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지만 나는 이세연 골키퍼를 무지 좋아했었다. 축구경기 중계가 있는날은 온 가족이 티비를 아주 크게 켜 놓은채 어느 순간은 선수인양, 어느 순간은 해설자인양, 어느순간은 관중석에 앉아 큰 소리로 응원하는 응원단이 되기도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자주 봐 왔다, 스포츠 중계 방송을 내가 좋아하던 아니던 함께 봐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우리나라가 한 골을 먹게되면 반드시 나오던 말. 이세연이지? 그럼 누가 골대를 지켰더라도 저건 어쩔 수 없는 골이야. 바로 수긍을 했었다.
다른 골키퍼가 공을 막아내지 못하게되면 공이 들어가던 순간 벌떡 일어서며, 아! 이세연 이었으면 막아냈을거야. 이세연 이어야 했는데, 이세연선수의 이름을 식구마다 불러대는 소리를 들으며 이세연 선수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었다. 살아가면서 이세연선수를 떠올리고 얘기 하는 경우가 좋종 있다.
주택에 살다보면 반은 기술자가 된다. 서른살이 넘은 늙은 단독주택에 살다보면 살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어디하나 불편한데가 생기면 여기저기 살피는 일은 주인이 해야 할 몫이 된다. 반드시 살고있는 사람이 알아야 제대로 고칠 수 있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서른살을 넘긴 이 늙은 집의 지붕에 몇년 전 부터 문제가 생겼었다. 이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자그만 문제들은 항상 있었지만 지붕의 문제를 알게 된건 우리집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이웃 집 아저씨가 나를 불러 지붕을 보개 한 이후였다. 여기저기 찢겨 나가기도 했고, 아스팔트 싱글 아래에 감춰져 있어야 할 베니어판이 보였댜. 강한 태풍이 불던날엔 아스팔트싱글(?) 조각들이 마당에 떨어져 있는걸 보게 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조각에 누가 맞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주 큰 비가 내리는 장마철 어느날 창틀 위 어느부분에서 빗물이 새어들곤 했었댜. 주택에 살면 이정도의 불편은 감수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빗물받이를 하지않은 지붕 탓에 많은 비가 쏟아지면 창을타고 내려오는 빗물의 양이 많아져 어쩔 수 없는거라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은 탓이기도 했다.
지붕 물받이 공사를 하려면 아시바공사(안전 발판공사)를 반드시 해야하고, 공사비도 만만치 않다는 말에 몇년을 생각다 지붕공사 전문가를 불러 견적을 받았다. 작년 가을, 새로운 공법으로 발판공사 없이 지붕공사를 마무리 했다. 빗물받이를 완벽하게 만든 뿌듯한 지붕공사 이후, 비오기를 기다렸다. 새는곳이 당연히 없을테니까....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이라야 알 수 있는데 겨울을 지나고 봄이 지났다. 그동안 큰 비가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 6월 하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세찬비가 내렸다. 새는 빗물 걱정없을거란 생각이었고 비를 기다린건 지붕공사를 제대로 한데 대한 뿌듯함을 맛보자는 심산이었다. ㅎㅎ
장마가 시작되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이렇게 많이 오는 비는 처음인 올 장맛비. 그중에도 아주 큰 비가, 그것도 바람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던날.
"엄마, 창틀있는 쪽에서 비가 새. 지붕공사 해서 빗물 새는거 걱정없다 하더니 내려와서 봐바." 와~ 이 커다란 실망.
이런날 난 이세연 선수를 생각하게 된다. 금산타일 아저씨한테 부탁해야 했어. 지붕공사 완벽하게 하는 분이라고 이웃의 소개를 받아 했던 지붕공사. 금산타일 아저씨는 지붕 전문가가 아니라 어차피 지붕공사 전문가한테 공사부탁을 한다는걸 알고 있는터라 아저씨를 거치지 않았다, 금산타일 아저씨를 통했더라면 전화 한통화면 바로 달려와 주셨을 텐데.......
물받침 공사만 제대로 되면 물샐 걱정은 없을거라 생각했고, 지붕을 통채로 고쳤는데 왜 그럴까? 살피기 시작했다. 늙은 우리집 창틀 부근 시멘트 마감에 금이 가 있는게 보였다. 이거구나. 이 작은 틈새로 빗물이 스며 들어간 것이구나. 당연히 금산타일 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했다. 이젠 어떤것을 손 보더라도 나한테는 이세연선수만큼 신뢰가 가는 금산인테리어 사장이신 이성열씨, 나는 언제나 금산타일 아저씨라 부른다. 아침일찍 공사를 마무리 했다. 아시바를 매고 전체의 방수공사를 한번 해야한다고 했는데 원인이 되는 부분을 알아냈으니 이것만으로 충분할것 같다.
강남에서 살다 북한산 아랫마을로 옮겨와 사는지가 만으로 18년이 되었다. 이것 저것 손볼데가 많은 단독주택을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마련했다. 그때 금산타일 아저씨를 소개받았다. 내가 북한산 아랫마을에 살고있는 세월과 아저씨와 소통하며 사는세월은 똑 같다. 그 해 집수리를 하면서 견적을 받았다. 소개 해 준 사람이 이동네에서 살고있던 회원인데, 집수리라고 하면 그냥 우리집도 금산타일 아저씨예요. 견적받은 여러 업체중 착한금액, 그리고 믿을만 한 사람이라는 소개가 있어 인연이 된 분이다.
87년 준공된 집이라 여기저기 참 많이도 손을 보고 살았다. 지금까지 금산타일 아저씨가 계셔 별 걱정없이 살 수 있었고, 누구보다 우리집 사정을 잘 알아주는 분이여서 더 편했다. 우리집 삽살이 환이와 깜이가 자라는 모습도 아저씨는 보셨고, 곰이와 기쁨이가 태어나 자라고 있는것도 아저씨는 보셨다. 환이랑 깜이와도 서로 무서워 하지 않을만큼 친숙한 사람, 곰이와 기쁨이가 마당에서 뛰놀고 있어도 서로 전혀 불편함이 없는 왕래. 단 한번이라도 수련을 한 사람에겐 짖지않던 환이랑 깜이, 그리고 기쁨이랑 곰이는 자주보는 우체부 아저씨나 택배아저씨, 중국집 배달원까지 무척 짖어댔다. 아무리 자주 보는 사람이어도 그랬다. 하지만 단 한사람 금산타일 아저씨 한테는 달랐다. 수련을 한 사람도 아닌데......
가끔 멀리 떠나있을 때 갑자기 수리해야하는 일이 생기면 아저씨한테 부탁만 하면 고쳐놓고 가신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은. 긴 여행에서 돌아와 수리비를 드려도 마음 편한 사람. 나에게 있어 금산타일 아저씨는 집 수리에 있어서는 항상 이세연 이었다. 주택에 살면서 매번 다른 사람한테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무척 힘들지 않을까. 어떤 부분이 고장나도 전화 하는곳은 한군데면 족하다. 우리동네 산책을 하면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변기가 막혀도, 물이 새는곳이 생겼다고 말을하며 오래 이곳에 산 사람이니 공사 하시는분 소개를 부탁받을 때가 있다. 그럴때, 난 서슴없이 금산타일 아저씨를 소개하곤 한다. 집수리에 있어 금산타일 아저씨는 이세연이니까....
걱정꺼리가 생겼다. 40대 후반에 이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땐 금산타일 아저씨도 40대 초반이었다. 한창 일하기 좋은 나이때 부터 아저씨는 우리집 집사에 다름아닌 역할을 해 주셨다. 오랜 단골 식당의 주인이 나이들어 은퇴를 하기도 하고, 물러받을 가족이 없는 단골집은 하나 둘 문을 닫는데가 늘어간다. 이럴때 난 내 나이 먹는것 보다는 금산타일 아저씨의 나이들어 가는게 걱정스럽다. 아저씨 입장에서 보면 자식에게 물러줄 수 있는 아주 탄탄한 사업이라 생각 하시지만 , 몸으로 모든걸 터득해야 하는 힘든 직업을 물려받으려 하지않아서 이다. 금산이 고향이신 후덕한 아저씨. 공사 마무리를 다 하지 않은채 내일로 미뤄도 그냥 기다린다. 마무리 해 줄 때 까지.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테니까. 나한테 있어서 금산타일 아저씨는 골키퍼 이세연 선수니까.
그 후덕한 아저씨는 12월이면 제주도산 방어회를 무척 즐기신다. 제주도산 방어회를 비행기로 공수해 해마다 친구들과 한번은 꼭 파티를 하신다. 그 때 마다 우리집엔 가족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고 두툼한 방어회가 배달된다. 우리동네 사람들중 유일하게 나한테만 보내 주신다는 금산타일 아저씨. '아저씨, 엄청 고맙심데이. 우리동네 사람들 모두를 챙기고 싶으실텐데...ㅋㅋㅋㅋ'
주택에 살면서 이분이 안계셨더라면 많이 신경쓰이고 많이 힘들었을테다.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 오늘. 금산타일 아저씨는 모른다. 한번도 말 한적이 없으니까. 나에게 있어 금산타일 아저씨는 든든한 골키퍼 이세연 선수같은 사람이라는걸.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는걸 금산타일 아저씨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믿음을 줄수 있다는 것. 이게 가장 큰 자산이라는 걸.
어려운 공사라 걱정되는 일이라도 생기면 아저씨는 이렇게 말을 해 주신다. - 걱정마세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안되는게 어디있어요.-
첫댓글 금산타일 아저씨별명을 주택골키퍼라 해주세요
ㅎㅎㅎ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