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4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는 주님을 따라 살라하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주의 백성이 되고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제사제도를 주셨고 그 제사제도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는 한시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완전한 속죄제물을 허락하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를 완전속죄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도 크건만 우리는 그 은혜 앞에서도 나의 정욕과 탐욕 그리고 끊이지 않는 욕심으로 나를 채우려 합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 염치가 없지만 그런 자존심을 세우는 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엎드리는 자로 서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오늘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17:1-11
제목 : 골리앗 앞에서 크게 놀라며 두려워했던 사울과 이스라엘, 바로 나였습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5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600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이 하는 모든 전쟁은 넓은 의미에서는 영적 전쟁으로 이는 모두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아직 사무엘이 죽기 전이므로 그런 사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는 것이다.
사사들은 자기들의 힘과 능력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께 귀속된 자들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책이 사사기서이다.
비근한 예로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와 같은 여인을 사랑하고 또 가사의 기생에 푹 빠져 지내는 등 난봉꾼처럼 행동을 하였지만 그는 결코 난봉꾼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난봉꾼과 같은 행동을 하였지만 그는 나중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리다가 다곤 신전에서 그 신전을 무너뜨리고 자기도 함께 죽는 것은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일어난 전쟁 이야기다.
이것은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레전드 장수 골리앗을 이기는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다.
블레셋 군사들은 디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사울과 이스라엘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서로 대하여 섰다.
이들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다.
블레셋 진영에서는 싸움을 돋우는 자로 가드 사람 골리앗이 나왔다.
이 사람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고 놋 투구를 썼고 비늘처럼 생긴 놋으로 만든 갑옷을 입었는데 갑옷의 무게가 5천 세겔이다.
다리에는 놋 각반을 찼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다.
그가 멘 창 자루는 베틀 채처럼 생겼고 그 철로 된 창날은 600세겔이었다.
골리앗 앞에는 방패를 든 사람이 있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친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싸우려고 하느냐?
나는 블레셋의 장수요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다.
그러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을 택해서 내 앞으로 보내라.
그가 나와 함께 싸워서 나를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될 것이고, 내가 그를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될 것이다.
골리앗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지금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으니 나에게 싸울 사람을 보내라.
이 말을 들은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군사들은 놀라서 크게 두려워하였다.
골리앗의 키는 6규빗 하고도 한 뼘이 되니까 거의 3m에 육박하는 거구 중에 거구이다.
그런 그는 머리에 쓴 투구와 놋 갑옷 놋 각반에 어깨에 멘 창의 무게를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놋 갑옷의 무게가 5천 세겔 곧 약 57Kg, 창날은 600세겔 곧 7Kg 정도 되므로 이 둘만 합해도 64Kg이다.
그러면 그가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다 합하면 아마도 100Kg은 족히 될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살피건대 그 조그만 몸집을 가진 다윗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오늘 본문에는 다윗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거구 장신인 골리앗이 한 마디 하니까 사울과 그의 모든 군대가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다는 글을 읽었다.
이는 골리앗 앞에서 그들이 섰을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장면은 불과 얼마 전에도 있었다.
블레셋은 전차만 3만 대에 마병이 6천 명, 군사들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는데 이스라엘의 군사는 겨우 600명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두려워서 굴과 바위 뒤로 숨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이런 전쟁은 해보나 마나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을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믿음으로 전쟁을 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전쟁이란 하나님이 행하시는 전쟁임을 믿고 나아간 것이다.
그의 고백은 이렇다.
(삼상 14:6b)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울이 아무리 용감하다 할지라도 그는 이미 하나님이 버린 카드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믿음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믿음의 한 사람 요나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일하시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다.
오늘의 전쟁도 다르지 않다.
골리앗에 비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다윗이 등장한다.
그는 가진 것도 없다.
사울은 그 작은 체구에 자기가 입는 갑옷을 입혀주었지만 체구에 맞지 않아 오히려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벗어버린다.
그를 보호해 주거나 가려줄 보호장구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다윗은 그렇게 맨몸으로 나아갈 뿐이다.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 역시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우리의 전쟁은 영적 전쟁이다.
이 영적 전쟁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이 전쟁에 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은 무엇과 싸우는 것인가?
그것은 나와의 싸움이다.
내 안에 있는 마귀적 속성들 곧 나의 이기심과 탐욕 등 옛 사람과의 싸움인 것이다.
그것과 싸우는 것은 곧 나를 부인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하셨다(눅 9:23).
내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요 사탄임을 알아 오늘도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부인하여 더 낮은 곳으로 낮아지는 것이 마귀와의 영적 전쟁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자이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였고 나를 좀 알아주면 어깨가 으쓱하여 마치 골리앗이 그의 어깨에 창을 멘 것처럼 든든해 하였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아담이 바로 나였다.
내가 바로 죽어야 마땅한 아담이요 아담 군상이다.
그런 나는 복음을 통해서 내가 바로 죽어야 할 자임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도 복음을 통해서 이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마음을 깨닫는다.
우리 주님은 창세전의 세계에서도 그랬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도 단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거나 불순종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단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지키셨다.
육신을 입고 율법을 100% 다 지킨 이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당당하게 하실 수 있으셨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주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멋지게 사탄마귀를 다 깨부수신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것도 단 한 마디 어떠한 것에도 반응하지 않으시고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런 비참하고 참혹할 정도로 패배한 것 같은 죽음이 완전한 승리였다는 것을 그로부터 3일 후에 나타내 보여주셨다.
3일간의 무덤에 장사되심은 완전한 죽음이요 완전한 패배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가시적 싸움에서 이긴 사탄은 두 손을 들고 승리의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그에게 속한 자들을 품에 안고 하나님 나라로 이끄셨다.
그것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우리를 옮기신 사건이다.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우리를 품고 이끌어 가셨다.
나는 이 복음을 믿는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연약하다.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넘어져도 아주 넘어지지 않는 것은 날 붙드시고 십자가로 이끌어 가신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께 속한 자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잡고 끌어내시면 그 품안에서 나도 함께 이끌려 나갈 것이기 때문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골리앗 앞에 선 사울과 그의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나 역시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이 놀라고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나의 구원이 취소될까봐 염려하고 두려움에 떨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고 영적으로 무지한 소치였는지요.
하지만 이제는 내 안에 담대함 곧 파레시아가 있어서 예수를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주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함을 믿습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우리 주님과 그 십자가를 붙들고 오늘도 나아가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