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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마태오 19,3-12
왜 핑계를 발견하는가? 사명이 아니라 꿈으로 살기에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모세의 법을 우선시하여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면 절대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누구는 핑계를 찾고, 누구는 핑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누구는 꿈을 살고 누구는 사명을 살기 때문입니다.
아래 이야기는 ‘세이노의 가르침: 가난한 사람들은 선량한가?’를 짧게 편집해서 올린 글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상황에서 가장에게 그런 평가를 어떻게 내릴 수 있는가?’라고 인상 찌푸리며 불평할 수 있지만, 욕먹을 각오 하고 이 글을 쓴 세이노의 생각도 들어보았으며 좋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인 1990년 봄, 서울 천호동의 반지하 셋방에서 살던 엄 모 씨(40세)와
부인(38세), 그리고 아들(8세), 딸(6세) 모두가 연탄불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한 일이 있었다.
엄 씨 가족은 4년 전부터 이 셋방에서 보증금 50만 원 월세 9만 원을 내고 살아왔는데 집주인이 집을 수리하여야 하므로 방을 비워 달라고 해 이사 갈 집을 물색했으나 오른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 것이었다.
서울에서 고교를 나온 엄 씨가 처음 택한 직업은 군에서 배운 운전이었다.
그는 결혼 후 서너 군데 직장에서 차를 몰았으며 모 국회의원의 자가용 운전사로 월 60만 원을 받고 일하다 차를 망가뜨린 실수 때문에 그만두었고 몇 개월 전부터 친구가 경기도 부천에서 하는 부동산 소개업을 도와줬으나 벌이는 한 달에 삼십만 원 선에 불과했고 일정치 않았다.
엄 씨는 2남 1녀의 맏이였다.
그래서 서울 변두리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을 늘 괴롭게 여겼지만 죽기 며칠 전에도 노모에게 생활비로 15만 원을 부쳤다.
부인은 집에서 자수 미싱을 하며 생계를 꾸렸으나 죽기 얼마 전 전세 목돈을 만들고자 재봉틀마저 팔았다.
그러나 이때 받은 76만 원은 옮겨 갈 방을 구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어린 아들은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가 미싱을 팔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TV 소리가 잘 들렸기 때문이다.
방 안도 참 깨끗해졌다.” 명성교회 신자였던 엄 씨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주님께서 현숙한 처녀를 어머님 눈에 띄게 하셔서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 가지, 다만 한 가지 나에게 물질의 축복, 남들처럼 돈 잘 버는 재주만은 주지 않으셨다.
…집을 비워 달라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고민에 빠져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집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는 무능한 가장. 이런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불평 한마디 해 본 적 없이 늘 쾌활한 아내, 당신은 정녕 천사이리라.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께 혼난다는 말을 종알거리는 아이들, 너희도 정녕 천사이리라.
… 전세금 마련을 위해 추진했던 일들이 모두 제대로 안 돼 이젠 방법이 없다.
나 혼자 세상을 떠나려고 했지만.
…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떨어진 처자식의 앞날이 얼마나 고생스러울 것인가.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어 오고 있는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지게 될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도 없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내 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정치하는 자들, 특히 경제 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 이상 조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서 없는 자들의 절망과 좌절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엄 씨는 죽기 전 장례비용이라고 적은 봉투에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9장과 1만 원권 지폐 10장 등 1백만 원을 담아 방안 책상 위에 놓아두었으며 부동산 소개일을 하면서 고객을 태우고 다니고자 월부로 산 프레스토 승용차를 팔아 장례 비용에 보태 달라고까지 했다
(당시의 거의 모든 신문 기사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당시 어느 경제학 교수는 모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잘못된 분배 구조가 고쳐지지 않으면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참과 혼란은 비인간적 이기심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제도 개혁들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다시는 가난하기 때문에 죽는 일이
없도록 다 함께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정한 제도 개혁이면 반대하지 않으며, 집주인이라고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느냐고? 그렇다.
첫째, 나는 ‘듣기 좋은 멋진 말’을 하는 그 교수가
세를 놓고 있는 집이 있다면 당연히 시세에 따라 세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둘째,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못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임대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기에 셋집의 수는 대폭 줄게 되고 임대 가격은 대폭 올라 버리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더욱 살기 힘들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증명된 바 있다.
셋째, 거의 모든 기자, 소설가, 방송작가, 교수, 종교인 등이 자살한 엄씨를 ‘착하고 효자인 데다가 가족도 사랑하였고 성실하였으나, 가난하였기에 갑자기 오른 집세 때문에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자살한 사람’으로 묘사하였지만 실제 상황을 좀 더 파악하여야 한다.
그는 군 제대 후 무려 15년 이상 운전을 하였음에도 저축이 없었다.
국회의원 자가용 기사를 하면서는 월 60만 원의 봉급을 받았는데 1990년 당시는 근로자 최저임금이 16만 5천6백 원이었고 월급 100만 원 이상을 받은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5~6%에 불과하였음에 비추어 볼 때 적은 봉급은 결코 아니었다.
넷째, 그는 친구가 하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나가면서 고객 접대용이라는 명분으로 프레스토 승용차를 월부로 샀지만 집은 천호동이었고 일터는 부천이었다.
그 먼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였다는 것은 그의 처지로 볼 때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게다가 차를 월부로 산 것을 보면 신차였다는 말이며 프레스토보다 더 싼 차들도 있었는데
월부로 그 차를 구입하였다.
보증금 50만 원 월세 9만 원짜리 사글세 집에서 사는 처지에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을까?
다섯 째, 1990년은 이미 산업계에서 3D 업종 전체에 대한 근로 기피 현상이 나타나 일당 3~4만 원에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가 다른 일을 하고자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잘 알지도 못하는 복덕방 사무실에 나간 이유가 도대체 뭘까? 돈도 잘 벌고 편해 보였기 때문 아닐까?
능력과 지혜가 필요했던 사람은 우선은 그 자신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자기에게 물려진 원인은 그의 소비생활과 일하는 태도 때문이지 피할 수 없는 유전인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중략).........
성인들은 핑계를 대지 않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핑계가 있더라도 결국 죄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핑계는 사명을 찾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뜻만
이루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사명을 찾아 삶의 의미로 삼는다면 결코 핑계 대고 무너지는 일은 없습니다.
꿈을 좇지 말고 사명을 삽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9,3-12
통치자와 권력자의 모델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이니 경사 중의 겹경사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분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들의 애국심에 가슴 뛰고 설레야 할 광복절인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초라하고 굴욕적입니다.
제대로 된 통치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는 하루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멋진 국왕이 한 분 있습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975∼1038)입니다.
헝가리에 가면 얼마나 스테파노가 존경받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수호성인이면서도 정교회 쪽으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 국민들 가운데 스테파노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무척이나 청빈했습니다. 왕으로서 화려한 복장을 피하고 아주 소박하고
단출한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백성의 필요성에 언제나 활짝 열려있었기에 굶주리던 백성들을 위해 왕실의 곳간을 활짝 열어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자신의 왕관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며 자신의 손에 맡겨진 헝가리 왕국 안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자신의 생애 안에 잘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신앙과 삶, 기도와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현대 성인의 선구자요 리더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의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그는 헝가리 왕국이 성모님의 푸른 망토 안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더불어 헝가리 모든 백성들이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도록 적극 장려했습니다.
그래서 성모승천대축일을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던지 그는 가급적 성모님 축일에 임종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03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했습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신생 헝가리 왕국을 성모님께 맡기고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 앞의 한 신앙인으로서 성모신심에도 투철했지만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각별한 성모신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도 세상을 통치해야하는 왕이었던지라 불가피하게 군대를 동원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영주들이 반기를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출정식 전에 스테파노는 성당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따라 평화로이 이루어지도록 오래도록 기도를 올렸고 성모님의 특별한 중재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지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반군을 진압한 후에도 그는 패장들을 관대하게 끌어안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왕권의 상징이었던 왕관과 홀, 그리고 검까지도 하느님과 성모님께 봉헌했던 참 신앙인 스테파노였습니다.
성모님께 자신의 왕관을 봉헌한 스테파노의 오른 손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매년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대축일 때마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순회하며 헝가리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강론>
(2024. 8. 16. 금)(마태 19,3-12)
<주님의 주권부터 믿어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19,3-9)”
1) 여기서 ‘시험하려고’는 ‘시비를 걸려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산상설교에서 이혼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5,31-32).”
바리사이들은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에 예수님께서 ‘버려도 된다.’고 대답하시면 산상설교와 다른 말을 한다고 공격했을 것이고, ‘버리면 안 된다.’고 대답하시면 신명기 24장 1절에 있는 율법을 거스르는 말을 한다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버려도 된다.’고 대답하시면, 헤로데 편을 들었다고 백성을 선동했을 것이고, ‘버리면 안 된다.’고 대답하시면, 세례자 요한처럼 헤로데를 비난했다고 헤로데에게 가서 고자질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명기 율법이 아니라 창세기의 천지창조 부분을 말씀하신 것은, 바리사이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혼인에 관한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2)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는 것과 혼인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일부일처제’와 ‘혼인불가해소성’은 모두 ‘하느님의 법’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한 일”이라고, 즉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신앙인은, 세상의 모든 일은 전부 다 주님이신 하느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일들은, 하느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사의 은총’에 대한 믿음은, 바로 그 신앙이,
즉 하느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신앙이 출발점입니다.
3) 세례성사의 경우, ‘내가’ 종교와 신앙을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해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신품성사의 경우에도 ‘내가’ 사제직을 선택하고, 사제가 되겠다고 ‘내가’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해서 사제가 됩니다.
<만일에 자기가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한 일이니, 중간에 그만두는 것도 내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대단히 오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혼인성사의 경우에도 똑같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한 일도 내가 한 일이고, 결혼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내가 한 일이다. 그러니 이혼하는 것도 나의 권한이고 권리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큰 죄가 되고, 그것도 역시 대단히 오만한 생각입니다.
<지금 말하는 혼인성사는 세속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그런 결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혼인성사로 이루어지는 혼인에서는,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고, 혼인 자체도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잘 간직하고 끝까지 지켜서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은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4)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라는 말씀은, “모세가 그런 율법을 정한 것은, 혼인성사에 대한 믿음이 아직 미숙하던 시절의
과도기적 조치였을 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은, “그 율법은 모세가 정한 것이지 하느님의 법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이혼에 관한 모세 율법을 예수님께서 폐지하신 말씀입니다.
9절의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라는 말은, 예수님의 원래 말씀이었는지, 마태오 사도가 속해 있던 교회의 관습이 반영된 말인지, 아직도 논란이 많은 말인데, 우리 교회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라는 대원칙은 불륜을 저지른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부부생활이 크게 손상되고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억지로라도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혼은 인정하지 않지만 별거는 인정합니다(1코린 7,11).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