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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水湖誌) - 157
수호지 제67회-1
양중서는 이성・문달과 함께 패잔병을 이끌고 황급히 남쪽으로 달아나고 있는데,
또 두 부대의 복병이 앞뒤에서 쳐들어왔다.이성이 앞장서고 문달이 뒤를 막으면서
양중서를 보호하여 결사적으로 싸워 포위를 뚫고 탈출했다.
투구는 삐뚤어지고 갑옷은 너덜너덜해지고 인마는 거의 다 잃었지만 세 사람은
목숨을 건져 서쪽으로 도주하였다.번서는 항충과 이곤을 이끌고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뇌횡·시은·목춘과 함께 북경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군사 오용은 성안에 명령을 내려 한편으로는 방을 붙여 백성을 안정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불을 끄게 하였다.양중서·이성·문달·왕태수의 가족 중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달아난 사람은 그대로 달아나게 두고 더 이상 쫓지 말라고 하였다.
대명부의 창고를 열어 금은보화와 비단 등을 모두 수레에 싣게 하고, 곳집을 열어
백성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역시 수레에 실어 양산박으로 운반하게 하였다.
모든 두령들에게 인마를 정돈하여 출발 준비를 완료하라고 명하고, 이고와 가씨는
함거에 가두어 끌고 가게 하였다.모든 군마를 세 부대로 나누어 양산박으로 돌아왔다.
대종이 먼저 가서 송공명에게 알리자 송강은 모든 두령들을 불러 모아 산을 내려가
영접하였다.모두 충의당에 오르자 송강은 노준의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노준의가 황망히 답례하자 송강이 말했다.
“저희는 원외를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 함께 대의를 행하고자 했는데,
뜻밖에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여 가슴을 칼로 베듯 아팠습니다. 황천이 보우하사
오늘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노준의가 사례하며 말했다.
“위로는 형님의 범 같은 위엄과 아래로는 여러 두령들의 은덕으로 이렇게 살아났으니
간뇌도지(肝腦塗地)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노준의는 채복과 채경을 불러 송강에게 인사시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살아서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겁니다.”
송강이 노준의를 첫째 두령으로 앉히려고 하자 노준의가 절하며 말했다.
“제가 어떤 인간이라고 감히 산채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형님의 말채찍을 잡고
등자를 받치는 소졸이 되어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만 있다면, 실로
천만다행이겠습니다.”송강이 재삼 청했지만 노준의가 어찌 감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러자 이규가 말했다.
“형님이 만약 산채의 주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요!”
무송이 말했다.“형님이 자꾸 양보하기만 하면 우리 형제들의 마음도 차갑게 식을 겁니다.”
송강이 소리쳤다.“너희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더 이상 지껄이지 마라!”
노준의가 황망히 절하며 말했다.“형님께서 끝내 양보하신다고 하면,
저는 이곳에 편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이규가 소리쳤다.
“이런 짓거리 집어치우고 형님은 황제가 되고, 노원외는 승상이 되고, 우리는 모두
대관이 되어, 동경으로 쳐들어가 그 좆같은 자리를 탈취하면 되잖아! 여기서 지랄하지 말고!”
송강이 크게 노하여 이규를 꾸짖자 오용이 권했다.
“일단 노원외를 동쪽 곁방에서 쉬게 하여 손님으로 대접하다가 훗날 공을 세우면
그때 다시 양보하시지요.”
송강은 비로소 기뻐하면서 연청을 불러 노준의를 거처로 모셔가게 하였다.
그리고 별도로 가옥을 배정하여 채복과 채경의 가족들이 살게 하였다.
관승의 가족도 설영이 산채로 데리고 왔다.송강은 크게 연회를 열어 마군·보군·수군
삼군에 상을 내려 위로하고, 대소 두령들에게 수하들을 데리고 각자 술을 마시게 하였다.
충의당 위에서도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고, 대소 두령들이 서로 겸양하면서 술을 마시고
마음껏 즐겼다.노준의가 일어나서 말했다.
“음부와 간부를 붙잡아 왔는데,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송강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잊고 있었습니다. 두 연놈을 데리고 오너라!”
군사들이 함거에서 둘을 꺼내 충의당 앞으로 끌고 왔다.
이고는 왼쪽 장군기둥에 묶고, 가씨는 오른쪽 장군기둥에 묶었다.송강이 말했다.
“저것들의 죄악은 물을 것도 없으니 원외께서 알아서 처분하십시오.”
노준의가 단도를 들고 당을 내려가 음탕한 년과 도적 종놈이라 욕하고서 둘의 배를 갈라
심장을 도려내고 사지를 절단한 다음 목을 잘랐다.
시체를 내버리고 당에 올라와 여러 두령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두령들은 모두 축하하여 마지않았다.한편, 북경의 양중서는 양산박 군마가
퇴각했다는 것을 알고 이성·문달과 패잔병을 이끌고 성으로 돌아왔다.
가족을 찾아보니 열에 여덟아홉은 죽은 것을 알고 모두 통곡하였다.
인근 지역에서 군대를 일으켜 양산박 인마를 추격했으나 이미 멀리 가 버린 뒤라
각자 철수하였다.양중서의 부인은 화원으로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남편을 시켜 조정에 표를 써서 아뢰고 채태사에게도 서신을 보내 빨리 군대를 파견하여
도적을 소탕하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요청하게 하였다.피해 상황도 기록했는데,
민간의 피살자가 5천여 명이고, 부상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며,
각 부대의 군마는 3만여 명을 잃었다.
조정에 올리는 상주문과 채태사에게 보내는 밀서를 지닌 사자가 동경 태사부로 달려갔다.
문지기가 보고하자, 태사가 불러들였다.
사자가 절당으로 가서 절을 올리고 밀서와 상주문을 바치며 북경성이 깨뜨려졌는데,
도적의 세력이 너무 커서 대적할 수 없었음을 자세히 설명했다.
채경은 처음에 도적들을 초안하여 그 공을 양중서에게로 돌리고 자신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려 했었는데, 이제 일을 다 망치고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전쟁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채경은 노하여 소리쳤다.“사자는 물러가라!”
다음 날 새벽 5시를 알리는 경양루의 종이 울리고 대루원에 문무 대신들이 모이자
채태사가 앞으로 나와 옥계에 이르러 도군황제에게 아뢰었다.
천자가 상주문을 보고 크게 놀라자 간의대부 조정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전에도 몇 번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장병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잃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신의 우견으로는, 칙령을 내려
죄를 사면하고 초안하여 궁궐로 불러들여 신하로 삼으시어 변방의 해악을 방어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채경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너는 간의대부인데 도리어 조정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소인배들이 창궐하게 하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천자가 말했다.“그렇다면, 당장 저놈을 조정에서 내쫓아라!”
즉시 조정의 관작을 삭탈하고 서민으로 강등시켰다.
그러니 누가 감히 다시 아뢸 수 있겠는가?천자가 채경에게 물었다.
“저 도적들이 창궐하는데, 누구를 보내 토벌하는 것이 좋겠소?”채태사가 아뢰었다.
“신이 생각하기에 저런 산야의 도적떼를 소탕하는 데에는 대군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능주의 두 장수를 천거하고자 합니다.단정규(單廷珪)와 위정국(魏定國)인데,
현재 능주의 단련사로 있습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그들로 하여금
군마를 거느리고 가서 양산박을 소탕하게 하시옵소서.”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칙령을 내려 추밀원에서 사자를 파견하도록 하였다.
천자가 일어나자 백관은 퇴청하였는데, 모두 마음속으로 몰래 비웃었다.
다음 날 채경은 추밀원 관리로 하여금 성지를 받들어 능주로 가게 하였다.
한편, 송강은 북경에서 획득한 재물을 삼군에 상으로 나누어주고, 소와 말을 잡아
연일 연회를 열고 노준의가 온 것을 축하하였다.
비록 봉이나 용의 요리는 없었지만 고기는 산을 이룰 만큼 술은 바다를 이룰 만큼 많았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자 오용이 송강에게 말했다.
“지금 노원외를 위하여 북경을 쳐부수고 많은 인민을 살상했으며 창고를 약탈했습니다.
그리고 양중서를 성에서 내쫓아 멀리 달아나게 했으니 그가 반드시 조정에 아뢰었을 겁니다.
게다가 양중서의 장인이 조정의 태사이니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필시 군마를 일으켜 토벌하러 올 것입니다.”송강이 말했다.
“군사께서 염려하는 바가 이치에 맞습니다. 북경으로 사람을 보내 허실을 정탐하고
거기에 대비해야 합니다.”오용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곧 돌아올 겁니다.”
연석에서 상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정탐꾼이 돌아와 보고했다.
“북경의 양중서가 조정에 상주하여 병력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간의대부 조정이 초안을 아뢰었다가 채경으로부터 욕을 먹고 관직을 삭탈 당했습니다.
채경이 천자에게 아뢰어 능주의 단련사인 단정규와 위정국으로 하여금 군마를 일으켜
토벌하라고 하였습니다.”송강이 말했다.“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소?”
오용이 말했다.“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잡으면 됩니다.”
관승이 일어나 송강과 오용에게 말했다.“제가 산에 올라온 이후 형님께서 후대해 주셨는데,
아직까지 크게 힘쓴 적이 없었습니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포동에 있을 때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단정규는 물을 이용하여 적을 물리치는 법에 능해
사람들이 성수장군(聖水將軍)이라 부르고, 위정국은 화공병법에 능하여 화기(火器)를
잘 사용하므로 신화장군(神火將軍)이라 불립니다.
제가 재주 없지만 5천 군사를 빌려주시면 그 두 장수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제가 먼저 능주로 가서 도중에 맞이하겠습니다.
만약 저들이 투항한다면 산으로 데려올 것이고, 만약 투항하지 않는다면 생포하여
형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 두령들이 활을 당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형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선찬과 학사문을 불러 관승과 함께 가게 하였다.
관승은 5천 군마를 거느리고 다음 날 산을 내려가기로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하였고, 관승 등 세 사람은
병력을 거느리고 떠났다.두령들이 충의당으로 돌아오자 오용이 송강에게 말했다.
“관승이 지금 떠났는데, 그 마음을 아직 믿지 못하겠습니다. 다시 장수를 보내 뒤를 따라가
감독하게 하고, 상황에 따라 접응하게 하십시오.”송강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관승은 의기가 늠름하고 시종여일(始終如一)합니다.
군사는 너무 의심하지 마시오.”오용이 말했다.
“그의 마음이 형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임충과 양지로 하여금 손립과 황신을
부장으로 삼아 5천 인마를 거느리고 즉시 산을 내려가게 하십시오.”이규가 말했다.
“나도 갈래.”송강이 말했다.
“이번 일에는 너를 쓸 수 없다. 다른 장수를 보내 공을 세우도록 할 것이다.”이규가 말했다.
“난 한가하면 병이 생긴단 말이오. 날 안 보내주면 혼자서 갈 거요.”송강이 꾸짖었다.
“내 군령을 듣지 않으면, 네놈 목부터 잘라 버리겠다!”
이규는 그 말을 듣고 우울해 하면서 당에서 내려갔다.
임충과 양지는 병력을 거느리고 산을 내려가 관승을 접응하러 갔다.
다음 날 군졸이 와서 보고했다.“흑선풍 이규가 어젯밤에 쌍 도끼를 들고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송강이 보고를 듣고 ‘아이고!’ 소리치며 괴로워했다.
“내가 어제 그놈을 좀 나무랐더니, 아마 다른 데로 가 버렸나 보다!”오용이 말했다.
“형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우가 거칠기는 하지만 의기를 중하게 여기므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겁니다. 아마 이틀쯤 지나면 돌아올 것이니, 형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송강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먼저 대종에게 쫓아가라고 했다.
그런 다음 다시 시천・이운・악화・왕정륙에게 네 길로 가서 이규를 찾게 하였다.
한편, 이규는 쌍도끼를 들고 밤에 산을 내려와 지름길을 택해 능주를 향해 가면서 생각했다.
“그 좆같은 장군 두 놈이 뭐라고 그렇게 많은 군마를 데리고 치러 간다는 거야!
내가 성안으로 들어가 도끼 한 방에 한 놈씩 죽여 버리고 형님을 놀라게 해줘야지!
그러면 딴 사람들도 기가 죽겠지!”반나절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팠는데, 너무 서둘러
산을 내려오다 보니 노자를 가져오지 않아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없었다.이규는 생각했다.
“어디 가서 이 좆같은 기분을 한 번 풀어 볼까?”
걷다 보니 길옆에 시골 주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이규는 주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 세 병과 고기 두 근을 시켜 먹고서 일어나
주점을 나가려고 했다.점원이 가로막고서 돈을 내라고 하자 이규가 말했다.
“내가 먼저 가서 장삿거리를 좀 찾아서 올 테니 넌 기다려라.”
그렇게 말하고서 막 나가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표범 같은 덩치 큰 사내가 들어오며
소리쳤다.“이 시커먼 놈이 참으로 대담하구나! 누가 연 주점인데, 네놈이 감히 공짜로
처먹으려고 하냐! 빨리 돈을 내놓아라!”이규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 어르신은 어디를 가든 공짜로 먹는다!”사내가 말했다.
“내가 누군지 말하면 네놈은 깜짝 놀라 오줌을 질질 싸고 방귀가 절로 나올 것이다!
이 어르신은 양산박의 호걸 한백룡이시다! 이 주점의 밑천도 모두 송강 형님이 대주신 것이다!”
이규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내가 산채 어디서도 이런 좆같은 놈을 본 적이 없는데...”
원래 한백룡은 강호에서 강도짓을 하면서 살다가 양산박으로 가서 입당하려고
한지홀률 주귀를 찾아갔었다.그때 마침 송공명이 등에 종기가 나고 북경으로 병력을 보내느라
바빴기 때문에 주귀가 잠시 주점을 열고 술을 팔면서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이규는 허리춤에서 쌍 도끼를 뽑아 내밀면서 한백룡에게 말했다.
“이 쌍 도끼를 저당 잡히겠다.”한백룡은 그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손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는데, 이규가 도끼를 들어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찍어 버렸다.
가련하게도 한백룡은 반평생을 강도로 살다가 이규의 손에 죽고 말았다.
두세 명의 주점 일꾼들은 부모가 다리를 두 개만 낳아준 것을 원망하며 마을로 달아났다.
이규는 주점을 뒤져 노자를 챙기고 불을 지른 다음 능주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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