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앞, 한달새 20건 쏟아낸 ‘감세-현금성 지원’
정부 “금투세 폐지-증권거래세 인하
ISA 비과세 혜택 두배 이상으로”
이자 감면 등 사흘에 한 번꼴 발표
野 “돈 퍼주기” 대통령실 “억지 비판”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더라도 증권거래세를 예정대로 내리기로 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적용되는 비과세 한도는 대폭 올린다. 또 상장 기업의 가업승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시사했다. 정부가 최근 들어 세금과 전기요금, 은행 이자 등을 깎아주는 대책들을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대책을 쏟아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민생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예금, 펀드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한데 담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ISA의 가입 한도와 비과세 혜택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린다. 또 2025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투세 폐지 방침을 공식화하면서도,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인하해온 증권거래세는 내년까지 0.15%로 계속 내린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1일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완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달 17일까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총 20여 건의 감세와 현금성 지원,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굵직한 대책들을 발표한 일수만 따져도 거의 사흘에 한 번꼴이다. 대책의 상당 부분은 새해 경제정책방향 등 이미 예정된 ‘채널’이 아닌 고위급 당정협의나 대통령 참석 행사 같은 임시·일시적 성격의 행사에서 발표됐다. 이 중에는 금투세 폐지나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등 정부가 추진 사실을 부인했다가 며칠 안에 기류가 급변해 ‘깜짝’ 발표한 대책도 적지 않다.
한 달 새 발표된 대책들의 소요 재원은 이미 구체적으로 추산된 것만 10조 원 이상으로 분석된다. 아직 세수 감소 규모가 추산되지 않은 항목을 더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발표된 대책의 절반 이상은 향후 국회에서 관련법의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건전 재정을 내세우며 국민을 위한 예산을 꽁꽁 잠그더니, 총선이 다가오자 ‘돈 퍼주기’ 정부로 돌변했다”며 “국가 재정이 어찌 되든 총선만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돈을 풀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민생 대책에 대해 총선용 선심성 공약이라는 야당의 비판은 ‘어거지(억지) 비판’”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있으면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도 공매도 금지 조치 등이 ‘총선용 선심성 정책’이라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 “총선용 일시적인 금지 조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금투세 폐지-건보료 감면 등 최소 10조… “재원대책은 안보여”
[총선앞 선심 대책 논란]
정부, 한달새 20건 ‘감세-현금성 지원’
금투세-증권거래세 年3조 稅 축소… 건보-전기료 감면 등도 잇달아 발표
전문가 “기존 건전재정 기조에 역행”… 절반은 법개정 필요 현실성 논란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대통령실과 정부가 감세를 중심으로 하는 민생 정책들을 사흘에 한 번꼴로 내놓고 있지만 재원 대책과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한 달 동안 이어진 정책들로 세수만 최소 6조 원 넘게 줄어드는 데다 민간에서 투입되는 자금까지 합치면 소요 재원은 10조 원에 육박한다. 주요 정책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법률 개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으려면 야당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 한 달 새 발표 대책, 재원만 최소 10조 원
17일 열린 네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혜택 확대, 증권거래세 인하 유지만으로 줄어드는 세금은 연간 3조7000억 원이 넘는다.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금투세가 없어지면 1년에 1조5000억 원의 세수가 사라진다. ISA 비과세 혜택 확대로 줄어드는 세수만 최대 3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낮춰지고 있는 증권거래세로 덜 걷히는 세금은 연평균 약 2조 원 규모다.
정부가 앞서 내놓은 정책들도 세수에는 마이너스(―)다. 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연장과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으로 총 2조500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91개 부담금 규모는 올해만 24조6000억 원에 이른다. 폐지되거나 수정되는 부담금 숫자에 따라 적게는 수천억 원, 많게는 수조 원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세수 감소 폭이 구체적으로 추산된 정책들만 꼽아봐도 줄어드는 세금이 6조 원이 넘는다.
여기에 전기요금 및 건강보험료 감면, 또 시중은행의 이자 환급 등 정부의 의지가 반영돼 민간 기업에서 부담하는 액수까지 합치면 소요 재원은 10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187만 명에게 최근 1년간 낸 이자의 일부를 돌려주기로 하면서 은행권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2조 원이다.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 이자 환급, 소상공인 전기료 감면 등에는 정부나 공기업 재정이 실제로 투입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기존의 건전재정 기조에 역행하는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며 “금투세 폐지로 세수가 줄어들면 세수 결손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지출을 줄이겠다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걷힌 세금은 이미 정부 예상치보다 59조 원 넘게 부족하다.
● ‘정부 패싱’ 논란도 제기
또 현재 여소야대 지형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는 실현되기 힘든 정책도 많다. 최근 한 달간 정부가 내놓은 민생 대책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개가 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금투세 폐지는 당초 여야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정책이어서 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날 야당에선 ‘선거 개입’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3월까지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선심성 정책 발표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선거 개입 가능성이 있어 법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공개 최고위회의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선 대통령실 주도로 총선용 대책이 나오면서 ‘부처 패싱(건너뛰기)’이란 말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이달 2일 직접 밝힌 금투세 폐지는 정작 같은 날 기획재정부가 엠바고(보도 시점 유예)를 걸고 언론에 배포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는 관련 내용이 한 글자도 담겨 있지 않았다. 기재부가 세제 주관 부처인 만큼 통상 경제정책방향에 각종 핵심 세제 개편안이 포함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었다. 금투세 폐지는 발표 2, 3일 전에야 기재부 고위급에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공매도 금지가 발표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대통령실 주도로 주말에 비공개 고위당정회의가 열린 뒤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금지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대통령실이 공매도 금지를 추진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세종=송혜미 기자, 이호 기자, 이상헌 기자, 세종=김도형 기자, 세종=조응형 기자, 윤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