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혼지역공동체 돌봄 시스템(system) 구축』
손병흥
예전에 앞서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설계된, 한국의 복지와 주거 시스템은, 이젠 빠르게 닥친 현실과도 어긋나고 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1인 가구의 증가와, 비혼 선택의 확산과 기대수명의 연장은, 이미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후는 “가족이 돌본다”고 하는, 아주 오래된 전제가 정책의 기저에 남아 있다.
이를테면 서울 소재의 어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전주에 소재한 어느 비혼여성공동체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이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대안은 이미 시민들의 실천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처럼 의료와 돌봄을 시장이나 가족에게만 맡기지 않고, 지역주민이 협동해 스스로 구축한 시스템 속에서의 돌봄은, 그야말로 통상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일종의 친숙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아픔과 취약성을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로 재정의하여, 기존의 혈연이나 혼인 중심의 가족 바깥에서, 얼마든지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노후를 함께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 실험으로도 보여지듯이, 이러한 사례를 통해 공통적으로,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것인가”로 전환시켜 준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전환이,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되고 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코하우징(co-housing)은, 개인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공간과 돌봄을 공유하는 주거 모델로 자리 잡았다. 독일의 ‘다세대 주거(Multigenerationenhaus)’는, 세대 간 돌봄과 교류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미국에서는 ‘빌리지 모델(Village Model)’이 확산되며, 지역 기반의 자조 네트워크를 통해, 노년층의 자립적 삶을 돕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들 사례의 핵심은 명확하다. 돌봄을 가족 내부의 사적 책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기반의 공적·협력적 구조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한국 역시도 더 이상 이 변화를 미룰 수 없다. 첫째, 비혼·1인 가구를 전제로 한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한 소형 주택 공급을 넘어, 공동 부엌·돌봄 공간·커뮤니티 시설을 포함한, 협동형 주거 모델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지역 기반 돌봄 협동조합에 대한, 공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이같은 조직이 지속 가능하려면, 재정 지원과 인력 양성, 제도적인 인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공공 영역에서 책임지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가족에게 전가된 돌봄 부담을 사회가 나누지 않는 한, 어떤 개인도 안정된 노후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노후를 ‘준비해야 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사회의 과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손주를 돌보는 기쁨이 삶의 전부가 아닌 시대, 우리는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지역 곳곳에서 시작된 실험들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예외적인 사례로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표준으로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획기적인 정책 방안들과 대책들을 마련하여, 이들에 대한 새로운 사회복지 형태의, 기틀과 터전을 다져나가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주변적 현상으로 치부하거나, 미래의 과제로 미뤄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절실한 정책 의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현실이 된 삶의 방식에 제도가 뒤따르지 못한다면, 그 공백은 고스란히 개인의 불안과,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가족 중심 복지’라는 오래된 틀을 넘어서는 과감한 전환이다. 비혼과 1인 가구의 증가,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거·의료·돌봄 시스템을, 공공의 책임 아래 재설계해야 한다. 단기적인 지원책을 넘어 협동조합형 의료기관이나, 공동체 기반 주거 모델에 대한 법적 기반을 정비하고, 재정적이나 행정적인 지원을 체계화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또한 지역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돌봄 공동체들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중간지원조직을 구축하고, 함께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을 복원하고, 예방적 돌봄을 강화하는 투자이기도 하다.
결국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누구나 특정한 가족 형태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존엄과 안전을 보장받으며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복지국가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가능성에 대한 더 많은 증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례들을 토대로 한 결단과 실행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닥쳐온 현상들에 대한 문제점들과 흐름을 획기적으로 타개하고, 제도화하는 정책 방안과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복지의 기틀과 터전을, 지금부터 조금씩 차근차근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다져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