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19년11월4일 12:20-16:00 약9키로 봉수산 자연휴양림-임존성-정상- 예당호 수변길-예당호 출렁다리- 예당호주차장
참가자:김진석,황인남,정한보,산취객
봉수산 [鳳首山]
봉수산은 예당저수지 바로 곁에 있으며 저수지의 서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대흥면 사람들은 대흥산이라 부른다. 봉수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산행을 하며 산성에서 산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고, 효제비에서 효도와 형제우애의 생생한 윤리교육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봉수산 산성안의 산마루에는 억새가 많아 한껏 가을 정취를 느낄 수도 있다.
봄이면 봉수산은 충남의 진달래산으로. 산 중턱에 있는 임존산성 성곽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지만 지루하지 않고, 정상 부근에는 빛바랜 갈대가 우거져 있고 오른쪽 성곽 아래에는 봉수산의 최대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
산아래의 예당저수지를 내려다 보는 멋이 각별하고 도침대사가 창건했다는 대련사도 가볼만 하다. 흥성군 금마면쪽에서 오를 수도 있지만 예당 저수지쪽에서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볼거리도 많고 교통이 편리하다.
오늘의 지도
오늘의 기록
예당저수지 옆 순두부집 금복돼지 회원여러분 보시고 복많이받으세요
순두집에서 바라본 봉수산
예당저수지:1928년 4월에 착공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와 광복 후 중단되었다가 1952년 12월에 다시 착공, 1964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유역면적은 3만7360㏊이고, 저수지의 규모는 둘레가 40㎞로서 동서 2㎞, 남북 8㎞이며 만수면적이 약 1,100㏊나 되는 광활한 국내굴지의 인공호수이다.
총저수량은 약 4700만톤으로 1만240㏊의 몽리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예당평야(禮唐平野)를 관개하고 있다. 저수지의 제방구조는 흙댐이며, 규모는 길이 814.5m, 높이 13.3m이고 물넘이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치한 테인터 게이트(tainter gate)가 특징적이다.
길이 약 25m 되는 콘크리트 물넘이에 설치된 26연의 자동식 개폐문은 평상시에 만수위를 유지하고 호우시에는 홍수조절의 기능을 가진다. 각 수문의 크기는 너비 6.0m, 높이 3.6m로 배제수량은 초당 63.2t이고, 총배제수량은 초당 1,645t에 달하며, 수문조작은 관리사무실에서 원격조정으로 하게 된다.
개보수실적은 준공 뒤 20년이 된 1984년에 물넘이·수문 및 통관의 보수가 있었고, 1985년에 제방의 보수공사가 있었으며, 현재 모든 기능이 양호한 상태에 있다.
이 밖에 담수어의 양식장과 낚시터로 유명하여 잉어·뱀장어가 양식되고 낚시인구도 연간 10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또한, 뱃놀이와 조종경기 연습장으로도 활용되며 1979년 전국체전 때에는 조정경기장으로 사용한 실적이 있다.
봉수산 휴양림앞 안내도
솔밭길
잠시휴식
예당호
예당호 출렁다리 교각이 보이네요
예당호 아름답습니다
임존성 가는길의 예당호 상류
임존성:사적 제90호. 봉수산과 그 주위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어 봉수산성이라고도 한다. 둘레가 약 2.5㎞이며 현재 남아 있는 북동쪽 성벽 높이는 4.2m, 서쪽 성벽 높이는 2.6m이고 너비는 1.6m이다. 그밖에 성문·수구문·우물터·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성은 한산의 주류성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뒤, 복신과 도침이 일본에 가 있는 왕자 풍을 왕으로 받들어 주류성에서 거병하는 한편 흑치상지
복신은 한때 사비성을 포위하기도 했으나 전세가 불리 해져 임존성으로 후퇴해 흑치상지와 힘을 모았다. 그러나 유인궤 등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의 공격과 백제부흥군 내부의 분열로 말미암아 여러 성이 차례로 함락되고 최후로 임존성마저 함락됨으로써 백제부흥운동은 막을 내렸다.
임존성: 사적 제90호. 봉수산과 그 주위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어 봉수산성이라고도 한다. 둘레가 약 2.5㎞이며 현재 남아 있는 북동쪽 성벽 높이는 4.2m, 서쪽 성벽 높이는 2.6m이고 너비는 1.6m이다. 그밖에 성문·수구문·우물터·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성은 한산의 주류성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뒤, 복신과 도침이 일본에 가 있는 왕자 풍을 왕으로 받들어 주류성에서 거병하는 한편 흑치상지 는 임존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복신은 한때 사비성을 포위하기도 했으나 전세가 불리 해져 임존성으로 후퇴해 흑치상지와 힘을 모았다. 그러나 유인궤 등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의 공격과 백제부흥군 내부의 분열로 말미암아 여러 성이 차례로 함락되고 최후로 임존성마저 함락됨으로써 백제부흥운동은 막을 내렸다.
임존성 성벽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