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영화 씨는 1976년 여성 6인조 그룹 '버터플라이'의
보컬리스트로 가요계에 데뷔해
80년 솔로앨범에서 <실비 오는 소리에>를 히트시킨 뒤
81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로 MBC국제가요제 3관왕을 차지했다.
웅이♪의 뒷골목 얘기(353)
(1)84년 발표한 <모창 메들리>는 40만 장 이상이 판매가 되었다.
윤복희, 윤시내, 임희숙, 나미, 이은하 등
당대의 인기가수를 똑같이 모창한
이 음반으로 야간업소를 11개까지 겹치기 출연하는 등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90년대 들어서는 모창 가수를 탈피해
라틴댄스, 밸리댄스 등 춤에 몰두하며
<날이 날이 갈수록>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했다.
(2)저희교회에 등록하신 가수 이영화집사님은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청애원 후원회장이시며
사회복지법인 청원복지재단 이사로 계십니다(충북 청원군 옥산면 동림리)
(모든 사진은 제가 찍었으며 양해 얻었습니다)
(3)90년대 들어서는 모창 가수를 탈피해
라틴댄스, 밸리댄스 등 춤에 몰두하며
<날이 날이 갈수록>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영화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4년 전 가스펠 CD를 제작하고 순회 콘서트를 열며 활동 한 그 즈음
사랑하는 아들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4)한창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우울증으로 표출됐다.
그녀는 사람들이 싫어졌고 온종일 혼자 앉아 아들 생각에 몰입했다.
유난히도 착했던 아들과의 준비 없는 이별은
그녀를 음울한 고통의 터널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때 이영화 씨의 유일한 희망은 신앙이었다.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기도 (앞줄에 이영화집사님 내외분)
(5)그리고 두번째로
지금의 부군을 만나 새가정을 꾸미고 마음의 위안과 삶의 행복의 찾았다.
이영화 씨는 지금의 남편이 때로는 친구 처럼
때로는 매니저 처럼 편하고 좋다고 한다.
새싹을 가꾸는 정성으로~~~할렐루야~~~! 웅이 ♪가 사진찍고 글 올림^-^
피아노 반주자
이영화의 저높은곳을 향하여- 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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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상 보면서 음악에 젖어 봅니다...좋은날 되세요.
안보여 은퇴 하여 다른 일 하나 보다 했는데, 건재한 모습 방갑군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고통 한나쯤은 가지고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잃은 이영화씨에게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