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유안진
한 오십년 살고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비와 이슬이 눈과 서리가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헝이 울어대는 이 겨울도 한 밤중, 뒷뜰 얼음 밭을 치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 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 묻히고 더럽혀지며, 허상에 넋을 잃어 진실을 놓치며, 죄업에 혼이 빠져 정직을 못 가리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더 살만한 곳이며, 흐르고 떠도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뒤 돌아다 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었어라.
(뉴욕일보 『시로 여는 세상』 / 2007.12. 24 게재)
첫댓글 유안진씨의 작품에도 이런 글이 있었던가 싶도록 마음에 와 닿네요. 올려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서정주, 윤동주를 비롯하여 자화상 시가 참 많은데 저마다 자기 자신을 비추는 모습이 조금씩은 다르지요.
물론그렇지요, 시제는 같아도 내용은 다 다르듯이 말입니다. 운영자님께서도 시인인 듯 한데, 바쁜 시간까지 조깨어 이렇게 답변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