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살아오면서 특히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쓴다. 그 분들 한테 내가 얻은 어떤것 들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냥 일기처럼 몇줄 써 내려가던 때와는 달리 정식으로 남겨보자는 마음을 갖게됐다. 글을 읽고 오타를 하나하나 지적하거나 잘못된 단어를 골라 보내주며 관심갖고 읽어주는 분이 계신다. 그냥 써 내려가다 마무리가 되면 '발행'을 바로 눌러 글을 올리는 내 글에는 오타가 많다. 그 때마다 오타는 쌀에 니 골라내듯 찾아 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오타 하나하나를 찍어 보내줘 나름 도움을 받곤 한다. 지금은 발행 을 바로 누르지 않고 쌀에 니 고르듯 다시 읽고 또 읽지만 오타가 나온다.ㅎㅎ
지금은 세포수련 위주로 수련을 시키다 보니, 꼭 필요해서 오는 사람들만 만나게 된다. 예전엔 사람들이 좋아서, 수련원에 들르기만 해도 충분히 쉴수있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이는 주변사람들한테 수련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완벽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을 방해받는 공간으로 만들기 싫어서 라고 했다. 내 나이 마흔중반 부터 꾸준히 수련원을 오가시던 분이 계신다. 벌써 스무해가 훨씬 지난 세월동안 . 나는 그분을 상무님이라 부른다. 효성그룹 상무시절부터 수련을 시작하셨기에 익숙하게 입에 익은 호칭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있다. 이분의 호칭은 참 많다. 신문사 편집국장 시절부터 뵈었던 분들은'국장님' 나처럼 그룹 상무시절부터 알게된 지인들은 '상무님' 마지막으로 어느회사 사장님으로 퇴임을 하셨는데 그 시절 만났던 분들은 '사장님' 이라 칭한다.
-상무님,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어요?- 궁금한걸 못참는 내가 한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즐겁고 좋았던 때가 신문사 기자시절이었어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 순간 바로 듣게되는건 그리 흔하지 않다. 아, 그시절이 정말 보람있고 좋으셨구나. 지금은 개개인이 휴대폰을 들고 있지만 신입기자시절 백색전화는 비싸기도 했지만 전화 놓기가 무척 어려운 시절 이었는데 기자집엔 반드시 전화가 있어야 한다며 회사에서 전화를 놓게 했던 일. 그 때문에 기자가 된걸 온 동네 사람들이 알게된 이야기도, 동경특파원 시절의 이야기도 가끔 들려주시곤 했다. 두 아드님이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하는것도 일본에서 지냈던 그 기자시절이 있어서 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번역해서 출간한 책 [당당하게 살아라] 를 환 하게 웃으시며 선물로 주신 적이 있다. 가끔 글쟁이 라는 말을 하시는 분이다.
후쿠시마 쓰나미 사건,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몇년 지난 후 였다. 하루는 후쿠시마 관광청에서 초청을 해 여행을 하고 오셨다며 수련원엘 들리셨다. 그곳에서 골프부터 여행까지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신 후, 수련원에 들리셨는데 아직 후쿠시마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민감한 나는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얼굴빛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하면서 땀을 삐질 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방사능이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걸 확실히 알게된 날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시던 상무님은 얼른 일어서시며 후쿠시마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다. 보통사람은 잘 모를수 있지만 어떤것에도 민감한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자 무척 미안해 하시며 바로 떠나셨다. 다음부턴 절대로 이런 여행은 하지 않겠다시며, 아무것도 몰랐던 무지를 무척 미안해 하시며...
그 이후 한동안 발길이 뜸 하셨다. 후코시마 여행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50대 초반에 만나 수련원과 연이 닿았다. 그땐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후배 기자들이 드나들고, 정다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편히 쉴수 있는 곳이라 찾았지만 70대 중반의 나이가 되고보니 리셋 할데가 많다며 웃으신다.
"여기에 오면 정말 리셋 이 돼서 왔어요. 옛날에 아내는 당신은 건강한데 왜 가? 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ㅎㅎㅎ 요즘은 아내가 매일 가라고 해요." 리셋, 한참동안 리셋 이란 단어가 귓전에 맴돌았다. 리셋.
언젠가 부터 아침에 하는 기도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하시며 웃으신다.
"아침엔 항상 기도를 해 왔어요. 그런데 기도 하나가 늘었어요. 성영주원장을 알게해줘 감사합니다. 하는.."
막내 아드님인 재욱이가( 어릴적 부터 아는탓에 우린 재욱이라 부른다) 노래를 하고, 모델을 직업으로 삼고, 드라마에 출연을 하게되었 을 때, 우린 김상무님 둘째 아드님이라고 하며 드라마를 봤다. 그땐 김재욱이 김상무님 아들 재욱이로 통했다. 세월이 흘렀다. 재욱이는 아버지보다 훨씬 유명한 배우로 성장해 있다. 가족이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식당에서도 호텔에서도 재욱이를 알아보는 일본인 팬들이 무척 많아 놀랐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이젠 김상무님 아들 재욱이가 아니라, 김재욱 배우의 아버님으로 통한다. 가장 뿌듯해 하시는 일이다. 재욱이 아버님으로 통하던 그땐 드라마 출연을 하게되면 꼭 연락을 하셨다. 어느 순간부터 재욱이가 출연하는 드라마 이야기도, 영화 이야기도 전하지 않으셨다. 이젠 재욱이 아버님이 아니라 김재욱 배우의 아버님으로 통하기 때문이었다.ㅎㅎ
수련원에 안오시는 동안에도 항상 블로그나 페이스북의 나를 관심있게 지켜보셨다고 한다. 3년을 포스팅을 하지 않던 나에게 무슨일이 있나 걱정도 하셨다고. 그냥 정말 쉬고싶어서, 포스팅을 하면 연락이 오니까 새로운 인연을 맺고싶지 않아 아무것도 안하고 살았다고 대답을 했다. 요즘 다시쓰는 글이, 글솜씨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
-옛날엔 그냥 하루하루 일어나는 이야기만 했었구요. 요즘은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해요. 주고 싶은게 많아요.- 어쨋든 옛날에 낸 책을 다시 읽어보라고 하신다. 그 때보다 많이 달라진걸 본인도 알게 될거라시며......
글 쓰는걸 좀 배워볼까요?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 몰랐어요.ㅎㅎㅎ 상무님은 대답하신다.
"아뇨, 배우지 마세요. 지금 이나이엔 마음에 녹아있는 것 들이 글로 써지는거지 배워서는 쓸수 없어요. ㅎㅎㅎ"
옛날 기자 초년생일적 이야기를 해 주신다. 선배 대기자님이 해 주신 말이 있어요. 기사를 쓸땐, 중학교 3학년생 정도의 수준이 읽고 이해 할 수있는 글을 써야한다. 절대로 어렵게 쓰면 안된다. 가장 쉽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게 가장 잘 쓰는거다.
기자는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라 듣는 직업이다. 취재나 인터뷰를 하더라도 상대가 말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줘야 제대로 글을 쓸수가 있다. 그 때 부터 듣는 직업인이 되셨단다.
오랜 기자생활에서 얻은 습관때문인지 지금도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다. 누가 말을 해도 한마디 추임새도 없이 들어만 주신다. 요즘 내가 하는 이야기는 기억나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글로 씌어질 이야기들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한마디를 하시면 " 이렇게 말을 하면서 스스로는 정리가 되는거예요. 이젠 한번 써 보세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지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듯 하는 말을 들어 주기만 해도 그들이 스스로 정리하는 경험을 참 많이 했어요."
여행중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그 장소를 알려드리면 가족과 함께 여러번 가서 먹었노라 전해주시고, 얼마전엔 곰배령 '세쌍둥이네'를 다녀 오셨단다. 오지여행 칼럼을 쓰면서 곰배령이 좋아, 곰배령에서 만나던 키작은 들꽃들이 좋아 상무님 가족과 나들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곰배령을 아마 나만큼이나 좋아 하셨던가보다. 온 가족의 구심점이 된 손녀 태이양을 돌보시느라 함께 못가셨다며 친구들과 다녀온 이야기를 해 주신다. 오랜만에 들른 곰배령주변이 너무 많이 바뀌어있어 옛날 그 느낌이 없어져 아쉬웠다시며...
하지만 우리가 함께 묵었던 '세쌍둥이네'는 지금도 펜션 영업을 하고있고, 어린 세쌍둥이들은 지금 그곳에서 함께 펜션을 운영하고 있더라는 소식도 전해주신다. 오랜세월, 추억을 공유 한다는게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답다는걸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된다. 젊은 나이엔 그냥 지나쳤을 정말 아무것도 아닐 이야기들도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양평의 자그마한 국수집 '표미숙국수' 표미숙 아주머니가 만들 어 주던 노가리찜, 국수 한그릇 이야기에도 미소가 번진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곳엔 다시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옛날 아름다운 곰배령 아랫마을을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노가리찜을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서. 이젠 새로운 곳의 새로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고싶다. 내가 찾은 그곳을 존경하는 상무님께 또 알려 드리고 싶다.
첫댓글 고마와요.읽다보니 공유한 기억들이 꽤 돼네요.한밤중에 깨어 내 얘기를 읽으니 이상하기도 하고...
공유한 기억들 참 많아요. 울산 반구대 암벽화 보러갔던 기억 안나세요? 한의원에서 열어준 파티에서 노래한곡. 한약재 달여낸 물에 몸을 담그게 했던 기억이 새로워요.ㅎㅎㅎ 재욱이가 어머니 피를 이어받아 노래를 잘 하는거라고 하셨어요.ㅎㅎㅎ
그날 사모님 노래한곡 들을 수 있던 날이었어요.ㅎㅎ
공유한 기억들이 많은데 지금부턴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가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