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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 출신으로 KBS사장을 역임한 정연주 선생은 평생을 정론직필과 직필불후의 참언론인으로 오직 한 길을 걸었던 분입니다.
조중동이라는 조어를 만들었던 정연주(1946년생)선생은 조선 중앙 동아를 냉전이데올로기 친일 수구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여 우리 공동체사회의 정의 구현에 큰 기여와 공헌을 했습니다.
정연주 선생이 말씀하기를 "무슨 일이든 조선일보가 말하는 것에 반대로 하면 그게 옳은 것이고 사회 정의와 공공선"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광화문 조선총독부 청사로 알고 있던 건물은 일제강점기시절이던 1926년에 완공됐습니다.
북한산과 인왕산 경복궁의 웅장한 경관을 가로 막아섰던 조선청독부 청사 건물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각종 공공기관 건물로 사용되었고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의미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실시해 그 일환으로써 철거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70년 만에 철거 일소됐습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의 YS는 군사독재를 청산한 하나회 척결과 부정부패를 발본한 금융실명제 실시외에 일제잔재를 씻어낸 조선청독부 중앙청 건물철거가 재임 중의 큰 공적입니다.
조선일보는 중앙청(구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방침 초기부터 사세와 사운을 걸고 전방위에 걸쳐 총력을 다해 철거 반대를 목놓아 부르짖었습니다.
조선일보는 훌륭하게 잘 지은 건물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면 될 일이라느니 국립중앙박물관을 용산에 건립해놓고 철거해도 늦지 않다느니 온갖 방해공작에 골몰했습니다.
심지어는 당시 철거에 찬성하던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조선일보는 국보와 보물 등의 소중한 유물들을 어디에 보관할 거냐면서 무책임 행정의 극치라고 맹비난 했습니다.
급기야 조선일보는 문화유산 보존과 보호를 위해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신청사 건립 후에 철거하는게 좋겠다는 정양모 관장의 견해를 받아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정양모 관장을 쫓아다니며 못살게 굴었습니다.
당시에 온갖 모함과 비난에 시달리던 독립애국지사 위당 정인보 선생의 막내아들 소불 정양모 관장은 조선일보 때문에 제 명대로 못살 뻔 했습니다.
1926년 세워진 조선총독부 중앙청 건물은 우여곡절과 천신만고를 겪고 70년 만에 철거됐고 와신상담과 절치부심의 50년 현대사가 지나고 지금 우리는 백 년이 지난 2026년의 기로에 섰습니다.
정청래는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인지 조선일보와 일체의 인터뷰를 사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조선일보는 자기들 말을 듣기는커녕 까칠하게 대하는 정청래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선 절대불가입니다.
그래서 나는 조선일보가 극구 반대하는 정청래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는걸 순리(順利)와 정의(正義)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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