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민 여러분, 연대를 부탁합니다”… 독일에 ‘한국판 T4’ 알리다
특사단, 베를린서 출근길 지하철 행동 진행
장애인 학살한 T4 작전 위령비 앞, 다이인 행동 펼쳐
“T4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팔 활동지원 투쟁,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다양한 연대 이어져
[편집자 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이 유럽 도시에서 투쟁을 벌인다. 40여 명의 장애인·비장애인으로 구성된 특사단은 8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를 순회하며 한국의 장애인권리약탈 현실을 전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으로 모든 시설을 폐쇄한 노르웨이, 나치의 장애인 대량학살 프로젝트 ‘T4 작전’이 시행된 독일 베를린, 패럴림픽이 열리는 프랑스 파리.
전장연은 14박 15일 동안 매일 아침 유럽의 출근길 지하철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하고, 3개국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인다. 또한, 장애인의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자립생활‧탈시설권리와 관련한 주요 단체와 전문가들을 만나 장애인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비마이너는 현지에 파견한 기자를 통해 독자들에게 현장 상황을 전한다.
《23일(금), 독일 베를린》
오전 8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오전 9시, 다이인 행동, T4 위령비 앞
오전 10시, 24시 농성장 설치 2일차 선전전, 주독한국대사관앞
오전 11시 30분, 독일 사회영웅(Sozialhelden) 장애운동활동가 라울 면담
오후 1시, 레벤스힐페(Lebenshilfe) 면담
오후 4시 30분, “네팔 장애인 권리투쟁 연대! 네팔 정부 폭력 규탄!” 기자회견, 주독일네팔대사관 앞
오후 5시 30분,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연대 방문
23일 오전 8시(독일 현지 시각),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베를린 지하철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은 주독한국대사관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농성장 앞에 있는 “STOP(멈춤)” 표시판에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스티커에는 독일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애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막아주세요!”라고 쓰여있다. 사진 김소영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아래 특사단)이 ‘T4 작전’이 이루어졌던 독일 베를린에서 출근길 지하철 행동 등을 통해 ‘한국판 T4 작전’을 알렸다. 1939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시작된 ‘T4 작전’은 “장애인 한 명을 먹여 살릴 돈이면 비장애인 5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우생학적 비용 논리로 장애인 30만 명을 생체실험하며 집단 학살한 정책이다. 장애계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와 유사한 논리로 장애인의 탈시설 및 자립생활 지원을 축소하며 거주시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 T4 작전 시행된 베를린에서의 투쟁… “T4는 끝나지 않았다”
23일 오전 8시(독일 현지 시각), 특사단이 베를린 동물원(Zoologischer)역에 모였다. 특사단은 각 칸에 나누어 탑승해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를 알렸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베를린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며 외쳤다. “I’m sorry. Please solidarity. Please solidarity of German citizen. (죄송합니다만,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독일 시민 여러분의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지하철에 탑승한 베를린 시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하는 박 대표의 사진을 찍는 시민, 엄지를 치켜들어 지지의 의사를 표한 시민, 흘끗 쳐다만 보는 시민도 있었다.
특사단이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위해 베를린 동물원(Zoologischer)역에 모여있다. 사진 김소영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베를린 지하철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하며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에 대한 베를린 시민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포츠다머(Potsdamer)역에서 하차한 특사단은 T4 작전의 피해자를 기리는 위령비로 향했다. 특사단은 위령비 앞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진행하며 한국에서 자행되는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를 알리고 독일의 T4 작전 피해자들을 추모했다. 다이인 행동은 시위 참가자들이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행동으로 전 세계에서 반전, 인권, 인종차별, 기후위기 등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이은혜 김포장야앤야학 활동가와 그의 활동지원사인 정윤지 특사단원이 T4 작전 위령비를 함께 보고 있다. 사진 김소영
이정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한국에선 장애인이 집단거주시설에 살아야 복지 예산이 줄어든다는 반동적 논리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존의 탈시설 제도를 퇴행시키며 장애인을 거주시설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에게 정부 예산이 더 많이 쓰인다’는 논리로 학살당한 독일의 장애인 동료를 추모한다. 우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비장애중심의 사회를 바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T4 작전 위령비에 부착된 스티커. 스티커에는 영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애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막아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특사단이 위령비 앞에서 다이인 행동을 진행하며 한국에서 자행되는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를 알리고 독일의 T4 작전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네팔 활동지원 투쟁,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다양한 연대 이어져
특사단은 주독네팔대사관 앞에서 네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에 연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네팔 장애계는 지난 3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장애인 자립생활권리 보장 및 이를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네팔 정부에 요구했다. 네팔 정부는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이후 지원 확대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이행 계획을 장애인단체와 논의하여 수립하기로 약속했으나, “연구에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약속 이행을 미루고 있다.
이에 네팔 장애계는 네팔 정부를 규탄하며 단식투쟁과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나 네팔 정부는 평화적 시위를 진행하는 참가자들을 강제로 연행하거나 휠체어에서 끌어내 발로 차고 질질 끄는 등 장애계의 요구에 폭력적으로 대응했다.
정혜란 한국장애포럼 활동가는 “특사단은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 네팔 장애인의 권리투쟁에 연대하는 기자회견을 이어간다. 기자회견 이후 국내외 장애인 단체는 아시아 장애계의 요청을 담은 서한을 한국, 독일, 프랑스에 있는 네팔대사관에 전달할 것”이라며 “네팔을 포함한 전세계 장애인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발언했다.
특사단이 주독네팔대사관 앞에서 네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에 연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김소영
베를린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현재 베를린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은 설치 허가 기간이 만료돼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특사단은 평화의 소녀상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용기와 투쟁을 상징하는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거 위기에 놓여있는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사진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