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가루는 소집과 해산의 반복인 농민군입니다- 상비군이라면 잡병인데, 일본식 독음을 모르겠네요- 하지만 오다가는 잡병을 운용한 대신 그만큼 일인당 전투력이 개판이 된 때가 많습니다- 아시가루는 분위기상 튀지를 못하는데(튀면 가족까지 왕따) 잡병은 튀면 그만 ㅡ.ㅡ 그리고 상비군이래봤자 전국시대에 넘쳐나는 부랑자를 모으면 되는 것이고, 그만큼 사기가 높다고 보긴 힘들죠- 오다의 영지인 오와리, 미노쪽은 상업이 상당히 발달한 동네로 기억납니다- 뭐 이것도 1570년대 중반에 가면 오다가의 세력이 워낙 강해져서 경제력이 그렇게 문제는 아니게 되죠 ㅡㅡ;
아시가루는 어차피 마을단위로 부대를 만들어서, 그동안 농사는 마을사람들이 해주면 되겟지만, 그래봤자 장기간 전투는 거의 불가능하죠;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어서, 다이묘들이 소집하는 아시가루수는 결국 한정되어 있습니다- 석고에 따라서 나오며 대략 250석에 한명정도 가능한거죠-
노부가나는 농민병과 용병군을 혼용하였습니다.(이 용병은 근대의 상비군과는 전적으로 다름) 용병을 운영하는 것(병농분리)은 노부나가만이 아닌 타 가문에서도 일부 사례가 있었으나 고용비로 인한 엄청난 재정부담, 용병들의 충성심과 전투력에 대한 비신뢰, 부하무장들의 반발등으로 잘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용병의 효용성은 계절에 영향없이 아무때나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오다군의 전투력은 타가문에 비해 형편없었으나 강한 기동성과 우수한 집단전술,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개떼 물량공세지요.
원래 오다군이 잡병을 대량으로 운용하기 전까지는 오다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강군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 이후 세력이 확장되면서 아시가루 이외에 잡병을 대량으로 운용하기 시작..-_-;; 그 이후 전투력이 개판된다죠..(나중에 시바타 등이 우에스키에게 개관광..) 잡병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괴롭히는 것 보다는 오다가 워낙 엄청난 물량으로 압박하면서 정치적 정략을 잘 이용하여 오다의 상대가 알아서 분열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죠.. 오다의 급습으로 휭사한 아마가와의 경우 이에야스의 이반, 기타 여러 영주들의 이반.. 신겐 사후 가츠요리의 나가시노 전투 패배 이후 다케다가문 영주들의 대거 이탈 등등..
아사쿠라가 날아갈 때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필두 가로인 카게아키라를 비롯 주요 중신들이 뒷다마 깠죠..-_-;; 쇼군 요시아키를 해치울 때도 주요 지점을 방어하던 몇몇 장수가 배반해 버립니다. 우수한 경제력으로 적장들을 매수해 버린 거죠.. 할복이네 뭐네 해서 전국시대 영주들 충성심 높을 거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자기를 보호해 준다는 전제만 있다면 쉽게쉽게 배반때리죠.. 뭐 중세 봉건시스템의 한계지만..(신겐도 시나노 지방을 평정할 때 써먹던 수법이라죠..-_-;;)
뭐 사실 ㅡㅡ; 오다가는 이미 미노를 차지한 후부터는 석고로는 세력이 상당히 커진 편이며, 아자이-아사쿠라 멸망이후는 ㅡ.ㅡ; 아무리 위치가 끔찍하다해도 압.도.적.물.량. 그리고 다이묘 휘하 영주의 배반문제는- 전국시대가 어차피 그런시대고 ㅡㅡ; 사실 오다까지만 해도 다이묘는 반항하면 대부분 날렸습니다- 휘하영주들은 뭐 어차피 내버려 둬야지 통치가 쉬우니 항복시키지만- 하지만 히데요시때는 그냥 다 남겨두고 공갈로 모리 항복, 시마즈와 호죠는 물량으로 항복, 다테등의 영주는 물량으로 공갈쳐서 항복 ㅡㅡ;
라기 보다는.. 이에야스의 동물과 같은 정치감각(정말로 정치감각 하나 끝내주는 사람입니다. -_-;; 요시모토가 휭사했다고 해도 이마가와는 관동의 3대 세력중 하나인데 바로 배반했으니..)으로 항복의 타이밍을 잘 잡은 거죠.. 정말로 히데요시가 압박하기 전에 알아서 기어 버립니다. 히데요시도 호죠 상대하기 전에 굳이 미카와 먹느라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대망에서야 히데요시가 천하영웅 이에야스를 얻기 위해서 애쓰는 것처럼 나오지만 히데요시가 기침 한 번 하면 이에야스 콩가루 됩니다.)
정책이라고 하긴 뭣하고.. 대전략 자체가 물량으로 압박->이후 정치적 교섭->내분->쪼개진 애들이 알아서 항복.. 뭐 이런 수순입니다. 그런데 히데요시나 오다가 특출나기 보다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주변 이민족들을 복속시킬 때 써먹던 수법이죠.. 로마도 잘나갈 때는 비슷하게 굴었구요..(뭐 압도적인 물량 보다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다 쓸어버린 뒤에 살살 구슬리는 수법입니다만..) 이후 유럽에서는 그정도 물량을 동원 가능한 국가제제가 나타나질 않았지요..
아 그리고 위에서 다른 영주들이 잡병을 별로 운영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물론 경제적 이유가 가장 중요하겠습니다만..) 정치적으로도 중앙의 다이묘가 완전 독립적 군사력을 갖추게 되면 그 군사력으로 할게 뻔하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 타지에서 사람들을 사서 전쟁 보내는 거 자체에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용감한 우리가 있는데 왜 근본도 없는 잡놈들을 데려다 쓰느냐.. 뭐 이런 식..
정확하게 아시가루의 성격은 농민군입니다. 각 가문마다 별도로 소집해서 훈련하는 과정이 있습니다만 법제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죠..-_-;; 즉 각 가문 맘대로.. 단 전국시대는 전쟁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농민들도 다 전쟁경험은 최소 2~3회는 있는 거고..(아주 어린 소년이 아닌한..) 따라서 통제장교만 있으면 집단전술 구사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어차피 개인 무술이야 포기하는 거고.. 대형만 신속하게 갖추고 창만 잘 들수 있으면 그 뿐이거든요.. 이런 농민병들 중에서 입신양명(...)을 꿈꾸고 개인적으로 무술을 배워서 공을 세워 하급 사무라이가 되는 경우는 꽤 흔했습니다.
아시가루의 원뜻은 농민병이 아니라 창병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영주들에게는 석고라고 해서 자신의 보유영지에 따른 징병의무가 있었고 여기에 따른 편제로서 원래는 아시가루가 나옴니다. 한명의 기마영주밑에 사무라이 넷, 아시가루 사십명 이런식의 편제란 거죠. 물론 영지상황에 따라 편제는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비록 가장 허접해 보이는 아시가루라해도 이를 농민병이라 부르는 것은 약간의 어폐가 있습니다. 사이토 도산, 오다 노부나가 이전의 일본은 철저한 봉건제였고 저러한 농민병조차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참 전쟁에서 쌈질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시키가 지휘하고 있더라 이런 말을 보면
적당히 어느정도의 선은 짐작할 수 있죠. 훈련 상황은 역시 제각각이었겠지만 좀만 봐도 이 석고라는 것이 병력공출이란 것으로 밑에 녀석들을 얽매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테고 몇몇 대영주에게는 원대한 계획의 일부이겠지만 중소영주만 되도 할 수 없이 나가야 되고 나가면 살아남아야되니 적어도 밑을 만한 녀석을 데리고 가는건 당연하다 생각해야 겠지요. 그리고 한참 치고박아서 전쟁경험이 많았다 이 것은 좀 어불성설입니다. 어중이 떠중이를 죽을지도 모르는 전투에 데리고 간다뇨. 대부분의 농민들이 전쟁에 전자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맨날 영주와 영주가신들 사무라이, 그리고 사무라이 밑에 있는 암것도 아닌 녀석들한테까지 시달리던 최하층 농민, 그리고 상인, 이 중 상인 출신으로서 봉건제도를 타파해야겠다고 해서 나온 인물이 사이토 도산이고 이 인물이 농민들에게 일종의 자경단을 조직할 수 있게 허용, 나름의 무력과 촌락에서의 행정력을 가지게 해줌으로서 농민들에게 굉장한 지지를 얻게 되고 자신또한 영주로서 굉장한 성공을 하게 되죠. 일개 상인 출신으로 일국을 다 먹었으니. 그리고 사이토의 자식은 아니지만 실상 사이토의 정치비젼면에서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이토의 최대라이벌의 아들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란거죠.
첫댓글 아시가루들은 대부분 반 상비군이라고 들었는데,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다가 전쟁이나 필요한 일이 있을경우 징집되는 군사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근데 오다 노부다가가 반 상비군 아닌 상비군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저도 그런 소리를 들어서리..그게 궁금하네요
제가 알기로는 오다는 상비군화 한것으로 압니다. 농번기 되면 오다의 군대의 전력이 다른 팩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했다고 하더군요. 다른 팩션은 농사지으러 흩어지니....ㄷㄷㄷ;;;
아....!! 이거 꼭 어떤분이 올려줬으면 좋겠소!!!! (일본군제떄문에 일전에까인 1인)
요즘은 이런 동양사적인 질문과 글만 봐도 반갑네요 -_-ㅋ 에고...
아시가루는 소집과 해산의 반복인 농민군입니다- 상비군이라면 잡병인데, 일본식 독음을 모르겠네요- 하지만 오다가는 잡병을 운용한 대신 그만큼 일인당 전투력이 개판이 된 때가 많습니다- 아시가루는 분위기상 튀지를 못하는데(튀면 가족까지 왕따) 잡병은 튀면 그만 ㅡ.ㅡ 그리고 상비군이래봤자 전국시대에 넘쳐나는 부랑자를 모으면 되는 것이고, 그만큼 사기가 높다고 보긴 힘들죠- 오다의 영지인 오와리, 미노쪽은 상업이 상당히 발달한 동네로 기억납니다- 뭐 이것도 1570년대 중반에 가면 오다가의 세력이 워낙 강해져서 경제력이 그렇게 문제는 아니게 되죠 ㅡㅡ;
자뵤오<= 정도로 읽던거 같습니다.
아시가루는 어차피 마을단위로 부대를 만들어서, 그동안 농사는 마을사람들이 해주면 되겟지만, 그래봤자 장기간 전투는 거의 불가능하죠;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어서, 다이묘들이 소집하는 아시가루수는 결국 한정되어 있습니다- 석고에 따라서 나오며 대략 250석에 한명정도 가능한거죠-
노부가나는 농민병과 용병군을 혼용하였습니다.(이 용병은 근대의 상비군과는 전적으로 다름) 용병을 운영하는 것(병농분리)은 노부나가만이 아닌 타 가문에서도 일부 사례가 있었으나 고용비로 인한 엄청난 재정부담, 용병들의 충성심과 전투력에 대한 비신뢰, 부하무장들의 반발등으로 잘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용병의 효용성은 계절에 영향없이 아무때나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오다군의 전투력은 타가문에 비해 형편없었으나 강한 기동성과 우수한 집단전술,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개떼 물량공세지요.
원래 오다군이 잡병을 대량으로 운용하기 전까지는 오다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강군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 이후 세력이 확장되면서 아시가루 이외에 잡병을 대량으로 운용하기 시작..-_-;; 그 이후 전투력이 개판된다죠..(나중에 시바타 등이 우에스키에게 개관광..) 잡병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괴롭히는 것 보다는 오다가 워낙 엄청난 물량으로 압박하면서 정치적 정략을 잘 이용하여 오다의 상대가 알아서 분열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죠.. 오다의 급습으로 휭사한 아마가와의 경우 이에야스의 이반, 기타 여러 영주들의 이반.. 신겐 사후 가츠요리의 나가시노 전투 패배 이후 다케다가문 영주들의 대거 이탈 등등..
영주의 군대는 영주의 직속 부하들(친위대)과 석고를 가진 가신들의 군대, 영지내 예속되거나 반독립된 국인(호족)들의 군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히데요시의 부대는 자신의 영지내에서 뽑은 가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노부나가 직속 군단은 아니죠.
아사쿠라가 날아갈 때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필두 가로인 카게아키라를 비롯 주요 중신들이 뒷다마 깠죠..-_-;; 쇼군 요시아키를 해치울 때도 주요 지점을 방어하던 몇몇 장수가 배반해 버립니다. 우수한 경제력으로 적장들을 매수해 버린 거죠.. 할복이네 뭐네 해서 전국시대 영주들 충성심 높을 거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자기를 보호해 준다는 전제만 있다면 쉽게쉽게 배반때리죠.. 뭐 중세 봉건시스템의 한계지만..(신겐도 시나노 지방을 평정할 때 써먹던 수법이라죠..-_-;;)
오다 사후 히데요시에 이르러서는 이런 전략 자체가 더욱 심화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호죠와 모리 가문 날릴 때죠.. 압도적인 동원능력으로 싸움 한 번 안해보고 공갈을 쳐서 주요 중신들을 이반시켜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는.. 뭐 그런 형태입니다.
뭐 사실 ㅡㅡ; 오다가는 이미 미노를 차지한 후부터는 석고로는 세력이 상당히 커진 편이며, 아자이-아사쿠라 멸망이후는 ㅡ.ㅡ; 아무리 위치가 끔찍하다해도 압.도.적.물.량. 그리고 다이묘 휘하 영주의 배반문제는- 전국시대가 어차피 그런시대고 ㅡㅡ; 사실 오다까지만 해도 다이묘는 반항하면 대부분 날렸습니다- 휘하영주들은 뭐 어차피 내버려 둬야지 통치가 쉬우니 항복시키지만- 하지만 히데요시때는 그냥 다 남겨두고 공갈로 모리 항복, 시마즈와 호죠는 물량으로 항복, 다테등의 영주는 물량으로 공갈쳐서 항복 ㅡㅡ;
히데요시의 정책은 결국은 이거군요... 물량과 협박을 통해 피는 최소한으로 흘리고, 얻을 것은 다 얻는... 아... 근데 이에야스는 예외인가... 히데요시가 물량 동원했다가 한 번 피 보고 나서 이에야스가 알아서 항복했으니...
라기 보다는.. 이에야스의 동물과 같은 정치감각(정말로 정치감각 하나 끝내주는 사람입니다. -_-;; 요시모토가 휭사했다고 해도 이마가와는 관동의 3대 세력중 하나인데 바로 배반했으니..)으로 항복의 타이밍을 잘 잡은 거죠.. 정말로 히데요시가 압박하기 전에 알아서 기어 버립니다. 히데요시도 호죠 상대하기 전에 굳이 미카와 먹느라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대망에서야 히데요시가 천하영웅 이에야스를 얻기 위해서 애쓰는 것처럼 나오지만 히데요시가 기침 한 번 하면 이에야스 콩가루 됩니다.)
정책이라고 하긴 뭣하고.. 대전략 자체가 물량으로 압박->이후 정치적 교섭->내분->쪼개진 애들이 알아서 항복.. 뭐 이런 수순입니다. 그런데 히데요시나 오다가 특출나기 보다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주변 이민족들을 복속시킬 때 써먹던 수법이죠.. 로마도 잘나갈 때는 비슷하게 굴었구요..(뭐 압도적인 물량 보다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다 쓸어버린 뒤에 살살 구슬리는 수법입니다만..) 이후 유럽에서는 그정도 물량을 동원 가능한 국가제제가 나타나질 않았지요..
아 그리고 위에서 다른 영주들이 잡병을 별로 운영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물론 경제적 이유가 가장 중요하겠습니다만..) 정치적으로도 중앙의 다이묘가 완전 독립적 군사력을 갖추게 되면 그 군사력으로 할게 뻔하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 타지에서 사람들을 사서 전쟁 보내는 거 자체에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용감한 우리가 있는데 왜 근본도 없는 잡놈들을 데려다 쓰느냐.. 뭐 이런 식..
정확하게 아시가루의 성격은 농민군입니다. 각 가문마다 별도로 소집해서 훈련하는 과정이 있습니다만 법제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죠..-_-;; 즉 각 가문 맘대로.. 단 전국시대는 전쟁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농민들도 다 전쟁경험은 최소 2~3회는 있는 거고..(아주 어린 소년이 아닌한..) 따라서 통제장교만 있으면 집단전술 구사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어차피 개인 무술이야 포기하는 거고.. 대형만 신속하게 갖추고 창만 잘 들수 있으면 그 뿐이거든요.. 이런 농민병들 중에서 입신양명(...)을 꿈꾸고 개인적으로 무술을 배워서 공을 세워 하급 사무라이가 되는 경우는 꽤 흔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임진왜란 이후 일본측의 피해가 궁금하군요. 이건 찾아봐도 제대로 된 글이 안보이는...
1593년 일본군 잔존병력현황보면 나오는데요 ㅡ.ㅡ
전사자수는 아는데, 이것이 일본내부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는지가 궁금합니다.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계층이 수십만의 원정군으로 외지에 갔다 절반가량이 죽었는데, 이러한 피해가 일본내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요? (뭐 그래도 전쟁터가 된 조선보다야 낫겠지만...)
만화책 센고쿠 라는 책을보면 오다 노부나가에 대해서 잘나옵니다 센고쿠 곤베이라는 자의 일생을 그린건데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히데요시 아래에서 싸운 무장의 일대기 입니다 소설은 아니고 만화책이지만 정말 재미있습니다 오다의 엄청난 포스를 느낄수 있습니다
역시 세상은 돈이 지배한다!!! 황금만세!!
아시가루의 원뜻은 농민병이 아니라 창병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영주들에게는 석고라고 해서 자신의 보유영지에 따른 징병의무가 있었고 여기에 따른 편제로서 원래는 아시가루가 나옴니다. 한명의 기마영주밑에 사무라이 넷, 아시가루 사십명 이런식의 편제란 거죠. 물론 영지상황에 따라 편제는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비록 가장 허접해 보이는 아시가루라해도 이를 농민병이라 부르는 것은 약간의 어폐가 있습니다. 사이토 도산, 오다 노부나가 이전의 일본은 철저한 봉건제였고 저러한 농민병조차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참 전쟁에서 쌈질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시키가 지휘하고 있더라 이런 말을 보면
적당히 어느정도의 선은 짐작할 수 있죠. 훈련 상황은 역시 제각각이었겠지만 좀만 봐도 이 석고라는 것이 병력공출이란 것으로 밑에 녀석들을 얽매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테고 몇몇 대영주에게는 원대한 계획의 일부이겠지만 중소영주만 되도 할 수 없이 나가야 되고 나가면 살아남아야되니 적어도 밑을 만한 녀석을 데리고 가는건 당연하다 생각해야 겠지요. 그리고 한참 치고박아서 전쟁경험이 많았다 이 것은 좀 어불성설입니다. 어중이 떠중이를 죽을지도 모르는 전투에 데리고 간다뇨. 대부분의 농민들이 전쟁에 전자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맨날 영주와 영주가신들 사무라이, 그리고 사무라이 밑에 있는 암것도 아닌 녀석들한테까지 시달리던 최하층 농민, 그리고 상인, 이 중 상인 출신으로서 봉건제도를 타파해야겠다고 해서 나온 인물이 사이토 도산이고 이 인물이 농민들에게 일종의 자경단을 조직할 수 있게 허용, 나름의 무력과 촌락에서의 행정력을 가지게 해줌으로서 농민들에게 굉장한 지지를 얻게 되고 자신또한 영주로서 굉장한 성공을 하게 되죠. 일개 상인 출신으로 일국을 다 먹었으니. 그리고 사이토의 자식은 아니지만 실상 사이토의 정치비젼면에서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이토의 최대라이벌의 아들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