 기획, 지원, 교대, 홍보반이 합세하여 시위를 지원했다. 8월 18일(일) 제주출신 백응선 독립운동가 묘를 벌초하고 참배하면서 다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신 분들 앞에서 호소했다.
일제강점기에 혹독한 고난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38년 3월 10일 서거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마수를 슬그머니 다시 뻗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각오는 또 무엇인가? 일제강점기 말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일본은 자기 힘에 지나치는 큰 전쟁을 시작했으니 필경 이 전쟁으로 인해 패망할 것이오’라고 격려하며 예언했다. 지금에 와서 이다지도 각골에 명심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가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 글 : 임영훈 (제주지부 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