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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밀라노의 숨은 기적 찾기
『밀라노에서 온 편지』
밀라노와 주변 도시의 보물 읽어 주는 사제 이탈리아 밀라노의 곳곳에 숨어 있는 신앙의 보화들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읽어 주는 책. 밀라노의 브레라 국립 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에서 ‘교의 미술Art and Dogma’을 전공한 저자 박홍철 신부가 밀라노에서 5년여를 지내면서 밀라노와 주변 도시들에 숨어 있는 신앙의 보화들을 직접 찾아보고 스스로 체험한 바를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한다. 『밀라노에서 온 편지』는 팬데믹 등으로 모두가 힘겨운 상황에서 숨은 기적을 찾아낸 영적 일기와도 같은 에세이로, 모두가 힘든 이 현실에서 위로가 되며, 특히 밀라노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 저자 소개
박홍철
서울대교구 사제로, 현재 삼각지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그는 교회의 아름다운 가르침인 교의를 예술적인 시선에서 재해석하려는 ‘교의 미술Art and Dogma’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국립 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그는 교회의 프레스코화를 비롯하여 회화와 판화, 세라믹 그리고 현대 디지털 비디오까지 다채로운 분야를 두루 공부하였고, 최우수 점수로 졸업 논문을 통과하였다. 그 후 밀라노와 라벤나 등지에서 모자이크 연수를 받았다.
📜 목차
추천사 4
머리말 7
Ⅰ밀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
밀라노에서 보물 찾기 14
천사가 허락한 시간 32
Ⅱ 저는 지금 밀라노에 와 있습니다
용은 왜 노아의 방주를 탈수 없었을까? 40
그들은 왜 입맞춤을 했을까 49
밀라노가 사랑한 군종 신부 58
Ⅲ 밀라노, 밀라네제
세 가지 얼굴의 대성당 70
희망의 가시 78
행복한 밀라노인의 고백 86
Ⅳ 꿈이 있나요?
유니콘을 품은 성당 96
수레가 멈출 때 104
밀라노의 사막 114
Ⅴ길 위의 길에서
길 위의 길에서 126
길 위의 길에서 … 그리고 다니엘 134
길을 찾아, 갈레아차 142
Ⅵ 페르케Perch??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154
소녀가 손짓한 도시 파비아 162
양팔 없는 십자가 171
Ⅶ 인생의 맛, 각설탕 하나
천사가 머문 다리 182
로마의 아녜스 190
세 사람을 위한 하나의 무덤 199
Ⅷ 거룩한 사랑이 머무는 자리, 어머니
미소와 눈물의 성모 210
기적을 찾아 떠난 도시 페라라 218
기다림의 성모 224
Ⅸ 밀라노에게 보내는 편지
교황님의 휴가 236
쇠사슬과 뿔이 있는 성당 244
밀라노에게 보내는 편지 252
📖 책 속으로
도시 밀라노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해 보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치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남들과 다른 개성으로 그려 보라는 듯 말이죠. “뭐라고 딱히 말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은 잡히지 않는 향수 같아요.” 저에게는 밀라노가 그랬습니다. 좀처럼 마음을 보여 주지 않고 무절제한 간섭을 싫어하여 타인에게 무관심해 보이고 까칠해 보이다가도 속이 깊은 친구처럼 다가온달까요.
---「밀라노에서 보물 찾기」중에서
여기에는 여러 작품들이 눈길을 끌지만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인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그가 죽기 전까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뒤에서 안고 있는 피에타의 도상이지만,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보는 관객의 각도에 따라서는 돌아가신 아들 예수님의 위치가 어머니 마리아를 오히려 업고 있는 자세로도 보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안고 업으며 미완성의 조각은 완성된 사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이 정도면 당신은 도시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보다 더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하니까 말입니다.
---「밀라노에서 보물찾기」중에서
그즈음 저는 산 마우리치오 성당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우선 ‘탕자의 아버지’(루카 15,20)가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줄 것 같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보다 화려한 작품들이 많지만 자비로운 이 미소를 보고 있으면 제 안의 차가운 자책감까지 사르르 녹는 것 같아 그냥 좋았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위로는 태양처럼 아무 말 없이 다가옵니다. 폭풍 같은 삶을 담담하게 버텨 온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흔들리지 않는 미소랄까요, 닮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곁에 있나요?
---「저는 지금 밀라노에 와 있습니다」중에서
기억이 영혼을 잠식해 갈 무렵, 근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 ‘전문가’란 원래 그 분야에서 실수를 많이 해 본 사람이라고 하던데 …, 돌이켜 후회한들 머물지도 이루지도 못하고 …. 하지만 내일의 또 다른 과거인 ‘오늘’을, 그래도 살아 내야 합니다. 뜰 안에 들이치던 거센 바람이 가시자, 이어 꽃씨 하나 홀연히 손등에 앉아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지우고 싶은 제 못생긴 기억과 이제는 화해의 입맞춤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
---「그들은 왜 입맞춤을 했을까」중에서
밀라노 대성당의 두 번째 얼굴은, 비 오는 날 광장 바닥에 비친 모습입니다. 저는 비 오는 날의 대성당을 참 좋아합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외국 생활에서, 광장 바닥의 고인 물에 비친 대성당의 물그림자는 그 자체로 제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한 청년이 고뇌에 빠져 헤매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주교의 강론을 듣고 회개하게 되었답니다. 그의 이름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387년 4월 13일 주님 부활 대축일 성야에 오랜 방황을 끝내고 그가 세례를 받았던 바로 그 성당 터 위에 지금의 밀라노 대성당이 세워졌습니다. 대성당 지하에는 성인이 세례받은 세례대가 아직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얼굴의 대성당」중에서
성당 유리화의 아름다운 빛 때문일까요. 산 크리스토포로 성당은 소박하고 아늑한 엄마 품을 닮아서 그런지 특히 혼배 미사가 많은 성당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성당의 제대 배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에는 우리가 잘 아는 하느님, 천사들 그리고 마르코 복음사가를 나타내는 날개 달린 사자의 형상 등이 있는데, 신기하게 전설의 동물 유니콘도 그려져 있습니다. 하기야 유럽 어린이들은 곰 인형보다 유니콘 인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에 긴 뿔을 가진 전설의 유니콘은 염소의 수염, 당나귀의 꼬리 그리고 두 갈래의 발굽으로 르네상스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행운의 상징이기도 한 유니콘은 날카로운 긴 뿔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힘으로 어떠한 사악한 독도 해독할 수 있는 치유력을 지녔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전설의 유니콘이 성당에 왜 그려졌을까요.
---「유니콘을 품은 성당」중에서
1930년대 밀라노에서 활동했던 화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년)는 빈 캔버스에 단지 칼로 죽 긋기만 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그림을 본 이들은 실망하며 야유를 보냈지만 그는 캔버스 ‘틈’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무한’을 탐구하고자 하였습니다. 불안한 존재의 고뇌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함을, 어찌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여 답할 수 있을까요. 익숙하게 정렬된 일상의 틈을 찢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비를 향한 손짓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물음’이 그래 왔습니다.
---「길 위의 길에서」중에서
세상에 ‘아름다운 고통’이란 게 있을까요. 돌아보니 아름다웠던 건 아닐까요? 작가 에기노 바이너트는 ‘성모님의 고통의 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열 살 때부터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바라고, 열네 살에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하여 깊은 수련과 기술을 익혔던 수도자, 독일에서 불던 나치의 광풍으로 군에 징집되었지만, 히틀러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야 했던 청년, 전쟁 중 부상으로 오른손을 잃고 사랑하는 삶이었던 수도원에서도 퇴회해야 했던 사람, 그리고 전쟁 후 황폐한 상황에서 거리의 구걸로 연명해야 했던 작가. 그에게 사라진 건 오른손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향했던 그의 길이었습니다. 다시 왼손과 가슴팍으로, 때로는 떨리는 호흡과 영혼 깊이 자리한 신앙을 조각과 칠보 기법으로 창작해 내기까지 그는 고통스러운 방황을 거듭해야만 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중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서 폐허가 된 성당에서는 부서진 십자가가 발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지요. 교회의 성미술 안에서 예수님의 손은 ‘기쁜 소식의 선포’를 의미했기에, 보이지 않는 그의 양손은 새로운 의미를 가집니다. 14세기부터 플랑드르 지방에는 ‘그리스도는 손이 없습니다’라는 익명의 시가 전해집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습니다/단지, 오늘날 그분의 일을 수행할 우리의 손밖에는
그리스도는 발이 없습니다/단지, 사람들을 그분의 길로 인도할 우리의 발밖에는
그리스도는 입술이 없습니다/단지, 오늘날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우리의 입술밖에는/ 그리스도는 도움이 될 방편이 없습니다/단지, 오늘의 사람들을 그분께 인도할 우리의 도움밖에는/ 우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읽는 성경이며 말씀과 행적으로 쓰신 하느님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양팔 없는 십자가」중에서
근데 노을 지는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촬영하며 저녁마다 열렸던 나보나 광장의 야시장을 가기 위해 수차례 건넜던 천사의 다리에서 저는 불현듯 궁금해졌습니다. ‘왜 천사들은 저 다리 위에 머물렀던 것일까요?’ 이 조각상들은 이미 존재했지만 저에게는 그동안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원래 1535년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다리 양쪽에 성경의 인물들을 세우게 했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의 조각상까지. 그러다 오늘날 교황님이 축복하시는 자리인, 바티칸의 이중 타원형 광장을 만든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에게 다리 위의 조각상들을 교체하는 소임을 맡겼습니다. 그때부터 ‘천사의 다리’는 고통과 슬픔을 지니게 되었지요. 다리 위에 머문 열 천사들 중에 ‘명패를 든 천사’와 ‘가시나무 관을 든 천사’는 그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베르니니는 슬픔이 가득한 천사들이 죽음의 길을 걷는 예수님과 함께하길 원했습니다.
---「천사가 머문 다리」중에서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을 몰랐던 사람들, 그러나 과연 그들만 그럴까요. 질투도 분노도 시간과 함께 사라져 골동품보다 못한 우리 인생은 어떤가요. 사랑도 하느님도 그에 관한 고집만 믿으며 살았던 건 아닐까요?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질투를 품었고 소유할 수 없는 성녀를 조롱했으며, 강요하고 굴복시키고자 했습니다. 성녀를 통해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무너뜨리고 싶었는지. 혹시 자신들이 세상에서 회피하고자 했던 그 너머의 ‘영원’을, 오히려 그녀 안에서 발견했던 건 아닐까요.
---「로마의 아녜스」중에서
이때 암브로시오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이 그려진 성화가 덮여 있던 천이 걷히며,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300명의 신자들 앞에 드러났습니다. 기적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지 스스로 움직인 성모의 기적 이후, 밀라노에서는 전염병이 순식간에 물러났습니다. 제대 왼쪽에 위치한 암브로시오의 성모 마리아를 보는 순간, 저는 불교의 미륵보살상에서 느끼던 은은한 동양의 미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염화미소拈華微笑라 했던가요. ‘말하지 않아도 너의 고통을 나는 안다.’고 암브로시오의 성모는 향기로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고통에 빠진 이들과, 그 곁에서 묵묵히 지켜 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 저는 암브로시오의 성모를 보며, 기도가 아니라 기적의 약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미소와 눈물의 성모」중에서
제대 뒤편으로 이어진 원형의 회랑으로 들어서자, 끝자락 벽면에 영원한 새로움을 간직한 「기다림의 성모」 이콘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월을 견딘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인간적인 기쁨과 머뭇거림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두렵지만 설레는 표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벽에 그려진 생각보다 소박한 색채의 이미지는 겸손한 모습으로 다가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기에 이를 본 사람들은 ‘출산의 성모’ 또는 ‘기다림의 성모’라고 했답니다.
---「미소와 눈물의 성모」중에서
🖋 출판사 서평
밀라노에 숨겨진 보화 찾기
이탈리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명실공히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지로 인정되는 ‘로마’가 떠오를 것이다. 그에 반해 밀라노는 이탈리아 최대의 대도시권을 형성하며 패션, 금융, 쇼핑으로 이름을 날리는 화려한 세속 도시로만 보이기 쉽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의 보화를 밀라노에서는 얼핏 찾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밀라노는 유구한 전통의 암브로시오 전례Rito ambrosiano를 보존해 온 밀라노 대교구가 자리한 곳이고, 고딕 양식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성당으로 알려진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밀라노에서 온 편지』는 현지를 잘 알고 그곳에서 직접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밀라노만의 숨겨진 보화들을 하나하나 섬세한 감성으로 읽어 내어 독자에게 전해 준다.
밀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밀라노에서의 한 달 살기
『밀라노에서 온 편지』의 첫 장은 밀라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개략적인 밀라노 탐방을 소개한다. 두 번째 장부터는 밀라노만의 매력과 밀라노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찾아가 볼 만한 곳을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로 소상히 들려주고 이미지로 보여 준다. 특히 밀라노를 개략적으로 소개하는 첫 장에서는 ‘기차 환승을 위해 밀라노에서 몇십 분만 있다가 떠나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물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밀라노에서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세 시간이 주어진다면, 한나절이 주어진다면,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 좋은지 재치 있게 답해 준다. ‘교의 미술Art and Dogma’을 전공하며 밀라노에서 5년여를 지낸 저자는 ‘밀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라며 밀라노와 친해지는 방법을 상냥하게 소개해 준다.
밀라노의 아름다움
『밀라노에서 온 편지』의 두 번째 장부터는 밀라노를 잘 알고 현지에서 직접 살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소중한 장소와 사람들을 예술가 사제다운 감성 풍부한 필치로 소개한다. 성당 안이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가득해 밀라노 사람들의 자랑거리이자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과 비견되는 산 마우리치오 성당Chiesa di San Maurizio al Monastero Maggiore,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년)의 「동정녀 마리아의 결혼식」이나 그 밖의 르네상스 시대 회화 작품들과 브레라 예술 학교 교수 프란체스코 아예츠(Francesco Hayez, 1791-1882년)의 「입맞춤Bacio」 시리즈 등 고금의 귀한 작품들을 소장, 전시한 브레라 미술관, 독일의 예술가 귄터 뎀니히Gunter Demnig가 나치 정권의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죽어 간 이들을 기리며, 그들이 살았던 거리에 설치한 작품 ‘스톨퍼슈타인Stolpersteine’ 기념비 등 밀라노의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으로 감상하도록 안내한다.
밀라노의 성당들
밀라노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전해오는 성당들이 많다. 우선 고딕식 성당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렬한 밀라노 대성당을 들 수 있다. 『밀라노에서 온 편지』의 저자는 이 성당에서 세 가지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밀라노 대성당은 무엇보다 색색의 대리석을 운반해 밀라노만의 독특한 성당을 구축하려고 나빌리오 운하까지 팠고, 브라만테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건축가들의 손을 거쳤으며, 암브로시오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이 현존하는 곳이다. 그리고 유니콘까지 그려져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성당인데 이름만은 거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산 크리스토포로 성당la chiesa di San Cristoforo sul Naviglio’, 동방 박사들의 유해 일부가 있으며 밀라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인 ‘산에우스토르조Sant?Eustorgio 대성당’, 876년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과 더불어 암브로시오 성인의 형인 사티로Satyrus 성인을 기념하는 작고 아담한 ‘산 사티로 성당Chiesa di Santa Maria presso San Satiro’ 등을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서사적으로 그린다.
그런가 하면 모스코바역 근처의 1400년대 고딕 양식으로 새로 복원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모후의 관을 쓰신 성모 마리아Santa Maria Incoronata’ 성당에 있는 양팔 없는 십자가도 소개한다. 이 십자가는 처음 기증할 때부터 ‘양팔 없는 모습’이었다며, 이 십자가를 보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의 양팔 역할을 하도록 깨우친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밀라노의 성지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오 성인이 네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성 나자로와 성 첼소의 시신을 발견한 장소를 기념하여 세운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첼소Santa Maria presso San Celso’ 성당은 기적의 성모 마리아 성지라고 한다. 이곳은 1485년 12월 30일 오전 11시 미사 중에 「암브로시오의 성모Madonna di S. Ambrogio」라고 불리는 성화를 통해서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당시 페스트균이 쥐를 통해 밀라노와 가까운 항구 도시부터 퍼졌는데, 암브로시오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이 그려진 성화에 덮여 있던 천이 걷히면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300명의 신자들 앞에 드러났다. 이후 밀라노에서는 전염병이 순식간에 물러났다고 한다.
두 번째 기적은 1620년 7월 13일에 일어났는데, 죽음의 전염병 앞에서 사람들은 다시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이번에는 성 나자로와 성 첼소 성인을 양옆에 두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던 15세기 프레스코 성화인 성모 마리아가 미소 대신 사람들을 향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날 이후로, 이 성화를 「눈물의 성모Madonna delle Lacrime」라고 불렀다고 한다.
밀라노가 사랑한 사람들
밀라노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성인이자, 악마가 질투할 정도로 착한 목자로 알려진 암브로시오 성인이 공경한 성인들이 있다. 바로 네로 황제의 박해 시대에 밀라노에서 순교한 쌍둥이 형제 게르바시오와 프로타시오 성인이다. 이들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주고, 수도 생활을 하던 나자리오 성인과 함께 지내다가 박해 때 붙잡혀 밀라노에서 우상 숭배를 강요받으며,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게르바시오 성인은 납을 댄 채찍에 맞아, 프로타시오 성인은 참수형으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밀라노에서 온 편지』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20세기 중반의 군종 신부이자 복자인 카를로 뇨끼 신부도 소개한다. 뇨끼 신부의 마지막 꿈은 자신의 각막을 앞을 못 보는 아이들에게 이식하여 광명을 주는 것이었다. 당시 1950년대는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고 수술의 성공 여부도 불확실했다. 그래서 수술은 이탈리아 경찰의 체포를 피해 스위스에서 비밀리에 진행했다. 결국 시대를 앞서간 이 각막 이식 수술로 인해 사회적으로 장기 기증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 전례와 조금 다른 밀라노 전례
밀라노에서 거행되는 전례는 아름답지만 로마식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도 하다. 미사의 ‘예물 봉헌’ 전에 ‘평화의 인사’를 한다든가, 대림 시기가 로마 전례보다 2주 일찍 시작되는 것 등의 차이가 있다. 저자는 부활 바로 전 슬픔의 주일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수도원 마당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뻐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환호하는 교우들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고 고백하면서도 밀라노 대교구의 ‘암브로시오 전례’ 또한 ‘성스럽고 풍요로운 전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밀라노인의 삶
시내 가까이에 있어 일상에서 죽음을 기억하기 좋은 밀라노 기념 공원묘지Cimitero Moumentale는 대성당이나 귀족의 집을 떠올릴 만큼 아름다운 입구와 이탈리아 최초의 근대식 화장장 시설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단다. 젊은 연인들이 조용히 산책을 하기도 하는 이 공원묘지를 밀라노인들은 떠나간 가족을 기억하는 따뜻한 장소로 느끼며, 무엇보다 유명한 건축가들이 만든 오래된 조각들이 많다고 한다.
가 볼 만한 밀라노 주변 도시들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독일의 예술가 에기노 바이너트(Egino Weinert, 1920-2012년)의 작품이 있다는 갈레아차의 마리아의 종 수녀원Suore Serve di Maria di Galeazza은 그의 작품인 경당 성물들과 ‘어머니의 길La via Matris’ 또한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길’은 성모님의 일곱 가지 시련을 말하는데, 16세기부터 형태를 갖춘 신심이라고 한다. 『밀라노에서 온 편지』는 작가 에기노 바이너트가 누구보다 ‘성모님의 고통의 길’을 잘 이해한 작가라고 소개한다. 열네 살에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한 그는 나치의 광풍으로 군에 징집되어 전쟁 중 오른손을 잃고 수도원에서도 퇴회하여 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해야 했다. 그에게 사라진 건 오른손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향했던 그의 길이었다. 다시 왼손과 가슴팍으로, 때로는 떨리는 호흡과 영혼 깊이 자리한 신앙을 조각과 칠보 기법으로 창작해 내기까지 그는 고통스러운 방황을 거듭했다. 그래서 갈레아차의 ‘어머니의 길’에는 평생 살고 싶었던 수도원을 떠나오면서 겪어야 했던 작가의 심경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깊고 끝없는 자비가 작품에 말없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페라라의 성체 기적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페라우올로Ferrauolo’라는 강가에 모여 성모 마리아의 성화를 모시고 자주 기도했던 곳에 ‘산타 마리아 인 바도Santa Maria in Vado’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1000년 무렵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재 현존을 부정하는 성체에 대한 이단 사상이 급속도로 번졌는데, 1171년 부활절에 한 사제가 이 성당에서 미사 중 축성한 성체를 쪼개는 순간, 들고 있던 성체에서 붉은 성혈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이때 나온 성혈은 미사 드리던 제단 위 원형 천장까지 격정적으로 흩뿌려졌고, 그 광경을 여러 신자들이 목격했다고 한다. 지금도 순례자들이 제대 양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예수님의 성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기다림의 성모
중세의 향기를 간직한 도시 볼로냐 시내에 위치한 마리아의 종 남자 수도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i Servi의 「기다림의 성모」는 비탈레 다 볼로냐(Vitale da Bologna, 1309?-1360/1361?년)라는 유명 화가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이다. 세월을 견딘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인간적인 기쁨과 머뭇거림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두렵지만 설레는 표정을 동시에 지녔다. 그 소박한 이미지는 겸손한 모습으로 다가와 감동을 주기에 사람들은 ‘출산의 성모’ 또는 ‘기다림의 성모’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출산을 앞둔 여인이 어머니 마리아가 되어 가는 여정을 잘 표현했다고 저자는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