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경 276 /향엄지한 선사 /금년엔 송곳마저 없다
香嚴禪師가 云 去年貧은 未是貧이오 今年貧이 始是貧이라 去年에는 有卓錐之地러니 今年에 錐也無로다 仰山이 云 如來禪을 卽許師兄이어니와 祖師禪은 未夢見在로다 嚴云 我有一機하야 瞬目視伊어든 若人不會하면 別喚沙彌하리라 仰山이 云 且喜師兄이 會祖師禪하노라
향엄 선사가 말하였다.
“지난해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송곳을 꽂을 땅이 없었는데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다.”
앙산 선사가 말하였다.
“여래선은 곧 사형에게 허락하지만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
향엄 선사가 다시 말하였다.
“나에게 한 기틀이 있어서 눈을 깜짝하여 그대에게 보이거든 만약 그것을 알지 못하면 따로 사미를 부르리라.”
앙산 선사가 말하였다.
“사형이 조사선을 안 것에 대하여 기뻐하노라.”
해설 ; 향엄지한(香嚴智閑,?-898) 선사는 등주(鄧州)사람으로 속성은 유(劉)씨이며, 법명은 지한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백장
회해 선사의 문하에서 수행하다가 후에 위산영우(潙山靈祐)선사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키는 7척이나 되고 아는 것이 많고 말재주가 능하며 학문은 당할 이가 없었다.
하루는 스승 위산 선사가 향엄 선사에게 물었다.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전부 듣고 본 것뿐이다.
지식에 대해선 묻지 않겠다.
그대가 태어나기 전, 동과 서를 구별하지 못했을 때의 그대 모습을 말해 보라.”
이에 향엄 선사는 대답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특유의 지식과 말재주를 동원하여 몇 마디 했으나 모두가 엉터리였다.
향엄선사는 마침내 스승에게 도를 일러주실 것을 청하니 위산 선사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옳지 않다. 스스로가 일러야 그대의 안목이니라.”
이때 향엄 선사는 방으로 돌아와 모든 서적을 두루 뒤졌으나 한마디도 대답에 맞는 말이 없었다.
그 길로 그는 서적을
몽땅 태워버렸다.
책을 태우는 것을 보고 달려온 학인이 자기에게 책을 달라고 하자 향엄 선사가 말했다.
“내가 평생 동안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그대가 또 피해자가 되려는가?”
향엄 선사는 한 권도 주지 않고 몽땅 불태워 버리며 굳은 각오를 했다.
“금생에는 불법을 바로 배우지 못했다.
그동안 나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여겼었는데, 오늘 위산 선사께 한 방망이 맞으니 그런 생각이 깨끗이 사라졌다.
이제는 평범한 대중으로 살며 여생을 보내리라.”
향엄 선사는 이런 각오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스승 위산 선사에게 하직하고 향엄산으로 들어가 옛날 혜충국사가 살던 터에 암자를 짓고 수행에 들어갔다.
하루는 마당에서 풀을 베면서 번뇌를 덜고 있는데 무심코 던진 기왓장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크게 깨달았다.
그 유명한 향엄격죽(香嚴擊竹)이다. 선사가 대오(大悟)한 후에 개당(開堂)을 하니 위산 선사가 편지와 주장자를 보내왔다.
이를 받고 선사는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울었다.
옆에 있던 제자가 놀라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왜 그렇게 우십니까?”
“겨울에 할 일을 봄이 되어서야 시키는구나.”라고 하였다.
직지에 소개된 여래선과 조사선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선가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말이다.
스승인 위산영우 선사와 앙산혜적 선사의 가풍을 함께 일컬어 위앙종(潙仰宗)이라는 선가 5종의 하나를 수립하였는데 앙산 선사가 향엄 선사를 인가하는 대목이다.
송곳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여래의 경지와 조사의 경지가 다를 리가 없지만 앙산 선사는 조사선을 더 높이 표현하고 있어서 후대까지도 그 말에 쫒아 조사선을 높이 보는 경향이 있다.
사실 불교의 완성은
후기 대승불이다.
즉 법화경이나 화엄경의 가르침이 불교의 완성이며 경전의 완성이다.
그런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서 특유의 선도(仙道)와 융합하면서 인간정신의 궁극을 선불교에 두는 경향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사선이니 여래선이니 하는 이야
기가 성행한 것이다.
“지난해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송곳을 꽂을 땅이 없었는데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다.”라는 말은 모든 존재가 철저히 텅 빈 공적의 경지를 표현하였다.
지극히 고준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에게 한 기틀이 있어서 눈을 깜짝하여 그대에게 보이거든 만약 그것을 알지 못하면 따로 사미를 부르리라.”라고 한 것은 그야말로 평상도리다.
즉 일상의 생활에서 하는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그대로 법이요 도인 것이다.
필요하면 시자인 사미를 부르기도 한다.
무엇이 특별한가.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도리는 매우 높아 보이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도리는 그저 평범할 뿐이다.
즉 부정을 거쳐서 다시 긍정으로 돌아온 경지이다.