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허물이 우리 신앙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 2024/4/7/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보건의 날 ⠀ 요한 복음 20장 19-31절 ⠀ 교회에 실망해 신앙을 잃는 사람들에게 저는 한 달에 한 번 시골에 사시는 아버님을 방문합니다. 하룻밤을 자고 오는데 언젠가부터 아들이 사제이기 때문인지 당신의 지난 과오들을 덤덤하게 이야기하십니다. 어떨 때는 고해성사를 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될 기억들까지 꺼내놓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대화가 쌓여갈수록 아버지의 취약함과 허물들에 대해 더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불완전함들이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부모님은 저에게 둘도 없는 귀한 생명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받은 생명이 아니었다면 저는 삶을 경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부모님은 ‘당신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저를 길러주셨습니다. 설사 그 방식이 내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더라도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속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배웠고 주님을 만났고 구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영적인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 교회를 통해 일하길 원하시고 그 교회가 완벽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랑하십니다. 토마스 사도는 어쩌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보다 그분이 상처를 그대로 지닌 채 부활하셨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그 상처들은 제거되어야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예수님답지 않은 수치스러움이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상처들을 그대로 간직하신 모습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현재 우리의 교회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남창현 토마스아퀴나스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4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