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기 양말

[덕유]

8. 아버지와 아기 양말

                                  남영은

아버지,

아버지는 오늘도 서랍 깊숙이에서 그것을 꺼내십니다. 아버지의 가늘고 마른 손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수여한 ‘호국영웅기장’과 ‘기장증(記章證)’이 들려 있습니다.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하여, 참전국가유공자에게 수여한 증서와 기념메달이지요.

이제 96세가 되신 아버지에게, 6월은 여전히 힘든 달이고 음력 7월은 여전히 쓰린 달임을 저는 압니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제 이야기인 듯 선명해진 아버지의 역사를 이렇게 글로 적습니다.

아버지는 24살 엄마는 20살에 결혼하셨지요. 그리고 이듬해 아버지는 경찰관이 되었고 첫딸도 낳았습니다.

그러다가 경찰 복무 3년째이던 1950년에 한국전쟁을 맞았고, 아버지는 곧장 대구로 내려가 경찰전투부대에 합류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서둘러 처자식을 아버지의 본가로 보낼 채비를 꾸렸지요.

피난 행렬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시가는 100리 길의 대호지면에 있었고, 서해안 물줄기의 나루터까지 배웅한 후 두 분은 그렇게 헤어져야 했습니다.

첫딸의 이름은 ‘진숙’이었습니다. 이제 곤지곤지를 시작한 어린 딸은 젊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벙글거렸지만, 아버지는 울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3살의 엄마는 시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대신하여 힘이 되어주어야 할 홀시아버지는 이미 옥고를 치르고 계셨지요. 남한 내 좌익 세력의 동조와 반란에 의해서였습니다.

엄마의 시아버지 즉 저의 할아버지인 ‘남상혁 지사’는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로, 1919년에 충남의 ‘대호지 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서신 분이었습니다. 이미 3·1운동에도 참여하셨던 ‘남정 지사’, 자수태극기를 흔든 ‘남상락 지사’, 경성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남주원 지사’는 모두 할아버지의 일가문중이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는 대‘호’지면 ‘도’이리의 남씨 종중에서 세운 서당인 ‘도호의숙’에서 함께 수학하신 생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은 격동의 시대를 겪은 굴곡진 민족사에서 이제는 애국지사로 그 이름을 올리고 계시지요.

아버지가 일찍이 경찰에 투신한 것도, 일본과 좌익의 총칼 앞에서도 강직했던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엄마는 집안의 어른도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어린것을 끌어안고 공포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온 마을을 장악한 좌익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집 안에 들이닥쳤지요. 경찰인 남편의 근황을 조사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부상당하여 전쟁터에서 돌아온 경찰이나 군인까지도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소식이 끊긴 남편은 어쩌면 전사했을지도 모를 터였습니다. 그때 문중의 어른들은 엄마에게 협박을 피해 친정으로 가도록 일렀지요.

그리하여 엄마는 다시 짐을 꾸려야 했습니다.

8월 중순 어느 뜨거운 날에 돌도 되지 않은 어린것을 업고 50리 길을 또 떠났습니다. 4년 전에 스무 살의 고운 색시가 가마에 올라 시집가던, 참으로 평화롭기만 하던 길이었지요. 엄마는 땡볕 아래를 종일 걸었고 어린것은 축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즈음, 아버지는 경찰전투부대에 편성되어 팔공산전투가 있던 대구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군인과 경찰이 각각 주둔하였는데, 아버지는 팔공산의 사찰인 ‘파계사’를 본부로 삼고 산꼭대기에서 적들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의 전투는 격렬하였지요. 한 차례의 싸움을 치르고 나면 절반의 전우가 없어졌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총격이 사그라지면, 아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 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안 되지. 살아남아 내 딸을 꼭 봐야지. 곧 돌이 될 테니 지금쯤 걷기를 시작했겠네.”

그렇게 일진일퇴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고 1950년 9월 28일에 서울 탈환의 역사가 있었지요.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아버지의 전쟁도 일단락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미군에 합류되어 올라왔고, 근무지였던 원북지서에 복귀할 수 있었지요. 이로써, 살아서 고향땅을 다시 밟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즈음이었습니다.

본가로 갔던 아버지는 그길로 아내와 딸을 찾아 처가로 달려왔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기적으로 살아서 돌아온 것이지요. 총탄에 맞선 장하고 고마운 남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립문을 밀치고 숨차게 뛰어들어선 아버지의 손에는 작은 광목보따리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당까지 맨발로 달려 내려온 엄마의 품에는 아기가 없었습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내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고, 그 위로 보따리도 힘없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 안에는 딸에게 주려고 어렵게 구해온, 연두색과 흰색 줄무늬의 작은 아기 양말이 한 켤레 들어있었지요.

그랬습니다.

외가에 온 날부터, 아기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온몸이 뜨거워지더니 이내 의식마저 잃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열사병이었겠지요.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무섭고 아득한 길로 그렇게 홀로 떠나갔습니다.

그날은 음력 7월 18일이었지요. 아기의 외할아버지가 첫 손녀의 작은 몸을 뒷산의 차가운 땅에 묻으셨습니다.

남편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어린것의 주검을 안고 엄마가 서럽게 울었듯이, 이번엔 아버지가 아기 양말을 안고 며칠을 또 처절히 울었습니다.

“진숙아, 진숙아…….”

두 분에겐 첫딸이 태어난 ‘음력 구월 열아흐레’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듯이, 첫딸을 보낸 ‘음력 칠월 열여드레’는 일생에서 가장 쓰린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 92세이신 엄마는 요즘 들어 더욱 자주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경찰이라 살았어. 싸우느라 집에 안 와서 살 수 있었어.”

이는 고향으로 피신한 많은 젊은이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좌익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한 사실에 근거한, 엄마 나름의 해석이며 믿음이지요.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호국영웅기장’은 아버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거인 동시에 아버지 역사의 값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엄마는 또 말씀하십니다.

“첫째가 참 예뻤어. 얼굴은 뽀얗고 코는 오뚝하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도 배우기 시작했었어. 그리고 너희 아버지가 가져온 아기 양말은 얼마나 고왔는지. 나는 그렇게 예쁜 양말을 그때 처음 봤어. 전쟁 중인데도 어떻게 그런 물건을 구할 수 있었는지…….”

전쟁의 고통과 함께 가슴에 묻힌 첫 자식으로 인해 아직도 되뇌는 한과 설움이지요.

인제 연세가 들어 정확한 발음조차 힘든 ‘음력 구월 열아흐레’와 ‘음력 칠월 열여드레’는 그렇게 부모님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지난번의 가족모임에서 말씀하셨지요.

“내가 죽으면 나라에서 주는 영구용 태극기를 사용해라. 그리고 국립호국원으로 가려고 한다.”

아버지,

한국전쟁은 북한군이 남한의 좌익 세력에 합세하여 일으킨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와 민족사의 굴곡을 체험한 이후에도, 아버지는 경찰직에 30년 넘게 몸담으시며, 올곧은 임무 수행과 당당함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는 전쟁의 현장에서 싸워냈다는 그리하여 이 땅을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자존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비극은 이젠 없으며 이러한 책무는 당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준 우리 후대가 짊어질 몫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세월이 더 흐른 뒤에는 어느 누가 그 어린것과 빛 고운 양말을 기억해 줄 것인가를.

오늘은 제가 감싸 안아봅니다.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야 했던, 그러나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 해마다 6월이 되면 더욱 가슴 쓰리게 하는, 두 분의 역사 속에만 남아있는 첫사랑 그 어린 것을. 그리고 아버지가 품속에 고이 안고 왔던 그 고운 아기 양말을.

아버지,

오늘 이 글을 아버지께 고이 올려드립니다.

[김춘자]

아버지는 경찰직에 30년 넘게 몸담으시며, 올곧은 임무 수행과 당당함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는 전쟁의 현장에서 싸워냈다는 그리하여 이 땅을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자존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비극은 이젠 없으며 이러한 책무는 당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준 우리 후대가 짊어질 몫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세월이 더 흐른 뒤에는 어느 누가 그 어린것과 빛 고운 양말을 기억해 줄 것인가를.
오늘은 제가 감싸 안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