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치는 남자 이명희(목향)
남편은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했다. 기초라 왼손, 오른손 합쳐봐야 7음인데 손가락에서 쥐가 난다나? 은퇴한 남편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남들과 교제하지 않아 집에서 취미생활을 하자고 했다. 여자들은 친구를 만나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지만 은퇴한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가 눈 맞춰 주기를 바란다. 사이가 좋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찬밥 신세다. “일주일에 한 번만 초급으로 피아노를 배워 봐요.” 나는 남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친절히 가르쳤지만, 남편의 손가락이 건반을 터치하기에 무리였는지 악보 보랴, 건반 누르랴 꽤 힘들었나 보다. “이거 쉬운 게 아니네!” 사실, 피아노를 배우자고 했던 건 남편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였다. 나이 들면 뇌세포의 활동도 줄지만, 뇌를 쓰지 않으면 퇴행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피아노를 포기한 후부터 나를 존중해 주는 느낌이 든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년 전 시도하려던 드럼이 떠올랐다. 남편의 고집으로 몇 번을 설득하고서야 드럼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드럼 채를 쥐고 두 손과 두 발이 협력하여 네 박자를 치는 단순한 리듬부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극성이었던 게 피아노 배우는 애들로 밴드-부를 만들고 싶어 한국에 나가 초급. 중급을 속성으로 배워오고 당장, 드럼 세트와 신시사이저, 일렉, 베이스 기타를 준비했었다. 기타 알바생을 불러 아이들을 지도하게 하고, 어린이 밴드를 몇 년간 신나게 꾸렸었다. 애들이 중. 고등학교를 가면서 자연스레 밴드부가 해체됐다. 주인 없는 드럼세트를 볼 때마다 안타까워 남편을 겨냥했다. “오빠는 다른 주에 있어 참여할 수 없으니 우리 셋이 밴드를 시작하는 게 어때?” “아빠의 노화 방지를 위해 가족밴드를 만들자.” “너는 일렉 기타, 엄마는 신시, 아빠는 드럼,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 연습하고 30분 맞추는 걸로 하자!” 딸은 아빠랑 사이가 좋아서인지 쉽게 승낙했고 베이스 파트가 없는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 연습곡은 ‘아주 먼 옛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개똥벌레’였다. 쉬운 기본리듬을 반복하게 하니 연습이 순조로웠다. 이대로 가면 나중에 봉사활동도 가능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황혼기에 접어들면 성품이 두 가지로 나뉜다. 갈수록 꼬장꼬장해지는 성품과 유해지는 성품이다. 몸의 에너지가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을 말하는 건데 부정의 속마음엔 용기 없음도 있다. 노인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건강, 경제, 친구라고 하는데 세 가지를 갖추면 비교적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울증의 큰 원인은 성격이라고 한다. 나는 남편과 노후를 잘 보내고 싶어 음악을 하자고 종용했다. 낙천적 성품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놀랍게도 인간은 죽기 전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수양이 아니겠는가.
상담심리학 공부에 ‘음악치료’가 있는데 음악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여러 가지 만성적인 병을 치유하는 분야다. 음악으로 뇌졸중, 우울증, ADHD 등을 치유한 사례도 있다. 음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본인에게 상당한 플러스 효과가 있다. 피아노 연주는 내게 뇌의 학습 효과를 주었다. 은퇴를 늦출수록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들어도 손가락을 움직여 주면 뇌 건강에 좋다. ‘피아노 배우기’에서 ‘드럼 배우기’로 바꾼 나의 프로젝트가 남편의 건강을 챙기고 가족의 결속력을 높여주니 이보다 큰 효과는 없을 것 같다. 남편이 끝까지 고집부리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나의 계획에 따라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여보, 고마워!”
*8년 전의 수필.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남편과 자식들이 악기 연습을 하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무취미가 취미인 듯 잘들 산다.
첫댓글 우째 이런 일이 ...
댓글을 일착으로 썼는데,
누워서 폰으로 보다가 '삭제'를 그만 ... ㅠ
다시 써유. ~~
악기와 색채화는 나이 드신 분께 도움이 된다고 해요.
14-5년 전에 아들에게서 드럼을, 요즘은 손자도 제법 두드린다오.
잘 읽었답니다. ^^
트럼펫 하고 싶어 밴드부 들었다가 반주만 넣는 악기를 주어 나올때
드럼 독주(?)가 그렇게
부럽데요.
동기 녀석이 시간만 주면
전 교생을 대합창을 시켰네요.
녀석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Beautiful Sunday !!!
가 교내체벌 반대 데모 주제곡이
되어 20시간 동안 목이 터지도록 부르고 학교를 도망쳤지요.
그래서 막내 녀석을 가르쳤는데
자기는 그림 체질이라고 기본만 배우고 끝 ...지하실에서
은퇴 언제하냐고 기다리네요
많이 움직이고, 머리를 쓰고
함께 어울어 하는 것이
건강과 치매 방지에 좋다고...
서예와 단소도 하고 싶으니
과욕이겠죠?
착한 글 잘 읽었읍니다.
지하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밴드 세트(드럼, 기타 2대, 신디)
지금은 걷기, 크로스 컨추리, 모임에
함께 하는 걸로 감사하지요.
음악은 저만 고수하고 있습니다.
취미생활, 인간관계 등
건강해야 유지할 수 있지요. ㅎ
치매예방 차원으로 펜데믹 기간에 우쿠렐레 를 혼자서 배워 정석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노래부르며 띵똥 거리며 소일 하노라면...
나름 시간이 모자라 연습을 잘못할때도 있고 해서 배울게 있다라는 것 자체도 나에겐 우울증이 생길수가 없어서 좋다
잘 읽었습니다 목향씨~~
무엇이든 열심이신 경난 언니,
아름다운 노후를 함께 해요.^^
그럽시다 우리 서로 아프지말고 긍정적으로
삽시다
무취미가 취미인 사람에게 취미를 붙여준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각자의 개성에 달렸겠지만 은퇴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바쁠때 오히려 습득 능력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깨달음이 늦어서 지금은 이 고민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며 잘 읽었습니다.
지금도 드럼 치시나요?
건강 하시죠?
뵙고 인사 드리고 싶은데 여의치 않네요.
수필 하단에 추신으로 지금은 남편과 자식들이 무취미가 취미인 듯 악기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올렸지요. 취미로 하는 악기도 자기와의 싸움이라 인내심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건강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