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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기맥 한 구간 – 백마산,가창산,일자봉,왕박산시루,삽고개
1. (가창산 오르면서 뒤돌아본) 영춘기맥 뭇 산들, 멀리 가운데가 태화산
폭풍은 날뛰었다. 좌로 우로 몸이 마구 흔들리고 발은 당장 감각을 잃었다. 비박색 안의 입김이 얼굴을 덮으며 얼음
막을 쓴 것처럼 됐다. 서로 다리를 부딪치며 온몸을 부벼댔다. 여기서 잠들었다간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 자연의
맹위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새삼 느꼈다. 때때로 눈을 감으면 곤두박질치는 파도 속에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폭풍이 벽을 때리고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몸이 바늘에 찔리는 것 같다. 우리는 난파선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를 확보하고 있는 하켄이 구명대다. 밤은 끝이 없어 보였다.
아침이 밝았는데도 막막했다. 레쇼 빙하도 보이지 않았다. 산이란 산은 온통 짙은 회색 일색이었다. 가끔 희미하게
나타나는 것은 에귀 베르트와 드류다. 그랑드 조라스 정상에서 130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거리가 끝이 없는
느낌이다. 그러니 어제 저녁에 마지막 암벽까지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다시 등반을 재개했다. 폭풍은 조금도 약해질 기미 없이 계속 산에 부딪쳤고 정상 능선의 얼음을 부숴서 날렸다.
이제는 손도 발도 마음대로 듣지 않았으나 정상으로 빠지는 마지막 구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뚫고 나가야 했다.
반드시 정상에 올라서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이렇게 마음을 굳히니 지금까지 잘 놀지 않던 손에
힘이 가고, 얼어붙은 홀드도 꽉 잡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등반이 아니고 생존을 위한 결사투쟁이다.
―― 발터 보나티 저, 김영도 옮김, 『내 생애의 산들』 ‘그랑드 조라스 북벽 동계 초등 1963년’(조선매거진, 2012)
▶ 산행일시 : 2026년 8월 22일(토), 비 바람 구름 안개
▶ 산행코스 : 중산재,백마산,가창산,709.1m봉,일자봉,문영월재,조을재,앙박산시루,삽고개
▶ 산행거리 : 도상 11.3km
▶ 산행시간 : 6시간 17분(09 : 24 ~ 15 : 41)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21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7 : 20 – 잠실역 9번 출구
08 : 28 – 치악휴게소( ~ 08 : 45)
09 : 24 – 중산재(340m), 산행시작
09 : 44 – 백마산(519.8m)
09 : 55 – 522.1m봉
10 : 18 – △549.5m봉
10 : 44 – 598.5m봉
11 : 00 – 589.4m봉
11 : 08 – 농원 철조망
11 : 35 – 갑산지맥 갈림길, 674.2m봉
12 : 17 – 가창산(△818.6m)
13 : 06 – 일자봉(692.7m)
13 : 35 – 문영월재
13 : 58 – △566.9m봉(흑석산)
14 : 30 – 조을재(455m)
14 : 59 – 왕박산시루(527.8m)
15 : 18 – 고속도로 굴다리
15 : 41 – 삽고개, 산행종료
16 : 30 – 의림지 공용주차장, 저녁( ~ 18 : 16)
18 : 43 – 치악휴게소( ~ 18 : 53)
20 : 30 - 잠실역
2. 산행지도
산행그래프
아마 영춘기맥을 종주한 지는 어언 20여 년 전이다. 그 한 구간을 다시 간다. 이번 주말도 비가 내린다고 하여, 어느
산을 갈까 이 산악회 저 산악회를 둘러보던 중 신사산악회가 종주 중인 영춘지맥 가창산 구간 산행에 오랫동안 적조
했던 벽산 선배님의 이름이 보였다. 뵙고 싶고 반가운 마음에 나도 가겠다고 했다. 오늘 신사산악회 버스경유지인
잠실역에서(일부러 일찍 나갔다) 벽산 선배님을 뵈었다. 그간 십수 년(?)의 세월이 선배님을 비켜 간 것 같다.
들머리인 중산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엄한길 산행대장님의 산행 설명이 있었다. 오늘 가는 가창산 구간이 영춘기맥
(영월 태화산에서 춘천 새덕봉 넘어 경강역까지 약 272km의 산줄기이다)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되지 않을까 라고
한다. 산행코스는 A와 B, 두 개 코스로 나누었다. A코스는 중산재에서 가창산 넘어 삽고개 지나고 동막고개까지
약 17km이고, B코스는 삽고개까지 약 11km이다. 산행시간은 A코스 기준 8시간이고, 마감시간은 17시 30분이다.
그런데 A코스의 삽고개에서부터 동막교까지 약 6km 정도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인데, 실은 이 구간이 하이라이트
일 터였다.
나는 일단 A코스를 염두에 두었다. 벽산선배님은 B코스를 가시겠단다. 만나자마자 따로따로 산행인 게 내 산 욕심
에 비롯하여서 약간 께름칙하지만 산꾼들에게는 항용 있는 일. 산행준비는 버스 안에서 마쳤다. 중산재에 버스가
도착하자 곧바로 뛰쳐나간다. 그리 쉽지 않은 산행이 될 것이다. 부디 서두르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며 출발한다. 첫
발걸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인적이 흐릿한 풀숲이다. 기세 좋게 내가 맨 선두로 간다.
그러나 내 선두는 잠시였다. 10여분 지나자 젊은 준족 세 분(선두 3인조)이 앞장선다. 굳이 그들의 발걸음에 맞추려
고 않고 아무쪼록 내 걸음으로 간다. 그들의 족적을 쫓는 편이 낫다. 백마산 중턱을 지나자 펑퍼짐한 사면이 펼쳐지
고 딱히 등로나 인적이 없다. 풀숲과 잡목 숲을 누비는 선두 족적을 쫓는다. 무척 후덥지근한 날씨다. 금세 땀으로
젖은 바지는 다리에 칙칙 감기기 시작한다. 백마산 정상을 왼쪽으로 약간 벗어나서 오른다.
능선에 올라도 바람은 없다. 숲길이다. 백마산 오를 때 가빴던 숨을 내릴 때 고른다. 하지만 채 고르기도 전에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522.1m봉이다. 선두 3인조는 보이지 않게 앞서갔고, 뒤에 온 다섯 분과 함께 간다. 한
차례 길게 떨어졌다가 오른다. 오늘 오를 13좌 중 제3좌 △549.5m봉이다. 곧추선 오르막이다. 나로서는 가장 힘들
었던 봉우리다. 이 봉우리를 오를 때 기력을 탕진하다시피 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땅은 젖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1보 전진하려다 2보 후퇴하기 일쑤였다. 내가 지쳤다는 것을 덕순이도 알았다. 그들은 흐릿한 인적 주변에서 나 잡
아 봐라! 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먼저 죽을 거라고 장담하는 듯했다. 건들지 않고 그냥
간다. 아무리 사소한 한 동작이라도 허투루 할 수 없는 절박한 발걸음이어서다. 눈길 돌리기도 귀찮다. 549.5m봉.
동밖에 님의 정상 표지판이 반갑다. 549.5m봉을 넘으니 가파름은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잔 소나무 섞인 잡목 숲이
우거져 뚫고 지나가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구부정하게 허리 숙여 헤치고 나아간다. 20여 년 전에 여기를 지날 때도 이랬던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598.5m봉
과 589.4m봉을 그렇게 넘는다. 589.4m봉을 내리는데 능선 마루금은 철조망에 막혀 있다. 사유지 농원이다. 철조망
이 너무 높아서 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철조망을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야말로 골로 가는 셈이
라서 이 또한 쉽지 않다. 함께 가는 일행 중에 날랜 젊은이가 있다. 그가 철조망 왼쪽으로 돌더니 얼마 안 가 쪽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철조망을 넘어가서 쪽문을 열어준다.
3. 오늘의 여명
4. 오늘 산행 들머리인 중산재 가는 도중의 하늘
5. 철조망을 넘어간 사유지 농원
6. 가운데 봉우리 너머에 가창산이 있다. 왼쪽능선에서 갑산지맥이 분기한다.
7. 가창산 오르면서 뒤돌아본 영춘기맥 뭇 산들, 멀리 가운데 흐릿한 산이 태화산
여기를 나 혼자서 통과하려고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저 막고 푸는 식으로 철조망을 돌아갔을 것. 농원 안으로
들어가서 모처럼 부드러운 농원 길을 걷는다. 안부께에서 철조망을 넘어 농원 밖으로 나가야 한다. 허름한 농막은
비었다. 주인이 있다면 사정하여 자물쇠로 잠긴 철조망 정문을 열어달라고 할 텐데 난감하다. 방금 전의 그 젊은이
가 기지를 발휘한다. 철조망 문을 살피더니 발 디딜 틈을 찾아낸다. 그리고서 시범을 보인다. 그대로 따라 한다.
종종 산행은 이런 엉뚱한 데서 그걸 기어이 해냈다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다시 울창한 잡목 숲속 가파른 오르막이
다. 온몸을 비틀어 뚫고 나아간다. 521m봉. 갑산지맥 분기봉이다. 휴식한다. 이때는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달콤한
바람이다. 여태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참았다. 한 번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더욱 심한 갈증을 느낄 것
이고, 그때마다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금방 물 2리터가 동이 날 게 뻔해서다. 그렇게 참았던 물을(얼음물이다) 눈을
감고 음미하며 천천히 한 모금 마신다. 그 맛을 적절하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가창산 오르는 길은 비교적 뚜렷하다. 오르막은 아까에 비하면 한결 순해졌다. 674.2m봉을 넘고 오른쪽 벌목지를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벌목지라 해도 벌목한 지 오래되어 내 키를 훌쩍 넘는 덤불숲이다. 가다말고 뒤돌아 발돋움하
여 원경을 조망한다. 삼태산을 위시한 영춘기맥의 올망졸망한 뭇 봉우리들이 너 거기에 있느냐며 반기는 것 같다.
가창산 정상. 아무 조망 없는, 바람도 뚫지 못하는 울창한 숲속이다. 점심밥 먹는다. 오늘은 샌드위치다. 입안이
바싹 말라 한 입 먹고 물 한 모금 마신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가창산(歌唱山)은 일명 ‘까창산’이라고도 하며, 옛날 신선이 내려와 이곳에서 가무를 즐
겼다고 한다. 지금도 가창산 봉우리에는 신선이 바둑을 두던 너럭바위가 있다고 한다. 신라 때 어느 승려가 이 산에
머물면서 불도에는 등한히 하고 시주하러 찾아오는 부녀자들과 노래나 부르며 놀았다고 하여 가창산이라고 일컫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한다.
가창산 주변을 살펴보면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너럭바위는 보이지 않고, 정상 바로 옆 북쪽은 깊은 협곡이어서 들
여다보다 움찔한다. 가창산을 북서진하여 내린다. 긴 내리막은 709.1m봉에서 잠시 주춤하고 다시 내린다. 709.1m
봉을 지날 때였다. 네 명의 일행이 붙어가다시피 했는데 어쩌면 앞의 두 사람이 벌집을 건드렸다. 그들은 아무런 일
이 없었지만 뒤따라가던 두 사람이 벌에 쏘였다. 맨 뒤로 간 나는 두 방이나 쏘였다. 뒤통수와 팔뚝에 쏘였다. 가뜩
이나 더운 판에 벌에 쏘이니 정신이 혼미하다.
예전에 이곳에 광업소가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녹슨 굵고 긴 쇠파이프 관이 풀숲에 놓여 있다. 한 차례 뚝 떨어졌
다가 서서히 오른다. 여기도 빽빽하게 우거진 잡목 숲이다. 잡목 숲이 약간 느슨해지고 평평한 풀숲을 가는가 싶었
는데 거인산악회 지맥종주대에서 나무에 걸어놓은 일자봉 정상표지판을 본다. 잠시 휴식하고 나서 무심코 계속
북서진해서 내린다. 맨 앞에 가던 일행이 등로 분위기가 소연해짐을 느끼고 지도를 보고는 잘못 내려가고 있다며
되돌아가자고 한다. 이번에는 당분간이지만 내가 맨 앞장선다.
이상한 일이다. 내 산행하기 전에 도상으로 오늘 진행할 코스를 답사하면서 일자봉을 오르기 전에 왼쪽(서쪽)으로
직각 방향 틀어 내려야 한다는 점에 착안했음에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위안이긴 하다. 5분
정도 쭈욱 내리면 ┣자 갈림길이 나온다. 제천에서 세운 이정표가 있다. 직진은 설매산 2.63km, 오른쪽은 문영월재
1.0km이다. 오룩스 맵 꺼내 갈 길을 확인하고 문영월재로 내린다. 줄곧 내리막이다.
8. 영춘기맥 삼태산, 오른쪽 끝이 누에머리봉
9. 왼쪽이 삼태산 누에머리봉
10. 제천의 명산이라는 가창산 정상
11. 일자봉 주변, 밀림이다
12. 문영월재, 달을 맞는 문이라고 한다.
13. 왕박산 시루 오르면서 바라본 무등산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문영월재(門迎月-)다. 달을 맞이한다는 문이다. 왼쪽은 상풍 마을(2.0km)로 간다.
아, 봉봉 오르내리막이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한다. 겨우 500m대 봉우리를 오르내리느라 곤욕을 치른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다. △566.9m봉을 가쁜 숨 깔딱하여 오른다. 삼각점은 어디 풀숲에 묻혔는지 찾을 수 없다. 서울마운
틴에서 ‘흑석산’이라는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이 산 서쪽 아래가 흑석동(黑石洞)이다. 이다음 고개는 조을재(鳥乙-)
다. 고개의 형세가 조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한다.
조을재 주변은 개복숭아 나무가 많다. 우리 일행 6명이 조을재에 모여 휴식하며 개복숭아를 따먹는다. 잘 익은 말랑
이로 골라 딴다. 제법 실하다. 백도 말랑이 맛이다. 개복숭아가 이렇게 맛있다니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후의 산행
에 기운을 낸 건 순전히 이 개복숭아 덕분이다. 523.4m봉을 오른다. 대단한 험로를 만난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칡넝쿨을 헤치며 간다. 선두 3인조가 길을 뚫었다. 그 뚫은 길을 지나기도 쉽지 않은데, 선두 3인조의 칡넝쿨 터널
개통은 놀랄만하다.
칡넝쿨 터널은 523.4m봉을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오늘 산행의 마지막 13좌인 왕박산(王朴
山) 시루(527.8m)를 오른다. 방금 전에 칡넝쿨에 된통 당했던 터라 웬만한 잡목 숲은 귀엽다. 오른쪽(동쪽) 사면은
벌목지이다. 벌목지 너머로 왕박산과 무등산, 승리봉 등을 바라본다. 그리고 잡목 숲 사정없이 무찔러 왕박산 시루
다. 동쪽으로 왕박산은 0.7km 떨어져 있다. 어지간하면 다녀올 만도 한데, 혹시 아까와 같은 칡넝쿨이나 잡목 숲을
만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일행 21명 중 아무도 다녀오지 않았다.
비로소 잘난 등로를 내린다. 내 A코스를 그만 두고 B코스를 가기로 결정한 건 조을재에서였다. 미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러 일행 앞에서 선언해버렸다. 그 핑계로 벌에 쏘여 어지럽고, 마실 물도 달랑달랑하여 더 가기 어려운 점을
들었다. 홀가분하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려 발걸음이 가볍다. Y자 갈림길과 만난다. 당연히 더 잘난 길인 왼쪽 능선
으로 내리는데 내 앞에 가던 일행 한 분이 우리가 맞게 가느냐고 새삼 묻는다. 지도를 꺼내어 확인하니 오른쪽 능선
으로 가야하는데 잘못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되돌아 오른쪽 능선을 잡는다. 영춘기맥은 잡목 숲에 숨어 있었다. 쭉쭉 내린다. 농로로 떨어지고 절개지
오른쪽으로 돌아 38번 국도 굴다리 앞이다. 영춘기맥 마루금은 굴다리 지나 왼쪽의 나지막한 능선으로 올라 삽고개
고갯마루로 간다. 몇몇 일행은 그리로 가고 다수는 굴다리 지나 농로로 간다. 차도와 만나고 북쪽 삽고개 버스정류
장이다. 삽고개는 단종이 영월 유배지로 가는 길에 지니고 있던 지팡이를 이 고개 정상에 꽂아(揷)아 두었다고 한다.
우리 버스는 삽고개 고갯마루 너머 공터(남쪽 삽고개 버스정류장)에 있다고 한다.
길섶 풀꽃 들여다보며 간다. 나만 A코스를 포기한 게 아니다. 함께 걸었던 일행 7명 모두가 포기했다. 보이지 않게
멀리 가버린 선두 3인조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우리 버스가 주차한 공터에 도착하여 땀에 전 웃옷을 갈아입고 에어
컨 시원하게 틀어놓은 버스 안에서 서로 오늘 산행의 어려웠던 점을 얘기하며 되새김하는데, 그 3인조도 지친 모습
으로 오는 게 아닌가. 박수로 환영한다. 어째서 되돌아왔는지 물었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데를 풀숲과 잡목 숲에
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기진맥진하여 그만 되돌아왔단다. 이로써 우리 일행 21명 모두가 B코스 삽고개에서 산행
을 마쳤다. 그럼으로 해서 내가 흐뭇하다. 내가 못 간 A코스 동막고개까지 여러 사람이 갔더라면 얼마나 분했을까.
또 일행 3명은 일자봉에서 탈출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의 당초 최종 목적지인 의림지 공용주차장으로 올 것이다.
의림지로 간다. 공용주차장 근처 음식점에서 일행 3명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른 저녁을 먹는다. 1시간 남짓한 이 시
간이 나로서는 산행만큼이나 소중했다. 벽산 선배님과 저녁을 먹는 것이다. 한우육개장에 명주인 의림지 생막걸리
각 1병이다. 지난날 산행과 그때 함께했던 악우들의 소식 등이 이야기 주제다. 명주 취기 탓일까, 아련한 지난날 얘
기가 애틋했다.
14. 앞 왼쪽이 왕박산 시루, 오른쪽이 왕박산
15. 무등산
16. 앞이 왕박산, 뒤가 무등산
17. 물봉선화

첫댓글 익숙하지 않은 산이기에 산행기가 더욱 실감나네요. A코스를 모두 B코스로 변경해야 할 정도로 험산인가 봅니다. 벌엔 자주 쏘이시나 봅니다. ㅋ
벌이 아니면 쐐기에 쏘이는 수가 많아, '오늘도 무사히'가 아니라 '오늘은 무사히' 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여름 가시덤불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벽산님과 즐거운 해후를 하셨네요...
어렴풋이 가창산 부근의 거친 숲이 생각납니다.
영춘기맥이 예전과 다르게 종주꾼들이 뜸해서인지 길이 더 험해졌습니다.
근래 가장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날 간 일행 모두 힘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