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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설교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QXSB-hXDzhY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영(Spirit)은 물의 얼굴[水面]에 맴돌고(hover) 계셨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영(靈)”은 원래 “령”인데, 한국어에 ‘두음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단어 첫소리 ‘ㄹ’과 이중 모음 앞의 ‘ㄴ’이 각각 ‘ㄴ’과 ‘ㅇ’으로 발음되어 래일(來日)이 내일로, 녀자(女子)가 여자로 바뀌게 된 현상을 말합니다.
북한은 두음법칙을 쓰지 않죠! “이씨(李氏)”를 북한은 리씨로 씁니다. 원래 “리(李)”인데 남한에서는 두음법칙 때문에 “이(李)”가 된 것입니다.
“영(Spirit)”(루아흐)은 “냄새 맡는다”(루아흐)에서 나온 말로, 그 기본개념은 “움직이는 공기”며, “숨”, “바람”, “영(靈)”을 뜻합니다.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Spirit)”은 영어로는 “the Spirit of God”입니다. “하나님의 영(Spirit)”을 강조하기 위하여 주어가 동사 앞에 위치합니다.
성령님께서 운동(運動)하셨으며, 성령님께서 수면에 움직이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움직이시고 행동하실(move) 때 놀라운 일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움직이실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형태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뒤죽박죽인 상태가 모양을 갖추고 조화롭게 바뀝니다. 마치 카오스처럼 혼란스럽던 삶 속에 질서정연한 모양이 자리 잡힙니다.
성령님께서는 막막한 우리의 삶 속에 기적들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점차 좋은 건축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한다면 그가 우리의 인생을 좋게 만드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점차 완성된 모습으로 만들어 가실 것이니, 지금 완성된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그에게 순종합시다! 성령님께 순종하여야 성령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텅 빈 땅을 형태를 갖추게 하셨고 동식물로 채우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공허한 마음을 좋은 것으로 가득하게 채울 수 있으십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아니면 절대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만이 사람의 공허한 마음을 가득 채우실 수 있으십니다. 성령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시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기에 사람의 영(spirit)은 성령으로 채워져야 하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에 공허함을 느끼고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로 채우려고 욕심내고 그럴수록 더욱 목마르게 됩니다.
세상 것을 아무리 가져도 사람의 마음은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성령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마시고 또 마셔도 목마를 뿐입니다. 성령님께서만이 사람의 공허한 마음을 가득 차게 채우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의 앞이 마치 암흑처럼 캄캄할 때 성령님께서만이 그 답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움직이신 것은 에너지를 갖고 계신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에너지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에너지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가 수면 위에 움직이시자 수면에 파동(waves)이 생겨나고 파동에 의해 에너지가 운반되었습니다. 성령님의 활동 에너지가 우주 에너지의 근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빛이 없었고 암흑뿐일 때 성령님께서는 이미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암흑 속에서도 움직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캄캄합니까? 그 캄캄함 속에 성령님께서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1. “영(靈)”에 “호흡(breath)”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7절에 “내가 물을 홍수를 땅 위에 가져오고 있으며 생명의 영(breath)이 있는 육체를 그 하늘 아래서 파괴하기 위한 것이며, 그 땅 안에 있는 모두가 숨을 거둘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호흡(呼吸)”(루아흐)은 “숨 내쉴 호(呼)”, “숨 들이쉴 흡(吸)”인데, 숨 내쉬고 숨 들이쉬는 것, 둘 다 합하여 한자어로 “호흡”이라고 합니다.
“인공호흡”은 “인위적으로 호흡하게 시키는 응급 처치”인데 호흡이 멈춘 사람의 폐에 산소를 공급하고 뇌 손상을 막기 위해 합니다.
심장이 멈춘 지 4분이 지나면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손상이 시작되며, 5분이 지난 후에는 사망률과 영구적 뇌 손상 위험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뇌가 죽는 것이 “뇌사(腦死)”입니다. “사(死)”는 “죽을 사(死)” 자입니다.
제가 한자 뜻을 말하는 것은 한국어의 57%가 한자어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는 노아 할아버지가 만들었거나 그 아들인 셈 자손이 만들었습니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것들을 가져다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갑골문자(甲骨文字)는 기원전 14세기경부터 11세기경에 사용되었으며 한나라는 기원전 2세기(202년)에 건국된 나라인데 한자라고 우깁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기원전 14세기경에는 노아가 이미 죽은 후였으므로, 노아 할아버지가 한자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을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선(船)” 자를 보면 “배 주(舟)”와 “여덟 팔(八)”과 “구(口)”가 보이는데, 배[舟]에 여덟[八] 식구(食口)가 탄 사건을 “선(船)” 자로 만든 것입니다.
한자(韓字)는 노아 할아버지나 이후 셈의 자손이 만든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아시아 대륙에서 갑골문자 모양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노아가 우리 민족만의 조상이 아니듯 한자는 우리만의 글자도 아니고,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인데, 중국은 자기만의 문자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17절에 “영(breath)”(루아흐)은 “호흡”으로 번역되며, 하나님께서 생명의 호흡이 있는 육체를 그 천하에서 파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숨기시는 때 사람은 놀라게 됩니다(시 104:29). 하나님께서 생물의 호흡을 모으시며 생물이 죽고 그 먼지에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향한 그 좋은 뜻을 숨기시면 생물들이 놀랍니다. 생물들은 돌아보심인 은고(恩顧)와 은총과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돌보심과 지지를 숨기시면 생물들은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탱과 원조가 있어야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물들의 호흡(breath)을 모으시면 생물들은 사망합니다. 그가 사람들의 영(spirit)을 모으시면 사람들은 죽고 먼지에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먼지로 만드셨는데 사람들의 호흡을 가져가시면 사람들의 영(spirit)은 떠나가고 사람들의 몸은 죽고 먼지에 돌아갑니다.
2. “영(靈)”에 “바람(wind)”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생물과 짐승을 기억하셨으며 하나님께서 바람을 그 땅 위에 지나가게 만드셨고 물이 가라앉았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람”(루아흐)은 창세기 1장 2절의 “영(Spirit)”과 같은 말입니다. 창조 때 하나님의 영(Spirit)이 물의 표면 위에 맴돌고 계셨듯이, 홍수 후 하나님의 바람이 그 땅 위에 불어 새로운 창조를 이룬 것입니다. “호흡”과 “바람”과 “영”(spirit)에 안 보이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바람’을 그 땅 위에 지나가게 만드셨습니다.1)
그가 그룹에 올라타셨고 바람의 날개에 높이 나셨습니다(시 18:10).
사람들이 짐승 위에 올라타 이동하듯 그가 그룹 위에 올라타셨습니다. “그룹(cherub)”(크루브)은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창 3:24).
하나님께서 생명의 나무의 길에 그룹들을 머무르게 하셨고(창 3:24), 그룹의 모양은 속죄 덮개를 장식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출 25:18~22). 하나님은 그룹들 사이에 계십니다(민 7:89, 삼상 4:4, 6:2, 대상 13:6).
“바람의 날개”는 바람이 날개를 단 새와 같은 영상으로 그려집니다.2)
물에 그의 다락방을 들보(beams)를 놓으시며 구름을 그의 병거로 두시며 바람의 날개들 위에 걸으십니다(시 104:3).
우리는 산들과 언덕들을 흩뜨리고 바람이 그것들을 들어 올릴 것이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어지게 만들겠고(scatter),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며 하나님을 자랑할 것입니다(사 41:16).
이스라엘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은 신속하게 사라질 것입니다.3)
이스라엘은 악한 왕국들을 타작하여 부수며 왕겨 같이 놓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악한 왕국들을 흩뿌리고 그들은 폭풍에 흩어질 것입니다.4)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산들도 갈려서 바람에 흩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산들을 흩뜨리는 때 그 산이 원래 있던 곳은 평지가 될 것입니다.
탈곡기로 만듦을 받은 우리의 앞에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니(슥 4:7),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높은 산들을 타작하여 부수어야 합니다. 우리를 가로막았던 높은 장벽들이 갈려서 티끌이 되어 날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셔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막힌 담을 부수고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1~22절에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아니할 때 너희가 다만 그 무화과나무에 관한 것을 행할 뿐만 아니나 이 산에 ‘바다 안으로 던져질 것이라’라고 명령하면 그것이 행함을 받고. 너희가 기도 안에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믿는 너희가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나아갈 때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크고 높은 장벽들은 무너져 내리겠고 티끌이 되어서 흩날려 사라집니다.
3. “영(靈)”에 사람의 “영(spirit)”이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35절에 “영(spirit)의 비통함이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영(spirit)의 비통(悲痛)이 되기도 합니다(창 26:35). 사람의 영(spirit)은 슬픔과 아픔(grief)을 겪습니다.
창세기 41장 8절에 “그 아침 안에 되고 그의 영(spirit)이 난처하였고, 그가 보내고 이집트의 모든 마술사와 모든 지혜로운 자들을 불렀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라오의 영(spirit)은 난처하고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영(spirit)은 어려움에 부닥치고 두려워하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영(spirit)이 죽었다는 말은 없어져서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영(spirit)이 있기는 하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인 것을 뜻합니다.
불신자들의 영(spirit)이 죽었으나 그들에게도 영(spirit)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의 영(spirit)은 신자들의 영(spirit)과 색깔이 다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영(spirit)과 그렇지 않은 영(spirit)은 다르며, 불신자들과 신자들의 같은 영(spirit)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8장 3절에 “내가 지혜의 영(spirit)을 채운 자들에 말하고, 그들이 아론의 의복들을 그를 신성하게 구별하기 위해 만들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spirit)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 주시니(출 28:3), 예수님을 믿는 성령의 사람이라면 모두 지혜의 영(spirit)을 가졌습니다. 지혜의 영(spirit)으로 채워진 사람들은 업무를 지혜롭게 행하게 됩니다.
신명기 2장 30절에 “시혼이 우리를 지나가게 하기에 원하지 아니하니 하나님께서 그 영(spirit)을 완고하게 하시며 그 마음을 굳세게 하셨으니 이날과 같이 너의 손안에 그를 주시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사람의 영(spirit)을 부드럽게 하지 않으시면, 사람의 영(spirit)은 굳게 되고 단단해지게 됩니다(신 2:30).
파라오의 마음(heart)과 시혼의 영(spirit)이 이렇게 굳어진 것입니다. 이날처럼 이스라엘의 손안에 헤스본의 왕 시혼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 위해 사람의 영(spirit)을 굳어지게 하신 때, 마음(heart)과 영(spirit)이 완고하게 굳어진 사람은 결국에 멸망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하여 그의 영(spirit)을 완고하게 하고 대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땅을 나에게 주시려는 이유에서일 수 있습니다. 대적이 그의 영(spirit)을 굳게 하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집트의 영(spirit)이 공허하게 되고 그 의논을 하나님께서 삼키시고, 그들이 헛된 것과 신접한 자와 무당과 점쟁이에게 요구합니다(사 19:3).
“영(spirit)”은 “영혼”과 같은 뜻을 가진 병행으로 쓰이기도 합니다.5) 이집트의 영(spirit)이 비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영(spirit)은 공허해지기도 하며, 텅 비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비니까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 우상을 찾습니다. 또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제가 마음이 너무나도 공허하고 미래가 걱정되는데 점 좀 봐 주세요.’ 그런다는 것입니다.
점치는 영(spirit)은 미래를 볼 수 있나요? 미래를 예시하지 못합니다. 과거는 아나 미래를 모릅니다. 과거를 보고 대충 때려 맞히는 것입니다.
호흡, 바람, 영(spirit)은 원어에서는 모두 같은 용어라는 사실입니다.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원어에서는 모두 같은 말이 어떨 때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어떨 때는 “호흡”으로 어떨 때는 영(spirit)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영(spirit)에 사람의 영(spirit), 악령, 하나님의 영(Spirit)이 있습니다.
1) Kenneth Mathews, 『NAC 창세기 1』, NAC 성경주석, 권대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8), 468.
2) 김정우, 『시편 주석 Ⅰ』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5), 440.
3) John Oswalt, 『NICOT 이사야 Ⅱ』, NICOT 성경주석, 이용중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109.
4) Edward J.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장도선․정일오 공역 (서울: CLC, 2008), 101.
5) Wilf Hildebrandt, 『구약의 성령 신학 입문』, 김진섭 옮김 (서울: 이레서원, 2005), 39.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2).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